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샤를로트는 곧바로 에두아르트 공작저로 옮겨졌다.
본인을 의사라고 소개한,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샤를로트에게 무언가 약을 흘려 넣자 놀랍게도 샤를로트의 안색이 빠르게 돌아온 덕분이었다.
그 누구도 손쓰지 못했던 샤를로트의 증상을 완화시킨 사람이 나오자 알폰소는 앞뒤 잴 겨를 없이 가브리엘의 말을 따랐다.
샤를로트를 에두아르트로 옮기고, 가브리엘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하려는 처치는 몹시 신중을 요하니 다른 분들은 모두 최대한 이 방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주십시오.”
“방문 너머에 있어도 안 된다는 겁니까?”
“안 됩니다. 개미 소리 하나 나지 않게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도…….”
“집중이 흐트러져 손이 조금이라도 빗겨 나가면 부인을 살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계십시오.”
결국 에두아르트의 사람들은 그 미심쩍은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주위를 전부 물린 뒤, 정적이 흐르는 방 안.
처치를 마친 가브리엘이 약병을 정리하며 무심히 입을 열었다.
“정신이 드십니까?”
얼핏 보면 혼잣말이 아니냐고 물을 법도 했으나, 놀랍게도 그 말에 침상에 미동 없이 누워 있던 샤를로트가 느리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칼에 찔리고, 심지어는 독에 당하기까지 한 사람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만큼 멀쩡한 얼굴로.
“……내가, 산 건가?”
“다른 이였더라면 죽었을 겁니다. 제정신이 아니시더군요.”
“난 당신을 믿었으니까.”
그 태연자약한 말투에 가브리엘이 언짢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
“믿었다고요? 무엇을?”
“당신이라면 내가 술식이 완성되기 전에 죽게 내버려 둘 리 없다는 것을.”
샤를로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식은땀이 흐른 얼굴은 여전히 열이 오르는 듯 보였고, 칼에 찔린 몸은 움직임이 둔했으나 그녀의 눈빛은 늘 그랬듯 선명했다.
“당신, 내가 서둘러 죽어서 술식이 완성되기를 고대하고 있잖아. 그런데 그보다 먼저 내가 죽어 버리면 곤란할 거 아니야.”
그러니 당신을 만나려면 이런 수를 쓸 수밖에.
덧붙는 말에 가브리엘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한 숨을 내뱉었다.
“겨우 나를 다시 만나기 위해 이런 짓을 벌였다는 겁니까?”
“겨우라니, 말이 심하군. 나는 목숨을 걸었는데.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걸 수 있어.”
가브리엘을 도로 제 앞에 데려오기 위해서라면 샤를로트는 얼마든지 다시 칼에 찔릴 수 있었다.
샤를로트의 말에 가브리엘은 인상을 찌푸리기까지 했다.
“기가 차는군요. 다음에는 당신을 살리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해. 그땐 당신의 실험, 나, 알폰소까지 다 같이 저세상으로 가겠군.”
“그렇게 말한다고 날 협박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래.”
샤를로트의 목소리가 선득하게 떨어졌다.
힘을 주어 말한 것도 아니건만, 샤를로트의 단정적인 어조는 베일 듯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어. 당신과 나는 닮았으니까.”
상실을 알고,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 죽은 이를 어떻게든 되돌리려 하는 점이 닮았다.
그 지독한 오만과 아집이, 죽은 이를 제외한 다른 건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듯한 그 태도.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거짓을 말할 수 있는 면모까지도.
“당신의 목적이 파스칼을 살리는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어. 그리고 그걸 위해서 당신이 나만큼이나 술식의 완성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도.”
“그것까지 전부 짐작하셨다면, 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이신 겁니까!”
“살고 싶어서. 이것 말고 이유가 더 있겠어?”
한번 죽어 보니 삶이 더 간절해지더라며, 샤를로트가 산뜻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를 본 순간 가브리엘은 깨달았다.
자신이 경기장에 난입한 샤를로트를 외면하지 못한 순간부터 이미 그는 헤어나올 수 없는 덫에 걸렸다는 것을.
가브리엘이 샤를로트를 무시하고 떠난다면 샤를로트는 당장에 제 목을 먼저 그을 것이다.
그것만이 가브리엘이 연연하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부인에 대한 평가를 정정해야겠습니다. 소문보다 무른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군요.”
“판단은 자유지. 물론 나도 그에 동의하는 편이고.”
으쓱한 샤를로트가 눈을 반짝 빛냈다.
“그럼, 이제 얘기 좀 해 볼까.”
정말로 날 살릴 방법이 없는지 말이야.
* * *
가브리엘은 샤를로트의 주치의로서 당분간 공작저에 머무르게 되었다.
샤를로트는 가브리엘과 이야기할 기회가 필요했고, 가브리엘 역시 샤를로트가 죽어버릴까 불안에 시달리느니 이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린 덕분이었다.
그렇게 양측의 원만한 합의하에 이야기를 나누며 샤를로트가 알게 된 것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그녀의 짐작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는 점이다.
가브리엘은 샤를로트의 죽음을 통해 파스칼을 살릴 생각이었다.
“파스칼을 살리기 위해서는 부인께 쓴 술식을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부인께서는 남편분의 시신이 온전했지만, 제 경우는 아니니까요.”
죽은 이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세 가지였다.
죽은 이의 시신과 그를 살리기 위한 강렬한 염원, 그리고 그 염원을 지닌 자의 목숨까지.
다른 두 가지는 구할 수 있다고 한들, 가장 중요한 시신이 없었던 가브리엘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이는 제가 연금술사가 된 이유와 일맥상통하기도 합니다. 부인께서는 연금술사들이 무엇을 위해 연구에 매진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값싼 금속으로 금을 만들기 위해서. 아니야?”
“맞습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금이 아닌 것을 금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결국 기적을 일으키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연금술사는 기적을 찾아다니는 이들인 셈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다는, 곧장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는 세계수를 찾는 것.
그것이 연금술사인 가브리엘의 연구 과제이자, 동시에 파스칼을 살릴 유일한 방법이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샤를로트는 희망에 눈을 빛냈다.
“연금술이라는 거, 정말 대단하네! 그럼 세계수만 찾으면 나도 살 수 있다는 거지?”
“이론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다시 말하지만 부인께서는 살 수 없으실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샤를로트는 새로운 사실 두 번째를 알게 된다.
“제가 부인께 써 드린 술식은 엄밀히 말하자면 사람을 살리는 용도가 아닙니다.”
그 술식은 세계수의 기적을 모방하여 세계수를 찾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었다.
희생.
“오직 자발적인 희생만이 세계수로 향하는 길을 밝혀줍니다.”
그러니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죽어야만 세계수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 내가 죽은 뒤에 날 살릴 수도 있잖아.”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대체 왜!”
샤를로트가 결국 버럭 소리를 치자, 가브리엘이 끝내 숨겨 온 비밀을 꺼냈다.
“술식이 완성되면, 이론대로라면 부인께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뭐? 그런 얘기는…… 없었잖아.”
“술식 자체가 미완인 터라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았기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희생이라는 것이, 죽음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를 지워 버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하여 샤를로트의 앞에는 두 가지 사실이 놓이게 되었다.
첫 번째.
그녀의 가설은 완벽히 들어맞았으며, 가브리엘은 샤를로트의 예상대로 그녀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숨기고 있었다.
두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를로트가 살아날 방법은 없었다.
가브리엘은 그녀에게 숨겨 온 사실이 있다는 점을 못내 미안하게 여기는지, 나름대로 말을 덧붙였다.
“부인이 죽기 전, 부인을 위해 자발적으로 목숨을 던질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없어. 그런 사람. 전에도 말했잖아?”
그들이 별장에서 만났을 때, 가브리엘은 같은 질문을 던졌다.
-부인께서는 그런 사람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못 하겠지.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사람은 알폰소뿐인데.
“내 목숨을 바쳐서 살린 알폰소를 다시 나 때문에 죽이느니, 그냥 내가 죽는 게 낫겠지.”
“……미안합니다.”
“아니, 미안할 건 없지. 덕분에 알폰소가 살았는걸.”
샤를로트는 그렇게 말하곤 무슨 생각에선지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잠깐의 침묵 후, 그녀는 고개를 돌려 다시 가브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럼 내가 죽으면, 아무도 날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가?”
“이론상으로는 그렇지만 아마 저는 기억할 겁니다. 제 술식이니까요.”
“그래?”
샤를로트가 엷게 입매를 끌어올렸다.
“그럼 알폰소는 기억하지 못하겠구나. 다행이네.”
죽음을 준비하는 이의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