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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102화 (105/122)

근 며칠 사이, 알폰소는 샤를로트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혹시라도 퀸시가 알폰소에게 독을 먹이거나, 살수를 보낼 가능성을 대비해 샤를로트가 알폰소의 옆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까닭이었다.

여태까지는 퀸시가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았으니 이렇게까지 경계할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지만.

-의도한 건 아니지만, 퀸시를 좀 도발했어요. 퀸시 성격상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경계할 수밖에요.

샤를로트는 알폰소가 경기를 하던 와중 퀸시를 만났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렇게 말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알폰소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일이었고,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가지 알게 된 점이 있었다.

“내가 퀸시를 아끼느냐고요? 전혀요.”

알폰소가 추측했던, 샤를로트가 사랑한다던 사람이 퀸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샤를로트가 워낙 퀸시에게 날을 세우는 것이 의아하다 여긴 알폰소가 던진 질문에 샤를로트는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 직후 자신의 부정을 다시 곱씹어 보는 것 같았지만.

“퀸시를…… 미워하는 건 아니에요. 나는 그에게 고마운 것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다시 노하로 돌아가 퀸시와 함께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그 순간 든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알폰소는 여전히 명명할 단어를 찾지 못했다.

하여 이렇게 대답할 뿐.

“……그렇습니까. 나는 당신이 사랑한다던 사람이 그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답지 않은 허튼 추론이군요. 퀸시라니, 정말 말도 안 돼요. 왜 그런 생각을 했죠?”

“당신은 사랑하는 이에 대해서 좀처럼 말하지 않으니까.”

그 말 직후 부자연스러운 정적이 짧게 흘렀다.

한쪽은 말문을 잃었고, 한쪽은 제가 뱉어 놓은 말에 도리어 놀란 까닭이었다.

우습게도 알폰소는 그 말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샤를로트는 사랑하는 이는 물론이거니와, 스스로에 대해 좀처럼 밝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다른 이였더라면 진즉 캐물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알폰소는 본디 타성적이며, 지극히 무심한 인간이었다.

그러니 샤를로트가 숨기는 일을 굳이 캐낼 생각 또한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샤를로트가 자신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녀와 한층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취해 그런 것을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만약 샤를로트가 그토록 사랑한다는 이가 제 혈육이라면, 연인의 자리는 적어도 제게 공평히 비워져 있을 테니.

샤를로트가 누굴 진정으로 사랑하는지는 알폰소에게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까지는.

석재를 가르듯 서걱이는 목소리가 느리게 흘러나왔다.

“……당신이 사랑하는 이가 퀸시 노하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입니까?”

알폰소의 질문에 샤를로트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어쩌면 조금은 슬픈 얼굴을 했을지도 모른다.

샤를로트는 곤란해지면 종종 인상을 찌푸리는 대신 미간을 들어 올려 눈썹을 처지게 만들었다.

꼭 지금처럼.

“미안해요. 그건 말해줄 수 없어요.”

“당신이 누굴 사랑하더라도 당신을 부정하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알폰소, 나는 부정한 사랑을 하지 않아요.”

그제야 샤를로트는 살짝 인상을 쓰고는, 한숨을 내쉬며 그를 밀어냈다.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거예요? 평소에는 관심도 없었잖아요.”

“문득 의아해져서 말입니다. 당신은 에두아르트에 와서 다른 사람을 만난 적이 없잖습니까.”

샤를로트는 늘 알폰소의 옆, 혹은 에두아르트에 있었다. 그 흔한 사교계 외출조차 하지 않았다.

집사나 하녀장에게 샤를로트가 오늘 무엇을 했는지 물어도, 그저.

-오늘은 하루 종일 꽃꽂이를 하셨습니다.

-마님께서는 서재를 둘러보셨습니다. 중간에 기사님들과 대화를 나누시는 것 같던데, 그 외에는 대개 독서를 하시는 것 같더군요.

-무료해하시는 것 같아 자수를 권해 보았는데, 자수에는 소질이 없으시다고 하셨어요. 그런 것치고는 바늘을 잡는 게 익숙해 보이셨는데…….

샤를로트는 에두아르트에서 그 무엇도 건드리지 않았다.

언젠가 떠날 사람이라고 온몸으로 주장하기라도 하듯, 무엇도 바꾸지 않고 무엇도 남기려 하지 않았다. 그저 틀어박혀 책을 뒤적일 뿐, 무언가를 건드려 봐야 일주일도 채 가지 못하고 시들 꽃 정도였으니.

발랄해 보이지만 폐쇄적인 생활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을 만큼.

“그러니 당연히 당신이 언급하는 이가 퀸시 노하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좀 멀리 있어서 지금은 못 보는 것뿐이에요.”

“말하고 싶지 않다면 강요하지 않겠습니다만, 거짓은 말하지 마십시오.”

알폰소는 샤를로트와 구태여 시선을 맞댔다. 샤를로트가 왼편으로 시선을 피한 까닭이었다.

“당신은 사랑하는 이에 대해 말할 때는 서투른 게 두드러집니다.”

샤를로트는 거짓을 말하는 데 능숙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알폰소조차 알아챌 정도로 거짓말을 하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있나.

‘물론 캐물을 수는 없겠지만.’

샤를로트가 이렇게 목적지조차 뚜렷이 밝히지 않고 외출할 때면 그 대화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게다가 공작저를 나서는 샤를로트의 표정이 퍽 긴장한 듯 보였던 것 역시 신경 쓰이는 요소 중 하나였다.

‘사랑한다는 사람을 만나러 간 건가.’

의도치 않게 불륜을 저지른 기분이다.

알폰소는 가능하다면 묻고 싶었다.

당신에게 퀸시가 아닌, 정말로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나와 이런 관계를 가져도 되는 건지.

‘당신에게 나는…….’

대체 어떤 의미인 건지.

몇 번의 입맞춤 이후, 알폰소는 샤를로트에 대한 제 욕망을 건조하게 받아들였다.

웃고 있는 샤를로트를 보고 싶었다. 동시에 그녀가 자신 때문에 우는 것을 보면 가슴 안쪽이 빠듯이 기꺼웠다.

그토록 숭고하면서도 저열한 욕망이 존재할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만약 샤를로트가 사랑한다던, 그녀의 연인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더는 이 관계를 이어갈 수 없겠지.’

샤를로트부터가 그를 멀리할 것이다. 그게 어쩌면 당장 오늘이 될 수도 있을 테고.

그것이 옳은 길인 줄 알면서도 속이 쓰리다.

‘하지만 루드빅에게까지 한 소리 들을 정도라니.’

아무래도 신경을 쓰는 기색이 적잖이 드러나긴 한 모양인지.

알폰소는 한숨을 내쉰 뒤 루드빅을 내보내고,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연무장에나 가 봐야겠군.’

곧 다음 경기가 있으니 그 전에 왼손을 써 보아야겠다는 건 핑계고, 머리가 복잡한 까닭이었다.

그렇게 서류 정리를 마친 알폰소가 오른손에 매어 둔 붕대를 풀어내던 와중, 문이 벌컥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노크 없이 에두아르트 공작의 집무실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에두아르트 공작부인.

샤를로트의 난입에 알폰소가 반가움 반 걱정 반으로 눈을 크게 떴다.

“샤를로트? 벌써 돌아온 겁니까?”

“…….”

“……샤를로트?”

둥글어졌던 알폰소의 눈이 도로 돌아올 즈음, 기묘한 표정으로 알폰소를 응시하고만 있던 샤를로트가 이내 빙긋 미소 지었다.

“다녀왔어요. 혹시라도 당신한테 별일은 없었나 싶어서. 미안해요, 놀랐죠?”

“괜찮습니다. 그보다 만난다던 사람은…….”

알폰소가 말끝을 흐리자 샤를로트가 가벼운 투로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별 거 아니에요. 걱정할까 봐 말을 안 했는데, 요즘 건강이 좀 나빴거든요. 의사를 보고 왔어요.”

“건강이 좋지 않았다니, 왜 말을 하지 않은 겁니까?”

대번에 알폰소가 인상을 찌푸렸다.

샤를로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의 미간을 툭 치며 말했다.

“이거 봐요. 이럴 줄 알고 얘기를 안 한 거죠. 의원 보길 싫어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갔다 왔을 뿐이에요.”

“그래도.”

“이제 정말 괜찮아요. 별것도 아니었는걸요. 내가 아파 보인 적 있어요?”

그런 적은 없다. 오히려 샤를로트는 에두아르트에서 늘 활달하게 지냈으니까.

알폰소가 대답하지 못하자 샤를로트가 거 보라는 듯 콧대를 치켜세웠다.

“별일 아니었고,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당신 검술 대회 때문에 정신없을 텐데 더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다고는 해도, 다음에는 말씀해 주십시오.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의 일이 아닙니까.”

무리해서라도 신경 쓰고 싶습니다.

덧붙는 말에 샤를로트가 느슨하게 웃으며 알폰소를 그러안았다.

“그래요. 다음엔 꼭 말할게요.”

알폰소는 대답 대신 샤를로트를 마주 안았다.

제 등을 감싸는 온기를 느끼며, 샤를로트는 알폰소의 어깨 너머로 느리게 눈을 떴다.

빗줄기가 그어진 창문 위로 차디찬 목소리가 다시 재생되었다.

-안타깝지만, 부인께서 사실 방법은 없습니다.

무기질적이다 못해 시리게 느껴졌던,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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