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 피는 궁궐의 봄-67화 (67/83)

제 67화 - 모종의 거래

단주가 유월관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타하기가 무섭게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세르샤와 그를 따르는 세명의 무리가 단주의 방으로 몰래 들어섰다.

호롱에 불을 켜려는 아르샨의 행동을 세르샤가 급히 저지하며 말했다.

" 우리가 이 안에 있다는 것을 상단의 남아있는 이들에게 대놓고 알릴 셈이냐."

" 그러나 방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습니다."

" 아직 해가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으니 방 안을 둘러보는데 어려움은 없다. 단주가 돌아오기까지 여유가 조금 있으니 너무 급히 서두르려 하지 마라."

" 예."

" 분명 방 안 어딘가에 단주가 물건을 숨기는 곳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찾아야 한다."

세르샤의 말에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벽이 고르지 않은 부분은 없는지, 혹 벽 사이에 바람이나 빛이 새어들어오는 곳은 없는지, 바닥에 깔린 양탄자까지 모두 들춰보는 것은 물론 의자의 밑동까지 샅샅히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 세르샤님. 아무리 뒤져봐도 수상한 곳이 없습니다."

" 제 생각도 같습니다."

아무리 이 잡듯 찾아봐도 수상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 그럴리가 없다. 분명, 이 안 어딘가에...!"

끼이익-

세르샤가 걸음을 옮기던 중, 바닥에서 세르샤의 체중에 의해 바닥에 깔린 나무가 기이한 소리를 냈다.

" ..."

" 어찌 그러십니까, 세르샤님?"

하던 말을 멈추곤 발을 앞 뒤로 바꿔가며 소리가 난 부근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더니 자신의 바로 옆에 있던 책장을 옆으로 밀어냈다.

그리고는 어둠 속에서 바닥을 들여다 보기 위해 눈에 잔뜩 힘을 준 채 엎드리더니 손으로 바닥 위를 더듬기 시작했다.

" 여기다."

무언가 감이 온 듯 세르샤가 아르샨을 불렀다.

" 다른 책장 주변엔 먼지가 쌓여있으나 이 책장 주변만은 아주 깨끗하다. 더욱이 이 책장 밑에 깔려있는 나무는 아래의 공간이 비어있는 것처럼 이 주변의 나무에 비해 유달리 가벼운 소리가 난다."

세르샤의 말대로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쓸어보니 손잡이처럼 옴폭 패인 부분이 느껴졌다. 아르샨은 이 부분에 손가락을 넣고 힘껏 위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 안에 커다란 함이 들어있었다.

" 세르샤님! 여기에 함이 들어있습니다!"

" 조심히 열어보거라."

" 예!"

아르샨은 수하 두 명과 함께 함을 꺼내어 이를 열었다. 그 안에는 한 눈에 보아도 수많은 금괴와 은괴는 물론 장부로 보이는 것들이 한아름 쌓여있었다.

" 이 안에서 좌의정과 단주가 결탁한 증좌를 찾아야 한다. 또한 이 안의 물건들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세르샤의 말에 모두들 일제히 장부를 손에 들고 빠른 속도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세르샤 또한 한 권을 들고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장부 안의 거래 내용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파사국의 언어로 쓰여 있었다.

' 간교한 놈!'

단주와 거래하는 모든 타국의 상인들은 자신들의 비리가 이러한 형태로 흔적을 남겼다는 것은 꿈에도 모를 터였다.

교활한 단주의 술수에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는 다른 장부를 집어들었다. 장부의 목적도 겉면에 쓰여있지 않은 것이 수상했다. 그리고 장부의 내용을 한 장, 두 장 읽어갈수록 세르샤가 느낀 수상한 낌새는 확신이 되었다.

좌의정에게 헌납한 금품의 품목들이 세세하게 적혀있었다. 그 종류 또한 비단, 금괴, 상아, 보석에 이르기까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했다. 이 역시 파사국 언어로 쓰여있었다.

툭.

타국으로 추방되어서까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또 다른 작당을 벌이는 단주의 발칙함에 분노한 세르샤의 발밑으로 장부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 이게 뭐지?'

습기에 찼는지 조금은 눅눅한 종이.

이를 펼쳐 읽은 세르샤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좌의정과 맺은 모종의 거래. 그 안엔 파사국어와 조선어, 두 가지 언어로 쓰여있었으며 이들의 인장이 박혀있었다.

' 이는... 단주와 좌의정을 잡아들일 수 있는 확실한 증좌다.'

" 찾던 것을 찾았다. 그러니 다시 함을 원래 있던 자리로 넣어놓고 책장 또한 움직인 적이 없었던 것처럼 되돌려놓거라."

세르샤는 장부와 종이를 품에 넣고선 아무일도 없었던 듯이 무리와 함께 단주의 방을 빠져나왔다. 그러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돌아올 줄 알았던 단주가 상단으로 돌아왔다.

" 에잇!!! 탐욕스러운 돼지놈들 같으니!!! 제놈들 배를 불려준 것이 누구인데 감히!!!"

누군가 단주의 심기를 단단히 건드린 듯 했다. 단주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세르샤는 안도의 숨을 쉬며 급히 대사성의 저택으로 향했다.

***

깊은 밤, 심란한 마음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서책을 읽고 있던 영후의 방문에 탁,탁, 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곧 이것이 세르샤와 정한 둘만의 신호임을 기억해낸 영후는 재빨리 방문을 열었다.

" 어서 안으로. 다른 이들이 보기 전에."

세르샤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영후는 재빨리 불을 끈 뒤 주변에 인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세르샤에게 낮은 음성으로 말하였다.

" 찾고 있던 것은, 찾으시었소?"

툭.

세르샤가 품에서 장부와 종이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 고얀 성미하고는'

얼마든지 곱게 줄 수 있을텐데 일부러 내팽개치듯 바닥에 던지는 세르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작금의 상황에선 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군말없이 허리를 구부려 장부와 종이를 집어들었다.

" 그러는 대사성, 그대는 알아낸 것이 있으시오?"

한참을 아무말 없이 앉아있던 세르샤의 입에서 한참만에 나온 말이었다.

" ...있소. 알아내느라 무척 애먹었소. 과거 시험 치루는 것보다 몇 십배는 더 힘겨웠다오."

" 파사국 상단에 드나드는 그 기생의 정체는 알아내었소?"

" 그 일은 곧 갈무리 될 듯 하오."

" 잘 되었군. 허면 나는 그만 가보겠소."

" 이리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어... 고맙소."

"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마시오. 아무튼 잃어버리지 않도록 간수 잘 하시오. 단주가 장부가 사라진 것을 알아채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니."

첫 만남이 순탄치 않아서일까. 세르샤와 영후의 관계는 여전히 아슬아슬하게 삐그덕거렸다.

세르샤가 상단으로 돌아간 후, 영후는 주위를 경계하며 장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은 뒤에서야 한참을 수그리고 있던 목을 위로 추켜세웠다.

이미 시운에게 여종을 찾았다는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었다. 거기에 파사국 단주와 좌의정의 거래 장부까지 손에 넣었으니 이제 영후 자신이 할 일은 동이 트는 대로 입궐하여 임금께 자신이 알아낸 것을 고하고 장부를 건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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