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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108화 (111/122)

샤를로트는 그 뒤로도 하루 이틀 정도는 병석 신세를 져야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가브리엘의 능력으로 씻은 듯 낫게 해줄 수도 있었지만.

“칼에 찔렸는데 곧장 털고 일어나면 그게 더 수상해 보일걸. 어차피 깊게 찔린 것도 아니니까 며칠 누워 있지, 뭐.”

이러한 이유로 샤를로트는 치료를 거절했다.

며칠 뒤에는 검술 대회를 빙자한 축제의 끝을 알리는 피로연에 참석해야 하니 오래 누워 있지는 못하겠지만, 이틀이나 환자 행세를 할 수 있으니 오히려 잘되었다는 투였다.

그렇게 말하는 샤를로트의 낯은 어쩐지 퍽 피로하고 착잡해 보였으나, 가브리엘은 더 말을 얹지 않았다.

여기서는 무슨 말을 해도 기만이 되리라는 것을 그 역시 잘 알았던 까닭이었다.

그렇게 대화는 고요 속에 마무리되었고, 에두아르트에는 객이 한 명 생겼다.

그리고, 샤를로트는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 *

“미리 말하지 않은 건 정말 미안하다니까요. 당신이 반대할 게 뻔해서 그랬어요. 아직도 화났어요, 알폰소?”

“…….”

현 시각 에두아르트 공작저에서는 평소 상상도 못 할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화가 단단히 난 표정으로 앞만 보고 걸어가는 에두아르트 공작과, 그런 남편을 졸졸 쫓아가며 어떻게든 말을 붙여 보려고 애쓰는 에두아르트 공작부인.

평소 에두아르트 공작이 제 아내에게 얼마나 끔찍한지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차마 생각해 본 적도 없을 광경이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샤를로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난 이게 이렇게 화낼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전부 잘됐잖아요. 당신도 멀쩡하고, 나도 멀쩡…….”

찌릿.

앞서 가던 알폰소가 날카롭게 샤를로트를 돌아보았다.

그 살벌한 눈빛에 샤를로트는 얼른 하려던 말을 바꾸었다.

“……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잘 풀린 거죠. 안 죽은 게 어디-”

찌릿.

“……는 아니죠. 어쨌든 이번 일이 위험하긴 했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나는 독에 내성이 있다니까요? 그 칼은 당신이 맞는 것보다 내가 맞는 게 더 현명한 판단이었어요.”

이번에는 알폰소가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이제야 겨우 설득이 좀 먹혀들려는 건가?

샤를로트가 살며시 기대한 순간, 알폰소가 입을 열었다.

“나는 우둔하여 현명한 판단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우둔한 이와 논쟁하여 좋을 것 없으니 당신처럼 현명한 이와 이야기하십시오.”

이런. 하나도 안 먹혔잖아.

“그래서 나랑은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고요?”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과 대화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당신의 의견을 존중할 수 없을 것 같아 말을 아끼려는 것뿐입니다.”

“그게 그거죠!”

“편하실 대로 해석해도 좋습니다.”

여전히 알폰소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결국 샤를로트는 인상을 쓰고는, 붕대가 감긴 옆구리를 움켜쥐었다.

“아, 아야! 으…….”

“……샤를로트?”

고통 어린 신음소리가 흘러나오자마자 앞서 가던 알폰소가 순식간에 몸을 돌려 샤를로트를 부축했다. 그 잠깐 사이에 별안간 샤를로트가 죽었을 리도 없건만, 작은 신음소리만으로도 알폰소의 낯은 희게 질려 있었다.

“괜찮은 겁니까? 그러니 조금 더 병상에 있어야 한다고-”

“날 병상에 두려면 당신이 날 피하지 말았어야죠.”

그리고 샤를로트는 아주 멀쩡한 얼굴로 알폰소를 덥석 붙잡았다.

“이렇게 조금만 아픈 척을 해도 외면하지 못할 거면서, 왜 자꾸 날 피하는 거예요?”

“……피한 적 없습니다. 그저-”

“그저 지금 내가 당신의 의견을 존중할 수 없을 것 같아 말을 아끼려는 것뿐입니다. 이 말은 됐어요.”

“그럼 내가, 당신의 죽음에도 개의치 말라는 당신 말에 동의해야 한다는 겁니까?”

알폰소의 질문에 샤를로트의 낯에 떠오른 표정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사실 바로 저 말이 문제였다.

샤를로트가 검술 대회에서의 일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내가 다친 건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당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라고.

바로 그 지점에서 알폰소는 속이 뒤집혔다.

“샤를로트, 나는 당신의 무모함에 신물이 납니다. 당신을 신경 쓰는 것이 어째서 오직 나뿐인지 모르겠습니다.”

정작 당신은 스스로를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데.

나는 왜 당신을 이토록 놓지 못하는 건지.

샤를로트의 행동 때문에 속이 난장이 되고도 알폰소는 그녀를 온전히 탓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몸을 던진 이유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알폰소 자신 때문이었으므로.

그러니 샤를로트가 ‘어쨌든 당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라며 알폰소를 안심시키려 들 때마다, 그는 지독한 자기혐오와 마주하고 마는 것이다.

타인이 몸을 던진 대가로 연명하고 있는 이 지난한 평화에 대한 혐오감.

“……나는 가끔은 당신이 아둔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겁이 많고, 소심하고, 의존적이고, 단순한 것도 계산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랬더라면 설령 내게 해가 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당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무력감에 신음할 일은 없었을 텐데.

겁이 많은 당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어딘가에 가두고, 바깥 물정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하게 오직 좋은 이야기만을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오직 내게만 의지하는 것을 보며 이 부정한 욕망을 채웠겠지.

그렇게 한다면 일평생 따라 온 도덕적 규범을 어겼다는 죄책감은 있어도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에 전전긍긍하지는 않았으리라.

‘……경멸스럽군.’

이런 망상이 불쑥 뇌리를 치받을 때마다 알폰소는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제 부친의 자식임을 깨닫곤 했다.

-너도 커서 고작 네 아비 같은 인간이 될 테지.

또한 자신을 차갑게 내려다보던 어머니의 말이 옳았다는 사실 또한.

어쩌면 정말로 아둔한 것은 제 쪽일지도 몰랐다.

샤를로트의 일에서라면 그는 늘 겁이 많고 소심하며, 단순한 것도 계산하지 못하는 천치가 되는 것만 같았다.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샤를로트에게 나는 별것 아닌 사람일 텐데.’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으니까.

생각이 그에 다다르자 알폰소의 기분은 순식간에 진창에 처박혔다.

그는 낯을 건조하게 쓸어 넘기고는 샤를로트를 놓았다.

그녀는 여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아마도 제 말이 터무니없어 할 말을 잃은 까닭이겠지.

“……방금 한 말은 잊어주십시오. 경황이 없어서 말이 헛나갔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노라며 알폰소가 걸음을 뗀 찰나.

뒤에서 붙잡는 손길이 있었다.

“알폰소,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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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 뒤를 돌아보니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차분한 낯을 하고 있는 샤를로트가 보인다.

“계속 생각해 봤는데, 당신 생각보다 나는 겁이 많아요.”

“……예?”

“나는 여태껏 내가 죽음에 초연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원래 무지한 자는 용감하다잖아요.”

그러니 겁도 없이 제 목을 걸고 알폰소의 앞에서 칼을 맞고 쓰러진다는 계획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너지는 알폰소의 낯을 뒤로하고 눈을 감는 순간, 어쩌면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한 박자 늦게 고개를 치켜든 순간.

샤를로트는 제 삶이 그간 자신이 생각해 왔던 것과는 사뭇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한 번 걸었던 목숨 두 번쯤 못 걸겠냐며 배짱을 부렸지만.

처음 가브리엘의 술식에 목을 내건 순간과 지금의 그녀는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그제야 겁이 나더군요. 그제야 내가 너무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는 걸 알았어요.”

샤를로트는 자신이 아둔하고, 겁이 많으며, 생각보다 소심해서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만약 그렇지 않아 보인다면 그건 전부 알폰소 때문이라고.

“시간을 되돌려도 나는 당신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똑같이 할 거예요. 멍청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요. 사과는 하지 않을 거예요.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으니까.”

샤를로트의 말은 모호했다.

그것이 검술 대회의 일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말하는 것인지 뚜렷하지 않았으나 알폰소는 그저 전자로 짐작할 따름이었다.

하여 그는 혼란스러워졌다.

“왜…… 내게 그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당신이 말한 그 내기라는 것 때문에?”

“물론 그게 중요하긴 하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그럼 뭡니까. 당신이 말했던 사랑 때문입니까?”

“맞아요.”

샤를로트는 미소 지었다. 어쩐지 조금은 울고 싶은 듯한 모양새로.

“난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알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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