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시는 첫 번째 단체전의 승리가 에두아르트에게로 돌아갔다는 것을 듣고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저 예상했다는 듯, 조금 아쉬운 반응을 보였을 뿐.
“이번 일은 그저 에두아르트가 어느 정도인지를 본 것뿐이다. 베르망두아로도 잡을 수 없었던 것은 조금 놀랍군. 하다못해 사상자 한 명쯤은 나올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퀸시는 그걸 노리고 운영진을 매수해 일부러 모호한 대회 규칙을 추가했었다.
[사람을 살해한 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이 실격 처리한다.]
얼핏 보자면 그저 안전 수칙에 불과한 듯하지만, 정말로 참가한 이들의 안전을 신경 썼더라면 ‘사람을 살해한 자’가 아니라 ‘경기 중 선수를 살해한 자’라고 적었어야 했다.
예를 들어 경기 중 누군가 난입해 선수가 내지른 칼에 몸을 내던질 수도 있는 일 아니겠는가.
그런 것도 예외 없이 실격으로 처리한다면 선수로서는 퍽 억울한 일이 될 터.
결국 이것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기 위해 만든 교묘한 빈틈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목숨을 아끼지 않고 목표를 해치운다는 베르망두아를 포섭한 것이었는데, 이런 결과라니.
에두아르트가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으리라 짐작했으니 그리 놀랍진 않지만, 실망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버러지 같은 새끼들. 돈을 그만큼이나 줬는데도 일을 처리하지 못하다니.”
쯧, 혀를 찬 퀸시의 낯에는 곧 죽을 이들에 대한 유감 대신 혐오감만이 짙게 물들어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샤를의 반조차 하는 놈이 없군.”
“아가씨께서 에두아르트에 언질을 주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주었겠지. 샤를은 철두철미한 성격이니까.”
하지만 상대편에 조언자가 있다는 것은 결코 변명거리가 되지 못했다.
상대가 누가 됐든,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길은 존재한다.
그리고 샤를로트는 늘 그런 일들을 성공시키는 사람이었다.
-퀸시, 나는 오빠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노하의 이름을 쓸 수 없었겠지. 늘 감사해.
그녀는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돌을 주워 아무리 깎는다고 한들 보석이 되지는 않으니까.
보석은 돌에 파묻혀 있어도 처음부터 보석인 법이다.
“샤를로트는 상황을 이용하는 데 능하지.”
그건 후천적으로 기를 수 없는 천부적인 재능이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샤를로트가 어릴 적, 그녀의 이복언니 미셸린이 티파티를 열려고 샤를로트가 즐겨 찾는 화원을 빼앗았다.
-이 화원이 티파티를 하기에는 가장 적합해 보이니, 너는 들어가서 인형이나 가지고 놀렴. 그 집 도련님이 오셨는데 근처에 알짱대는 게 보이기라도 하면 뺨을 맞을 줄 알아!
당시 고작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샤를로트가 청소년기에 접어들던 미셸린을 이길 방법은 요원해 보였다.
그래서 샤를로트는 미셸린에게 정면으로 대드는 대신, 당시 미셸린이 만나던 상대를 공략했다. 그 소년이 저택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샤를로트가 다가가 바짓단을 살짝 잡아당기며 물었다.
-저어, 미셸린 언니를 만나고 오시는 거죠?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이십니까, 꼬마 아가씨?
-언니가 요즘 속상해하는 일이 있어서요. 기분을 나아지게 해주고 싶은데, 영식께서는 언니와 자주 만나시니까 방법을 아실까 싶어서…….
-영애께서 속상해하시는 일이 있다고요?
-네에. 언니가 정말 아끼는 호박 목걸이가 있는데, 그걸 잃어버렸대요. 아버지께서 직접 선물해 주신 거라 몇 번 차지도 않고 아껴 두었는데 그걸 누가 훔쳐 갔다고, 엉엉 울고 있더라구요. 저는 언니를 정말 좋아하니까, 뭔가 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미셸린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아 보이는 소년은 샤를로트의 말에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났던지, 자신이 해결해주겠노라며 샤를로트를 위로하고 떠났다.
그다음 방문할 때, 소년의 품속에 호박 목걸이가 숨겨져 있었음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었다.
아마 소년은 자신이 마음에 둔 소녀를 위해 티파티 도중 호박 목걸이를 깜짝 선물해 줄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럴싸하고 달콤한 몇 마디 말을 곁들여서.
단지 소년이 한 가지 간과한 게 있다면, 그날은 꽃이 만개한 봄철이었고 주위에는 꿀을 따러 모인 벌과 나비가 잔뜩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당시 보석을 선물할 때는 향수를 가볍게 한 번 뿌려 향을 입히는 것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꿀을 닮은 호박은 그와 비슷하게 꿀과 꽃가루 향이 나는 향수를 뿌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니 소년이 의기양양하게 호박 목걸이를 꺼내 미셸린의 목에 걸어주었을 때, 또 다른 꽃을 찾고 있던 벌들이 날아든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덕분에 미셸린의 티파티는 보기 좋게 망했고, 얼굴을 쏘인 탓에 부기가 빠질 동안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거기다 이런 망신을 준 소년을 끔찍하게 미워하기까지 했지만, 뭐. 그것까지는 샤를로트의 알 바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샤를로트가 다시 화원에 매인 그네를 타고 놀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녀의 영악함과 비정함은 이미 그때부터 충분히 완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알아본 건 나뿐이지.’
퀸시는 아직도 소란했던 그날의 일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빌어먹을 자식! 죽여버릴 거야! 그런 꼴을 보이다니! 흐어엉!
미셸린이 호박 목걸이를 주었던 소년을 저주하며 저택이 떠나가라 울부짖었던 날.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미셸린은 저택에 있던 노하의 형제들 중 퀸시를 제외하고 가장 기세가 좋은 동기였다. 그녀의 어머니가 도미닉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하여 퀸시는 미셸린에게 입에 쓰레기를 처넣기 전에 닥치라는 말을 하는 대신, 조금이라도 조용한 곳을 찾아 정원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는 화원에서 그네를 타고 있던 소녀와 마주했다.
-안녕, 퀸시 오빠. 오빠도 호박 목걸이 받고 싶어?
어린 소녀, 샤를로트는 천진하게 웃고 있었다.
이복언니의 얼굴과 티파티, 그리고 연애까지도 망가뜨려놓고 말이다.
사실 아이들은 때로 그 어떤 어른보다도 비정하게 굴 줄 안다.
그 때문에 혹자는 성악설을 믿지 않는가.
당시 퀸시는 호박 목걸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것을 알았든, 알지 못했든.
퀸시는 결국 샤를로트를 거두었을 테니까.
무기질적인 퀸시의 시선이 손 안의 검은 주사위 두 개로 향했다.
이것은 샤를로트에게 처음 수를 가르쳐 줄 때 사용했던 것으로, 어느 순간부턴가 퀸시의 손에서 구르게 되었다.
그 닳고 닳은 주사위는 샤를로트를 향한 집요한 아집의 형상이라고 해도 좋을 터.
잠시 침묵한 퀸시가 주사위를 내려놓자, 드제가 물었다.
“주인님, 그러면 다음 단체전에 참가하는 이들 역시 포섭할까요?”
“단체전은 더 건드리지 마라. 베르망두아 선에서 정리되지 않는다면 더 건드리기 힘들 거다.”
경기장에서 붙잡힌 베르망두아 일당은 총 열둘이었다.
그 모두가 이름을 날린 실력자였고.
그런데 단 둘이서 그 전부를 죽이지 않고 해치웠다면, 다른 이들을 써 봐야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에두아르트가 경기장에 오를 때마다 사람이 우글우글 나온다면 필히 의심을 살 테고.
“아무래도 개인전에서 기회를 엿봐야겠군.”
“하지만 주인님, 에두아르트 공작은 상당한 실력자입니다. 그에 맞설 만한 이를 포섭할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왜 하필 퀸시가 단체전을 노렸겠는가.
제아무리 대단한 실력자라고 해도 쪽수 앞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게다가 장소가 황궁 사냥터, 즉 숲이니 직관하는 이도 없어 영상구를 조작하기도 좋다.
하지만 개인전은 사정이 달랐다.
개인전은 황궁의 원형 경기장에서, 모두가 보는 아래 경기가 진행되니까.
그 어떤 조작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오로지 실력만이 승부를 가를 뿐.
하지만 퀸시라고 해서 그 간단한 이치를 모를 리는 없다.
“굳이 실력자를 구할 필요는 없다. 내가 노리는 건 우승이 아니니까.”
그저, 발목을 붙들어 주기만 하면 될 뿐.
그렇게 말하는 퀸시의 녹색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이제 개인전만 남았다는 거죠?”
“단체전이 너무 싱겁게 끝났습니다. 그 뒤로 몇 번은 더 노려올 줄 알았는데.”
그 뒤로 에두아르트 팀은 연승을 거두어, 3번의 경기 만에 개인전 진출이 확정되었다.
알폰소의 대답에 샤를로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체전에서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고 판단해서일 거예요.”
“하지만 개인전에 들어가면 더 손을 쓰기 힘들 텐데?”
“아마 노리는 게 있겠죠.”
그리고, 샤를로트 또한 노리는 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