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117화 (120/122)

샤를로트의 건강도 원래대로 돌아오고, 알폰소와 샤를로트 사이에 알게 모르게 존재했던 골도 사라진 현재.

에두아르트 공작저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딱 한 가지만 제외하고.

“……했어요.”

“뭐라고 했습니까.”

“잘못! 잘못했다고요! 그러니까 이제 좀 봐줘요!”

샤를로트가 결국 왈칵 짜증을 내며 발을 굴렀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가 지은 죄 때문에 알폰소가 종일 샤를로트와 대화를 단절하기에 이르렀고, 그걸 보다 못한 샤를로트가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고 나선 것이다.

샤를로트는 진심으로 억울했다.

만약 그녀가 지은 죄가 스스로를 희생해서 알폰소를 되살리려 한 것이라거나, 혹은 그것 때문에 알폰소를 떠나려고 한 일 등이라면 이렇게 억울하지도 않을 터였다.

문제는.

“내가 좀 당신이 아델린이랑 그런 사이인 줄 오해할 수도 있죠! 몰랐던 것도 아니잖아요!”

알폰소가 화난 이유가 바로 샤를로트의 오해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근 며칠간 샤를로트와 알폰소의 사이는 그야말로 화목하기 그지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싫어한다고 오해했던 것은 과거이고, 이제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으니 더 문제가 있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전생을 기억하게 된 여파일까, 아니면 샤를로트를 잃을 뻔했다는 생각 때문일까.

알폰소는 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드러냈다.

별다른 말도 없이 샤를로트를 한참이나 끌어안고 있는다거나, 꽃꽂이를 하는 샤를로트를 하염없이 지켜보는 등.

업무까지 등한시해 가며 샤를로트의 옆에 붙어 있으려고 하는 통에 세르주가 난처함을 표할 정도였다.

-저는 일평생 각하께서 저런 모습을 보이실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 못 해봤는데, 오래 살았더니 별일을 다 보는군요…….

라고.

그러니 이런 상황만 지속되었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제 아델린이 에두아르트 공작저에 방문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리암과 결혼하게 됐어요! 샤를로트가 꼭 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얼마 전 연회장에서 쓰러졌다는 이야기도 들어서 청첩장을 드릴 겸 직접 와 봤어요.”

“리암이라면, 리암 에브뢰 경 말씀이신가요?”

“맞아요.”

갑작스러운 아델린의 결혼 소식에 샤를로트는 적잖이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아델린은 건강 때문에 향후 3년가량 외부 활동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알폰소로 오해했던 아델린의 연인은, 한번 혼담이 깨졌다가 3년여 뒤에야 다시 교제하게 되었다고 했으니.

그런데 결혼 발표라니?

“사실 제 건강이 좋지 못해서 혼사를 진행하기 조심스러웠는데, 저번에 쓰러졌을 때 줄곧 내색 없이 곁에 있어주는 걸 보고 결심하게 됐어요. 그이도 그걸 보고 결혼을 서둘러야겠다고 마음먹었대요. 하루라도 빨리 배우자가 되어 곁을 지켜야겠다면서요.”

아델린의 설명에 그제야 샤를로트는 상황을 이해했다.

‘퀸시가 독을 썼던 게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한 모양이구나.’

아델린은 내내 몸이 약하기는 했으나 독에 당해 앓아눕기 전까진 크게 아프지 않았다.

그러니 아델린의 가문인 라베루즈에서도 몸 상태를 보아 건강이 나빠지지 않으면 혼사를 진행하자며 보수적인 입장을 내놓았을 듯했다. 아마 내년 봄쯤을 바라보면서.

하지만 아델린이 쓰러지면서 천천히 결혼을 준비하려던 계획이 달라진 듯했다.

‘물론 라베루즈는 더 조심스러웠을 테고, 그 리암이라는 사람이 용기를 내어준 게 크겠지만.’

결혼 시장에서는 노하보다도 꺼려지는 것이 바로 몸이 아픈 사람이다.

당연한 일이다. 몸이 아픈 이를 누가 배우자로 맞이하고 싶겠는가?

혼담을 받는 쪽도, 내미는 쪽도 조심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니 라베루즈에서도 혼사를 진행해도 될지 망설였을 텐데, 리암이 개의치 않고 오히려 결혼을 서두르자고 해 주었으니 얼마나 고맙겠는가.

여기까지는 그저 축복이 가득한 이야기였다.

샤를로트 또한 별다른 생각 없이 기껍게 아델린을 축하해 주었다.

“좋은 남편을 맞게 되었네요, 아델린. 축하해요.”

“정말 좋은 사람이죠. 저한테는 과분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에요. 과묵하고, 조금은 무심한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정말 올곧은데, 어머! 이렇게 말하니 꼭 에두아르트 공작 각하 같네요!”

“……나 말입니까?”

갑작스럽게 날아온 칭찬에 샤를로트의 옆에 있던 알폰소가 의아한 눈을 했다.

“네! 이렇게 보니 리암과 정말 닮은 면이 많으시네요. 전에 샤를로트가 오해한 것도 일리가 있겠어요. 기억나죠, 샤를로트? 정말 재미있는 우연이었는데.”

“……오해?”

“글쎄, 제가 각하와 혼담이 오가는 사이가 아니냐고 오해를 하셨지 뭐예요!”

그때를 떠올리니 퍽 우스웠던지, 아델린이 손사래까지 쳐 가며 까르르 웃었다.

그녀한테야 이 일은 가벼운 해프닝 수준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샤를로트는 기혼이고, 본인 또한 결혼을 앞두고 있는 데다 샤를로트의 오해로 큰 사달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결혼한, 혹은 결혼할 사람들 앞에서 가볍게 오가는 짓궂은 농담 정도.

“그래서 저보고 각하와 혼담이 오고 가는 게 아니었냐고 물어보는데, 마침 리암이 와서…….”

“아, 아델린! 그, 그 정도면 됐어요!”

문제는 샤를로트와 알폰소 사이에서 이 ‘오해’가 이미 어마어마한 사달을 빚어놓았다는 점이다.

샤를로트가 서둘러 아델린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핵심적인 내용은 전부 나와 버렸다.

그리고 알폰소는 이런 부분에서 눈치가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몇 마디 없이도 그는 샤를로트의 회귀로부터 자신과의 계약 결혼에 이르기까지 다사다난했던 과정 속에서 인과 관계를 도출해 냈다.

“……그러니까, 당신은 내가 죽고 나서도 아델린 라베루즈와 내 사이를 줄곧 오해해 온 것도 모자라서.”

“해, 해명해 줄 사람이 없었잖아요.”

“내 청혼을 거절한 이유가, 아델린 라베루즈와 나를 결혼시키기 위해서였다는 겁니까?”

“……그 편이 당신에게도 나아 보였으니까요?”

반추하자면, 그 편이 알폰소에게 나은 일이었는지는 몰라도 샤를로트가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그녀에게 더 나은 일이었으리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샤를로트의 말을 듣자마자 알폰소의 낯이 일그러졌던 것이다.

“아델린 양과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전부터 말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지금은 알아요. 저렇게나 확실한데 어떻게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때는 정말 몰랐어요. 그래서 당신을 위해 이혼까지 생각,”

“이혼?”

알폰소의 반문에 샤를로트가 멈칫했다.

실언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샤를로트가 이혼을 결심했다는 것은 과거의 퀸시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이혼하겠노라 편지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퀸시가 알폰소를 독살했으니까.

그러니 알폰소로서는 샤를로트가 아델린과 알폰소 사이를 오해해서 이혼하려 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셈.

샤를로트가 사색이 되어 서둘러 변명하려 했다.

“알폰소, 그러니까 이건-”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충분히 이해했으니.”

다만 알폰소는 심정이 복잡해 보였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돌을 쪼개는 듯한 목소리로 그는 그렇게 선언했다.

그리고 현재.

도망칠 수 없는 구석으로 알폰소를 밀어 넣은 샤를로트가 허리에 양손을 짚고 다리를 벌려 섰다.

“아직도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해요?”

“…….”

“……알폰소. 오해한 건 정말 내가 잘못했어요. 하지만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는 것도 이해하잖아요.”

샤를로트의 호소에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알폰소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당신을 이해합니다. 이제 와서 그런 것으로 당신을 추궁할 생각 또한 없습니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인 거죠?”

샤를로트의 짜증 섞인 질문에 알폰소는 대답 대신 눈을 느리게 내리감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질끈 감았다고 해야 할까.

그는 샤를로트의 가늘어진 인내가 마침내 끊어지기 직전까지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단지, 내가…… 당신처럼 맺고 끊음이 명확하지 못한 사람일 뿐입니다.”

“……뭐라고요?”

맺고 끊음이 명확하지 못하다니.

그건 요약하자면 뒤끝이 길다는 이야기 아닌가?

“당신에게는 그 일이 오래 지난 일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당신과 반목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 같습니다. 그래서, 거리를 두고 생각하기가 힘듭니다.”

고해하는 알폰소의 낯은 조금 안쓰러울 정도로 붉어져 있었다.

샤를로트는 그 낯을 보며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내가 이혼하려고 한 게 지금 당장의 일처럼 들렸다는 거예요?”

“예. 그래서 떨어트려 놓고 생각하지 않으면, 당신을 지나치게 구속하게 될까 봐…….”

결국 알폰소가 고개를 떨어트리고, 샤를로트가 눈을 질끈 감았다.

남편이 너무 귀여워도 문제가 된다는 것을 그녀는 그때 처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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