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로트의 말에 소피아가 경악했다.
“설마 설마 했더니, 진짜로 알폰소 오빠를 검술 대회에 내보낼 생각이었다고요? 제정신이에요?”
“지극히 제정신이에요.”
“당신 에두아르트의 안주인이라는 자각이 있기나 한가요? 이건 에두아르트의 격에는 맞지 않는 일이에요! 오빠가 나갈 리도 없고요!”
에두아르트 공작을 검술 대회에 내보낸다니?
검술 대회는 제국의 큰 행사로, 정말 신분 고하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어중이떠중이가 반절, 개중 진짜 실력자가 반절.
쉽게 말하자면 난전판이나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에두아르트 공작을 내보내겠다고?
석탄들 사이에 다이아몬드를 던져 놓는 격이다!
다이아몬드가 흠집이 날 일이야 없겠지만, 재가 덕지덕지 묻을 거란 뜻이다.
‘어, 어떻게 에두아르트의 안주인이 되어서 이런 발상을……!’
호기롭게 디디에와 자신을 이어주겠다고 장담하기에 무슨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했더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꺼내놓을 줄이야.
‘건국제에서 깜짝 결혼 발표를 한 걸 보고 속이 시원했었는데.’
브누아가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걸 보고 퍽 우스웠었다.
물론 브누아는 소피아의 사랑하는 형제였지만, 그가 반대하는 결혼을 막무가내로 밀고 나간다는 점에서 그녀는 샤를로트와 비슷한 처지였다. 하여 그 사건으로 어쩐지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렇게 뭔가 묘책을 꺼내놓을 줄 알았는데.
뭐?
알폰소를 검술 대회에 내보내자고?
격이 맞지 않는 건 둘째 치고 알폰소에게 말해봤자 두 번 듣지도 않고 던져 버릴 계책이었다.
‘완전히 속은 기분이야.’
개탄스럽다. 이 여자를 잠시나마 믿었다는 사실이.
소피아는 실망을 감추지도 않고 몸을 돌렸다.
“더는 이야기할 가치도 없어 보이는군요. 속은 건 나였으니 책임은 묻지 않겠어요. 난 이만-”
“소피아 전하.”
그리고 등 뒤에서 샤를로트의 목소리가 그녀를 붙들었다.
“그럼, 디디에 경과 헤어질 생각이신가요?”
“……내가 알아서 할 거예요.”
“저희처럼 깜짝 발표를 하고 도망치시려는 건 아니겠죠?”
정곡이 찔렸다.
“그건 좋지 않은 생각이에요. 진심으로.”
“……왜죠? 당신은 되고 나는 안 된다는 건가요?”
“그래요. 황제 폐하께서는 알폰소가 누구와 결혼하든 언짢아하실 뿐이겠지만, 전하는 다르실 테니까요.”
깜짝 발표를 하고 도망가겠다는 계획은 샤를로트와 알폰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과거에도 브누아는 알폰소가 노하와 결혼한다는 사실에 상당히 언짢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으려고 들지도 않았다.
‘딱 그 정도의 관계라는 거지.’
제 여동생이 집을 나가면 노발대발하며 붙들러 가도, 자신을 위해 10년을 꼬박 바친 사촌이 일탈을 저지르는 것은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그건 소피아 전하도 마찬가지시잖아요.”
“……!”
“아닌가요?”
소피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차마 아니라는 대답을 내어놓지는 못했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관계라고 하지만, 은연중에 알폰소를 가족 외의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들켰으니까.
어쩔 수 없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관계라는 건 결국 가족은 아니라는 뜻이니까.
물론 이건 소피아의 잘못만은 아니다.
‘알폰소는 다른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내보이지 않으니까.’
알폰소는 늘 주느비에브 남매와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 누구도 그 거리를 좁힐 생각이 없었던 것뿐이리라.
어릴 때부터 그래왔으니 굳이 고칠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
알폰소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이런 관계를 샤를로트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클로에를 포섭한 거지만.’
클로에 또한 그의 완벽한 가족이 되어줄 수는 없다.
새삼스럽게 알폰소가 얼마나 고독한 위치에 있는지 와닿는 기분이라, 샤를로트는 쓴 입맛을 삼켜야 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알폰소의 고독이 아니었으니까.
“전하께서 다른 방법을 찾지 않으시면 황제 폐하의 뜻을 꺾기란 불가능할 거예요.”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거죠?”
결국 소피아가 인상을 쓰며 몸을 돌렸다.
“검술 대회가 격이 맞지 않는다는 건 둘째 치고, 오빠가 거길 나가려고 하겠어요?”
“그거야 뭐, 당연히 나가지 않으려고 하겠죠.”
“그걸 잘 알면서-”
“그러니까 내가 도와준다고 하는 거고요.”
샤를로트의 말에, 소피아가 멍한 표정을 했다.
“……뭐라고요?”
“알폰소가 검술 대회에 나갈 수 있도록 설득해 줄게요. 나는 할 수 있어요. 그럼 해결된 거죠?”
물론 알폰소가 나가도록 설득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긴 했다.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이 볼 때는 말이다.
일평생 황녀로서 품위와 위계질서에 대해 견고한 교육을 받아 온 소피아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일 뿐이었지만.
“아니, 그래도…….”
“그럼 전하께서는 다른 방법이 있나요?”
“그, 그건 없지만.”
“그럼 어쩔 수 없이 이런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 거죠. 알폰소라면 우승은 따 놓은 거나 다름없어요.”
혼란이 가득한 소피아의 눈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이 고스란히 보였다.
설득당하고 있는 거다.
‘알폰소라면 정말로 질 리가 없어.’
과거 검술 대회 우승자가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친 수배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적이 있다.
검술 대회는 신분 고하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참가를 허락하기 때문에, 범죄자도 간혹 신분을 속이고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개는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하다 보니 금세 탈락해 버려서 크게 티가 나지 않았는데, 한 번은 범죄자가 우승까지 가 버린 적이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 그 사실이 드러나서 체포하려 했지만, 그가 워낙 실력자였던 까닭에 그 누구도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다.
그리고 그 현장을 정리한 것은 바로 알폰소.
‘거의 힘도 들이지 않고 제압했다고 했지.’
실력 있는 자를 생포하는 것은 단순히 죽이는 것보다 배는 까다로운 일이다.
그 단편적인 이야기만으로도 알폰소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알폰소는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어요. 그건 전술만 뛰어나서는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죠.”
“……물론 알폰소 오빠는 어릴 때부터 검에 두각을 드러내긴 했어요.”
“그래요. 알폰소의 실력은 정말 대단하죠. 그러니 알폰소가 나가서 우승한다면 모든 게 해결되는 거예요.”
“하지만 에두아르트 공작이 검술 대회 같은 데 나간다는 건…….”
“잘 생각해 보세요, 전하. 이건 결코 에두아르트의 격을 떨어트리는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격을 올리는 일이죠.”
샤를로트의 말에, 소피아가 오랜 기간 쌓아 놓은 고위 신분으로서의 품격에 대한 벽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에두아르트 공작이 직접 칼을 들고 싸우는 걸 볼 기회가 어디 있겠어요? 알폰소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줄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할 거예요. 그리고 알폰소가 대단하다고 추켜세우기 바쁘겠죠!”
“그, 그런가?”
“그럼요. 그리고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사람들에게 친근함을 줄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다른 귀족들은 평판을 얻겠다고 어떻게든 좋은 기사를 내 보려고 안달인데.”
그것도 맞는 말 같다.
귀족들은 체면과 평판에 목숨을 거는 인간들인지라, 어떻게든 좋은 평판을 얻겠다고 신문사에 돈을 때려박지 않나.
그런데 샤를로트의 말대로라면 그리 애를 쓰지 않고도 에두아르트가 대중의 호감을 살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에두아르트 공작쯤 되는 귀족도 검술 대회에 참여한다면, 정말로 신분 고하 없이 실력만으로 결과가 정해진다는 검술 대회 취지를 더욱 살릴 수도 있겠죠.”
더욱이 현 황제가 아끼는 사촌까지도 검술 대회에 내보낼 정도로 신분 고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미담도 만들 수 있을 터.
“이건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에요.”
샤를로트가 자신만만하게 이야기를 마쳤다.
그녀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알폰소가 우승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귀족들이 진짜로 검술 대회에 참여하지 않는 건 품격이니 뭐니 때문이 아니라, 지면 가문 망신이기 때문이다.
귀족들 입장에서는 얻을 게 없는데 괜히 체면을 걸고 도박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소피아는 그것까지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샤를로트의 달콤한 설명에 귀가 팔랑팔랑하는 것이 샤를로트의 눈에 죄 보일 정도였으니까.
결국 소피아의 견고했던 벽은 우르르 무너졌다.
“조, 좋아요! 해보자고요.”
“좋은 자세예요. 날 믿어요.”
두 사람이 든든하게 손을 맞잡았다.
신뢰가 넘치는 아름다운 현장.
하지만, 소피아에게는 미처 말하지 않은 문제가 두 가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