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화 - 천천히 다가가리.
서화의 속적삼의 앞섬을 만지는 손길이 느껴졌다. 처음 접하는 낯선 손길의 감촉에 서화는 겁먹은 사슴처럼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 겁먹지 마시오."
윤이 서화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입술이 훑고 간 자리에는 뜨겁고 끈적한 붉은 흔적이 남았다.
속적삼을 조심스레 벗겨낸 윤은 또다시 서화의 입술을 찾았다. 이번엔 입술언저리에서 머무는데 그치지 않고 서화의 굳게 닫힌 대문짝처럼 앙 다문 서입술을 살짝 깨물며 짧은 찰나에 입술 안까지 점령해 버렸다. 자그마한 동굴같은 속에서 윤은 서화의 도망다니느라 바쁜 달큰한 것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제멋대로 유린하였다.
" 하아...하...아..."
윤은 풍성하게 한데 모여 단단하게 매인 젖가슴의 둔덕에 손을 대었다. 그러나 속치마가 가로막자 이 또한 매듭을 찾아 능숙하게 풀러내었다. 그와 동시에 무방비한 상태로 흐뜨러지는 서화의 둥그런 가슴.
윤이 이를 잡고 뜨거운 입김을 뿜자 서화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신음을 막았다.
" 흡...읏..."
들썩이는 서화의 가슴. 속치마도 한켠으로 치워버리고 자신도 걸치고 있던 야장의를 훌훌 벗어 내던지는 윤. 그는 마치 당장이라도 서화를 집어삼킬 거대한 범과 같았다.
서화의 허벅지 안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뜨겁고 단단한 물체. 윤이 몸을 포개며 합(合)을 시도하자 서화가 상체를 튕기듯 일으키며 이를 저지했다.
" 저..전하..."
" 어찌하여 이러는 것이오? 중전은 나의 부인이 아니오?. 과인의 씨를 받아 용종을 잉태하는 것이야말로 중전의 본분이 아니던가. 헌데 어찌하여 과인을 가로막는 것이오?"
한 번도 거절을 당해본 적이 없는 윤에게도 이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 ...시..신첩을...은애하십니까."
은애라니. 갑자기 이 무슨...
" 신첩, 비록 하늘이 정해주신 운명으로 인해 전하의 아내가 되었다고는 하나 전하의 마음을 제게 주시기 이전엔 신첩 또한 몸과 마음을 내어드릴 수 없습니다."
" 허..."
윤이 무언가에 크게 맞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지 못하자 서화가 이불을 끌어모으며 앞을 가린 채 말했다.
" 신첩 또한 원자 생산의 중요함을 모르지 않사옵니다. 허나, 신첩은 그저 원자 생산에 필요한 수단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 ......"
" 신첩...감히 전하를 마음에 품었나이다."
" ......!"
" 알고 있습니다. 전하의 마음 속엔 이미 다른 분이 있다는 것을요. 그 분을 잃으신 뒤, 마음이 허하시어 이를 달래고자 다른 여인들을 취하시는 것이라는 것도 신첩, 잘 알고 있나이다. 그리하여 전하께서 좀 더 편해지실 수 있다면 신첩은 그걸로 되었다고, 그것으로도 족하다 생각하였습니다. 허나...신첩은...허울뿐이란 중전이라 할지라도...그 여인들과 같이 되고 싶지는...그리..되고 싶...지는..."
서화의 큰 눈망울에서 투명한 방울들이 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이불자락으로 떨어졌다.
사모한다.
처음 전하를 본 이후로 자신의 마음엔 전하를 은애하는 마음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제일 존귀한 분을...감히 자신의 마음에 담았다.
인정하지 않으려 하였으나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되었고, 외면하며 부인하려 하였지만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자신 본연의 마음 앞에 속절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
조강을 마치고 천추전으로 걸음한 윤.
지어미를 품으려는 자신의 손길을 막아선 중전.
속치마를 흠뻑 적시도록 눈물을 흘리던 서화를 안아주지도, 눈가에 아슬아슬 처연하게 맺힌 눈물방울을 닦아주지도 못했다.
터질것처럼 힘차게 뛰던 윤의 심장은 가시덤불을 뒤집어 쓴 듯 아픈 것이 모든 수분이 증발하여 쪼그라들 것 같았다.
중전에게서 시선을 거두면 그 고통이 움츠러들까 하여 다른 곳으로 애써 시선을 돌려보았지만 심장의 고통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동이 틀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린 몸으로 밤까지 지새우게 만드는 것 같아 서화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고 싶었으나 교태전 주변에 있을 상궁들과 나인들, 그리고 엄 상선들을 생각하니 그럴 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오도가도 못한 채 자리지킴을 해야했다.
어슴푸레한 빛이 창살을 뚫고 방 안의 사물들이 조금씩 밝아져오자 그제서야 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중전께선 좀 쉬시오. 아침 문후는 과인 혼자 드리겠소. 어마마마와 할마마마껜 중전의 몸이 미령하다 말씀 드릴 테니 걱정말고 눈 좀 붙이시오."
자신이 떠난 뒤 중전은 어찌하고 있을까. 교태전을 나온 순간부터 여지껏 중전삼매경이었다.
자신을 은애한다던 중전. 떨림이 뒤섞인 그녀의 목소리는...진심이었다.
" 시운아."
윤이 자신의 벗이자 내금위장인 시운을 불렀다.
" 예, 전하."
"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었다면...그것을 달래기 위해선 어찌 하는 것이 좋겠느냐?"
중전의 순정을 상처입힌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윤의 말에 시운은 간밤 교태전에서 중전마마와 주상전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음을 직감했다.
" ...허면...선물을 하시는 것은 어떠시올런지요."
자세한 연유야 어찌되었든 임금께서 중전마마의 마음을 달래드리려 한다는 것은 매우 좋은 징조였다.
" 선물이라. 어떤 선물을 한 단 말이냐."
" 전하께서 주시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좋아하실 것입니다."
시운의 말에 몇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무언가를 준비한 윤은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교태전으로 향했다.
지난 번 합방을 하기 위해 교태전을 찾았을 때와는 달리, 중전의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걸음이 빨라졌다.
***
" 저..전하. 어찌 기별도 없이..."
" 지나가던 길에 무언가를 주웠는데 과인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중전에게 물어보려 들렀소."
윤의 뒤에 비단으로 덮인 소쿠리를 들고 서 있던 임 상선은 임금의 어설픈 거짓에 절로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입을 꾹 다문 채 입꼬리를 올렸다.
" 그것이 무엇입니까?"
서화가 궁금한 듯이 묻자 윤이 말했다.
" 중전께 내어드리거라."
임금의 명에 따라 임 상선은 조심스레 서화의 앞에 비단 보따리를 내려놓았다.
서화가 손수 묶여있는 매듭을 풀기 위해 손을 대려던 그 때,
" 어머나!"
무언가가 안에서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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