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 피는 궁궐의 봄-38화 (38/83)

제 38화 - 그럼...소첩의 옷을 벗겨주시겠습니까.

퇴청 후 방 안에서 아까 교태전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회상하고 있는 영후.

' 동명골을 다시 재건하고자 합니다. 아이들의 아픔이 서린 곳이 아닌 활기를 북돋아 그 많은 아이들이 사람으로써 누려야 할 것을 마땅히 그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동명골에 서당을 짓는다면 아이들이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겠지요.'

' 동명골 서당의 훈장으로 생각해둔 이가 따로 있으십니까.'

' 애석하게도 저는 아는 이가 많지 않아 없습니다. 하여 스승님께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적합한 이를 물색해주십시오.'

' 최선을 다해 찾아보겠습니다. 허나 쉽진 않을 것입니다. 동명골은 워낙 살기 척박하고 신경 쓰는 이가 많질 않아 모든 것이 낙후되어있고 떠돌이 생활을 한 아이들이 모여든 탓에 그 거친 아이들을 다룰 만한 이가 있을지... 그리고 동명골을 다시 지으려면 자금이 필요할텐데 이를 어찌 충당하실 생각이십니까.'

' 지난 여름 우기가 짧은 탓에 흉작이 들어 백성들이 곤경에 처했다 들었습니다. 동명골을 재건하는데 이들의 도움을 받고 교태전의 내탕금(內帑金)을 줄여 품삯으로 내어주면 내년 추수때까지 입에 풀칠은 하고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내탕금을 줄이시면 중전마마께서 어려움을 겪으실까 소신 염려되옵니다.'

' 지금 입고 먹는 것도 충분합니다. 제 새 옷 몇 벌 짓는 것보다 백성들이 제대로 먹고 입는 것이야말로 진정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이 아닐런지요.'

백성을 생각하는 중전의 마음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무궁했다. 그런 중전의 마음에 탄복한 영후는 진심으로 서화를 가까이서 모실 수 있음에 감사했다.

'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시다. 중전마마야말로 진정 이 나라에 걸맞는 여장부, 국모가 아닌가.'

그럼에도 마음 한켠이 쓰라리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영후는 서안의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꺼내었다. 언젠가 함께 검술 훈련을 했던 날 서화가 자신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라며 건넨 하얀 손수건.

차마 돌려주지 못하였다.

...그리 할 수 없었다.

' 어찌하여 당신은...전하의 여인인 것입니까.'

손수건 위에 수놓인 두 마리의 나비를 바라보는 영후의 마음이 착잡해졌다.

***

대령상궁 신씨가 최 귀인에게서 받은 약재를 음식과 섞어 임금의 주안상과 다과상에 올린지 엿새째. 대왕대비와 대비가 합심하여 고른 임금과 후궁과의 합방일을 하루 앞둔 밤이었다.

" 흠,흠.."

자꾸 아까부터 서책을 읽고 있던 윤이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헛기침까지 해대며 잔 한숨을 연거푸 내쉬고 있노라니 임금을 옆에서 모시는 임 상선이 조심스레 물었다.

" 전하. 혹 옥체가 미령하신 것이옵니까."

" 아니다."

" 하오면 오늘 밤 시중들 아이를 준비하라 이를까요."

" 그것도 되었다. 과인은 이제 지어미가 아닌 여인은 품지 않을 것이다."

" 예?"

임 상선이 윤의 말에 깜짝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도 그럴거니와 하루가 멀다하고 여인을 품으시더니 한동안 이를 멀리하시고 교태전으로 납시는 날들이 많으시기에 그저 중전마마와 금슬이 좋아지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왕권을 굳건히 하기 위해선 많은 후사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 그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임금께서 더 이상 중전마마가 아닌 여인을 품지 않으시겠다 단언하셨으니, 이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 그건 아니되실 말씀이옵니다, 전하!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임 상선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애원하였다.

" 그리 소란피울 일이 아니다. 지아비가 지어미만을 바라본다는 것이 그리도 잘못된 일인 것이냐."

" 전하께선 이 나라의 군주이십니다. 왕실의 권위를 단단히 하려면 모름지기 후사를 여럿 두시는 것이 마땅하심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전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또한 내일이 최 귀인 마마와 합방하시는 날이온데 어찌 중한 날을 목전에 두고 그리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 걱정말거라. 임 상선, 그대가 과인과 이 나라의 안위를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위하는 충신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많은 후사를 보는 것이 자네의 걱정이라면 염려 붙들어 매도 좋을 것이야."

" 예...?"

" 중전과 자식들을 여럿 나을 것이니 말이다. 이 한적한 궁궐에 어린아이 노니는 소리가 떠나가지 않도록 할 것이니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두고 자네의 노쇠한 몸이나 신경쓰게. 겨울이 오면 냉기에 요통으로 고생한다 들었다. 내의원에 일러 그에 좋은 약재를 준비하라 일렀으니 거르지 말고 잘 챙겨먹게."

임 상선의 잔소리와 동해바다보다 넓은 넉살좋은 걱정을 하루가 멀다하고 세자로 봉해지기 이전부터 들어온 윤은 능숙하게 그의 입을 틀어막고 다시 서책을 들여다 보았다.

' 어찌하여 단전 부근이 뜨거워지는 것인가.'

아까부터 좌불안석인 듯 몸을 이리저리 곤룡포 속에서 꼼질대던 윤은 자꾸만 뜨겁게 달아오르는 그의 아랫도리 탓에 서책에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 정신이 해이해졌군. 이처럼 사소한 것에 육신과 정신이 휘둘리다니.'

늦은 밤까지 윤은 서책의 책장을 쉽사리 넘기지 못한 채 끓어오르는 뜨거운 것과 사투를 벌였다.

***

" 전하께서 오십니다!!!"

" 그것이 정말이냐?"

드디어 고대하던 주상전하와의 합방일. 동이 트기도 전부터 최 귀인의 처소는 전하맞이 준비에 분주하였다. 나인들이 처소 곳곳을 쓸고 닦고 최 귀인은 목욕재계와 백단향유를 온 몸에 발랐다. 이 날을 위해 특별히 상의원에 일러 만들어 온 화려한 자수가 놓인 당의를 입고 최 귀인은 처소 밖까지 나가 임금을 맞이하였다.

" 전하! 어서 오십시오. 소첩, 오매불망 전하를 기다렸사옵니다."

최 귀인이 윤에게 가까이 다가와 눈물을 보이며 말하였다. 대꾸 없이 최 귀인 처소안에 든 윤이 방 안에 들어서자 반듯하게 준비되어있는 원앙금침이 보였다.

" 소첩, 입궁한 뒤로 전하를 모시지도, 뵙지도 못하여 마음이 닳아버릴 정도였나이다. 그런데 전하께서 이리 제 처소에 걸음하여 주시다니, 성은이 망극할 따름이옵니다."

최 귀인이 요염하게 교태를 부렸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 있노라니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자꾸만 저 아래에서 용솟음치는 뜨거운 기운이 윤의 온 몸을 휘감았다.

" 소첩이 한 잔 올리겠사옵니다."

" 되었다."

" 하오면...상을 물리라 하올까요."

" 되었다."

" 그럼...소첩의 옷을 벗겨주시겠습니까."

최 귀인이 술상을 옆으로 치우고는 윤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선 윤이 자신의 옷자락을 벗겨주길 기다리는 최 귀인. 임금의 손길이 닿는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그 힘들었던 인고의 시간이 지나고 그 끝에 다다르려는 찰나였다.

그러던 그 때.

" 최 귀인."

윤은 숨을 크게 고르며 최 귀인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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