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간을 돌아왔을 때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일이었다.
퀸시가 알폰소를 죽인 것을 뻔히 알고 있는데, 내버려 둘 이유가 없었으니까.
‘내 사감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지.’
퀸시가 알폰소를 죽인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샤를로트는 알폰소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마냥 퀸시에게서 찾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가 알폰소를 마음에 두지 않았더라면 그가 퀸시에게 독살당할 이유는 없었을 테니까.
그러므로 이것은 샤를로트의 과업이었다.
또한 이것만 끝나면 샤를로트 또한 세상을 뜨리라.
샤를로트의 시선이 퀸시에게 건넸던 잔을 쫓았다. 퀸시는 별다른 의심 없이 잔을 받아드는 것 같았다.
아니면 이 잔을 받아들어야만 샤를로트와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을지도 모르는 일.
잔을 받아든 퀸시는 잔이 아닌 샤를로트만을 응시했다.
차가운 시선에 담긴 것이 걱정인지, 경계인지는 모호했다.
“……건강은 괜찮은 거니?”
“그럼. 이제 연회도 나오잖아. 오빠가 보기에도 무척 멀쩡하지 않아?”
“너는 고열로 쓰러지기 직전에도 연회장에서 멀쩡히 웃곤 했지.”
“그리해야만 내 쓸모를 증명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시킨 건 너잖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너를 위해서였어.”
“그래? 그럼 알폰소가 죽을 뻔한 것도 나를 위해서 한 일이겠네. 내가 칼에 맞은 것도, 그렇지?”
검술 대회의 일을 꺼내자 퀸시의 턱선이 도드라졌다.
이를 잠시 악문 까닭이다.
“……나는, 네가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내가 네 도움 없이 살아날 줄도 몰랐겠지.”
퀸시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가 쓴 독은 노하에 있는 해독제가 아니면 결코 해독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해독제를 쓴다고 해도 독이 순식간에 온몸을 망가뜨리기 때문에 상당히 오랜 시간을 요양해야 하고.
하지만 샤를로트는 고작 며칠 만에 털고 일어나 쾌활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당사자가 샤를로트가 아니었더라면 퀸시는 분명 이를 갈고 있었으리라.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군.’
샤를로트가 경기장에서 쓰러졌을 당시, 그 자리에는 퀸시도 있었다.
단지 차마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을 뿐.
그곳에서 퀸시는 샤를로트가 시시각각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에게는 자못 익숙하기까지 한 선혈이 그의 하나뿐인 가족을 붉게 물들이고, 혈색이 돌던 뺨이 점점 창백해져 가는 것을.
그리고 힘없이 눈을 감기 직전, 샤를로트가 알폰소를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짓는 것까지도.
그의 여동생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결같았다.
-오빠, 물수건 안 올려줘도 돼. 나 괜찮아…….
-열이 이렇게 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마저 자기나 하렴.
-으응……. 내 옆에 있을 시간 없지 않아?
-그래. 그러니 사람을 두고 갈 거다. 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아, 그렇구나…… 다행이네…….
어린 샤를로트는 열에 달뜬 얼굴로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마저 잠에 빠져들었다.
이따금 눈을 뜨긴 했지만 잠기운과 물수건에 가려 옆에 있는 이가 누군지는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게 퀸시는 아픈 샤를로트의 곁을 꼬박 하루 동안 지켰다.
아픈 와중에도 다행이라며 웃던 얼굴과,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알폰소에게 미소 짓던 얼굴이 겹쳐졌다.
눈앞의 광경이 너무 충격적이었던 까닭일까. 혹은 제 계획이 완벽하게 엇나가 샤를로트를 찌르고 말았다는 사실 때문일까.
그 순간 퀸시는 무언가 대단히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하지만 무엇이?
샤를로트가 에두아르트에, 그리고 알폰소에게 애정을 가졌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만약 퀸시가 알폰소를 죽이려고 한다면 샤를로트도 휩쓸릴 수 있다는 것 또한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나뭇잎과 나무뿌리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었다.
퀸시는 그 순간 직감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샤를로트는 노하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관계 또한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샤를로트는 이미 퀸시를 떠났다.
그를 노하에 홀로 남겨 두고.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단다, 샤를. 네가 있어야 할 곳은 노하야.”
“그러시겠지. 어련하겠어. 너는 매번-”
“하지만.”
퀸시가 샤를로트의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자르고 끼어들었다.
“너를 잃는 것은 더 상상하고 싶지 않다.”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다. 네가 엇나갔으니 널 억지로라도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네가 다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니.”
퀸시의 말에 샤를로트의 미간이 좁혀들었다.
“무슨 수작질을 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이런다고 노하로 돌아가진 않아.”
“좋을 대로 생각하렴. 하지만 샤를, 나는 정말 언제나 너를 위해 왔단다. 너를 위해 한 행동이 너를 다치게 한다면…… 계속할 수는 없겠지.”
퀸시에게 알폰소를 죽이는 것은 그간 샤를로트 옆에 이따금 생기던 날파리들을 쫓아내기 위해 ‘약간의 도움’을 주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샤를로트와 가깝게 지내는 영애의 열등감을 자극하거나, 노하의 잔혹함을 살짝 보여줌으로써 상대가 샤를로트를 꺼리게 만드는 등.
퀸시가 ‘약간의 도움’을 주면 샤를로트 옆에 붙었던 날파리들은 어김없이 제 밑바닥을 보이며 도망가곤 했다.
‘결국 그것밖에 되지 않는 인간들이었던 거지.’
퀸시의 수작이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본색을 드러내며 샤를로트를 상처 입히고 말 버러지 같은 인간들.
그런 이들에게 시간을 낭비할 바에는 일찍부터 쫓아내는 게 더 이득이라고, 퀸시는 생각했다.
그리고 알폰소 또한 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족속일 거라고도.
하지만 오늘 연회장에 나타난 샤를로트와 알폰소는 더없이 사이가 좋아 보였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모르겠구나, 샤를로트. 나는 여전히 너를 이해할 수 없다.”
퀸시는 늘 샤를로트에게 말해왔다.
타인의 이해와 공감은 허울 좋은 쓰레기일 뿐, 우리는 지배하고 이용하는 위치에 서야 한다고.
그러나 샤를로트는 이 부분에서만큼은 한 번도 퀸시의 말을 따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번번이 버러지들과 같은 무리에 끼고 싶어 했으니까.
그 탓에 퀸시가 ‘약간의 도움’을 준 것도 숱한 일이었다.
하지만 알폰소가 밑바닥을 쉽게 드러내는 이들과는 사뭇 다른 종자라면.
샤를로트가 그토록 몸을 던져 사랑할 만한 가치가 정말 있는 사람이라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하렴. 나는 더 손대지 않으마.”
“……믿지 않아. 독까지 써 놓고 그 말을 믿으라고?”
“믿지 않는 것 또한 네 자유지.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 용건이 없다면 그만 가 봐라. 얼굴을 보니 좋다만, 지금은 피곤하구나.”
퀸시의 안에서는 여전히 샤를로트에 대한 생각이 맞부딪치고 있었다.
자신을 노하에 홀로 두고 떠난 샤를로트를 향한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과, 더 이상 샤를로트를 다치게 할 수 없다는 이성의 갈등이었다.
퀸시는 본디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이었기에 지금은 이성이 우세했지만, 그는 샤를로트에 대한 문제에서만큼은 늘 감정적으로 바뀌곤 했다.
샤를로트와 대치를 더 이어나가면 감정을 드러내고 말지도 모르니, 퀸시는 샤를로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샤를로트는 영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걸음을 돌렸다.
멀어지는 샤를로트의 모습을 보며, 퀸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잘한 선택인지는 모르겠군.’
하지만 샤를로트를 영영 잃는 것과, 제 손안에는 없어도 다른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데에는 너무 큰 차이가 있었다.
‘샤를로트를 잃는 것을 더 상상하고 싶지 않다는 것만큼은 사실이었으니…….’
되도록 후회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라야겠군.
퀸시가 상념을 정리하며 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귀부 와인은 식성이 닮은 노하 남매가 모두 좋아하는 음료였다.
긴 잔을 따라 황금빛 액체가 기울어지는 찰나.
“퀸시, 잠깐-!”
돌아 나갔던 샤를로트가 짜증 반, 다급함 반이 섞인 표정으로 성큼성큼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퀸시가 마시려던 잔을 황급히 빼앗아 들었다.
어찌나 다급했던지 그 여파로 잔에 담겨 있던 와인이 출렁이며 샤를로트의 드레스를 적셨다.
투둑.
그러나 샤를로트의 드레스에 물든 얼룩은 와인의 빛깔이 아니었다.
검붉은 선혈의 색.
“샤를로트, 너…….”
그 얼룩을 본 퀸시가 황급히 샤를로트의 얼굴을 올려다본 순간.
그는 그대로 굳고 말았다.
샤를로트의 입과 코에서 피가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놀랄 틈은 없었다.
“아……. 큰일이네.”
벌써 쓰러질 생각은 없었는데.
그 말을 끝으로, 샤를로트의 몸이 추락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