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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103화 (106/122)

* * *

“……살 방법이 있느냐고요?”

가브리엘은 샤를로트의 질문을 썩 탐탁잖게 느끼는 듯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삶을 바라는 샤를로트의 태도를 못마땅해 하는 것이었을까.

“따지자면 부인께서는 술식이 발동되었을 때 이미 숨을 거두셨어야 했습니다. 이만큼이나 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도 행운이 아닙니까?”

“……행운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샤를로트는 씁쓸한 입맛을 감추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욕심이라는 게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잖아.”

지내다 보면 숨 쉬고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눈물이 났다.

어떻게 움켜쥐어도 끝내 손틈으로 흘러내리고야 마는 유사 같은 삶.

한 달이라도, 아니, 며칠이라도 좋으니 조금만 더 알폰소의 옆에 있고 싶었다.

샤를로트의 말에 가브리엘이 한숨을 내쉬었다.

“부인께서 술식의 제물이라는 것은 기억하실 겁니다. 술식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의 목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제물로 교체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제물이 된 당사자의 소망을 이뤄주는 술식이었으니까.

만약 술식의 제물이 바뀐다면 소망 역시 바뀔 것이다.

혹은, 그 제물 또한 샤를로트와 같은 소망을 품고 있거나 샤를로트의 삶을 간절히 바라는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

“부인께서는 그런 사람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못 하겠지.”

샤를로트는 악녀였다. 그런 그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녀를 아끼는 사람조차 없었던 삶이었으니.

“그래서, 정말로 방법이 없다는 건가?”

“없습니다. 그리고 있다 한들 써 드릴 이유도 없고.”

“그래, 그렇단 말이지.”

샤를로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표정을 바꾸었다.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몸이 악화된 것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해줄 수는 없을까? 혹시라도 남편이 알게 되면 신경을 쓸 것 같아서.”

“물론 그 정도는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 점을 살펴보러 온 것이기도 했고.”

가브리엘은 술식이 거의 완성에 가까워졌다면서, 샤를로트가 여태 들키지 않은 것은 사실상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라고 했다.

샤를로트가 발빠르게 상태를 파악하고 약을 때려붓고 있지 않았더라면 진즉 어딘가에서 쓰러졌으리라.

“이제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을 테고, 생활하시는 데에 지장도 없을 겁니다.”

“완벽히 건강한 상태가 될 거란 말이지?”

“적어도 술식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는 것처럼 보일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 상태가 깨진다면, 그때는 더 손쓸 수 없다는 것만 명심하십시오.”

술식 때문에 건강이 더 악화된다는 것은 곧 한 가지를 의미했다.

술식의 완성, 죽음.

“또 피를 쏟으신다면 아마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죽게 되실 겁니다.”

“그렇군. 알려줘서 고마워.”

징조를 안다면 자리를 피할 수 있을 테니, 적어도 알폰소의 앞에서 죽는 일은 막을 수 있을 터.

샤를로트는 가브리엘의 처치에 고마워하며 그를 돌려보냈다.

물론 돌아가기 전, 다시 연락하기 위해 주소지 등을 물어보았지만.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겁니다. 애초에 이 자리에도 나올 생각이 없었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내 사후를 부탁하고 싶었는데, 아쉽네.”

“부인께서 수명을 다하고 술식이 완성된다면 다시 떠나겠지요. 부인께는 어떨지 몰라도 수도는 제 집이 아닙니다.”

원하시는 바를 이루시길.

가브리엘은 그 말을 끝으로 샤를로트에게서 노트와 사례금을 받아 떠났다.

다시는 샤를로트를 볼 생각이 없다고 단언하기라도 하듯, 올 때처럼 매정한 걸음이었다.

그러나 가브리엘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가 술식을 걸어 준 상대, 샤를로트의 악명은 단순히 그녀가 잔악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로서 드러나는 것일 뿐.

샤를로트의 진가는 특유의 집요함과, 사람을 꿰뚫어보고 상황을 이용하는 능력에서 드러나곤 했다.

‘나를 살릴 방법이 없다, 라.’

가브리엘이 떠나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만이 맴도는 별장 안.

샤를로트는 빈 방에 남아 팔짱을 낀 채 대화를 곱씹었다.

이내, 픽 하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사기를 칠 거면 상대를 보고 쳐야지, 가브리엘.”

* * *

가브리엘의 말은 분명 옳았다.

술식의 제물을 교체할 수도 없고, 그럴 사람을 구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내용만 보자면 샤를로트가 살아날 가능성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 듯 보였다.

단.

-그래서, 정말로 방법이 없다는 건가?

-없습니다. 그리고 있다 한들 써 드릴 이유도 없고.

이 대화만 아니었더라면.

샤를로트는 대답하기 직전 가브리엘의 낯 위로 짧게 스쳐 지나간 갈등을 읽었다.

애초에 정말로 방법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가브리엘이 ‘있다 한들’이라는 말을 쓸 이유가 있었겠는가?

‘살 방법은 있을 거야.’

단지 사용할 수 없을 만큼 조건이 까다로운 방법이거나, 그의 말마따나 샤를로트에게 그런 술식을 써 줄 이유가 없을 뿐.

샤를로트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심증 때문만이 아니었다.

가브리엘이 죽은 동생, 파스칼에게 가지고 있는 애착 때문이었다.

‘그가 이런 술식을 연구하고, 떠돌아다닌 것은 어디까지나 파스칼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그가 파스칼을 살릴 방법을 연구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만약 그런 술식이 미완성이라고 해도 존재한다면 샤를로트가 살아날 방법도 존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샤를로트는 확신했다.

가브리엘을 조금 더 털어보면 뭔가 쓸 만한 것이 나올 거라고.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어.’

가브리엘은 샤를로트처럼 과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다시 그를 만나기는 요원할 터.

가브리엘을 털기는커녕 만나기도 어려운데 대체 어떻게 방법을 찾는단 말인가?

‘따지자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도박이나 다름없군.

바로 이 점 때문에 샤를로트는 별장에서 오랜 사색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끝내 결정을 내리고 돌아와, 알폰소를 찾아갔다.

특별히 어떤 용건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샤를로트가 화려한 꽃이라면 알폰소는 바위 같은 사람.

그녀가 떨어지는 꽃잎들을 보며 시들 날을 불안해할 때, 알폰소의 강직하고 굳건한 면모는 퍽 안심이 되곤 했으니까.

어떤 불안도, 해일처럼 커다랬던 절망과 슬픔도 알폰소를 끌어안고 있으면 발목을 적시는 파도처럼 느껴질 뿐이다.

‘내가 어떻게 죽더라도 당신은 이 모습 그대로 살아가겠지.’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오더라도, 혹은 내가 죽더라도.

내가 세파에 머리가 희게 세고 아름다웠던 모든 부분을 잃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곧은 절벽처럼 존재하리라.

그 생각이 마법처럼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잠재운다.

샤를로트는 알폰소를 한참 끌어안고 있다가, 몸을 떼어내며 입을 열었다.

“알폰소. 나랑 하나만 약속해 줄 수 있겠어요?”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내가 당신 앞에서 죽더라도 너무 놀라거나 탓하지 말아요.”

“……예?”

샤를로트의 말에, 부드럽게 풀려 있던 알폰소의 낯이 차갑게 굳어들었다.

“지금, 그게 무슨-”

“별 뜻 아니에요.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잖아요. 요즘 퀸시가 좀 날을 세우고 있기도 하고……. 아무튼 약속한 거예요?”

“샤를로트? 샤를로트!”

알폰소가 다급히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샤를로트는 금세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

도저히 의중을 알 수 없는 말만 남기고.

* * *

그 뒤로도 알폰소는 몇 차례 샤를로트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 불길한 말에 숨은 뜻을 캐물었다.

그러나 샤를로트의 대답은 늘 같았다.

“말했잖아요. 사람 일은 모른다고. 당장 내일도 죽을 수 있는 게 사람이니까요. 혹시나 해서 한 말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제발,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은 좀 그만두십시오. 이건 정도를 넘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주십시오. 어디 아픈 데가 있는 겁니까?”

“알폰소, 내가 아픈 사람으로 보여요?”

물론 그렇지는 않았다. 샤를로트의 뺨에는 혈색이 돌고, 나날이 건강해지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알폰소도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주치의를 불러 샤를로트를 진찰하게 했다.

“몸이 좀 약해지신 것처럼 느껴지긴 합니다만, 좀 쉬면서 몸을 보하면 될 정도라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마님은 건강하십니다.”

하지만 결과는 이러했고, 샤를로트는 거 보라며 콧대를 치켜세웠다.

그렇게 알폰소만 해소할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 검술 대회의 종장에 이르렀다.

결승전이 눈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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