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113화 (116/122)

가브리엘은 일평생을 연금술사로 살아왔다.

존재하는지도 모호한 기적을 쫓으며 그의 몸에 밴 나쁜 습관이 하나 있다면, 계산하지 못하는 일을 생각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샤를로트를 살리는 것은 바로 그 ‘계산하지 못하는 일’에 해당하는 난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샤를로트를 살리기 위해서는 세계수가 필요한데, 그 빌어먹을 세계수를 찾으려면 샤를로트의 존재가 이 세계에서 완벽히 지워져야만 하니까.

“제가 행할 수 있는 술식은 어디까지나 존재하는 것에 한정됩니다. 존재가 지워져버리면 어쩔 도리가 없지요.”

그래서 알폰소를 살리기 위한 술식을 걸 때에도 알폰소의 시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존재가 아예 사라져 버리면 빈 독에 물을 끝없이 붓는 일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시도 정도야 해 볼 수 있겠지만, 대체 가브리엘이 왜 샤를로트를 위해 그런 짓을 해야 한단 말인가?

하여 가브리엘은 살고 싶다는 샤를로트의 말에도 줄곧 단호히 고개를 저어 왔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완벽해져야 할 술식이, 그 문턱에서 다시 멈추었으니까. 그리고 아쉽게도 이 상태라면 도저히 완벽해질 낌새가 보이지 않겠군요.”

샤를로트가 쓰러져 있는 한 알폰소가 행복해질 일은 없다.

그러니 현 시점에서 그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은 단 하나.

샤를로트를 살려내는 것뿐이었다.

그 탓에 술식을 완성시켜야만 하는 가브리엘 역시 샤를로트를 외면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고 말이다.

가브리엘의 설명이 끝나자 그제야 알폰소의 경계가 설핏 누그러졌다.

“네가 왜 나서겠다는 건지는 알겠군. 여전히 미심쩍은 구석은 있다만…….”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게 아니라, 전부 정신 나간 소리겠지!”

그러나 차분한 알폰소와 달리 퀸시는 좀처럼 평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퀸시는 이 중 유일하게 샤를로트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두 눈으로 지켜본 사람이었으니까.

“설마 저 말을 진심으로 믿는 건가, 에두아르트 공작? 아니면 이따위 허황된 소리로 나를 기만하고자 함인가?”

“차라리 후자이길 바라지. 나도 샤를로트가 나 따위를 되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이야기를 믿느니 그냥 내가 정신병자가 되었다고 믿고 싶으니까.”

“하, 입은 잘 놀리는군. 내 동생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도 모르고 그 수혜나 받아 온 머저리 주제에!”

그토록 멀쩡해 보였던, 이제야 겨우 손에서 놓아주리라고 마음먹었던 하나뿐인 가족이 피를 토하며 죽었다.

그런데 그 남편이라는 작자는 뒤늦게 나타난 것도 모자라 샤를로트가 이런 상태인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고.

그 뒤에 나타난 이는 샤를로트가 시간을 되돌렸다느니, 다시 샤를로트를 살릴 수 있다느니 허황된 소리를 늘어놓기나 하다니.

그나마 알폰소는 생전의 기억이 돌아온 덕분에 혼란이 덜했지만 퀸시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이 한데 엉켜 들끓었다.

당장이라도 눈앞의 작자들을 전부 죽여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며, 퀸시가 입을 열었다.

“시간을 되돌리니 뭐니, 샤를로트를 정말 살릴 방법이 있다면 내가 했을 것이다. 그 어떤 희생을 감내하고서라도. 그러니 다시 그딴 헛소리를 내게 지껄이거든-”

“희생을 감내할 생각이 정말 있으십니까?”

그 순간, 불쑥 가브리엘이 끼어들었다.

그 물음에 퀸시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뭐?”

“다시 말씀드리지만, 믿고 믿지 않고는 자유입니다. 하지만 저는 유감스럽게도 지체할 시간이 없어서 말입니다.”

술식이 사용하는 연료는 샤를로트의 목숨이었다.

샤를로트가 살아있을 때는 그녀의 생명력과 수명을 갉아먹어 술식을 유지해 왔지만, 지금은 더 이상 갉아먹을 생명력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

“술식이 완성되는 것이 멈추었어도 술식은 여전히 연료를 태웁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태울 생명력이 없으니…… 존재를 지워가겠군요.”

이대로라면 샤를로트는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갈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무(無)로 돌아가리라.

“존재가 사라지면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 그 전에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믿느냐는-”

“그래서, 믿을 수 없으니 샤를로트의 장례나 준비하자는 건가. 퀸시 노하?”

그때, 알폰소의 목소리가 차갑게 끼어들었다.

“원한다면 너는 그렇게 해라. 나는 어떻게든 살릴 방법을 시도해 봐야겠으니.”

가브리엘은 척 보기에도 수상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뢰하지 않기에는, 그가 아니라면 샤를로트를 구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 자명한 상황.

만일 알폰소 역시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퀸시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을 것이다.

시간을 돌리고 사람을 되살리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면서.

사람이 죽었는데 그따위 헛소리를 늘어놓고 싶으냐며 화를 냈으리라.

‘하지만…….’

알폰소는 숨이 끊어지던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할 수 있었다.

시간의 흐름이 어찌 되었든, 그에게는 불과 조금 전의 일처럼 느껴졌으니까.

한번 겪어본 죽음은 그의 예상보다도 처절하고 고통스러웠다.

샤를로트가 그것을 무로 되돌렸다면 알폰소 역시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래야만 샤를로트가 해온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되지 않을 테니까.

차갑게 가라앉은 알폰소의 눈동자가 가브리엘에게 향했다.

“나는 너를 온전히 신뢰하지는 않으나, 네 실력만큼은 신뢰한다. 그리고 네가 샤를로트를 살리고자 하는 것이 진심이라는 것 또한.”

“한 분이라도 믿어주시는 분이 계시니 다행이군요. 괜한 설득에 시간을 낭비할 일은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너도 시간 끌지 말고 말해라. 샤를로트를 살릴 방법이 뭐지?”

가브리엘이 알폰소에게만이라면 몰라도, 퀸시에게까지 이 모든 것을 밝힌 이유가 있을 터.

무언의 재촉을 받은 가브리엘이 가볍게 숨을 몰아쉬고는 입을 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부인이 숨이라도 붙어 있을 때라면 모를까, 아주 죽어버린 현재는 살릴 방법이 하나뿐입니다. 세계수를 찾는 것.”

“하지만 그건 술식이 완성되어야만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나?”

“얼추 완성되기는 하지 않았습니까? 아주 찰나였지만.”

그래, 아주 잠깐이었지만 술식은 완성에 이르렀다.

그리고 줄곧 흐릿했던 가브리엘의 진리안 역시 잠시나마 개안하려 했다.

뜻하지 않게 알폰소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전부 허사가 되어 버렸지만, 어쨌든 순간이나마 진리안을 얻는 데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그때, 세계수의 위치를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먹먹한 이명과 섬광이 터지는 듯한 시야에 오감이 혼몽한 와중이었으나 가브리엘은 그 속에 비치는 한 줄기 빛을 놓치지 않았다.

마침 세계수의 근처에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덕분에 진리안이 다시 닫힌 지금도, 흐릿하게나마 그 위치를 더듬어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세계수의 위치를 안다면 접근하는 것 역시 가능할 테죠. 그리고 그렇게 세계수를 얻는 데 성공하면 부인을 살릴 수도 있을 겁니다.”

“말은 좋군. 그럼 왜 이걸 내게 말하는 거지? 네가 길을 안다면 너 혼자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물론 저 혼자서 할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서부터는 역부족입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가브리엘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세계수가 위치해 있었으므로.

“제가 본 바로 세계수는 이곳, 황궁의 지하에 있습니다. 세계수에 접근하기 위해 조건이 더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 혼자서는 황궁의 지하에 갈 수 없으니 도움이 필요합니다.”

“……황궁 지하에 세계수가 있다고?”

알폰소의 반문에, 가브리엘이 눈썹을 슬쩍 들어올렸다.

“뭔가 짚이는 게 있으신 겁니까?”

“아니. 그것보다는…… 황궁 지하에 뭐가 있는지 떠올라서. 그게 세계수와 연관이 있는지는 도저히 모르겠다만…….”

“……! 판단은 제가 할 테니 말씀하십시오. 뭘 보셨습니까?”

“고대 왕조, 라베흐느의 제단.”

그것도 그 효용을 몰라 그저 보존해 두었을 뿐인 제단이었다.

그나마 최근에 이르러서야 겨우 효용을 조금 밝혀냈다.

알폰소가 조금 전 브누아를 알현했을 때 나온 이야기이기도 했고.

-데솔리에가 진상했던 라베흐느의 유산 말이다. 검 모양인 것이 의아하여 조사를 명했더니 아무래도 그 제단 의식에 사용되는 물건 같더군.

제단에 제물을 바치는 데 쓰던 칼을 찾은 모양이라며, 브누아는 덕분에 꽤 괜찮은 구색을 갖출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가브리엘의 눈에 이채가 번뜩였다.

황궁 지하에 위치한 세계수와, 라베흐느의 제단.

그리고 제물까지.

모든 것이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제단을 이용해야 합니다, 각하. 그 제단이, 세계수에 닿는 열쇠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