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화 - 진정한 초야 [初夜]
" ...기다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서화가 나긋하게 말하였다.
" 지금 무어라 하였소, 중전?"
난데없는 담대한 서화의 모습에 윤이 적잖이 당황하였다.
" 애태우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니...전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 중전."
" 저도...전하의 진정한 여인이 되고 싶습니다."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용기내어 마음을 전하였다.
현숙해야 할 중전의 입에서 먼저 안기고 싶다는 말이 나온 것은 파격적이고 엄청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리 말하는 서화의 모습이 요부와 같지 않고 지아비를 지극히 사모하는 지어미 같은 이유는 필시 서화의 진심이 우러나왔기 때문이리라.
" 중전.."
윤이 서화를 와락 끌어안았다.
비단자락이 서로 부대끼며 바작거리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졌다.
" 상선, 있는가."
윤이 임 상선을 불렀다.
" 예, 전하."
" 석강하러 갈 채비를 하라. 그리고 오늘은 교태전에서 침수를 들겠다."
" 예? 하오나 전하, 오늘은 중전마마와 합방하시는 날이 아닌 줄로 아옵.."
" 가뭄에 콩나는 듯한 합방일을 어느 세월에 기다리라는 것이냐."
" 허나 이를 대왕대비마마와 대비마마께서 아시오면..."
" 할마마마와 어마마마가 하루가 멀다 하고 타령하시는 것이 중전의 회임이 아니였더냐. 내 오늘 두 마마의 소원을 이뤄드리려 함이요, 큰 효를 행하고자 하니 상선은 그리 알고 차질없이 준비토록 하라."
우리 주상 전하, 어찌 이럴 때면 저리 말씀 한 번 막히지 않고 술술 하시며 다른 이의 입을 주머니 주둥이 오므리듯 다물게 하실까.
임 상선은 체념한 표정으로 그리 명 받잡겠다 한 뒤 중궁전 상궁들에게도 이를 귀띔하였다.
" 중전, 이따 다시 오리다. 그러니 과인을 꼭 기다리고 계셔야 하오."
석강을 위해 편전에 든 윤은 군위신강(君爲臣綱)을 논하는 중에도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그대가 맞소'라며 맞장구 칠 뿐이었다. 예리함으로 점철되어 늘 허를 찌르는 윤으로 인해 늘 긴장하며 편전에 들던 대신들은 평소와 너무도 다른 임금의 모습에 석강 내내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
검은 하늘에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해진 밤.
드디어 염원하고 고대하던 순간이 찾아왔다.
윤이 석강을 하는 동안 서화는 목욕재계를 하고 달맞이꽃 기름으로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땋았다.
임금의 행차를 알리는 상선의 목소리가 들리자 긴장으로 인해 서화의 길고 가느다란 속눈썹이 힘없이 파르르 떨렸다.
드르륵.
묵직한 임금의 걸음이 가까이서 느껴졌다.
" 중전."
" 전하."
" 이게..대체.."
서화를 본 윤은 자신의 짐작과 다른 모습에 말을 잇지 못했다.
" 전하와 가례를 올릴 때 입었던 대례복입니다."
" ..."
"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말씀하셨지요. 해서, 그 날로 다시 되돌아가고자 이리 갖추어 입었나이다."
적의에 대수머리까지 꽂은 서화였다. 초야인 동뢰연을 치루는 밤, 교태전에 들지 않고 다른 여인을 안은 지아비를 기다리다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서 꼬박 하루를 지샜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전하가 직접 해주시기 전까진 절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던 자신의 고집에 결국 교태전에 납시어 몹시 무서운 표정으로 머리장식을 떼어주던 지아비.
이제는 그 때의 기억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 저는...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서화의 말에 윤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서화의 뒤에 앉았다. 그리고선 손을 뻗어 서화의 머리에 얹혀져있는 대수머리를 고정한 기다란 비녀를 빼냈다.
또 다시 손을 뻗어 굳게 묶여있던 빨간색 비단 천을 벗겨내고, 떨잠과 머리 장식을 떼어냈다.
시간이 얼마간 흐르자 어느새 굵직하게 땋은 머리가 어깨 너머로 내려와있었다.
사르륵-.
입고 있던 열 여섯 겹의 옷들이 하나 둘씩 벗겨졌다. 서화는 그저 두 눈을 아래로 내리깐 채 지아비의 손길에 모든 것을 맡겼다.
속적삼과 속치마만 남은 서화의 몸. 윤이 서화의 속적삼을 벗겨냈다. 이미 교태전에 들기 전 야장의 차림으로 온 터라 윤의 옷차림도 가벼웠다.
반달처럼 둥글고 하얀 서화의 어깨가 드러났다. 이에 가슴을 가지런히 한데 모은 치마의 앞섬 너머로 굴곡진 부분에 윤의 시선이 닿자 이를 의식한 서화가 조심스레 가슴 앞을 가렸다.
" 후- "
입을 동그랗게 모아 등불을 껐다. 그리고는 바깥을 향해 윤이 외쳤다.
" 모두 교태전에서 물러가라."
" 하오나 전하, 이는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장지문 너머의 둘레방에 상궁들이 머물며 합궁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다는 전하의 말에 임 상선은 이번에도 펄쩍 뛰며 반대했다.
" 어명이다. 모두 필요없으니 물러가라. 한 명도 빠짐없이 교태전에서 오십보 밖으로 물러나 있어야 할 것이다. 묘시까지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말라."
어명을 들먹이며 으름장을 놓자 상선과 상궁들이 그제서야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교태전을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인기척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커다란 원앙금침을 슬쩍 곁눈질한 윤이 서화를 금침 위로 밀어 넘어뜨렸다.
" 읏.."
갑작스런 힘에 서화가 나지막히 신음을 냈다.
어둠 속에서 윤이 별다른 방황없이 서화의 입술을 찾아 진한 입맞춤을 나눴다.
서화의 입술을 모두 집어삼킬듯한 기세로 달려드는 저돌적인 윤의 모습에 서화는 속수무책이었다.
윤의 입술이 서화의 귓볼을 살짝 물었다 놓으며 축축한 물기를 남겼다.
갸냘픈 목선을 따라 윤의 입술이 내려오던 중 서화의 가슴 언저리에 다다랐을 때 속치마에 갈 길을 저지당하자 거침없이 서화의 속치마끈을 풀러 단숨에 벗어내버렸다.
이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이 되어버린 서화. 아무리 방 안이 어둡다고 하나 처음 접하는 사내의 손길과 발가벗은 낯선 느낌에 몸이 떨렸다.
" 떨지 마시오. 최대한 아프지 않게 하겠소."
윤은 서화의 복숭아처럼 탐스러운 가슴을 부드럽게 감싸쥐었다.
" 아...!"
저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오자 이를 급히 틀어막았다.
" 이 곳엔 우리 둘 뿐이니 법도를 억지로 따를 것도, 참을 것 없소."
서화를 달래며 윤이 봉긋 솟은 가슴을 입에 넣었다. 뜨겁고 부드러운 느낌에 서화의 몸이 실타래처럼 꼬이며 경직되었다.
지속되는 애무에 점차 방 안의 열기는 달아오르고, 때가 되었음을 느낀 윤은 서화의 안으로 들어갔다.
" 하읏.."
" ..사랑하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방 안에서 오직 서로의 숨결에 의지한 채, 두 사람은 농염해지는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해가 뜰 때까지 서로에게 집중하며 사랑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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