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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119화(完) (122/122)

퀸시는 어느새 웃음이 자연스러워진 제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아니, 반추해보자면 샤를로트는 본디 잘 웃는 아이였다.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미모사 움츠러들듯 말없이 눈만 댕그랗게 뜨고 있어도, 사람들이 가고 퀸시와 둘만 남으면 곧잘 재잘거리곤 했으니까.

그것이 당연하던 때가 있었다. 너무 당연해서, 잃어버리고 난 뒤에도 제 손에 여전히 남아 있다고 착각할 만큼.

샤를로트가 되살아난 이후 퀸시는 샤를로트를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연락을 끊었다.

그 연락이 이어진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샤를로트가 불쑥 노하에 찾아오면서 두 사람 사이의 교류가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으니까.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보자면 퀸시의 입장에서는 샤를로트를 정말로 놓아준 셈이었다.

샤를로트에게 어떤 욕심도 부리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가족이니 뭐니, 그녀를 얽어매는 굴레를 다시는 씌우지 않겠다고.

그러나 샤를로트는 그런 퀸시의 결심을 걷어차기라도 하듯 제 발로 다시 퀸시를 찾아왔다.

기껏 한 결심이 무색해지는 일이었으나 그토록 기꺼운 일을 또 찾기는 힘들 것이다.

설령 샤를로트가 퀸시를 버리고 증오한다고 해도, 퀸시는 샤를로트에게 같은 감정을 가질 수 없었으므로.

아마 샤를로트가 또다시 퀸시에게 독배를 내미는 순간까지도 그러하리라.

그 증거로 퀸시는 오늘도 불쑥 찾아온 여동생을 위해 잡혀 있던 일정을 전부 내팽개치고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앉았다.

차에 각설탕을 툭 떨어트린 샤를로트가 티스푼으로 각설탕 모서리를 갉아내며 물었다.

“그래서, 결혼식 보러 올 거지?”

“……글쎄. 이제 와서 네가 하겠다는 일을 반대할 생각은 없다만, 내가 참석하는 게 좋을진 모르겠구나. 괜히 좋지 않은 이야기가 나오는 건 아닐지.”

“내가 노하 출신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는데, 뭘.”

“그러니 대리인을 보내는 정도에서 마무리한다면 네게도 큰 흠은 되지 않을 거다.”

“흐음.”

어느새 각설탕을 전부 녹인 샤를로트가 찻잔을 들어 한 모금을 마시고 내려놓았다.

“오빠가 정 그렇게 하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을게. 하지만 괜찮겠어?”

“무엇이?”

“내가 웨딩드레스 입은 걸 보고 싶다고 했었잖아.”

기억 못 하려나. 덧붙는 말에 퀸시의 눈이 둥글어졌다.

늘 무표정한 낯 위로 확연히 놀란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그걸, 기억해?”

“기억 못 할 리가.”

과거 샤를로트와 퀸시가 노하 가주의 대리인으로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노하를 경사에 부르는 경우는 흔치 않았기 때문에 샤를로트로서는 처음 보는 결혼식이었다.

일반적인 연회와 크게 다를 것은 없지만, 굳이 한 가지 차이점을 꼽자면 주인공의 유무일까.

다른 연회는 사람들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는 반면 결혼식은 오로지 신랑과 신부, 두 사람만을 위한 연회라는 것이 물씬 느껴졌었다.

신랑과 신부에게만 허락된 화려한 의상과 숱하게 오가는 축복의 말들.

샤를로트에게는 이유 모를 울렁거림을 주는 분위기였다.

-……퀸시, 언젠가는 우리도 결혼을 하겠지?

-아마도 그렇겠지.

-식을 반드시 치러야 할까?

-상대 쪽이 원한다면, 그렇겠지. 무엇보다 결혼식은 주변 귀족들에게 결혼을 발표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아무래도 생략하기는 어려울 테고…….

퀸시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심사가 틀어진 듯 보이는 제 여동생을 흘긋 보았다.

샤를로트는 어딘지 불편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그렇겠지? 생략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째서? 네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자리인데.

-주인공이면 뭐 해? 어차피 진심으로 축하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가식 따위 역겹기만 하겠지.

-내가 있잖니, 샤를. 적어도 나는 네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할 거란다.

그것이 그저 샤를로트를 달래기 위한 말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퀸시가 샤를로트에게 그녀의 결혼식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그려 주었다는 점이다.

-날짜는 봄으로 잡고, 목련이 가장 많은 별장을 여는 거다. 노하의 재력은 익히 알려져 있으니, 식장을 보석과 꽃으로 뒤덮어 버려도 흠 잡을 이는 없겠지.

그럼 가식 어린 축복 없이도 너는 그 해의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될 테고.

-네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걸 나도 보고 싶구나.

퀸시의 목소리는 줄글을 읊듯 단조로웠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다정임을 모를 샤를로트가 아니었다.

샤를로트가 무언가에 대해 불평하면 퀸시는 곧잘 이런 말들로 그녀를 달래주곤 했으니까.

물론 샤를로트는 그 모든 말들이 진심일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으나, 그날의 말만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자신의 결혼식을 상상할 때면 가장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이 퀸시의 목소리였으니까.

그리고 결국 퀸시의 말대로 샤를로트는 봄에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었다.

“목련이 많은 별장은 아니겠지만, 생각보다 화려할 거 같아. 소피아 전하가 진두지휘를 하고 있는데, 본인 결혼식보다도 성대하고 화려하게 하겠다더라고.”

소피아는 지난 가을에 디디에와 식을 올렸다.

식에서 브누아가 거의 이를 갈면서 축사를 읽었던 일이 아직도 에두아르트에서 농담거리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다만 소피아는 뭇 귀족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황녀였기 때문에, 사치를 좋아하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검소한 결혼식을 올려야 했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황녀의 결혼식이니 보통 결혼식에 비하자면 훨씬 성대했지만.

소피아는 그것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티아라는 옆 공국의 황비가 썼던 것을 빌리고, 목걸이는 에두아르트에 대대로 내려오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면 되겠지. 별장 창가에는 유리 화분을 걸어 놓고 꽃 덩굴이 늘어지게…… 뭐? 안 돼? 그런 게 어딨어! 하면 다 돼!

그녀는 자신이 알아 둔 값진 것을 모두 가져오겠다는 의지로 주느비에브 황가의 보물창고부터 에두아르트의 금고, 심지어는 옆 나라의 것까지 빌려오기에 이르렀다.

누군가 말려 줄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잖아도 결혼식이 없어서 아쉬웠던 참이었어요!

-마님의 결혼식이 십 년간 회자되게 만들겠어요!

에두아르트의 사용인들까지 불이 붙어 버린 까닭에 결혼식 준비는 짚더미에 불씨가 튄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 열정이 어찌나 대단한지, 정작 주인공인 샤를로트는 끼어들 틈도 없었다. 보통 결혼식 준비는 당사자가 하는데도 그녀는 구경만 하고 있었다.

“재밌지 않아? 내가 이런 결혼식을 치르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샤를로트는 과거 자신의 결혼식이 어땠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웃는 이는 노하뿐이었던, 입 안에 모래 알갱이 굴러다니듯 껄끄러웠던 결혼식.

모두가 앞장서서 결혼을 준비해주겠다며 뛰어다니는 지금과는 또 얼마나 판이한지.

“아마 내가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되지 않으면 소피아 전하가 결혼식을 한 번 더 치르게 할지도 몰라.”

그러니 퀸시가 말했던 대로 샤를로트는 봄의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될 것이다.

“그걸 직접 보지 않으면 아쉽지 않겠어?”

“……그래, 그렇겠군. 참석해야겠어.”

결국 퀸시가 실소하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어느새 그의 입매에도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는 행복하니, 샤를?”

그 물음에 샤를로트가 활짝 웃었다.

충분한 대답이었다.

* * *

돌아온 봄.

에두아르트 공작 내외의 결혼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소피아 황녀가 주관하여 준비한 이 결혼식은 근 10년간 있었던 그 어떤 결혼식보다도 규모가 크고 화려했다. 그만큼 둘의 앞날을 축복하러 모인 하객들도 많았다. 특히 에두아르트의 가신들이 앞다투어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에게 축하를 건네는 모습이 화제를 모았다.

한때 노하의 악녀로 불렸던 샤를로트. 붉은 머리칼을 피하라는 말이 사교계에 공공연히 떠돌던 일이 그리 오래지 않은데.

그것이 거짓말이라도 되는 듯, 사람들은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공작 부부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인지 떠들기 바빴다.

예전이었더라면 샤를로트는 앞장서서 그들의 가식을 비웃었겠지만, 이번만큼은 관용을 베풀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곁에는 올해의 가장 잘생긴 신랑이 있었으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다들 염치도 없죠. 악녀라고 수군거렸던 건 다 잊었나 봐.”

“당신이 분위기를 바꾸는 데 성공한 셈 아니겠습니까. 좋게 생각하십시오. 무엇보다 신혼여행도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당신이랑 신혼여행만 아니었으면 안 참았어요.”

“평생의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알폰소의 너스레에, 앞서 가던 샤를로트가 밝게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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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이어질 행복의 서막이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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