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 피는 궁궐의 봄-51화 (51/83)

제 51화 - 아직...소식은 없는 것이오?

" 중전께서 장한 일을 하셨다 들었소."

이제는 틈만 나면 교태전을 드나드는 것이 일상이 된 윤은 서화의 얼굴을 보자마자 웃었다.

" 과찬이십니다."

" 그 동안 내외명부의 기강이 해이해졌던 것은 사실이오. 그랬던 그들을 중전께서 호되게 다스리셨으니. 이리 훌륭한 중전을 둔 과인의 마음마저 든든하오."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윤의 칭찬어린 말에 서화의 양 볼은 오늘도 어김없이 붉게 물들었다.

" 아, 오늘은 내 특별히 중전께 드릴 것이 있소."

" 그것이 무엇입니까?"

" 열어보시오."

윤이 건넨 자그마한 자개함을 열자 홍옥과 비취가 어우러진 노리개 두 개가 나왔다.

" 전하."

서화의 두 눈에 놀라움이 번졌다.

" 내일이면 우리가 혼례를 치룬지 한 해를 꼭 채우게 되는 날이오. 이를 기념코자 하여 과인이 손수 고른 것이라오."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꽁꽁 언 연못의 얼음과도 같았던 지아비가 한 해 동안 이리 다정해지다니. 서화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 내일은 중전과 과인의 국혼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한 진연이 열리지 않소? 그 자리에 중전께서 이 노리개를 하면 더욱 어여쁠 것 같소."

중전에게 선물할 노리개를 고르기 위해 온갖 보석이 달린 수백개의 노리개를 보고 또 보며 고심하였다. 그리고 그 노력 끝에 서화에게 가장 어울릴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골라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저, 중전의 웃는 얼굴을, 기뻐하는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요량으로.

" 전하께서 신첩을 위해 이리도 마음을 써주시니 신첩, 너무도 황송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 중전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족하오. 헌데 중전, 아직... 소식은 없는 것이오?"

윤이 헛기침을 하며 낮은 목소리로 서화에게 조곤조곤 물었다.

" 예? 소식이라니 어떤 소식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 흠..흠.. 그... 혹 신 것이 드시고 싶다거나, 계속 졸리다거나 하진 않으시오?"

서화의 회임을 은근히 바라는 윤의 목소리엔 기대가 숨어있었다.

이를 금방 알아차린 서화는 고개를 숙였다.

" 송구합니다, 전하. 신첩이 부덕하여 아직..."

" 중전께서 송구할 것이 무에 있소. 아이는 혼자가 아닌 둘이 만드는 것이 아니오? 과인이 더 노력하리다. 해서 오늘은 교태전에서 침수들까 하오."

윤은 서화의 대답도 듣지 않고 임 상선에게 명하여 금침을 준비하라 일렀다. 웃전의 막무가내 모습에 인이 박인 임 상선은 속으로 깊은 탄식만 삼킬 뿐이었다.

' 이래서야 관상감이 제 기능을 할 수 있겠는가.'

임금과 중전은 관상감에서 택한 길일에만 합방할 수 있는 것이 법도라지만 이를 철저히 무시한 채 하루가 멀다 하고 교태전에서 침수를 드는 윤 때문에 관상감이 택한 길일은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였다.

" 허면 관상감에서 올린 길일에도 교태전에 들면 되지 않겠느냐. 또한 과인이 이 나라의 주인이거늘, 누가 과인 앞을 막아서겠느냐."

이를 보다 못한 임 상선이 체통을 지키셔야 한다며 주청을 드리자 윤은 이와 같이 말하며 임 상선을 기함하게 만들기도 했다.

" 오늘 밤은 과인이 더욱 정성스레 중전을 사랑하겠소."

윤은 서화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윽고 서화의 이마, 잔잔한 콧등에도 살짝 살짝 입을 맞추었다.

서화의 목덜미를 타고 내려와 어깨 끝에 또 한 번 입술을 갖다 대었다.

어느덧 윤에게 익숙해진 서화는 곧 다가올 환희에 몸이 뭉근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서화의 볼록 솟은 두 가슴을 손으로 감싸고선 그 사이의 골짜기로 얼굴을 파묻었다. 향긋한 서화의 내음을 최대한 느끼려는 듯 윤은 코로 숨을 흠뻑 들이마셨다.

서화의 가느다란 허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윤은 더욱 짙게 서화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 읍..."

두 사람의 뜨거운 향연은 밤새도록 지속되었다.

***

" 중전마마! 그 시뻘건 것이 무엇입니까? 혹 천연두입니까? 당장 내의원에 다녀오겠습니다."

" 박 상궁. 조용히 하게. 중전마마, 소인이 분칠을 해드리겠사옵니다."

간밤의 활활 타오른 몸짓을 증명하듯 서화의 목엔 붉은 자국이 남았다. 이것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못하는 박 상궁은 호들갑을 떨며 내의원에 다녀오겠노라 하였고 오랜 궐 생활로 눈치 백단인 한 상궁은 박 상궁의 행동을 조심시키며 조용히 분첩을 손에 들었다.

서화는 그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이리 목에 흔적이 남은 것은 처음인지라 서화는 경대에 비친 자신의 목을 보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오늘은 자신과 주상전하의 국혼기념일 진연이 있는 경사스런 날. 내외명부에 대소신료까지 모두 모이는 자리에 음전하고 모두의 본이 되어야 할 자신이 이런 모습으로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 참으로 고우십니다, 중전마마."

남색 스란치마에 금실로 수놓인 하얀색 당의를 입고 어젯밤 지아비에게 선물 받은 노리개 한 쌍을 가지런히 맨 서화의 모습은 눈이 부셨다.

" 모두 중전마마께서 납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한 상궁의 말에 서화는 걸음을 빨리 하여 진연이 열리는 후원으로 향했다. 법도대로라면 여인들과 사내들로 나누어 내연, 외연을 따로 여는 것이 마땅하나 중전과 임금의 국혼기념일인 만큼 이례적으로 내외하지 않고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 어서 오시오, 중전."

윤이 서화를 맞이했다. 서화의 등장에 대소신료들과 내외명부가 일제히 자리에서 허리를 깊이 구부린 채 맞이하였다.

" 신첩이 너무 늦었사옵니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 과인도 이제 막 온 참이었소. 어서 이리 오시오."

윤은 자신의 비어있는 옆 자리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 이제 진연을 시작하라."

윤의 어명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장악원 소속의 악공과 악생들이 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색동원삼을 입고 화관을 쓴 여악(女樂)들 여럿이 가운데의 빈 공간으로 나와 장단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중전께서 얼굴이 더욱 화사해지셨소."

대왕대비가 서화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 번 서화에게 된통 당했던 내외명부 여인들의 모습은 이전에 비해 검소해졌다. 어쩌면 또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집에 놓고 온 것일지도.

최 귀인과 조 귀인도 서화와 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앉아 여악들의 춤을 감상하였다. 최 귀인은 무엇이 그리도 심기가 불편한지 주름잡힌 미간은 도통 펴질 줄을 몰랐다.

" 이제 검무를 하려나 봅니다."

화려한 색동원삼을 입은 여악들이 물러가고 무겁게 울려퍼지는 북소리와 함께 전복차림에 전립을 쓴 여악들이 검을 들고 나왔다.

여린 여인의 몸에도 불구하고 강인하고 날렵한 몸짓에 서화는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 참으로 대단한 여인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ㄲ.."

쾅!!!!!!!!

윤에게 입을 한 손으로 가리고 여악들의 검무 솜씨를 칭찬하려던 찰나 윤이 큰 소리와 함께 자리를 박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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