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 피는 궁궐의 봄-49화 (49/83)

제 49화 - 중전과 여인 사이

" 앗...흡..."

어두캄캄한 방 안. 검은 하늘에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의 눈부신 달빛이 은은히 창 너머 스며드는 사이, 남녀는 그 희미한 빛에 의지해 서로에게 열중한 상태였다.

" 읏..."

사내의 손짓에 여인이 가녀린 몸을 바르르 떨며 신음을 애써 집어삼켰다.

" 그리 참지 말라 하였건만."

사내가 여인에게 소리 없는 웃음을 지으며 속삭였다.

" 그리 참는 소리가 더욱 과인을 불타오르게 하는 것을 중전께서는 모르시나보오."

보드라운 금침 위에 누워있는 서화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윤이 말했다.

" 전하...신첩은..."

첫날 밤은 쾌락보다 몸을 찢어갈기는 듯한 고통에 숨고르는 것 조차 힘겨웠다. 또한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탓에 자신이 신음을 하고 교성을 터뜨려도 이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던 터라 이번엔 법도에 따라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 중전께서 그리 신음을 숨기려 할 수록 과인은 더욱 집요히 파고들 것이오."

윤은 서화의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선 무방비 상태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는 서화의 몸을 부드러운 손길로 쓸어내렸다.

이에 서화의 모든 솜털이 경직되어 바짝 솟아올랐다. 윤은 조금 전까지 입안에 넣고 음미하던 서화의 가슴을 다시금 입술 사이로 집어 삼켰다.

" ...흣..."

윤은 서화와의 초야 이후에도 줄곧 임금과 중전의 합궁에는 상궁들이 방 주위에 둘러 앉아 번을 서야 한다는 법도를 무시했다.

안 그래도 부끄러움이 많은 중전일진데, 상궁들이 주변에서 두 사람의 모든 소리를 들으며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으면 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런 중전이 좀 더 무거운 자신의 자리를 내려놓고 평범한 여인으로 잠시 돌아가 지아비에게 안기는 여인의 기쁨을 누리길 바랬다.

그러나 서화는 쉽사리 자신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늘은 기필코 자신의 팔 안에서 쾌락에 몸부림치는 중전을 보겠노라며 다짐한 윤은 입에 가득 문 서화의 가슴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 혀로 부드럽게 이리 저리 굴렸다.

" ...하으...ㅅ..."

온 몸을 관통하는 전율에 서화가 애써 몸부림치며 윤에게서 벗어나보려 하지만 사내의 힘을 뿌리치기엔 역부족이었다.

" 참지 마시오. 이곳엔 우리 단 둘 뿐이라오."

윤은 서화의 둔부를 쓰다듬었다. 그리고선 자신의 중심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리잡고선 조금씩 서화의 안을 파고들었다.

매우 좁은 서화의 안을 빈틈없이 매우며 윤은 서화를 애태우기 시작했다.

서화가 모든 것을 잊은 채 윤을 받아들이는데만 몰두할 수 있도록.

점차 윤의 손길에 익숙해진 서화는 조금씩 윤의 중심을 부드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에 덩달아 서화는 천천히 여인의 본분으로 돌아가 윤의 팔 안에서 사랑받는 여인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날이 점차 밝아오는 줄도 모른 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빠져든 채 사랑을 속삭였다.

***

" 어쩜 이리 고우십니까.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 같으십니다."

" 부부인 (府夫人)께서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으셨겠습니까."

" 요즘 전하께서 하루가 멀다 하고 교태전으로 납시신다 들었습니다. 중전마마의 회임 소식이 머잖아 들리겠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호호호."

선잠례와 친잠례를 거행하는 날. 유일하게 여인들이 주(主)가 되어 행하는 왕실 행사였다. 이에 모처럼 볕으로 나온 내외명부 여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화려한 형형색색의 당의와 커다란 가채머리에 나비잠, 떨잠을 꽂고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와중에 중심이 되는 것은 으뜸 서화였다. 항상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왕실의 웃어른인 대왕대비와 대비가 이번 행사에 참여치 않자 외명부 여인들은 물만난 고기처럼 담소를 나누며 삼삼오오 서화의 곁에서 그녀의 고운 자태를 칭송하고 한 번이라도 더 눈도장을 찍기 위해 분주했다.

서화의 곁에 나란히 앉아있는 조 귀인은 고운 미소를 지으며 소담한 다과를 외명부 부인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고 최 귀인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억지로 참느라 기를 쓰고 있었다.

" 전하께서 동월당과 서월당에 납시셨다 들었습니다. 아직 두 귀인께서는 회임 소식이 없으십니까."

임금의 유일한 숙부인 봉성대군의 처 부부인 임씨가 두 귀인에게 물었다. 임금의 총애가 교태전을 향하고 있는 것을 모두가 아는 와중에 이는 필시 귀인들의 숨은 속내를 은근히 떠보기 위함이었으리라.

" 전하와 중전마마의 금슬이 두터우시니 조만간 왕실에 큰 경사가 생길 것입니다. 제게 중전마마의 회임소식보다 더 중하고 기쁜 것은 없습니다."

조 귀인이 참으로 기쁜 듯 입가에 미소를 잔잔히 띠고 말하였다. 그런 조 귀인의 진심이 우러나와 전해진 듯 부부인 임씨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 최 귀인께선 회임 소식이 없으십니까. 좌의정 대감께서도 최 귀인의 회임을 염원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 모름지기 하늘을 보아야 별을 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하께서 교태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시니 어찌 하찮은 후궁 따위가 회임을 바랄 수 있겠는지요. 다만 전하께서 여인의 치마폭에 휩싸여 혜안이 흐려지시는 것은 아닐까 그저 염려될 뿐입니다."

뒤틀린 최 귀인의 잇새 사이로 비꼬는 말이 나오자 내외명부의 여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최 귀인의 친모이자 좌의정의 부인인 정경부인 박씨는 안절부절하는 얼굴로 중전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다.

" 귀인 마마, 어찌 그런 말씀을..."

" 최 귀인. 어찌 전하께서 교태전에 납시는 것을 여인의 치마폭에 휩싸이는 것 따위에 비유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언사가 지나치십니다."

최 귀인을 말리는 정경부인과 나무라는 부부인 임씨의 말에 최 귀인이 또 다시 입을 놀렸다.

" 제가 무슨 못할 말이라도 했습니까, 어머니. 그리고 부부인, 참으로 얄궂으십니다. 전하께서 중전마마만 찾으시는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어찌 저와 조 귀인에게 그림의 떡과 같은 '회임' 소식을 물으신단 말입니까."

" 좌의정 대감이 대비전과 대왕대비전을 드나들며 최 귀인과 주상 전하의 합궁을 손발이 닳도록 애원하며 주청드렸다지요. 어디 그 뿐이랍니까. 관상감 교수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회임할 수 있는 길일을 택해달라 하였다 들었습니다. 그 모습이 하도 딱하였다 들어 좌의정 대감이 그토록 공을 들인 보람이 있었는지 궁금하여 여쭈었습니다."

" 그...걸 어찌..."

" 궐 안에 비밀이란 것이 있는 줄 아셨습니까. 중전마마께서 아직 춘추가 미령하시고 전하와의 금슬 또한 더할나위 없건만 어찌 후궁이 아비의 권세를 이용하여 그런 천박한 술수를 쓴단 말입니까. 최 귀인께서도 말씀하였듯, 후궁 따위가 말입니다."

참아라. 참아야 한다.

분함에 치맛자락을 붙잡고 있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자 친모인 정경부인 박씨가 눈빛으로 최 귀인을 타일렀다.

" 어찌 눈을 그리 부릅뜨고 보십니까. 제가 없는 말이라도 했습니까?"

부부인 임씨가 기세를 몰아 최 귀인을 타박했다.

" 그만들 하시지요."

팽팽히 맞서는 두 사람 사이에 차갑게 가라앉은 서화의 음성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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