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로트는 퀸시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너무 뻔하지.’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무너뜨리기 쉽다.
다행히 알폰소가 선전하고 있는 와중이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만약 알폰소를 비롯한 에두아르트의 기사들이 단체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면 상당한 비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에두아르트의 기사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더욱 이를 갈고 임하는 것 같았지만.
알폰소가 검술 대회에 나간 이상 그는 외줄타기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발 한 번만 삐끗하면 곧장 추락하게 될 외줄타기.
“퀸시는 당신을 죽이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두고 있을 거예요. 만약 죽일 수 없다면 어떻게든 당신의 명예를 깎으려고 들겠죠.”
“나는 명예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명예가 깎일 만한 일이라면 역시 경기 탈락밖에 없어요.”
알폰소가 제 힘을 쓰지 못하게 해서 패배하게 만들거나, 술수를 써서 실격 처리로 몰고 갈 것이다.
개중에서도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은 역시.
“아마 새롭게 추가된 규정을 이용할 생각이겠죠.”
[사람을 살해한 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이 실격 처리한다.]
다른 이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샤를로트는 규정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그건 퀸시가 일부러 추가한 교묘한 함정이에요. 아마 첫 번째 단체전에서 사람을 많이 심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겠죠.”
퀸시는 알폰소가 실수로라도 사상자를 내길 바랐던 것이다.
에두아르트 공작이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을 살해해서 실격 처리된다면 경기에 나와서 얻었던 좋은 이미지나 명예는 난도질당할 테니까.
그리고 소피아의 사랑도 함께 갈기갈기 찢기겠지.
‘이런 와중에 가브리엘까지 찾아야 한다니.’
혹시라도 알폰소가 신경 쓸까 싶어 내색하지 못했지만, 샤를로트는 상당히 골치가 아픈 상태였다.
퀸시가 무엇을 노리는지 안다고는 하나 대비하기가 쉽진 않았으니까.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가브리엘이고 뭐고 알폰소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일이기에 더더욱 신중해야 했다.
하여 그녀는 밤늦게 침대에서 양 대신 경우의 수를 세어 보다 결국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하녀를 부르는 종을 울리고 말았다.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도록 차라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뜻밖에 그녀의 방 문을 연 것은 알폰소였다.
-지나가던 중에 종소리가 들려서.
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대체 이 늦은 밤에 이 근처를 지나갈 일이 뭐가 있을까 싶었지만, 샤를로트는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자신이 퀸시의 수작에 대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직접 경기에 나설 사람은 알폰소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알폰소와 의논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하여 샤를로트는 알폰소를 앉혀놓고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렇게 현재.
“그럼 내가 죽거나 실격당하지 않도록 주의하기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입니까?”
“요약하자면 그렇게 되겠군요. 퀸시가 노리는 게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정확히 무슨 수를 쓸지가 잘 짐작이 가지 않네요.”
샤를로트의 말에 알폰소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만약 나라면 내게 부상을 입힐 겁니다.”
“부상이요?”
“사람을 죽이지 않고 쓰러뜨릴 때는 굉장히 정교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찌르면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이고, 덜 찌르면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의 목숨을 빼앗지 않고 제압하려면 상대의 움직임을 정확히 제어하면서 무너뜨릴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부상이 있으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마련이고, 당연히 동작도 둔해집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그대로 실수가 나올 겁니다.”
그리고 검을 든 상태에서 나온 실수는 목숨과 직결된다.
알폰소의 말에 샤를로트는 인상을 찌푸렸다.
부상을 입히거나 약을 써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게 만든 뒤 실수를 내게 한다니.
“그것참 퀸시가 좋아할 것 같은 방법이군요…….”
“비꼬는 겁니까?”
“진심이에요. 하지만 덕분에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겠네요.”
괜히 오빠를 잘못 둬서 안 해도 될 고생을 한다며 샤를로트가 투덜거리자, 지켜보던 알폰소가 픽 웃었다.
그러자 샤를로트의 눈매가 뾰족해졌다.
“왜 웃는 거죠? 당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걱정이 안 되나요?”
“아, 당신을 비웃으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당신이 그렇게 우승에 열중하는 것이 흥미로워서.”
“당신과 소피아 전하를 위한 일이니까 당연히 우승을 거둬야죠.”
“물론입니다. 그런데 내가 우승하고 나면 당신이 내 소원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는 겁니까?”
“……아.”
샤를로트가 그제야 깨달은 것 같은 표정을 하자, 알폰소의 입매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녀는 어떻게든 알폰소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그리고 소피아의 사랑을 위해 우승을 해낼 생각만 하고 있었지만.
지켜보는 알폰소의 눈에는 그녀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데에 열중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부인할 말을 찾지 못한 샤를로트가 불퉁한 낯을 했다.
“우승은 아직 멀었는데 벌써 그런 것부터 생각하고 있어요?”
“앞에 보석을 내어 놓고 와서 가져가라고 하면 누가 그걸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겠습니까.”
알폰소는 민망한 기색 하나 없이 태연히 대꾸하며 소파에 몸을 구긴 샤를로트의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숄을 추어올려 주었다.
별것 아닌 행동에도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비단 알폰소의 손이 따뜻하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그는 샤를로트의 매무새를 정돈해 주며 입을 열었다.
“샤를로트, 고백하자면 내겐 죽음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왜요?”
“전장에서는 누구나 죽습니다. 또한 나는 삶에 큰 애착을 가지지 않았고. 지난 10년간, 나는 수도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을 한순간도 내려놓은 적이 없습니다.”
돌아온다 해도 반겨줄 가족 하나 없는 에두아르트 공작저.
이따금 절벽에 설 때면 알폰소는 발을 헛디디는 상상을 했다.
그렇게 끝이 나도 미련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가 여태 살아 있는 것은, 오로지 에두아르트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알폰소에게는 짊어져야 할 것들이 있었으니까.
‘다들 이렇게 살 테지.’
알폰소는 책임감만으로 영위하는 삶을 그다지 불행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저 목숨이 붙어 있으니, 그런 삶도 있겠거니 하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미래에도 그러했으리라.
만약, 샤를로트의 이 표정을 보지 못했더라면.
‘……이런 얼굴이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자신의 불행을 그 무엇보다도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
제 행복 따위를 걸고 내기를 하는 여자.
샤를로트, 그녀는 어느새 알폰소의 손을 잡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을, 혹은 그를 끌어안고 싶다는 표정을 하고서.
처음 이 표정을 보았을 때는 그 두 가지가 함께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는데.
이제는 짐작할 수 있다.
저 표정은 애정과 연민, 동정 따위가 섞인 얼굴이라는 것을.
“알폰소, 그런……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당신은 잘 살 거예요. 죽음 따위는 다 잊어버리고…… 행복하게…….”
내 행복이 당신에게는 무슨 주문이라도 되는 걸까.
알폰소는 제 행복을 대신 예견하는 샤를로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 그녀를 안아 주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먼저 끌어안은 것은 샤를로트 쪽이었으므로 안겼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으리라.
그녀는 알폰소를 목이 졸릴 만큼 끌어안고 웅얼거렸다.
“제발 죽음은 얘기하지 말아요. 그게 의미가 없다는 말도.”
“물론입니다. 그건 과거의 이야기니까.”
한 품에 담쏙 들어오는 여자는 보기보다 훨씬 말라 있었다.
‘예전에도 이랬던가?’
알폰소는 속으로 의아하다 생각하며 샤를로트의 등을 쓸어 주었다.
“당신을 진정시켜 주고 싶어서 한 말이었는데, 어쩐지 역효과가 난 것 같습니다.”
“죽음이 의미가 없다는데 어떻게 진정을 해요?”
“이제 당신이 있으니 옛말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하려 했습니다.”
알폰소는 더 이상 책임감만으로 살지 않았다.
그에게는 욕망이 생겼다.
“샤를로트, 나는 죽지도 지지도 않을 겁니다.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 말에 샤를로트의 팔에 잔뜩 들어갔던 힘이 느리게 풀렸다.
그제야 자신이 줄곧 불안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폰소가 눈치챘다는 것도.
샤를로트는 느리게 눈꺼풀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그래요, 당신은 죽지 않을 거예요.”
내용은 같았으나, 의미가 다른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