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 피는 궁궐의 봄-21화 (21/83)

제 21화 - 알 길 없는 마음(心)이라.

" 훗. 과인이 그리 무서운게냐."

서화가 찬 바람속에서 눈물을 홀로 삼키고 있던 시각-,

윤이 술잔을 들이키며 그의 앞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앳된 소녀를 향해 말했다.

" 아..아니옵니다."

" 이리 가까이 오라."

" ......"

" 과인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리 오라."

그제서야 소녀가 쩔쩔매며 윤의 앞으로 다가갔다. 숙이고 있는 소녀의 턱을 움켜쥐고 들어올려 자신의 시선과 마주하게 하는 윤. 소녀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아래로 깔았다.

" 흡..."

느닷없이 소녀의 입을 맞추는 윤. 소녀의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 그 안을 거칠게 탐하였다. 온몸을 전율케 하는 윤의 행동에 소녀가 두 손을 꽉 맞잡았다. 한참을 입술에서 머물며 소녀의 여린 숨결을 가지고 놀던 그가 술상을 한켠에 밀어놓고 소녀를 금침 위로 넘어뜨렸다.

능숙하게 저고리 옷고름과 치마를 벗겨냈다. 그 속에 입고 있는 하얀 속저고리와 속치마도 서슴지 않고 단번에 벗겨 소녀를 나신으로 만들었다.

두려움 가득한 눈이 허공에서 초점을 두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여태까지도 부지기수로 보아왔던 눈동자였다.

하지만 이를 철저히 무시한 채 본인이 걸치고 있던 야장의를 벗어던진 채 소녀의 몸 위에 자신의 몸을 포갰다.

" 하윽..."

거칠게 젖가슴을 휘어잡는 억센 손길에 소녀가 아픔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냈다.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여느 때와 달리 아무런 전희도 없이 소녀의 안에 자신의 뜨거운 중심을 밀어넣었다.

" 으...읏..."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고통에도 소녀의 매마른 수풀은 꿈틀대며 윤의 것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소녀의 몸부림에도 윤은 그저 자신의 본능을 따라 묵묵히 소녀의 중심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몸을 움직였다.

윤의 거친 몰아침에 소녀의 몸이 조금씩 위로 움직였다. 금침에서 벗어나지 않고 윤의 것을 받아들이는 본분을 다하기 위해 금침자락을 꽉 잡았다.

윤의 몸동작이 시간이 흐를 수록 거칠면서도 커졌다.

" 읍...으..읍...."

어느새 소녀의 안은 부드럽고 매끄러워져 윤의 것을 거침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물밀듯 몰려오는 쾌락에 발가락이 이리저리 뒤틀렸다.

소녀의 머리칼을 윤이 부여잡았다. 아무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오로지 그리워 하는 이만을 떠올리며 윤이 소녀의 안에 뜨거운 절정을 쏟아부으려는 찰나.

" 허억...헉....헉..."

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하던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선 소녀의 옆에 나뒹굴듯 쓰러져 누웠다.

어느새 쾌락에 빠져들어 윤의 절정을 기다리고 있던 소녀는 내심 아쉬운 마음까지 들었다.

" 나가라."

윤의 시린 음성이 소녀의 등을 움츠리게 했다.

" 당장 나가라!!!"

노기가 가득한 윤의 말에 소녀가 허둥지둥 옷가지를 챙겨들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상궁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 후우..."

남녀가 한바탕 벌인 정사의 뜨거운 온도가 채 가시지 않은 방 안. 윤이 한숨을 몰아 쉬며 이마에 손등을 갖다대었다.

' 제기랄. 왜 하필 그 순간에 중전의 얼굴이!'

언제나와 같이 그리운 정인을 생각하며 그녀 대신 다른 여인을 품었다. 자신이 그리워하는 여인과 다른 머리칼 색깔, 그리고...무취 (無臭)에 가까운 희미한 동백꽃 향기.

' 중전이 멋대로 과인의 취향을 바꾸어 그런 것이야.'

자신의 시침들 아이를 대신 직접 준비하라 명하였을 때의 서화의 먹구름같은 얼굴 표정이 왜 그 절정의 순간에 불쑥 떠오른 것인지.

도저히 끝까지 분출할 수가 없었다.

그 책임을 서화에게 전가하며 자신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정당화시키려 했다.

' 왜 이리 가슴 한켠이 찡한 것인가.'

혹시 체기가 있는 것인가 싶어 괜시리 가슴 언저리를 쿵쿵 쳐보았다.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는 갑갑함. 알 수 없는 이유로 윤은 밤새 잠을 설쳤다.

***

" 전하."

" 중전께선 어인 일이시오? 과인이 시침든 아이와 긴 밤을 어찌 보냈는지 궁금하시어 그새를 못 참고 발걸음 하신 것이오?"

" 그...그것이 아니오라..."

윤의 가시돋힌 말에 또 울상이 된 서화. 사실 마음은 그렇지 않음에도 어찌 다잡아보기도 전에 못된 말을 내뱉어 기어이 그녀의 마음을 할퀴고 마는 자신이 못내 원망스러운 윤이었다. 왜 자꾸 중전만 보면 상처주는 말만 내뱉게 되는지. 지난 밤의 속앓이가 심하였는지 서화의 안색이 창백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손을 들어 얼굴을 쓰다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 그럼. 어쩐 일이시오?"

가까스로 이성을 다잡으며 윤이 말했다.

" 신첩, 전하께 청이 하나 있사옵니다."

" 청이라. 그게 무엇이오?"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윤이 사뭇 궁금하단 어투로 서화에게 물었다.

" 신첩에게 글 스승을 붙여주십시오."

" 글 스승이라. 글을 읽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어찌?"

" 견문이 넓은 분을 스승으로 모시어 마음가짐을 다잡는데 더욱 힘쓰고 이와 더불어 심신을 강건히 하고자 하옵니다. 하오니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 스승으로 생각해둔 이는 있는 것이오?"

" 아직 없사옵니다."

" 알았소.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허면 과인이 적합한 이로 골라 교태전에 기별을 넣겠소."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감사의 말을 하는 서화의 안색이 한결 편해보였다.

***

" 중전의 글 스승으로 누가 좋겠소?"

국사 민영익과 홍문관 대제학 홍종수를 불러 윤이 하문하자 대제학이 말했다.

" 성균관 대사성 민영후가 마땅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 대사성이라."

그러자 국사 민영익이 이를 만류하며 말했다.

" 전하, 성은에 망극하오나 소인의 자식은 아직 세상의 이치에 둔하고 학문의 견해가 좁사옵니다.  하여, 지사 판서 좌참찬 김해효를 중전마마의 글 스승으로 삼으심이 더욱 적합할 것입니다. 좌참찬의 학식이 남다르다는 것은 저잣거리의 세돌배기 아이도 알 정도라 하오니 좌참찬이야말로 중전마마의 글 스승으로 적합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 흐음...하지만 과인 생각엔 국사의 장남, 민영후가 더 좋을 것 같소."

윤은 굳이 자신의 친우를 중전의 글 스승으로 삼음으로써 중전의 부탁을 들어줌과 동시에 영후를 통해 중전을 감시할 속셈이었다. 민영후라면 매우 어린 나이에 대사성 자리를 꿰찼을만큼 뛰어난 자요, 자신에게 거짓을 고하지도 않을 것이며 중전이 외간 사내와의 교류가 있는지 감시하는데 여러모로 편리할 것 같아 민영후를 중전의 글 스승으로 삼으려 했다.

대제학 홍종수가 먼저 물러간 뒤, 윤과 국사 민영익만 남았다.

" 헌데...대사성은 어찌하여 사라국(러시아)에서 돌아온지가 꽤 되었건만  입궁하여 과인을 알현하지 않는 것인가. 고얀 놈..."

" 전하께 감히 불충을 저지르다니, 못난 자식놈의 아비된 자로써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나이다. 부디 제 자식놈을 엄중히 벌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국사 민영익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자 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 그리 하면 스승께선 기다렸다는 듯이 단박에 관복을 집어던지고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 아닙니까."

" ......"

" 과인이 너무 정곡을 찔렀습니까. 스승께선 언제나 이 궐을 답답해 하셨지요."

윤이 사석에서 대소신료들 중 유일하게 존대를 하는 이가 바로 자신의 스승인 국사 민영익이었다. 그의 대쪽같은 성정에 그른 것과 타협하는 것을 죽음보다 더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민영익은 온갖 암투와 모략이 난무한 궁에서의 생활을 언제나 힘겨워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욕심으로 민영익을 놓아주지 않고 곁에 두고 있는 윤이었다. 농이라 하지만 민영익의 아들인 친우 민영후의 목숨을 인질삼으면서까지 말이다.

윤이 성군이라 백성들의 칭송을 받는 배경엔 국사의 가르침이 컸다. 아직도 그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 여기기에 자리에서 물러나 남은 여생을 편히 쉬고 싶다 하는 민영익의 간곡한 청에도 한 해만 더, 두 해만 더, 하면서 그를 붙잡는 윤이었다.

" 국사의 아들을 중전의 글 스승으로 내어주십시오. 중전의 학식이 무지한 사람은 아니니 영후에게도 가르치는 보람도 제법 클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해서라도 영후를 궁에 매어놓아 장가도 보내고 어서 손주도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윤의 말에 바닥에 엎드리고 있던 민영익의 등이 움찔했다.

가문을 이어야 할 장남이 자꾸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리 저리 떠돌며 방황하기만 하니 국사 민영익의 속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 민영익에게 윤의 말은 그 어느 것보다도 솔깃한 유혹이었다.

" ...영후를...성균관 대사성을 중전마마의 스승으로 삼으시지요."

" 알겠소. 고맙습니다, 스승님."

민영익이 마침내 백기를 들어 영후를 서화의 글 스승으로 삼는데 동의하자 윤이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참으로 간만에 듣는 임금의 밝은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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