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86화 (89/122)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목소리에선 일말의 동정심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게 퀸시 노하라는 인간이었으니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군. 샤를로트는 나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걸 놓쳐?”

해마다 검술 대회에서는 적지 않은 수의 사람이 죽어나간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창칼을 들고 싸우다 보면 사고가 일어나기 마련인 것이다.

실력 차가 너무 커서, 혹은 실력이 너무 비슷해서.

양쪽 모두 사활을 걸고 싸우다 보면 정말로 죽어나가는 이가 빈번하게 나온다.

그러니 만일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특히 그게 퀸시 노하라면 더더욱.

“아가씨께서 주인님의 아량을 믿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내 아량을 믿을 거라면 더욱 출전을 말렸어야 한다.”

퀸시의 아량을 믿었다가는 사지 온전할 시체가 사지 없는 시체가 될 뿐이니까.

그러니 이건 두 가지 경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알폰소가 샤를로트의 만류를 무시하고 출전했을 경우.

“또 다른 하나는…… 샤를이 제 남편의 목숨을 걸어서까지 얻고자 하는 게 있을 경우가 되겠군. 내가 보기엔 이쪽이 신빙성이 있다.”

에두아르트가 아무리 검술 대회에 출전해서 얻는 이득이 있다고 한들, 목을 내놓을 만큼 대단한 것은 없을 테니까.

퀸시는 샤를로트의 생각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대회 우승자가 황제에게 빌 수 있는 소원을 이용하려는 거겠지.”

“그럼 아가씨께서 뭘 얻고자 하시기에…….”

“그거야 모를 일이지. 하지만 그다지 중요하진 않다.”

샤를로트가 무슨 속셈을 품고 있든, 중요한 건 알폰소 리누스 에두아르트가 검술 대회라는 잘 만들어진 도마 위로 올라왔다는 사실이다.

“그렇잖아도 슬슬 손을 쓸 생각이었는데, 먼저 이렇게 나와주니 고마울 따름이지. 검술 대회 운영에 누가 참여하는지 알아 봐라.”

“알겠습니다. 한데, 그러면 노하에서도 참가 팀을 꾸립니까?”

“굳이 노하의 인력을 차출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참가한 이들을 포섭하는 게 빠를 테니.”

드제는 어렵지 않게 퀸시가 노리는 바를 이해했다.

그는 검술 대회 운영자와 참가자들을 매수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림을 짜려는 계획인 것이다.

그렇게 뒤에서만 손을 써야 혹여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혐의를 벗어나기가 쉬울 테니까.

퀸시가 턱을 괸 채 시니컬하게 손끝으로 정육면체 주사위를 굴리며 중얼거렸다.

“샤를로트가 어떻게 나올지 참 기대가 되는군.”

부디 날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 * *

“퀸시가 내놓을 방법은 뻔해요. 사람을 매수하는 거죠.”

샤를로트의 말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의 눈동자가 모두 그녀에게 향했다.

알폰소가 으레 가신들과 회의할 때 쓰는 에두아르트의 회의실.

평소에는 알폰소가 상석에 앉아 있곤 했지만, 오늘만큼은 샤를로트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부쩍 다가온 검술 대회 작전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하여 자리에 참석한 이들은 모두 다섯이었다.

알폰소를 비롯하여 검술 대회에 팀으로 참전하는 나머지 세 기사와, 회의 내용을 기록하려고 앉아 있는 세르주.

개중 쟝-자크가 손을 들었다.

“사람을 매수한다면, 대회 운영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죠. 하지만 그들만 매수하진 않을 거예요. 아마 참가자들을 포섭하기도 하겠죠. 에두아르트를 방해하기 위해서.”

그러자 루드빅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마님, 그게 방해하려고 한다고 마음대로 되는 일입니까? 대개는 실력으로 판가름이 나지 않습니까.”

“개인전이야 그렇죠.”

개인전은 원형 경기장 안에 선 두 선수의 실력으로 결과가 정해지니 조작할 여지가 별로 없다.

퀸시가 아무리 돈을 써 봐야 대진표를 조금 더 불리하게 짜는 것이 전부다.

그마저도 알폰소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테고.

“조금 치졸하게 나가자면 심판이 최대한 우리에게 불리하게 구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을 텐데…….”

“감히 에두아르트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하는 놈이 있을까요?”

“있으면 그놈 코뼈를 뭉개버려야지. 내가 봤는데, 구멍만 있으면 어떻게든 잘 살더라.”

“귀도 하나만 있어도 될 것 같습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기사들의 말에 샤를로트가 픽 웃었다.

“명성이 없는 기사라면 모르겠지만 감히 에두아르트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할 심판은 없겠죠.”

요약하자면 개인전으로 넘어가서는 퀸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고.

“그러니까 퀸시는 단체전을 노릴 거예요.”

“단체전이라면,”

“본격적으로 검술 대회를 시작하기 전, 참가자들을 솎아내는 경기죠.”

이 경기에서 살아남은 이들만이 64강으로 올라가, 개인전을 치를 자격을 얻는다.

단체전은 적게는 세 번에서 많게는 다섯 번까지 치른다.

최소 세 번의 우승을 거둔 팀만이 올라갈 자격을 얻는다.

“단체전은 워낙 참가하는 인원이 많기도 하고, 여러 경기가 동시에 열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이목이 덜 쏠리죠. 그러니 만약 일을 친다면 이때가 가장 적절하기도 해요.”

무엇보다 단체전을 치르는 장소가 이목을 가리기에 더없이 좋았다.

바로 황궁의 사냥터, 즉 숲에서 경기가 치러지니까.

“다들 알겠지만, 단체전은 기본적으로 네 팀이 한 번에 사냥터로 들어가서 경기를 치르고, 오직 한 팀만이 승리할 수 있어요. 종목이 무엇인지는 경기 직전에 각 팀에게만 전달되고요.”

“저 질문이 있습니다, 마님.”

“뭐죠, 아르노 경?”

“경기 직전에 종목을 알려준다면 저희가 지금 이렇게 모여서 의논해도 의미가 없는 것 아닙니까?”

아르노의 말에 샤를로트가 눈썹을 슬쩍 들어올렸다.

“괜찮은 지적이었어요. 그럼 아르노 경은 이 방을 나가서 아무것도 듣지 마시고, 당일에 경기장에서 마음을 다잡길 바라죠.”

“죄송합니다, 마님. 듣겠습니다.”

아르노의 항의를 가볍게 일축한 샤를로트가 설명을 이어갔다.

“아르노 경의 훌륭하기 그지없는 지적대로, 내가 지금 알려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어요.”

샤를로트가 경기 종목을 아는 것도 아니고 경기장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도 모르니 이들에게 말해줄 정보는 한정적이다.

“하지만 퀸시가 애용하는 수법들을 알려줄 테니, 미리 듣고 대비하도록 해요.”

아예 다치지 않기는 힘들어도, 두 번 다칠 거 한 번으로 줄여줄 수는 있을 테니.

그 말을 시작으로 샤를로트의 속성 강의가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검술 대회가 열리는 날이 다가왔다.

* * *

둥둥둥!

경기가 곧 시작됨을 알리는 북소리가 대기실을 요란하게 울렸다.

저마다 준비하고 있던 에두아르트의 기사들이 몸을 일으켰다.

“곧 시작하나 봅니다, 각하.”

“목소리가 긴장한 것 같은데, 루드빅?”

“그러는 아르노 경이야말로 손이 상당히 굳으신 것 같습니다.”

쟝-자크의 지적에 아르노가 괜히 손을 한 번 쥐었다 펴 보며 대꾸했다.

“손이 굳은 게 아니라,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기에 그러는 거다.”

들입다 싸우는 건 되고, 죽이는 건 안 된다니 이게 무슨 불합리적인 일이냐며 아르노가 투덜거렸다.

그의 말마따나, 에두아르트의 기사들은 경기장에 도착해서야 경기 규칙을 받아볼 수 있었다.

모든 경기에 적용되는 규칙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사람을 살해한 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이 실격 처리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없었던 규칙이 갑자기 추가됐다는 게 좀 찜찜하긴 합니다.”

“찜찜할 게 뭐 있어? 여태 없었던 게 이상한 거지.”

루드빅이 가볍게 몸을 풀며 다가왔다.

“좋게 생각해. 즐기고 가자고. 다치지 말고.”

“물론입니다.”

“각하, 가시죠!”

아르노의 말에 알폰소가 대답 대신 투구를 집어 쓰고 밖으로 나갔다.

둥둥둥!

경기를 시작하는 북소리가 울리고, 경기를 촬영하는 영상구들이 사방에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검술 대회의 시작이었다.

* * *

[-하여, 이번 경기는 거점 쟁탈전입니다! 경기가 종료된 순간, 두 개의 거점에 모두 깃발을 꽂은 팀이 우승합니다!]

[만약 어느 팀도 두 개의 거점에 모두 깃발을 꽂지 못했다면 그대로 경기는 무승부! 선수들은 다음 경기를 노리게 됩니다!]

영상구에서 진행자의 경쾌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샤를로트는 시선을 영상구에 고정한 채,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이제 시작이군.”

어떤 수를 준비했는지 보자고, 퀸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