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온 용병단은 말하자면 대놓고 버리는 패였다.
거기에 발목이 잡히면 좋고, 아니면 마는.
그러니 두 번째부터가 진짜라는 뜻이다.
물론 샤를로트는 이 역시 염두에 두고 있었다.
-첫 번째를 따돌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두 번째부터가 문제인데. 우선은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든, 둘로 갈라지는 게 좋겠어요.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 겁니까?
-당연하죠. 알폰소를 죽이려 할 텐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하려면 갈라지는 게 좋잖아요.
-하지만 갈라져 봐야 각하의 머리 색을 보고 다들 알아보지 않을까요?
-그건 투구를 쓰면 되죠.
알폰소를 비롯한 네 명의 기사들은 모두 투구를 쓰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멀리서 뒤쫓으며 알아채기는 어려울 터.
표적을 분산하여 되도록 위험을 줄인다는 계획이었다.
얼핏 보기엔 참 좋은 작전이었다.
단 한 가지.
-이 계획에는…… 단점이 하나 있어요.
-뭡니까?
-아무래도 사람을 둘로 나누다 보니까, 전력에서 밀린다는 점?
만약 조금 전 크라온 용병대처럼 4명이 모두 쫓아오는 일이 생긴다면 두 명씩 찢어진 에두아르트 팀은 상대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물론 샤를로트는 그에 대한 조언도 해 두었다.
‘그런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이제 관중석에서 지켜보는 샤를로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부디 풍운의 바람이 에두아르트 쪽으로 불어오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 * *
“아르노 경, 거점이 통 보이질 않습니다.”
쟝-자크의 말에, 아르노가 고삐를 당겨 말을 세웠다.
그는 영 마뜩잖다는 듯 입술을 있는 대로 구기고 있었다.
“거점은 무슨, 빌어먹을 함정들만 죽어라고 나왔지. 이쯤 뒤져 보았으면 나올 때도 됐는데?”
“방향이 잘못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우리가 너무 남향으로 내려왔는지도 모르겠는데…….”
아르노가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그림자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이 숲 곳곳에는 경기자들의 긴장감을 더해줄 만한 함정이 여럿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르노와 쟝-자크 역시 그런 함정을 여럿 밟았다.
구덩이에 빠질 뻔하거나, 뭘 잘못 건드렸는지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등.
덕분에 딱히 싸운 것도 아닌데 아르노와 쟝-자크는 퍽 지친 상태였다.
“빌어먹을 함정…… 빌어먹을 함정……. 사냥터에 와서 내가 왜 사냥감이 되어야 하느냔 말이지…….”
“함정 놀이는 이제 집어치우고, 차라리 적을 만나고 싶습니다.”
아르노가 이를 으득으득 갈기 시작하자, 쟝-자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샤를로트가 당부한 말들을 떠올려 보는 중이었다.
-경기장에 있는 함정을 이용할 수도 있겠죠.
-우리가 말입니까?
-무슨 소리예요? 당연히 퀸시죠.
에두아르트의 기사들이 함정에 빠져서 크게 다치거나 죽어주기라도 한다면 그게 퀸시에게는 가장 좋은 일일 거라고, 샤를로트는 말했다.
-그러니까 만약 수상할 정도로 함정에 많이 걸린다 싶으면, 주변을 좀 살펴봐요. 어차피 경기장 안에서 일어나는 일일 테니까.
어차피 경기장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결국 그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든 이 숲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이 안에서 해결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함정을 조작하더라도 어디 먼 곳이 아니라 근처에서 하고 있을 테고.
하지만그 덜미를 어떻게 잡지?
쟝-자크가 고민에 잠겼을 즈음, 아르노가 옆에서 투덜거렸다.
“에이씨, 이게 사냥감의 기분인가? 이럴 거면 그냥 사냥을 하고 말지. 여기 사냥감도 많은 모양인데.”
“……아르노 경, 사냥감이 많다고요? 어떻게 압니까?”
“엉? 척 보면 알지. 저쪽에 기척 있는 거 못 느꼈냐? 저쪽에도.”
쉴 새 없이 말을 달리는 도중이라면 몰라도, 가만히 서 있는 상태라면 아르노는 조금 놀라울 정도로 기감이 좋았다.
동물적인 감이라고 해야 할까.
단지 조금 눈치가 없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는데, 다행히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쟝-자크가 그를 보완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아르노 경! 느껴지는 기척 하나만 쏴 보세요!”
“뭐? 너도 사냥이 하고 싶냐?”
아르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면서도 쟝-자크의 말대로 활시위를 당겼다.
푹!
“으악!”
그리고, 화살이 날아가자마자 비명 소리와 함께 나무에서 누군가가 쿵, 하고 떨어졌다.
노란색 옷을 입은 툴루즈 가문의 선수였다.
“이, 이런. 비겁하게 화살을 쏘다니! 그러고도 당신이 기사인가!”
“아니, 야, 쟝. 쟤 뭐라는 거냐?”
“몰래 숨어 있던 게 부끄러운가 봅니다. 그리고 쟝-자크입니다.”
“쟝이든 쟝-자크든 나발이든!”
스릉, 아르노가 칼을 빼 들었다.
곱슬머리 기사의 눈동자가 기괴할 정도로 형형하게 빛을 냈다.
드디어 재밌는 건수를 물어 신이 나 죽겠다는 표정.
“저 새끼들부터 족치고 생각한다!”
아르노가 툴루즈 가문의 선수에게로 달려들자, 화살을 맞은 선수 옆으로 다른 선수들이 나타나 동료를 챙겼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저들의 비열한 수에 당해 주면 안 됩니다!”
“야, 함정 쓴 건 너희들 아니냐? 누가 들으면 내가 쓴 줄 알겠다!”
“저런 무도하고 파렴치한 인간 같으니! 기사로서의 예의라고는 조금도 없군요!”
“정곡 찔리니까 할 말 없어서 예의 찾는 거 봐라. 내가 예의가 없는 게 아니라 너희가 양심이 없는 거지, 인마!”
“아르노 경은 예의가 없는 게 맞긴 합니다.”
쟝-자크가 조용히 중얼거렸지만, 아르노의 귀에 들릴 리는 없었다.
나타난 툴루즈 가문의 선수는 둘이었다.
개중 조금 더 화가 난 듯 보이는 한 명이 아르노에게로 말을 타고 달려들었다.
“예의가 뭔지 내가 직접 알려주겠다!”
툴루즈 가문은 대대로 뛰어난 기사를 배출해 온 명문 기사 가문.
그리고 지금 아르노에게 달려든 기사는 개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로, 툴루즈 가문 내에서도 어지간하면 지지 않을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자신이 제대로 기사 작위를 받게 되면 현존하는 그 어떤 기사보다 뛰어난 기사가 되리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아르노 조엘, 겉멋만 들어서 입을 놀리기는!’
그런 그가 가장 혐오하는 부류가 바로 아르노였다.
기사가 되었으면 당연히 몸가짐과 예의를 따져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저런 방종하기 그지없는 태도라니!
분명 실력도 그리 대단하지 않을 것이다.
저렇게 눈에 광기 따위를 품고 있는 놈 따위.
‘……광기?’
그의 머릿속에 뭔가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쳐갔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 직후, 말을 타고 돌진한 아르노가 그대로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툴루즈 가문의 자랑스러운 일원.
눈에 빤히 보이는 이 정도 검은…….
깡!
‘어?’
이건…….
검끼리 부딪쳐서 날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이건 쇠가 쇠를 강타하며 난 소리였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검집으로 투구를 후려칠 때 나는 소리.
‘검을 휘두르고, 그걸 막으려는 사이에 검집으로 내 머리를 후려쳤다고?’
그 짧은 순간에, 아니, 달리는 말 위에서 그런 기술이 가능하다고?
사실여부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그의 몸은 이미 머리를 얻어맞은 여파로 균형을 잃고 쓰러지고 있었다.
나름대로 에이스였던 이가 검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쓰러지자, 다른 툴루즈 가문의 선수가 발악하듯 악을 썼다.
“이, 이런 젠장! 검집으로 후려치다니! 양심이라는 게 있는 거요!”
“그러게 누가 얻어맞으랬나. 너도 이리 와, 좀 맞자!”
“이익!”
이대로는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툴루즈 가문의 선수가 황급히 말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조금 전 머리를 얻어맞은 선수가 단 한 번의 타격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니, 그보다 실력이 없는 자신은 더 큰 부상을 입을 게 뻔한 까닭이었다.
어찌 보자면 좋은 판단이었다. 얻어맞고 힘으로 이길 수가 없으면 더 센 놈한테 가서 이르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하지만 이 경기장 안에서 가 봐야 어딜 가겠는가?
“소가주님! 에두아르트 놈들이 옵니다! 다른 이들은 전부 당했습니다!”
“뭐라고? 함정은 어떻게 되고!”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간파당했습니다! 서둘러 그놈들을-”
대장에게로 달려간 툴루즈 가문의 선수가 상황을 설명하려는 찰나.
숲 너머에서 두 마리의 말이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오, 거점이 여기 있었네.”
“어쩐지 안 보인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