제 83화 - 꽃 피는 궁궐의 봄 (완결)
" 대체 왜 아직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이냐."
교태전 밖에서 안절부절하며 기다리고 있던 윤은 밤이 되어가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는 교태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임 상선에게 물었다.
" 예. 중전마마께서 초산이신지라 아무래도 난산인듯 하옵니다.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오니 전하께서도 제발 체통을 생각하시어 침소로 가심이..."
" 작금의 상황에 임금의 체통 따위가 무에 중요하단 말이냐!"
조수라를 물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화에게 산통이 찾아왔다.
점차 잦아지는 산통에 서화는 내의녀와 함께 산실청에서 해산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화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윤도 대전에서 점잖히 앉아 중전의 해산 소식을 기다렸다. 그러나 시각이 흐르고 흘러 석강을 마치고 야참을 들이고 난 후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끝내 자리를 박차고 교태전으로 걸음한 터였다.
당장이라도 산실청 안으로 들어가 중전의 손이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임금께서 여인이 해산하는 도중 들어간 적은 없거니도 하거니와 있어서도 안된다며 윤의 곤룡포 자락을 붙잡고 애원하는 임 상선으로 인해 바깥에서 속만 끓이는 중이었다.
" 아아아아악!!"
서화의 비명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올 때마다 윤의 심장은 바싹바싹 매마르는 듯 했다.
여인이 아이를 낳는 것이 이리도 힘든 일이었던 것인가.
중전의 고통이 저로 인해 그리 된 것 같아 미안하고 안스러웠다.
그렇게 밖에서 망부석처럼 교태전만 목이 빠져라 기다린지 얼마나 지났을까.
" 응애, 응애"
어느 순간 서화의 비명소리가 잦아들더니 아이의 우렁찬 우는 소리가 들렸다.
" 중전마마께서 원자 아기씨를 생산하셨습니다."
다소 지친 듯한 기색으로 내의녀가 나타나 원자의 탄생을 알렸다.
" 경하드리옵니다, 전하."
주변에 있던 궁인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 원자... 그렇다면 아들이란 말인가."
" 예, 전하. 전하의 맏 아드님이 태어나셨습니다."
이 순간이 믿기지가 않았다.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이라. 실감이 나질 않았다.
밤을 꼬박 새고 동이 틀 무렵이 되어서야 윤은 서화가 있는 곳으로 발을 디딜 수 있었다.
" 전하.."
" 이 아이가... 과인의 아들인 것이오?"
" 예, 전하."
서화의 품엔 새근새근 잠이 든 갓난 아이가 안겨있었다.
이 아이가 정녕 과인의 아들이라...
아비가 된다는 것이 이리도 가슴 벅찬 일이로구나.
물끄러미 아기를 쳐다보고 있던 윤은 저도 모르게 울컥하였다.
" 원자가 전하를 많이 닮았습니다."
서화의 목소리도 다소 지쳐보였지만 해사하게 웃어보였다.
너무도 자그마한 아이. 그러나 그 아이가 주는 기쁨은 온 세상을 꽉 채우고도 흘러 넘쳤다.
" 고맙소, 중전... 참으로 수고하였소."
마음이 뜨거워진 윤은 결국 옥루를 흘리며 붉은 곤룡포를 적셨다.
***
봄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햇살이 완연한 모습으로 궐 안을 따뜻하게 비추는 어느 날.
서화는 멀리 떨어진 외딴 곳으로부터 온 한 통의 서찰을 받았다. 비록 보낸 이의 이름은 쓰여져 있지 않았지만 서화는 빙긋 웃으며 반가운 눈길로 서찰을 펼쳤다.
[ 중전마마,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중전마마와 주상전하의 다복하신 소식은 이 먼곳까지 바람을 타고 더러 들려오곤 합니다.
그럴 때면 소인도 중전마마와 함께 어울렸던 시절을 떠올리곤 하지요.
소인을 벗이라 칭하며 늘 살가이 대해주셨던 중전마마의 은덕은 죽을 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옵니다.
소인은 이곳에서 무탈히 지내고 있사옵니다. 다만 중전마마를 다시 뵈올 길이 없어 통탄스럽고 이 허망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나이다. 그러나 소인, 언제나 중전마마와 주상전하의 안위와 수복강녕을 소원할 것이옵니다.
부디 만수무강하시옵소서.]
서찰을 다 읽은 서화가 웃으며 제 앞에 앉아있는 영후에게 물었다.
" 이리 매번 스승님께 빚을 지기만 하니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그런 말씀 마십시오. 소신, 오랜 벗지기가 그리워 걸음하였다 오는길에 받아온 것 뿐이옵니다."
" 벌써 아이가 셋이라 들었습니다. 모두 사내 아이라지요?"
" 예. 제일 큰 아이는 검을 다루는데 제법 소질이 있어 아이의 아비가 직접 검술을 가르친다 들었습니다."
" 뛰어난 아비의 피를 물려받은만큼 훗날 훌륭한 무사가 되어 세자의 겸사복이 되어준다면 이보다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서화가 기쁘다는 듯 해사한 웃음꽃을 피웠다. 그러한 서화를 보며 영후는 홀로 생각에 잠겼다.
어미가 되었어도 여전히 소녀같이 아름다운 여인.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성큼성큼 들어와 제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어놓던 여인. 시간은 흘렀어도 영후의 마음 한구석엔 서화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사모하는 이에 대한 그것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제 마음이 다른 곳으로 옮겨갔기 때문이겠지.
" 소혜...아니, 숙부인께선 산달을 얼마 앞두지 않았다 들었습니다. 더워지는 시기에 해산을 하느라 몸이 더 무거울텐데... 걱정입니다."
서화가 걱정스런 어투로 말하자 영후가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말했다.
" 소신의 내자는 염려치 않으셔도 될 듯 하옵니다. 더위보다 강한 여인인지라..."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소혜를 생각하자 어서 빨리 퇴궐하여 복사꽃 같은 소혜의 얼굴을 보러가고 싶었다.
처음엔 그저 전하의 하명에 따라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혼례를 치뤘다. 그러나 어느덧 소혜와 함께한 세월은 양분이 되어 영후의 가슴에 뿌리를 내렸다.
" 그래도 아이를 품은 여인은 더위를 더욱 잘 타는 법이니 스승님께서 곁에서 힘이 되어주십시오."
" 예, 중전마마."
이제는 영후도 비로소 서화를 바라보며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윤화각에선 연신 웃음소리가 떠나갈 줄 몰랐다.
윤과 서화. 그리고 올해 일곱이 된 세자 이 연(姸)을 비롯해 여섯 살의 효경 공주, 네살의 효명 대군, 세살의 효안 대군이 함께 모여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어느새 성견이 된 복녕이와 함께 아이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꽃씨를 따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윤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서화에게 말했다.
" 과인은 공주가 좋소. 그러니 이번엔 꼭 공주를 낳아주시오."
지난 칠년간 세 명의 대군과 한 명의 공주를 생산한 서화. 그리고 또다시 서화의 뱃속에 또 하나의 생명이 움텄다.
" 전하께선 공주가 좋으십니까."
" 당연한 것을 어찌 물으시는 것이오? 중전을 닮은 공주는 많을수록 좋소."
효경 공주의 재롱에 매번 넋을 놓고 마는 윤은 여식을 키우는 재미를 깨닫고선 그 뒤로도 공주를 바랬다. 그러나 매번 대군의 탄생으로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론 얼마나 아쉬워했던가. 더욱이 이제는 자신의 뒤를 이을 세자가 있으니 대군보다는 귀여움이 넘치는 공주에 대한 욕심이 더욱 커졌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공주들 여럿이 자신의 곁에 앉아있는 것을 상상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고맙소, 중전."
"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윤이 대뜸 서화의 두 눈을 지긋이 응시하며 말하자 서화는 발그레 뺨을 붉혔다. 아이를 여럿이나 낳았음은 물론 또다시 용종을 잉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녀같은 중전의 수줍은 모습에 윤의 심장은 또다시 설레이기 시작했다.
" 중전께서 과인의 여인이라 행복하오. 과인이 쌓아올린 마음의 좁은 벽 안에 갇혀 방황하고 있던 것을 모두 깨부수고 과인을 이 밝은 곳으로 끌어내준 이가 바로 중전이라오."
" ..."
" 지금도 흘러간 옛 일을 생각하면 과인의 마음이 아프오. 중전의 마음을 다치게 했던 것이... 참으로 못났던 과인이 부끄럽소."
" 신첩은 이미 기억도 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니 전하께서도 잊어버리십시오. 지금 이 순간, 전하께서 느끼시는 행복한 감정만 마음에 품으시면 됩니다. 신첩처럼요."
서화가 윤을 향해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봄볕같이 따스한 여인, 나만의 여인.
그대가 있기에 과인에게도 봄이 찾아왔소.
그대가 이 궐 안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주었으며 축축하고 시리던 과인의 마음에 빛을 비추어주었소.
그대가 과인의 곁을 지켜주었기에... 이리도 행복한 풍경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소.
자신의 옆에는 아리따운 중전이, 윤화각 주변에는 보기만 해도 뿌듯해지는 자신과 중전을 꼭 닮은 아이들이 있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 사랑하오, 중전."
윤이 슬그머니 당의 앞자락 안에 숨어있는 서화의 손을 움켜쥐며 자신의 마음을 부드러운 음성으로 속삭였다.
" 신첩도 전하를 온 마음을 다해 사모하나이다."
이들의 봄날은 앞으로도 지속될 터였다. 계절이 수십번 바뀌는 세월 속에서도 굳건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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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결 후기, 추후 작품 연재 안내> 독자님들께 드리는 말씀
너무너무 애정하는 독자분들께.
안녕하세요, 놀마입니다.
오늘부로 < 꽃 피는 궁궐의 봄>이 완결되었습니다. 연재하는 기간동안 독자분들의 열렬한 응원과 성원이 있었기에 이렇게 무사히 이야기를 매듭지을 수 있었습니다.
< 꽃 피는 궁궐의 봄>은 제게 첫 사극 소설이다 보니 틀리기도 하고, 어색한 부분, 모자란 부분이 많아 한마디로 허점투성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큰 사랑을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또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사전에 조선왕실에 대해 조사를 하고 실록을 읽는 등의 노력을 하였으나 제 실력이 너무 모자라 독자분들께 혼란을 드린 것 같습니다.
간혹 독자분들 중에서 소혜와 영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해주신 분이 계셨는데 일단은 제게 부족한 부분을 좀 더 보완하고 나중에 소혜와 영후의 중심의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아마 영후와 소혜의 이야기는 이번에 연재할 소설들을 마치고 나면 쓰게 될 것 같습니다.
7월 중순까지는 오늘 완결된 < 꽃 피는 궁궐의 봄> 과 < 그대의 달콤한 유혹> 의 전자책 출간준비로 인해 시간 여유가 부족할 것 같아 새로운 소설의 연재는 7월 중순-하순에 시작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연재 계획은 앞서 네 작품과 마찬가지로 두 소설을 동시 연재하려 합니다.
소설의 이름은 <그대를 그리다> 와 <이것이 사랑이다> 입니다.
< 그대를 그리다>는 조금 무거운 남녀 관계의 이야기를, <이것이 사랑이다>는 <그대의 달콤한 유혹>의 연희와 같은 발랄,허당인 서른살 여자의 사랑이야기를 그리고자 합니다. 현재 각각 1 화 프롤로그만 업로드 해둔 상태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말씀 드릴 것이 있는데요. 제 블로그에 방문해주셔서 이웃 추가 혹은 서로이웃 추가 해주시는 독자님들이 계시는데 저와의 교류를 위해 그렇게 해주시는 것이라면 저는 너무너무 감사히 이웃 관계를 맺는 것이 행복하고 좋습니다. 그러나 만약 연재하는 소설의 무삭제본을 보시기 위해 그러신 것이라면 굳이 '추가'를 하지 않더라도 보실 수 있으니 번거롭게 이웃 추가 하시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상당히 귀차니즘이 많다 보니 제가 귀찮다 느끼는 것은 독자님들도 귀찮다 생각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제 블로그에 올리는 글은 모든 독자분들께 별도의 '추가' 행위 없이 '모두 공개'입니다. 다만 무삭제본은 반드시 성인 독자분들만 읽어주시길 거듭 부탁드립니다.
제가 네 편의 소설을 행복하게 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다 독자님들의 사랑과 애정 덕분입니다. 제가 독자님들의 이러한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은 더 발전된 글솜씨로 독자분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언제나 노력하고 발전하는 놀마가 되겠습니다.
무더운 여름, 더위 조심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2016. 7월 9일.
놀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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