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 피는 궁궐의 봄-57화 (57/83)

제 57화 - 과거... 그리고 현재 (1)

" 정녕 과인을 그리워한 것이오?"

" 어찌 신첩의 마음을 의심하십니까. 신첩에겐 살아서도 죽어서도 전하뿐입니다."

설매의 말에 윤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지만 어둠에 가리워져 설매는 그 모습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 전하. 신첩을... 옛날처럼 안아주십시오."

설매가 윤의 야장의를 만지작 거리던 손을 자신의 몸으로 가져가 걸치고 있던 천을 모두 벗어버렸다.

그리고는 윤의 손을 들어 자신의 맨 가슴을 감싸쥐게 하였다.

" 기억나십니까, 전하. 전하께서 하룻밤이 멀다 하고 매일 취하셨던 몸입니다. 신첩을...갖고 싶지 않으십니까."

" ..."

" 신첩을 취하십시오. 신첩이... 아직도 전하의 여인임을 느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신첩 전하가 아직 제 사내이심을 느끼고 싶습니다."

설매의 입가가 초승달 모양처럼 휘어졌다.

자신이었다.

이 나라의 임금을 자신에게 빠져들게 할.

임금의 건장하고 우람한 체격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랫배가 묵직해져옴을 느꼈다.

자신의 가슴을 쥐고 있는 커다란 손 또한 설매를 애닳게 만들었다.

그 때였다.

" 감히 임금의 몸에 손을 대다니. 이것이 대역죄임을 그대도 잘 알고 있지 않소?"

" 저..전하..!"

대역죄라니. 지금쯤이라면 자신의 몸에 취한 임금과 함께 금침 위에서 나뒹굴고 있어야 했다.

이러한 차가운 반응을 예상한 것이 아니었다.

" 지켜볼수록 가관이기에 잠시 두고보았으나... 참으로 어리석은 그대의 행동에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군."

" ... 또, 신첩을 내치시는 것이시옵니까."

설매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물었다.

" 전하와 재회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전하의 품에 다시 안기게 될 그 날 만을 기다리면서 살아왔단 말입니다..!"

" 성완군과 놀아난 그대가 과인에게 안길 날을 기다려왔다? 그 말을 지금 내게 믿으라고 하는 말이오?"

" 그것은 전하의 곡해이시옵니다! 신첩, 전하만을..!"

설매의 말을 듣고 있던 윤이 갑자기 설매의 손목을 우왁스럽게 잡아채더니 금침 위로 던지듯 넘어뜨렸다.

" 정녕 과인에게 안기고 싶었소? 그것이 바램이라면 그리 해주겠소."

윤이 거칠게 설매의 양 손목을 하얀 광목 천으로 묶었다. 그리고는 설매의 목을 한 손으로 누른 채 몸 위에 올라타듯 앉더니 가슴 곳곳에 커다란 잇자국을 무자비하게 남기기 시작했다.

" 그대의 가슴을 탐해주길 원하였으니 내 그리 하리다."

" 앗..! 전하.."

살점을 뜯어먹는 야수같은 모습과 고통에 설매가 다급한 목소리로 윤을 불렀다. 그러나 설매가 윤을 저지하려 할수록 설매의 목을 쥔 윤의 손에 힘이 점점 들어갔다.

" 저..ㄴ..하..! 윽.."

숨을 헐떡이며 설매가 간신히 윤을 불렀다. 기도가 막히는 고통에 윤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자신의 몸 위에서 옴짝달싹 않는 사내를 움직이는 건 무리였다.

" 어찌 그러시오? 과인에게 안기고 싶다 한 것은 그대가 아니오? 혹 너무 오랜만이라 과인이 그대를 어찌 안았는지 잊어버린 것이오?"

" ㅈ..ㅎ.."

얼마간의 몸부림 끝에 까무룩 정신을 잃어버리려던 찰나에 목 언저리가 가벼워지는 것이 느꼈다. 윤이 설매를 놓아준 것이었다. 이에 설매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잔기침을 해대었다.

" 콜록콜록.."

" 잘 들으시오."

차갑게 내려앉은 윤의 목소리에 설매가 흠칫했다.

" ...콜록..콜록..."

" 흘러간 과거는 흘러간 대로 놔두는 것이 좋소. 그대가 과인을 배신하고 성완군과 놀아난 것도 과거요, 우리의 부부 인연이 끚맺음을 한 것도 과거라. 이는 되돌릴 수도, 바로 잡을 수도 없소. 그러니 이제와서 무언가를 바꾸려 하지 마시오. 우린 이제 갈 길이 다르잖소."

" 그러나 전하.. 오늘 단 하룻밤입니다. 과거니 현재니 그런것들을 잠시 잊고 옛날로 돌아가 신첩에게... 전하의 품을 내어주실 수는 없으신 것입니까..?"

설매의 마음 속은 다급했다.

오늘 밤이 회임하기에는 최고의 길일.

무슨 일이 있어도 임금의 성은을 입어야했다.

" 과인이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궐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뿐, 그 이상은 바라지 마시오."

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

서안위에 팔을 올려 관자놀이를 괴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윤. 오늘 낮, 자신을 찾아왔던 벗과의 대화를 회상중이었다.

오늘 낮.

오수 (낮잠)에서 깨어나자, 임 상선이 대추차와 함께 들어오며 대사성이 근 한 시진 동안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고하였다.

" 전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절을 올린 윤이 방석 위에 앉으며 말했다.

" 무엇이기에 그리 비장한 표정까지 지으면서 말하는 것이냐. 말해보라."

" 그 전에, 전하께 꼭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 ..대체 무엇이기에 이리 심각한 것이냐? 무엇이든 대답해줄 터이니 물어보라."

" 전하의 마음 속에 있는 여인은 누구입니까?"

" 뭐라?"

자신의 심중에 있는 여인이 누구냐며 묻는 벗의 물음에 윤은 저도 모르게 목청을 높여 반문하고 말았다.

' ... 그렇다면 대사성도 설이 돌아온 사실을 아는 모양이로군.'

" 말씀해 주십시오."

" ..."

" 아직도 전하껜 폐비 강씨뿐입니까? 아니면... 지금 교태전에 계신 중전마마이십니까?"

" 어찌 그런 것을 묻는 것이냐."

" 사사로운 일로 여쭙는 것이 아니옵니다. 하오니 부디 말씀해주시옵소서."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는 벗의 모습에 윤은 얕게 탄식하며 말했다.

" 과인에겐... 오직 설 뿐이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헌데..."

" 지금은 그렇지 않으신 것이라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 이 나라의 주인인 과인의 말을 이리 겁없이 잘라먹는 놈은 네놈밖에 없을 것이다. 국사를 생각하니 네놈에게 곤장질을 할 수도 없고. "

" 소인의 성질머리 급한 것은 전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또한 이것이 이 나라 최고의 지존을 벗으로 둔 소인의 특권이 아닐런지요."

윤의 대답에 한층 안심이 되었는지 영후가 그제서야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윤의 농을 맞받아쳤다.

" 헌데. 어찌 그런 질문을 한 것이냐?"

" 전하. 소인을 믿으십니까."

" 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이기에 이러는 것이야? 믿는다. 너와 내금위장은 단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과인의 온 마음을 다해 믿는다. 그러니 어서 이리저리 돌리지 말고 말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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