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81화 (84/122)

수도로 돌아온 이후.

샤를로트는 제일 먼저 그들이 자리를 비운 동안 있었던 일들을 파악했다.

‘건국제는 그대로 마무리됐고, 가신들도 해산.’

에두아르트에는 다행히 별일이 없었다.

황제인 브누아가 깜짝 결혼 발표에 상당히 언짢아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브누아는 알폰소에게 10년간 전장에서 싸워준 빚이 있고, 그게 있는 한 알폰소가 뭘 하든 대놓고 제지하지는 못할 테니까.

‘그러니까 검술 대회에 나가는 걸 언짢아하더라도 막진 못할 거라는 얘기지.’

알폰소의 주변은 샤를로트가 힘쓴 덕분에 정말 놀랍도록 아무 문제가 없었다.

경계해야 할 곳은 노하였다.

“……아버지가 위독하고, 지금은 퀸시가 전권을 잡고 있다고?”

샤를로트가 자리를 비운 사이 퀸시가 대놓고 노하의 권력을 쥔 것이다.

물론 언젠가 일어날 일이기는 했다.

도미닉이 살아 있는 동안에도 사실상 퀸시가 실권자이기도 했고.

하지만 퀸시는 그동안 도미닉을 가주로 내세우고, 본인은 뒤에서 알음알음 제 일을 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연기를 전부 집어치우고 스스로가 전면에 나선 것이다.

‘과거보다 훨씬 시기가 이르다.’

과거에는 샤를로트가 결혼한 지 1년쯤 접어들 무렵에 도미닉이 쓰러졌으니까.

결국 퀸시가 전에 비해 움직임이 과격해졌다는 건데.

‘아마 나 때문이겠지.’

샤를로트의 이탈이 그에 영향을 줬으리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과격한 변화가 에두아르트에 위협이 되리라는 사실 또한.

‘퀸시가 아버지와 사고방식이 같았다면 큰 문제가 없었을 텐데.’

도미닉처럼 샤를로트를 팔아서 가문의 이득을 취하려고 했다면 샤를로트 또한 대처하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

도미닉의 말을 따르는 척하면서 에두아르트를 돕는 것은 그녀에게는 숨 쉬는 것보다도 쉬운 일이니까.

하지만 퀸시처럼 샤를로트의 결혼을, 그리고 노하로부터의 이탈을 반대하는 경우라면 머리가 훨씬 아파진다.

‘퀸시는 나를 도로 노하로 데려가려고 할 거야.’

그 이유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샤를로트는 그동안 퀸시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것도 아주 말을 잘 듣고, 다방면에서 활용이 가능하며, 노하의 일원이라는 괜찮은 명패까지 달고 있다는 점에서 대체 불가능한 수족이었다.

사람 목숨쯤이야 우습게 아는 퀸시지만, 노하의 이름을 달고 있는 수족은 다시 구할 수 없을 테니까.

‘게다가 내게는 노하의 악녀라는 악명도 있지.’

다른 사람이라면 악명이 뭐가 좋겠냐고 할 테지만, 퀸시만큼은 그 악명을 상당히 기꺼워했다.

“샤를로트, 이명이 생긴다는 건 네가 그만큼 영향력을 가진다는 뜻이란다. 사람들은 너를 경외시하거나, 동경할 테지. 좋은 일이다.”

“……그래봐야 악명일 뿐이잖아.”

“사교계에서 그것만큼 좋은 무기는 없지.”

퀸시는 사교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인간들의 심리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샤를, 오늘 연회에는 이걸 입고 나가 보렴.”

“엠파이어 드레스? 유행이 지난 지가 언젠데 이걸 주는 거야? 분명 촌스럽다고 욕할 거라고.”

“유행은 돌고 도는 거지. 그리고 너는 유행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을 테고.”

때는 벨 드레스의 유행이 한창 이어지던 여름이었다.

하지만 퀸시가 건넨 것은 얇은 천으로 지은, 조금은 고풍스러운 느낌의 엠파이어 드레스.

유행에는 조금도 맞지 않는 옷이었으나 샤를로트는 늘 그래왔듯 퀸시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엠파이어 드레스가 수도 전역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요즘처럼 무더운 때에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는데, 엠파이어 드레스는 편하고 가벼워서 너무 좋네요.”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별로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레이디 노하가 입은 것 보셨죠? 허리끈을 느슨하게 흘러내리게 매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굉장히 예쁘더라고요.”

“어머,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군요. 요즘은 허리끈에 길게 늘어뜨리는 액세서리가 유행한대요.”

신화 속 여신을 연상케 하는 하늘하늘한 재질의 얇은 드레스와 긴 면사 장갑, 그리고 허리띠를 이용한 스타일은 무더웠던 여름을 맞아 순식간에 선풍적인 유행을 만들었다.

몇 겹씩 부풀려 입는 무거운 드레스에 지친 여자들은 새로운 유행을 두 팔 벌려 환영했고, 그에 맞추어 고전적인 양식들도 함께 유행하기 시작했다.

퀸시의 말대로, 샤를로트는 유행을 선도하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엄두조차 내지 못했겠지. 사교계는 튀는 것을 싫어하니까.”

하지만 샤를로트는 이미 ‘노하의 악녀’라는 이명으로 더는 튀기 힘들 만큼 튀어 버린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무슨 기행을 벌이든, 그것은 더 이상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샤를로트의 뛰어난 패션 센스와 아름다운 외모를 만나 새로운 유행을 이끌어 낼 뿐.

샤를로트가 시작한, 느슨하게 묶어 늘어뜨리는 방식의 허리끈 매듭은 ‘노하 매듭’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그만큼 그녀는 사교계에서 영향력을 가졌고, 퀸시는 이를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샤를로트는 노하의 진열장 제일 앞쪽에 비치되는 간판 상품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간판 상품이지.’

또래의 여자들에게는 동경과 질시를, 남자들에게는 손을 뻗어 보고 싶은 유혹과 경멸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상품.

하지만 이제 그것도 옛말이다.

샤를로트가 멋대로 결혼을 하고 노하를 이탈해 버렸으니 말이다.

‘내가 없으면 노하에는 퀸시 혼자 남는다.’

퀸시가 사교계에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결혼을 감행한다 하더라도, 샤를로트가 있을 때만큼의 영향력은 차마 기대할 수 없을 터.

퀸시가 기를 쓰고 샤를로트를 노하로 돌려놓고 싶어 하는 이유도 알 만했다.

샤를로트가 한번 바람을 일으킬 때마다 퀸시의 손바닥에는 그가 원했던 것들이 후두둑 떨어졌으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퀸시가 전면에 나선 지금, 그는 더 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샤를로트를 다시 제 손에 넣으려 할 것이다.

‘그러니까 알폰소가 위험하다는 거지.’

이런 와중에 샤를로트는 창칼이 날아다니는 검술 대회에 알폰소를 내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고.

‘알폰소가 검술 대회에 나온다면, 퀸시가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어떻게 해서라도 알폰소를 해치려고 들 터.

그리고 바로 이게 첫 번째 문제였다.

퀸시의 계략이 성공하면, 알폰소의 목숨과 소피아의 사랑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릴 테니까.

“이렇게 도박을 하고 싶진 않은데…….”

샤를로트가 이런 간단한 원리를 모를 리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소피아고 뭐고 그냥 알폰소에게 안전히 집에만 있으라고 하고 싶다.

실제로, 샤를로트는 그런 고민을 오래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소피아는 죽을 것이다.

혹은 다시는 그녀가 사랑했던 원래의 삶을 되찾지 못하고 평생 도망자 신세가 되거나.

착잡하게 가라앉은 샤를로트의 시선이, 허공에 소피아의 모습을 덧그렸다.

“샤를로트, 당신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것 사과할게요. 내가 당신을 오해했어요.”

“그럴 필요는 없는데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아니, 진심이에요. 그리고 이건 일종의 평화 협정이기도 하고.”

소피아는 샤를로트와 손잡은 후, 언제 사이가 나빴냐는 듯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녀는 가까운 동성이 없어서 오랫동안 외로웠다고 말했다.

어머니도, 어머니처럼 키워준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부인도 모두 세상을 뜬 이후로 가깝게 지낼 사람이 없었다고.

“우리 폐하는 황제라서 바쁘고, 알폰소 오빠도 내내 전장에 가 있었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내가 황녀라고, 아무리 가까워져도 어려워하더라고요.”

그래서 소피아는 알폰소가 결혼하고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이 생기면 정말 잘해줄 거라고 다짐해 왔었다.

어쩔 수 없이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사교계에서는 급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기 마련이니까.

대대로 황녀나 황후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공작부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노하의 악녀가 공작부인이 된다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하지만 이제는 그게 내 편견이었다는 걸 알겠어요. 당신이 알폰소 오빠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고 마음을 바꿨어요. 당신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소피아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스스럼이 없었다.

아마 그럴 만한 환경에서 자라왔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리고 그런 소피아의 태도는 알폰소 이외의 사람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샤를로트의 심정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사실, 샤를로트는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에게 약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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