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로트가 눈매를 찌푸렸다.
마치 제 눈앞에 있는 광경이 진짜인지 가늠해 보려는 듯.
그 이유는 간단했다.
퀸시가 한쪽 눈에 안대를 차고 있었으므로.
“퀸시, 왜…….”
버석한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가뭄 끝의 나무껍질처럼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그 탓일까. 샤를로트는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도 전에 가브리엘에게 제지당해야 했다.
“부인, 목이 상한 것 같으니 소리를 내지 마십시오. 그리고 몇 가지 검진을 할 터이니 다른 분들도 잠시 나가 계시지요.”
샤를로트를 정말로 살려냈다는 점 때문일까. 퀸시와 알폰소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가브리엘의 지시를 따랐다.
돌아서는 알폰소의 시선이 한 박자 늦게까지 샤를로트에게 머물러 있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퀸시는 보다 빠르게 등을 돌렸다는 뜻이다.
한 번도 샤를로트를 돌아보지 않고.
“…….”
여전히 죽음과 삶의 경계가 흐릿하여 혼몽한 와중이었지만, 샤를로트는 퀸시의 한쪽 눈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그녀가 쓰러지기 전에 독이 든 잔은 엎어졌고,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무언가를 대가로 소망을 이뤄주는 술식을 쓸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
퀸시가 자신을 위해 한쪽 눈을 희생하였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어려운 추론이 필요치 않았다.
단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어 의아할 뿐.
‘나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건가?’
퀸시가 샤를로트를 노하로 데려오는 일에 집착한다는 것은 그녀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는 아닌 것 같아.’
그 부분은 이미 샤를로트가 쓰러지기도 전에 이야기가 끝났으니까.
그렇다면 대체 왜…….
해소되지 않는 의문에 샤를로트가 미간을 찌푸리며 문 쪽을 돌아보았을 때.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목소리가 있었다.
-샤를, 내 동생. 너라면 날 이해하겠지. 네가 목숨을 바쳐 구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 속에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흐릿한 목소리.
그러나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선명히 알 수 있었다.
‘……퀸시.’
불현듯 관자놀이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전히 이유는 알 수 없는 눈물이었으나, 더 이상 의문은 들지 않았다.
* * *
샤를로트는 눈을 뜬 지 하루가 지난 뒤에야 겨우 침상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해들을 수 있었다.
“……내가 일주일이나 누워 있었다니.”
“이만하면 일찍 일어나신 겁니다. 저는 한 달까지도 보고 있었으니까요.”
그녀가 눈을 뜬 곳은 에두아르트가 아닌 노하의 저택이었다.
샤를로트가 죽었다는 사실을 숨기려면 오가는 사람이 많은 에두아르트보다는 모두가 목숨을 걸고 침묵을 지키는 노하가 적합하리라 판단한 퀸시의 선택이었다.
하여 현재 에두아르트에서는 샤를로트가 잠시 친정에 머물다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부인께서 연회장 한가운데서 피를 토하신 것까지 숨길 수는 없어서…… 다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기는 했을 겁니다.”
“그야 어쩔 수 없지만…… 알폰소가 고생했겠네.”
눈을 감기만 해도 에두아르트의 기사들이 샤를로트를 만나게 해달라며 농성을 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알폰소가 일일이 대꾸하는 대신 미간을 짚고 눈을 감은 모습도.
‘그나마 알폰소는 치료가 필요 없어서 다행이지.’
알폰소가 제단을 사용하기 위해 칼로 손목을 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던가?
세계수의 앞에서 만났을 때는 조금도 다친 곳이 없어 보여서 짐작도 하지 못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알폰소가 현실로 돌아갔을 때도 다친 곳이 없이 멀쩡했다는 점이었다.
다른 때였더라면 그런 짓은 다신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겠지만, 이번만큼은 샤를로트도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알폰소를 살리겠다고 목숨을 내놓은 사람이, 손목 찢은 사람을 어떻게 나무랄 수 있겠는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있었다.
“세계수를 이용해서 나를 살렸다면, 퀸시의 눈은 왜 그렇게 된 거지?”
“그건…… 술식이 어중간하게 멈추어 버려서 그렇습니다.”
세계수를 이용해 샤를로트를 살리더라도 술식은 여전히 건재했다.
그러니 술식이 완성되면 샤를로트는 또 같은 일을 겪을 터였고, 이 점을 퀸시가 날카롭게 짚어낸 것이다.
“세계수를 써서 살릴 수 있는 건 한 번뿐입니다. 그러니 두 번의 기회는 없다고 생각해 굳이 첨언하지 않았습니다만…… 오라버니 되시는 분께서 스스로를 희생하시겠다고 하셔서.”
가브리엘의 입장에서야 말릴 이유가 없는 일이었다.
다만 그들이 한 가지 알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술식이 필요로 하는 연료가 일정량 정해져 있다는 점이었다.
퀸시는 샤를로트를 살리기 위해 정말로 목숨을 내걸었다.
그는 샤를로트가 건 술식의 제물을 자신으로 바꾸었고, 술식은 그에 필요한 연료로서 퀸시를 갉아먹었다.
딱 눈 하나 정도만.
“아마 그분께서 나서지 않았더라면 눈을 잃는 건 부인 쪽이 되었겠지요. 아마 딱 그 정도만 있어도 남은 술식을 가동하는 데 충분했던 모양입니다. 뭐, 부인의 목숨을 이미 가져갔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미완성의 술식인 데다, 처음 사용해보는 까닭에 가브리엘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변수가 많았다.
“어쨌든, 술식은 완성되었습니다. 부인께서 눈을 뜨시고 머잖아 완성되더군요. 소망을 이루신 걸 축하드립니다. 세계수를 쓴 덕분인지 몸도 전부 회복되었으니, 전처럼 피를 토할 일은 없을 겁니다.”
“고마워요, 가브리엘. 그럼 이제 당신도 동생을 살릴 수 있겠군요.”
샤를로트가 반색하며 말했지만, 가브리엘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건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죠? 너무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라서 그런가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수에 닿기 위해서는 희생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의 피로는 라베흐느의 제단을 쓸 수 없었지만, 알폰소의 피로는 가능했던 이유.
그것은 알폰소가 샤를로트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샤를로트에게 걸었던, 세계수의 기적을 모방하는 술식 역시 희생을 반드시 필요로 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정답지는 오래전부터 가브리엘의 눈앞에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저는…… 파스칼을 되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연구에 매진해 왔습니다만, 정작 그 순간이 눈앞에 다가오자 스스로를 찌르길 주저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자신이 진짜로 원했던 것은 파스칼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이도 되살릴 만한 능력을 가지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아무리 용기를 낸다 한들 진심은 희생을 두려워하고 있으니, 세계수에 닿을 수 있을 리 없지요. 그러니 저는 아무도 되살릴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을 진리안까지 얻고 난 뒤에야 겨우 깨닫다니, 정말 바보 같은 일이 아니냐며 가브리엘은 자조했다. 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후련해 보이는 얼굴이기도 했다.
“어쨌든 목표했던 바에 도달하기는 했으니, 파스칼도 저를 조금은 용서해 주겠죠. 세상에는 때로 방법을 알아도 해내지 못하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까. 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인 거죠.”
진리를 얻었기 때문일까. 가브리엘의 분위기는 전보다 훨씬 누그러져 있었다.
오만하고 세상과 단절되어 있던 강퍅한 연구자의 분위기는 사라지고, 조금 더 포용력 있는 얼굴이 샤를로트의 어깨를 두드렸다.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겁니다. 이제서야.”
그것이 샤를로트가 본 가브리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 *
“마님!”
“돌아오셨군요, 마님!”
샤를로트가 에두아르트로 돌아가자, 성대한 환영이 그녀를 반겼다.
어지간한 일에는 잘 놀라지 않는 샤를로트마저 주춤하게 만들 만한 환대였다.
실내화를 신고 뛰어나온 사용인들과, 연무장에서 묻은 먼지를 털지도 않고 우르르 몰려나온 에두아르트의 기사들.
모두가 샤를로트의 귀환 소식에 숨 돌릴 틈도 없이 뛰어온 것이다.
“연회장에서 쓰러지셨다더니,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어휴, 친정으로 가셨다고 해서 우리 각하께서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거 아닌가 했다니까요.”
“마님! 마님, 이거 보십쇼. 글쎄, 세르주가 마님을 노하에서 빼내야 한다고 양동작전을…… 읍! 으읍!”
“조용히 좀 해, 아르노! 제발!”
얼굴이 새빨개진 세르주와 낄낄대는 아르노가 실랑이를 시작했다.
그 격의 없고 요란한 환영에, 샤를로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눈물이 날 만큼 환한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