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로트가 앉아 있는 곳은 고위 인사들 몇몇을 위해 특별 제작된 박스석으로, 관중석 위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물론 샤를로트라면 집 안에서 송출되는 영상을 받아보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그녀는 굳이 이곳까지 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곧장 움직이기 좋으니까.’
집에서 편히 누워서 영상이나 감상하고 있을 만큼 이번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괜찮겠죠? 에두아르트가 이길 수 있겠지?”
소피아가 계속 불안에 떨고 있었던 탓이 컸다.
알폰소나 다른 기사들의 실력을 잘 모르는 소피아는 오늘 경기에 대해서도 불안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불안하세요, 전하? 알폰소가 있으니까 잘할 거예요.”
“물론 알폰소 오빠는 대단한 사람이긴 하지만, 같이 들어간 팀들이 전부 심상치 않아서 그래요. 내가 좀 알아봤는데, 전부 한가락 하는 사람들만 있더라고요.”
“그래요? 어떤데요?”
샤를로트가 다른 팀들에 흥미를 보이자, 소피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품에서 종이를 세 장 꺼냈다.
각각 에두아르트 팀과 함께 경기를 치르게 된 팀들의 정보가 담긴 종이였다.
“이걸 언제 구하셨어요? 대진표는 오늘 나왔을 텐데.”
“나는 황녀잖아요. 마음만 먹으면 제국 안에서는 못 할 게 없죠.”
아무리 황녀라고 해도 체면 때문에 대회 운영진을 매수하지는 못했을 테니, 아무래도 소피아는 대회에 참가한 모든 팀들의 정보를 긁어모은 모양이었다.
그중에서 이 세 장을 추려 가져왔을 테고.
‘흐음, 어디 볼까.’
샤를로트가 첫 번째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때마침 관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시기 좋게 영상구에 참가한 팀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와아아!”
“크라온 용병단이다!”
“제국에서 활동하는 용병단 중 두 번째로 잘나가는 용병단이라면서?”
“개중에서도 가장 실력이 좋은 인물들만 뽑아서 팀을 꾸렸다던데!”
아닌 게 아니라, 샤를로트가 집어든 종이에도 상당한 실력자들이라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특히 유명한 업적은 남부에서 출몰하여 피해를 입히던 불도마뱀을 잡은 것이다. 당시 어떤 실력자들도 상대하지 못했던 것을 잡아 명성을 떨쳤다고 했다.
이만하면 대회에서 주목받을 만한 명성임이 틀림없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경기는 참가한 팀들이 모두 쟁쟁했다.
“저기는 툴루즈 가문이잖아? 한동안 은둔해 왔다고 들었는데, 검술 대회에 참가하다니!”
“툴루즈 가문이라면 대대로 대단한 기사를 배출한 가문 아닌가! 다들 실력이 보통이 아니겠구먼!”
“저길 봐! 유랑검사 집단 베르망두아의 표식이다!”
“작년에 결승까지 올라갔던 검사가 있는 팀이잖아! 난 저기에 걸겠소!”
모름지기 대회가 열리면 난전판도 함께 열리기 마련.
사람들은 저마다 승패를 예측하며 돈을 걸기 시작했다.
개중 가장 돈이 적게 걸린 것은 단연 에두아르트 팀.
“에두아르트는, 글쎄. 분명 고위 귀족이긴 하지만 실전을 뛰어 온 이들한테 비할 수는 없지 않겠어?”
“공작이 전쟁 영웅이라지만 검술 대회는 또 다르니까.”
“팀원 중에 특별히 이름 난 기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귀족 검사들은 대부분 신분만 믿고 젠체하기 마련이지. 쯧!”
들려오는 소리 중 에두아르트가 정말 실력이 있을 거라고 믿는 이들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어중이떠중이 팀과 붙었더라면 모를까 이번에는 상대가 전부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막강했던 것이다.
덕분에 에두아르트에 돈을 거는 사람은 없고, 소피아의 불안만 끝을 모르고 치솟는 중이었다.
“지면 안 되는데……. 대진운이 너무 나빠요.”
“뭐, 이 정도는 예상한 범주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전하.”
샤를로트가 종이를 돌려주며 소피아를 진정시켰다.
때마침 영상구에는 에두아르트 팀이 잡히고 있었다.
그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10년이나 전장에 있었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의미가 아니니까요.”
* * *
“이야, 각하. 다들 기세가 좋네요.”
“긴장을 풀지 마라, 아르노. 샤를로트가 말한 걸 잊지는 않았겠지.”
“물론 잊지 않았습니다. 그걸 어떻게 잊습니까?”
대회 오기 직전까지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데!
건들거리던 아르노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제 슬슬 장난기를 거둘 때가 왔기 때문이었다.
에두아르트의 기사들 모두 같은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퀸시가 상대 팀들을 매수해 뒀을 거예요. 운이 좋으면 하나, 나쁘면 세 팀 모두. 하지만 아무래도 보는 눈이 있으니 전부 끌어들인 걸 노골적으로 드러낼 순 없겠죠.
팀마다 각각 다른 역할을 배정해 두었을 거라고, 샤를로트는 말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체스인 셈이다.
그들은 퀸시가 만들어 놓은 판 안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느냐.
“다들 작전은 전부 숙지했겠지?”
“물론입니다, 각하!”
기사들이 대답하기가 무섭게 경기 시작을 알리는 나팔이 크게 울렸다.
뿌우우!
“경기 시작이다!”
그와 동시에 각 선수들이 모여 있던 장소에서 일사불란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숲에 숨겨져 있는 거점을 찾아야 하니 지체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단 한 팀만이 다르게 행동했다.
“저놈은 내가 잡는다!”
“칼을 뽑아라!”
붉은 옷의 크라온 용병단.
그들은 다른 이들처럼 거점을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파란 옷을 입고 있는 에두아르트 팀에게로 곧장 말을 몰아 돌격했다.
바로 샤를로트가 예상한 대로.
-뭘 하든 바람잡이는 필요한 법이죠. 경기가 시작하면 한 팀이 달려들 가능성이 높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뭘 어떻게 해요? 당연히 따돌려야죠. 거기서 계속 싸우고 있으면 언제 경기해요?
그리고 따돌리는 방법은 샤를로트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되었다.
이곳에 있는 기사들은 모두 전장에서 그 방법을 수도 없이 연습한 사람들이었으므로.
“말을 몰아라! 빠져나간다!”
“예, 각하!”
알폰소를 선두로 에두아르트의 기사들이 말을 몰기 시작했다.
“얘들아, 서둘러 쫓아라! 저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
“물론입니다, 단장님!”
그 뒤로 크라온 용병단이 빠르게 말을 몰아 추격을 시작한 순간이었다.
“어, 어어?”
파란 옷을 입은 네 명의 기사들이 숲 안쪽으로 달려 나가나 싶더니, 개중 하나가 돌연 몸을 틀어 그들에게로 화살을 쏜 것이다.
워낙 빠르게 추격하는 중인 데다 숲 안쪽은 지형지물이 많아 부딪힐 것도 많았다. 그러니 감히 뒤를 돌아 화살을 쏜다는 미친 짓을 시도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특이하게도 검이 아니라 활에 두각을 드러내 기사가 된, 루드빅 바텔레미가 아니라면.
“단장님! 저, 저놈들 활을 쏩니다!”
“그리 위협적이지도 않잖으냐! 속도를 늦추지 마라!”
물론 루드빅이라고 해서 말을 몰면서 화살을 쏘는 기행을 계속 벌일 수는 없었다.
날아온 화살은 딱 한 대였다.
그러나 그 한 대만으로도 뒤쫓던 크라온 용병단을 엉거주춤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 순간.
“지금이다, 아르노!”
“갑니다!”
선두로 달리던 알폰소가 좌측으로 궤도를 바꾸고, 루드빅이 그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루드빅의 뒤에서 달리던 아르노가 궤도를 우측으로 급격하게 꺾어 달려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말을 달리는 와중에 속도를 줄이지 않고 거의 직각에 가깝게 궤도를 바꾸는 것은 아르노가 자랑하는 기마술 중 하나였다. 전장에서 가장 격하게 날뛰다 보니 추격당할 일도 많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것이었다.
아르노가 먼저 뚫어놓은 길을 쟝-자크가 뒤따르자, 에두아르트 팀은 순식간에 둘로 나뉘어 숲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오직 그들만을 보고 직진하던 크라온 용병단을 그대로 남겨두고 말이다.
“저, 저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속도를 줄여라! 이, 이러다간 부딪힌다!”
상황을 파악한 이들이 뒤늦게 말고삐를 잡아당겨 보았지만, 전력으로 달리던 말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설 수는 없는 법.
게다가 하필 바로 앞에 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던 까닭에, 동선이 꼬인 말들이 투레질 소리를 내며 넘어지거나, 등에 타 있던 기수를 날려 버렸다.
“으아악!”
“이, 이런 젠장! 이러면 돈을 받을 수가 없단 말이다! 이딴 대회 따위는 아무래도 좋으니 한탕 거하게 잡고 뜨려고 했건만!”
“조용히 하십쇼, 단장! 그러다 들키겠습니다!”
“빌어먹을!!!”
크라온 용병단의 분노 어린 외침이 숲을 울렸다.
그리고, 관중석에 비치된 영상구 역시도.
지켜보던 샤를로트가 남몰래 조용히 미소 지었다.
‘첫 번째 패는 이만하면 끝났군.’
이제 두 번째 패가 나올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