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샤를로트는 삶에 대한 욕망이 그리 크지 않은 사람이었다.
달리 강렬히 소망한 것도 없었고, 삶에 집착하는 법도 없었다.
그러니 남편을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두 번씩이나 희생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벌이는 게 아니겠는가.
‘알폰소를 위해 죽을 수 있다면 기쁘다고 생각했지.’
샤를로트의 기억 속 알폰소는 언제나 그녀를 싫어하는 모습뿐이었으니까.
그라면 샤를로트가 죽는 것을 더 기꺼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아 와 다시 만난 알폰소는 샤를로트에게 끊임없이 다가왔다.
그녀가 정해 놓은 선을 넘어서, 이전보다도 더 가까이.
사랑하는 이에게 받는 친애를 거절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알폰소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샤를로트는 제 안에서 커져가는 삶에 대한 욕망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알폰소와 함께하는 삶’에 대한 욕망이었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이 계약 결혼이 끝나고도 계속 그를 보고 싶어.’
예전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지금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닌가.
알폰소가 먼저 원한다고 말하기까지 했으니 더더욱.
하지만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그러한 미래를 허락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은 샤를로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그토록 대답하기를 주저한 것이다.
알폰소의 소원이 무엇이 되었든, 샤를로트는 그에게 흔들릴 것을 직감했으므로.
“다 됐습니다. 당분간은 조심하십시오.”
알폰소가 치료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기묘하리만치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는 샤를로트를 마주했다.
“왜 그렇게 보는 겁니까?”
“……하나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생겨서요.”
“뭡니까?”
“키스해봐도 되나요?”
그 말에 알폰소가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아니, 단숨에 붉어졌다.
주홍빛 석양이 짙게 깔린 와중이었지만, 그의 얼굴이 붉은 게 노을 때문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무슨 생각인 겁니까. 확인해 볼 게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정말이에요. 확인일 뿐이니까. 해봐도 되나요?”
“당신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알폰소의 미간에 서린 주름이 조금 더 깊어지나 싶더니, 치료를 위해 샤를로트의 손을 잡고 있던 알폰소의 손이 그녀의 팔을 붙들어 가볍게 당겼다.
단숨에 좁혀지는 거리, 그리고 비스듬히 맞닿는 입술.
그 어떤 대답보다도 확실한 수락이었다.
* * *
알폰소는 본디 조급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앞에 있는 것은 늘 그를 그답지 않게 만드는 여자였고.
한번 시작된 입맞춤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입술을 맞대는 수준에서 시작하였으나, 모든 키스가 그러하듯 금세 불이 붙은 것이다.
밭은 숨을 견디지 못한 샤를로트가 알폰소의 가슴을 살짝 밀면 그대로 물러났다가, 달뜬 숨이 잦아들 즈음이면 젖은 입술이 다시금 맞붙었다.
집요하고도 긴 행위.
통제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면, 이번에는 통제할 수 없는 행위를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알폰소가 늘 눌러 온 욕망에 샤를로트가 불씨를 던졌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입맞춤의 간극에서 알폰소, 하고 밭게 부르는 샤를로트의 음성이 입술 새로 뭉그러졌다.
평소라면 자신을 부르는 그녀의 음성을 퍽 달가워했을 그였으나 지금만큼은 이름을 듣기보다는 그의 품에서 허덕이는 샤를로트를 어르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샤를로트가 그를 제외한 다른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도록.
‘소유욕이라는 게 이런 건가.’
가능하다면 영원히 그녀를 품에 가두고 싶었다.
다른 생각 따윈 지워버리고, 그녀의 동정과 사랑, 관심 모두 제게 귀속되도록.
이토록 저열한 욕망이라면 처음부터 갖지 말았어야 할 텐데, 그는 이미 일선을 넘어 버렸다.
욕망에서도, 행위에서도.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희열과 폭력적인 충동이 동시에 뇌리를 진탕 냈다.
언제부터 제 인내심이 이토록 얇았던가.
마침내 길게 맞물려 있었던 입술이 떨어졌다.
“샤를로트.”
신음하듯 속삭인다. 젖은 입술을 도로 제 것으로 가볍게 누른다.
그것은 열락에 휩쓸린 인간이라기보다는, 마지막 일선에 매달린 비굴한 인간의 낯짝이었다.
그래. 일선.
빌어먹을 일선.
길었던 키스가 끝나자마자 알폰소의 뇌리를 채웠던 충동은 설탕 녹듯 사라져 버렸다.
한 발짝 늦게 고개를 드는 이성이 인내를 도로 굳게 걸어 채웠다.
‘샤를로트가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별 뜻 없는 입맞춤을 한다고 샤를로트가 자신을 사랑할 일 따윈 없다.
그런데 소유욕이라니.
대체 자신은 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건가.
불현듯 드는 생각에 소스라쳐, 알폰소는 조금 전의 행위가 자신과는 무관하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물리고는 물었다.
“이, 이제 확인은 다 됐습니까?”
“……했어.”
샤를로트가 멍하니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러나 소리가 너무 작아, 알폰소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예? 방금 뭐라고-”
“다 망했다고요! 당신 키스 처음이에요?”
“예? 처음입니다.”
다른 때였더라면 무슨 질문이냐며 미간을 찌푸렸을 알폰소지만, 샤를로트의 기세에 놀라 그는 그만 재깍 대답을 내어놓고 말았다.
문제는 그런다고 해서 샤를로트의 기세가 줄어들진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새빨개진 얼굴로 씩씩대며 소리쳤다.
“거짓말 말아요! 누가 키, 키스를 그렇게 오래-”
“당신은 경험이 있는 겁니까?”
“알 게 뭐예요!”
“나는 처음이었으니까, 궁금해서 물어본 겁니다. 다른 사람은 짧게 합니까?”
물론 샤를로트도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자존심은 결코 스스로가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키스를 왜 이렇게 잘하는 거야?’
알폰소가 결코 처음이 아닌 것 같았으니까!
‘이럴 계획이 아니었는데……!’
샤를로트가 알폰소에게 키스를 제안한 것은 정말 말 그대로 확인을 위해서였다.
만약 알폰소를 원하는 마음이 커지는 게 두려워서 그의 요청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거라면 그냥 미리 확인해보면 되지 않을까? 하고.
‘키스를 하고도 내 마음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면 요청을 수락해도 되겠지.’
그런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샤를로트는 그와 입을 맞춘 순간 제 생각이 얼마나 알량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고 말았다.
소원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 욕망은 일선을 넘은 순간 돌이킬 수 없게 되고 마는, 화마 같은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문제는 그걸 키스하는 순간 깨달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선을 넘은 바로 그 순간에.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하여 그 뒤는 눈덩이가 산비탈을 구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샤를로트는 조금 전의 입맞춤으로 열락이라는 글자가 무엇인지 몸소 느끼고 말았으니까.
‘더는 안 돼.’
정말 위험해질 것이다.
샤를로트는 조금 안쓰러울 정도로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고 했다.
만약 알폰소가 그녀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샤를로트, 혹시 길게 하는 게 싫었습니까?”
“그,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내가 싫은 겁니까?”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냥,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아서 그래요.”
나는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도, 쉽게 휘둘리는 사람도 아닌데.
당신을 보고 있으면 통제할 수 없는 마음에 자꾸만 무너져서.
그래서 당신을 보고 있는 게 괴로워서…….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을 대할 때면 늘 나를 잃는 것 같다고.”
“…….”
샤를로트는 대답 대신 눈을 질끈 감았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나오는 일종의 습관이었다.
눈꺼풀 너머에 스스로를 감추고 있으려니, 몸을 감싸는 품이 느껴진다.
어쩌면 그것이 알폰소 나름의 위로이리라.
샤를로트는 결국 알폰소의 요청을 수락했다.
한 번의 입맞춤이 더 이어진 뒤의 일이었다.
* * *
“에두아르트 공작이 검술 대회에 나온다고? 드제, 네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나?”
“이미 공개적으로 명단에 이름을 올린 상태입니다. 틀림없는 사실이 맞습니다.”
드제라고 불린 청년이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자 앉아 있던 흑발의 남자, 퀸시가 인상을 찌푸렸다.
“제정신이 아니군. 에두아르트쯤 되는 인간이 뭐 하러 그런 짓을 하는 거지? 얻을 것도 없을 텐데.”
“황제가 민심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 명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도 일리는 있군. 하지만 샤를이 그걸 내버려 뒀을 리가 없을 텐데.”
드제의 설명에도 퀸시의 의혹은 여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에두아르트 공작이 검술 대회에 나오면 나더러 죽여 달라는 뜻밖에 더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