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97화 (100/122)

퀸시의 낯은 평소 샤를로트에게 다정한 오빠의 모습을 보일 때와 한 치도 다를 바 없이 상냥하고 따스했다.

그런 낯으로 한다는 말이 이런 내용이라니.

샤를로트는 순간 제가 들은 것이 현실감이 없어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지금, 뭐라고?”

“밖에서 지내다 보니 상당히 둔해진 모양이구나. 이 모든 게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다정한 기만의 말씨.

“네가 아니었더라면 에두아르트 공작은 아무 일도 없이 경기를 치렀겠지. 듣자 하니 실력이 좋던데, 그에게 이런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고.”

부상을 입을 일 따위는 더더욱 없었으리라.

“하지만 너 때문에 평온한 길은 멀어졌구나.”

“……헛소리하지 마. 그게 왜 나 때문이야? 이건 전부 오빠가,”

“네가 에두아르트로 가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니까, 샤를.”

퀸시의 말에 샤를로트의 낯이 차게 굳어들었다.

그것은 샤를로트가 줄곧 애써 외면해 왔던 한 가지 사실이었다.

사실 샤를로트는 이제 더는 알폰소의 곁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알폰소가 그녀와의 결혼을 원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가신들로부터 영향력을 회복하고, 반지를 되찾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두 가지 문제가 전부 해결된 상태였고.

‘그러니 더더욱 내가 그의 곁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다.’

계약 결혼의 기한이 아직 남았고, 알폰소의 문제도 아직 남아 있다는 우스운 핑계를 대어 가며 외면했을 뿐.

그 결과 알폰소가 과거처럼 노하로부터 위협을 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퀸시가 정확히 짚은 것이다.

퀸시는 표독스러워 보이는 여동생이, 제 사람에게만큼은 상당히 무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잘 생각해 보렴. 노하를 등지고 집을 나설 때 이런 결과를 정말 예상하지 못했니?”

퀸시의 질문에 샤를로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너는 영리한 아이니까 잘 알고 있겠지. 나를, 그리고 노하를 등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네가 무엇을 배경으로 두고 있는지.”

치졸하고 비열한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것이 노하다.

개중에서도 가장 무자비한 인간이 퀸시였고.

그러니 그를 등지고 에두아르트로 가는 것은 그야말로 에두아르트에 가시밭길을 깔아주겠노라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너는 알면서도 에두아르트로 갔다. 그러니 당연히 네 탓일 수밖에.”

퀸시의 말에 샤를로트가 차게 비소했다.

“내 탓을 따지기 전에, 그런 말을 오빠가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전부 오빠 때문이잖아. 너만 날 내버려 뒀더라면 아무 문제 없었을 거야.”

“너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네 남편도 그렇게 생각할까?”

알폰소의 이야기가 나오자 샤를로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완벽하다던 에두아르트 공작에게는 이제 너라는 흠이 생겼잖아. 처음에는 별것 아닌 듯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거슬리겠지. 에두아르트 공작은 우리와는 본질부터 다른 인간이잖니.”

고위 귀족 중에서도 가장 황족에 가까운 푸른 피, 에두아르트.

그리고 온갖 더러운 돈으로 세력을 불린 노하.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지금은 내 행동이 무정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늘 말하지만, 샤를로트. 나는 널 위해서 이러는 거란다. 에두아르트에 있는 것은 너를 상처 입힐 뿐이야.”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다고 해서 옷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는 없으며, 오히려 비웃음을 살 뿐이라고 퀸시는 말했다.

샤를로트가 에두아르트에 있는 것은 그저 욕심이며, 알폰소와 그녀 모두에게 독이 될 뿐이라고.

그러니 정말로 알폰소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를 떠날 필요가 있다는 것까지도.

퀸시의 말은 일견 타당해 보였다. 그는 정말 설득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를 하지. 네가 나를 등지고 엇나간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너를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 잘못이 크구나.”

처음에는 샤를로트를 자극하고, 일부러 아픈 곳을 건드려서, 끝내는 달래 가며 온정을 보이기까지.

“그만 노하로 돌아와라. 네가 원한다면 이혼은 하지 않아도 좋으니, 나는 예전처럼 너와 잘 지내고 싶다.”

“…….”

샤를로트는 무슨 생각에선지 그런 퀸시의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녀는 어쩌면 설득당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무언가를 가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퀸시는 어느 쪽이 되었든 샤를로트가 결국 제 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샤를로트는 나를 버릴 수 없다.’

가족이라는 말은 샤를로트를 늘 약하게 만들곤 했으니까.

퀸시가 샤를로트를 달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가문이 시킨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우는 소리를 할 때나, 이따금 퀸시의 태도에 상처받았다고 할 때마다 퀸시는 이와 비슷한 행동을 해 왔다.

샤를로트의 곁에 있는 사람을 전부 쳐내고, 결국 네가 의지할 곳은 이곳뿐이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그게 노하에 속해, 결백하지 못한 이들의 숙명이라고.

그리고 마침내 샤를로트의 입이 열렸다.

“……오빠 말이 맞아. 나는 에두아르트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지. 오래 머무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 그냥, 욕심을 좀 내 보고 싶었을 뿐이지. 무엇보다 나도 오빠와 잘 지내고 싶어.”

수긍하는 듯한 샤를로트의 모습에 퀸시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내 말에 동의한다니 한결 안심이 되는구나. 그럼 이제-”

“그러니까, 퀸시.”

샤를로트가 대뜸 퀸시의 말을 끊더니, 빙긋 미소 지었다.

“사과해. 알폰소를 해치려고 한 거.”

“……뭐?”

“사과하라고. 나 말고 알폰소한테 사과하고, 더는 손쓰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럼 나도 오빠랑 잘 지낼 수 있겠지. 또 에두아르트가 노하에 도움이 될 테고. 안 그래? 잘된 일이네.”

샤를로트의 말에 퀸시의 낯이 구겨졌지만, 샤를로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오빠랑 잘 지내더라도 나는 계속 에두아르트에서 지낼 거야. 결혼하고도 친정에서 지내는 사람이 적지 않은 건 알지만, 에두아르트도 이젠 내 집 같거든. 알폰소도 이젠 내 가족이잖아. 어쨌든 결혼했으니까-”

“샤를로트!”

결국 퀸시가 언성을 높였다.

“실망스럽구나.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거냐? 노하로 돌아오라는 건,”

“노하로 돌아오라는 건, 에두아르트를 버리라는 뜻이겠지. 그리고 예전처럼 갈 데 없이 노하에나 발 붙이고 있으라는 거고. 충분히 이해했어.”

“말이 과격하구나. 나는 그렇게 말한 적 없다.”

“하지만 부정할 생각도 없겠지. 그게 네 바람일 테니까. 무슨 말을 할지 다 아는데도, 가족이라고 무시하지 못하고 이런 데 시간을 낭비했네.”

샤를로트가 쓰게 웃었다.

퀸시와 잘 지내고 싶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물론 과거 알폰소를 죽인 것은 퀸시였고, 그 사실에 퀸시를 볼 때마다 증오심이 치밀기도 하지만.

어쨌든 샤를로트는 아주 오랫동안 퀸시에게 의지해 왔으니까.

샤를로트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에는 언제나 퀸시가 함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심코 퀸시의 말을 귀 기울여 버리고 말았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라도 퀸시가 자신을 걱정하지는 않았을까 싶어서.

그의 말마따나 그가 지금 하는 일들이 정말로 샤를로트를 위한 것일지도 모르니까.

‘우스운 가정이지.’

퀸시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샤를로트의 능력뿐이다.

그가 샤를로트에게 보이는 이 집착에 애정은 없다. 차라리 주머니 속 물건을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더 가까울 터.

“퀸시, 나는 더 이상 네가 필요하지 않아. 나는 에두아르트에서 충분히 만족하고 있거든.”

“그건 네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네가 주변을 힘들게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거냐?”

“해. 왜 안 하겠어? 하지만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거든.”

그러니까 악녀라고 불렸겠지.

“날 위한다는 어쭙잖은 말은 집어치우고, 날 노하로 데려가고 싶거든 다음에는 돈이라도 넉넉하게 준비해. 그거라도 있어야 내가 잠깐 얘기라도 들어볼 마음이 들 거 아냐?”

샤를로트가 차게 웃고는, 몸을 돌렸다.

그렇게 퀸시와 이야기를 나누던 방을 빠져나가기 직전.

등 뒤에서 분노를 억누른 듯한 퀸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어, 샤를로트? 그러다 네 남편이 죽을 수도 있을 텐데-”

“상관없어.”

샤를로트가 잠시 멈추어 서고는, 흘기듯 뒤를 보며 미소 지었다.

“알폰소는 죽지 않기로 나와 약속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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