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화 - 여인의 야망 (1)
※ 앞 회차에서 한 독자분께서 달아주신 " 처녀가 아니면 임금의 승은을 입을 수 없으며 승은을 입은 여인은 다른 사내에게 몸을 보일 수 없다"라는 코멘트에 대한 짤막한 답을 먼저 드리고 시작하고자 합니다.
먼저, 설매가 현재 시점에선 기생으로 나오나 처음 임금의 승은을 입은 시기엔 기생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관한 부분은 앞으로 설매가 어떠한 이유로 폐비 강씨의 얼굴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전개에 있어 함께 밝혀질 내용이기에지금 당장 더 자세한 설명을 드리기가 어렵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 기생이 궐에 들어가 임금의 승은을 받기는 불가능하나 좌의정과 설매 무리는 아직 설매의 본 정체가 탄로났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며 윤의 폐비 강씨에 대한 사랑이 아직도 굳건하리라 생각하며 폐비 강씨의 얼굴을 가진 설매를 이용해 윤을 흔드려는 것입니다. 이전에 중전이었던 자가 기생이 되었다 믿게끔 만든 뒤 윤이 다시 폐비 강씨(인 척을 하는 설매)를 가까이 하게끔 만들려는 속셈인 것이지요.
또한 임금의 승은을 받는 여인들이 처녀여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이나 설매는 윤이 사랑했었던 여인의 얼굴로 둔갑하였다는 점, 윤을 곁에서 모시던 신 상궁이 이 여인을 임금의 침소에 들인 이유는 오직 그 여인이 옛 중전이었던 폐비 강씨인줄로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 상궁은 윤이 폐비 강씨에 대한 그리움, 애틋함, 사랑으로 인해 과거 그녀와 비슷한 여인들을 침전으로 불러들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로 폐비 강씨와 윤이 만나 그간의 회포를 풀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최 귀인의 꼬임에 넘어가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여담이나 임금이 기생이었던 여인을 후궁으로 들인 경우는 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제가 알기로는 연산군 때의 장녹수는 제안대군의 노비로 살다 기생이 되었고, 후에 연산군에 의해 궐에 들어가 숙원에 봉해졌으며 태조실록에 의하면 후궁인 화의김씨도 김해의 관기출신이라 기록되어있습니다. 장녹수 같은 경우는 중종반정을 도모한 공신들에 의해 천한 기녀 출신이라며 조롱받으며 연산군의 광기를 부추긴 장본인이라며 매도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독자분들께 혼란을 드린 점, 좀 더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사실적,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못한 점은 전적으로 모두 글쓴이의 잘못입니다. 독자님들께서 혼란 없이 읽으실 수 있도록 앞으로는 이러한 부분에 더 신경쓰며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제나 크나큰 애정으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 놀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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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볕이 가슴 속 깊이까지 파고들어와 모든 것이 온화하게 느껴지는 일상 속에서 서화는 차츰 기력을 회복했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까탈스럽게 음식을 골라내는 입덧이 있었으니-.
서화를 측근에서 모시는 한 상궁과 박 상궁만 속으로 끌탕이었다.
임금은 물론, 서화까지 노리고 있는 자들이 사방에서 넘실대고 있는 와중에 회임 사실을 드러내는 것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그렇기에 서화는 두 상궁에게 거듭 자신의 회임을 숨겨야 한다 강조하였고, 두 상궁은 서화의 안위를 위해 나인들까지 멀리 하면서 입단속에 신경썼다.
윤이 자신을 믿으라 당부한지 보름.
그 날 이후 임금이 교태전을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이를 두고 궐 안엔 임금의 상총 (임금의 총애)이 폐비 강씨에게 흘러갔노라며 수군덕 거리기가 일쑤였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와 같은 소문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평온한 표정의 서화였다.
" 서화야."
조 귀인이 교태전에 걸음하였다. 헬쓱해졌던 벗의 건강이 염려되었는지 윤이 교태전에 다녀간 이후 인경이 하루에 한 번씩 들러 서화의 상태를 살피곤 하였다.
" 인경이 왔구나."
" 사가에서 어머니가 장떡을 만들어 보내 주셨어. 하도 맛나기에 혼자 먹기엔 아까워 함께 나눠먹으려 가져왔어. 어서 먹어봐."
인경이 장떡 하나를 집어 서화에게 건넸다.
" 이런 귀한 것을..."
궐에서 그 무엇보다도 그리운 것이 사가의 음식임을 아는 서화가 해사하게 웃었다. 그리곤 장떡을 받아들고 입으로 가져가려던 그 때.
" 우욱.."
오늘따라 장 냄새가 역하게 느껴지더니 이내 신물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 서화야! 괜찮아? 박 상ㄱ.."
" 부르지 마..하윽.."
박 상궁을 부르려는 인경을 다급히 말렸다.
" 대체 왜 이러는거야. 응?"
서화의 토악질을 지켜보던 인경이 서화의 등을 쓸어내려주며 물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혹 장떡에 독이 든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들었다.
" 하아... 아무것도 아니니 너무 염려 마."
"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왜 이러는 건데. 응?"
" ......"
서화의 마음속에 갈등이 일었다. 사실대로 말해도 되는 걸까.
" 그럼... 혹시...너...!"
그러던 차에 이 낌새가 무엇인지 이제서야 알겠다는 듯 인경이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끄덕.
차마 친우인 인경에게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궐 안에서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이들 중 하나였으니...
" 언제부터야? 응? 전하도 아셔?"
" ... 아직."
" 세상에. 이 큰 일을 왜 감추고 있는 것이야?"
" ...부탁이야. 아직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줘. 때가 되면... 좀 더 모든게 안정이 되고 나면 그 때 내가 웃전들께 아뢸게."
서화의 이러한 행동이 모두 폐비 강씨로 인해 본인의 처지가 위태롭다 느끼는 것이라 생각한 인경은 서화의 두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 알았어. 내가 힘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말해줘."
인경의 말에 서화는 그저 희미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
" 절대 고개를 들지 말고 최 귀인 마마의 뒤를 따라야 하오. 알겠소?"
소단이 나인 복장을 하고 있는 설매에게 연신 당부를 하였다.
" 명심하겠소."
이번에도 역시 대전의 대령상궁 신씨에게 도움을 청하였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터였다. 고심한 끝에 최 귀인은 낮것상을 들고 일부러 윤이 석강을 하고 있는 대전이 아닌 침소가 있는 강녕전으로 향했다.
" 최 귀인 마마, 전하께서는 지금 대전에 계시옵니다."
강녕전을 지키고 있던 나인이 최 귀인을 보자 윤의 위치를 아뢰었다.
" 알고 있다. 근자에 들어 날이 무더운 탓에 심신이 쉽게 지치기 쉽상인지라 전하의 옥체 보존을 위해 내 특별히 신경써서 만든 야참상을 들고 왔네."
" 하오나 최 귀인 마마, 전하께서 계시지 않는 동안엔 그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신 상궁 마마의 당부가 있었사옵니다."
최 귀인의 말에 강녕전 나인이 주인 없는 침소의 문을 열기를 머뭇거리자,
" 지금 네년이 내가 후궁이라 이리 얕보는 것이냐? 하여 지아비를 위해 이리 상을 봐온 귀인인 나를 미천한 상궁 따위의 말에 가로막는 것이냐? 네년이 지금 누가 웃전인지 모르는 모양이구나. 주리를 틀어주랴?"
" 최 귀인 마마,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최 귀인의 겁박에 강녕전 나인이 잔뜩 겁을 먹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 감히 나를 가로막다니. 당장 썩 물러가거라!"
그러자 강녕전 나인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며 물러갔다. 나인의 모습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최 귀인은 그제서야 입꼬리를 바짝 올려 웃으며 문을 열어젖혔다.
드르륵-.
" 저기에 상을 내려놓아라."
최 귀인의 말에 소단이 야참상을 들고 있던 설매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러자 설매가 냉큼 소단을 따라 윤의 침소로 들어갔다.
" 이번에는 반드시 해내시오."
소단이 설매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그리고는 설매만 안에 놔두고선 문을 닫았다.
" 가자."
소단과 눈빛을 주고받은 최 귀인의 일행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강녕전을 빠져나갔다.
' 반드시 오늘 밤 임금의 마음을 사로잡아 떳떳한 임금의 여인이 되어 궐에 당당히 내발로 걸어 들어올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닫힌 문 너머로 활활 타오르는 야망을 품은 설매가 조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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