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가브리엘.
설명하자면 오직 그 한 마디밖에는 쓸 것이 없는 청년은 샤를로트와 헤어진 이후 연신 제 눈두덩이를 문지르고 있었다.
‘전부 희뿌옇게 보이니 답답하군.’
그의 시야는 먼지가 잔뜩 앉은 고성의 창문처럼 부옇게 번져 있었다.
사물의 형태는 알아볼 수 있지만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
이유는 간단했다.
‘시야가 흐려지는 것이 술식이 완성되는 징조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만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나.’
샤를로트의 죽음, 즉 술식의 완성이 코앞에 있는 까닭이다.
그녀의 희생으로써 완성되는 술식은 가브리엘에게 진리를 보는 눈, ‘진리안’을 만들어주는 술식이었으므로.
다른 연금술사들은 세계수에 닿으면 이 세상 모든 진리를 알 수 있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세계수는 기적의 재료일 뿐.’
천치에게 세계수를 쥐여준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자격이 없는 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진리를 볼 수 있고, 기적의 인과율을 알고 있는.
이른바 자격이 있는 자만이 세계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브리엘은 지금 자신보다도 더 세계수에 인접해 있는 이는 없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이 단계만 넘어가면 모든 진리를 알 수 있다.’
세계수에 닿는 길 또한.
사실 지금도, 뿌옇게 번진 시야 사이사이로 얼핏 보이는 것이 있었다.
예전이라면 볼 수 없었을 이 세상의 진리.
그리고 세계수로 향하는 길 또한.
가브리엘이 샤를로트를 따라 황궁에 온 것은 비단 샤를로트의 몸 상태를 돌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검술 대회를 진행하며 술식은 막바지에 다다랐고, 그 과정에서 가브리엘은 뜻밖의 사실을 알아냈던 것이다.
‘세계수는 이곳 황궁에 있다.’
어렴풋하게나마 세계수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는 사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황궁이 워낙 넓으니 정확한 장소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보니 더욱 확실해지는군.’
검술 대회 중에는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까지 했는데.
샤를로트를 따라 황궁에 와서, 조금 더 진리에 가까워진 눈으로 다시 보니 이제는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뚜렷해졌다.
세계수는 황궁에 있었다.
‘제국의 황궁이 라베흐느의 옛 궁전 터 위에 지어졌다고 하더니, 그 탓인가.’
고대 왕조 라베흐느.
그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제국은 발 빠르게 라베흐느의 옛 궁전 터를 차지했다.
세계수가 이 세계와 탄생과 끝을 함께한다면 분명 그런 이유로 황궁에 있는 것이리라.
‘뭐가 됐든 시야를 가린 이 안개가 걷혀야 좀 더 선명하게 보일 텐데.’
답답함에 가브리엘이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린 순간이었다.
“……!”
눈을 가리고 있던 희끄무레한 것들이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동굴에 갇혀 있던 사람이 햇빛을 처음 보는 순간처럼 정신을 아찔하게 만드는 쨍한 감각이 뇌리를 사납게 할퀴었다.
“크윽!”
뒤이어 팔이 다리로, 보라색이 노란색으로, 개구리가 토끼로 바뀌는 듯한 혼몽함과 고통이 들이닥쳤다.
지금껏 알아온 모든 지식을 뒤흔드는 듯한 감각.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지만 가브리엘은 직감할 수 있었다.
‘술식이…… 완성되어가고 있다!’
점점 완전해져가는 진리안을 통해 이 세계의 진리가 머릿속을 터트릴 것처럼 몰려들었다.
굶주림 속에 먹을 것을 발견한 정어리 떼가 먹이에게로 달려들듯이.
이 세상을 구성하는 식과 모든 진리가 가브리엘의 뇌리를 물어뜯고 헤집어 처음부터 새롭게 재구성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의 상태.
눈앞에 섬광이 번쩍이고 머리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조여왔으나, 가브리엘은 이에 정신이 팔려 있을 틈이 없었다.
‘서둘러 부인을 찾아야 한다.’
자신이 이런 상황이라면 분명 샤를로트의 상태 또한 문제가 생겼을 터.
이대로 샤를로트가 소멸한다면 상관이 없지만, 문제는 술식이 완벽히 그녀를 희생시키기 전 알폰소가 쓰러진 샤를로트를 찾을 가능성이었다.
우습게도 이 술식은 제물의 죽음이 도리어 술식의 조건을 달성하지 못하게 만드는 기묘한 구조를 띠고 있었으므로.
‘이미 술식은 최종장에 다다랐다.’
샤를로트를 눈앞에 두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이미 목숨이 경각에 달해 있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술식이 샤를로트의 목숨과 함께 존재를 완벽하게 지우고, 알폰소의 여생과 가브리엘의 진리안을 만들어 주는 것뿐인데.
‘그 전에 에두아르트 공작이 부인의 상태를 알게 되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알폰소는 샤를로트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결코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샤를로트가 완벽히 죽고 사라질 때까지 그는 그 사실을 몰라야만 했다.
그것이 이 술식의 유일한 맹점이었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알폰소가 현재 연회장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알폰소는 소피아 전하의 일로 폐하를 뵈러 간다고 했어. 그러니 그가 돌아오기 전에 퀸시에게 다녀와야지. 혹시라도 연회장 한가운데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하지만 쓰러지게 되면…….
-쓰러지게 되면?
-그땐 당신이 날 좀 수습해줘. 알폰소가 알게 되기 전에. 기껏 목숨까지 바쳤는데 모든 걸 수포로 만드는 건 당신도 원치 -않잖아.
샤를로트 또한 술식의 맹점을 잘 알고 있었고, 그녀는 가브리엘에게 제 사후를 부탁했다.
물론 가브리엘 또한 진리안을 얻는 것이 이토록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기에 어렵지 않게 승낙한 일이었지만.
‘하필 부인께서 퀸시 노하를 만나러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기다니.’
시기가 좋지 않다.
운이 나쁘다면 알폰소가 벌써 돌아왔을지도 모르니 서둘러야 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가브리엘이 명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숙였던 상체를 다시 들어올린 순간.
“커헉!”
무언가에 거세게 가격당한 가브리엘의 몸이 튕겨나가 벽에 부딪혔다.
벽에 부딪힌 반동으로 폐부 안쪽이 마비된 것처럼 호흡을 멈춘 순간, 허물어지려는 몸을 우악스럽게 움켜쥐는 손길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몸이 아니라 목이었다.
사냥당한 토끼의 목을 움켜쥐듯 가브리엘의 멱을 틀어쥔 이의 그림자가 사납게 드리웠다.
혼몽한 시야 속에서도 가브리엘은 그림자의 주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
시린 검처럼 차가운 은발과, 불온한 경고처럼 형형히 일렁이는 푸른 눈동자.
무엇보다도 규율로 재단한 저 사나운 기질을 알아보지 못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에, 에두아르트, 콜록, 공작…….”
“길게 묻지 않겠다.”
오감을 먹먹하게 만들던 진리들이 빠른 속도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 대신, 어지러웠던 시야가 다시 부옇게 번져가고 있었다.
완성되어가던 술식이 그 문턱에서 멈추었다는 신호.
“샤를로트와 무슨 관계지?”
“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마님의 의사일 뿐-”
“헛소리. 내 생전에 샤를로트는 너 같은 것과는 교류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알폰소의 말에, 가브리엘의 낯이 파리하게 굳어들었다.
“어째서 죽은 내가 시간을 돌아와 살아 있는지, 그리고 샤를로트와는 무슨 관계인지 답해라. 거짓을 고하면 네 목숨도 온전치 못할 것이다.”
이것은 가브리엘이 염두에 두었던, 그러나 가능성은 없다고 여겼던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술식이 완성된 순간.
알폰소의 모든 기억이 돌아왔다.
* * *
알폰소가 기억을 되찾은 것은 알현을 마치고 연회장으로 돌아가던 길목에서였다.
소피아가 교제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얘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브누아에게 된통 깨졌으나, 샤를로트를 다시 만날 생각에 걸음이 퍽 경쾌하였던 순간.
오한이 드는 듯한 감각과 함께 ‘알폰소’는 눈을 떴다.
“……여긴, 황궁? 나는 분명…….”
독을 마시고 죽었을 텐데.
그 말을 뱉은 순간 두통과 함께 기억들이 몰려들었다.
이상하게 혼담이 자꾸만 파투가 나던 것들, 그리고 자신이 먼저 건넨 청혼을 거절하던 샤를로트.
그리고 그녀가 제게 보여주었던 모든 호의까지.
-나는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알폰소, 나는…… 당신을 외롭게 두고 싶지 않았어요.
-난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꿈이라고 해도 믿기지 않을 일들이었다.
무엇을 안겨 주어도 화를 내던 그 노하의 악녀가, 사랑이라니.
‘말도 안 되지.’
사랑 같은 눈 먼 감정 따위는 오직 제 몫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