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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79화 (82/122)

어쨌든 아르노의 억울함과는 별개로, 샤를로트의 해명은 생각보다 잘 먹혀들어갔다. 

샤를로트와 아르노가 찾아갔던 가브리엘의 집을 소문 속 검 장인의 집으로 탈바꿈하자, 디디에의 승진을 도와주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제법 그럴싸하게 맞추어진 것이다.

“당신도 알겠지만 황실 근위대는 승진 시험이 있잖아요. 거기서 이길 수 있게 도와줄 생각이었어요.”

기사들의 시험은 말이 시험이지 그냥 대련이다.

대련에서 선전을 거둔 쪽은 승진하고, 그렇지 못한 쪽은 그 자리에 남아 있거나 좌천되는 방식.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요. 명필이 도구까지 좋은 걸 쓰면 더 훌륭히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 검을 구해주려고 했다는 겁니까?”

“그렇죠. 당신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어요.”

혹시라도 가브리엘의 집에 있던 수많은 실험 도구들에 대해 캐물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알폰소는 생각보다 샤를로트의 변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이유는 금세 드러났다.

“그렇잖아도 어제 소피아가 보내온 편지에 당신에게 전하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약조를 지키라는 내용이 있기에 무슨 말인가 했는데, 당신 말을 들으니 이해가 됩니다.”

“소피아 황녀에게서 편지가 왔다고요? 그런데 왜 안 보여줬어요?”

“……당신이 날 피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랬죠. 참.”

샤를로트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노의 앞에서 피를 토한 이후로 샤를로트는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렸다.

언제 어떻게 피를 토할지 모르니 조심한 것이다.

그나마 그저께부터는 각혈이 멈추어 다행이었다.

‘몸이 나아지지 않았으면 알폰소와 이렇게 마주 앉아서 대화하는 건 꿈도 꾸지 못하고 있을 테니까.’

아직 가브리엘을 찾지는 못했지만, 이만하면 최악은 면한 셈.

그리고 아르노는 샤를로트가 그를 변호해주는 대가로 앞으로도 진실을 함구하기로 약속했다.

아무래도 알폰소가 샤를로트의 몸 상태를 알게 되면 보통 난리가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샤를로트 혼자뿐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무슨 생각이든 다행이지.’

가브리엘의 집에서 알폰소를 마주쳤을 때는 정말 꼼짝없이 몸 상태를 들키는 줄 알았으니까.

샤를로트는 남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사이 알폰소는 편지를 꺼내와 그녀에게 건넸다.

발신인에 소피아가 적힌 편지.

소피아가 샤를로트에게 전한 말은 간단했다.

“……황제 폐하께서 국혼을 진행하려 하시니, 서둘러 약속을 지켜 달라는 내용이군요.”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습니다. 폐하께서 얼마 전 내게 소피아의 결혼 상대로 누가 좋을지 의논했었으니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언젠가 올 게 왔을 뿐.

아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을 소피아만 화들짝 놀라 얼른 약속을 지키라며 샤를로트에게 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처럼 편지를 보낸 것이다.

수도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어디에서 샤를로트가 소피아를 핑곗거리로 팔아먹고 있을 줄은 또 어떻게 알고 이렇듯 시기적절하게 말이다.

「……한 관계로, 에두아르트의 새 부인께서 부디 내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셨기를 바랄게.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녀를 에두아르트 부인으로 지지했던 내 머리채를 그대로 잘라버리고 싶으니까 말이야!」

소피아의 편지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퍽 그녀답게 쓰인 편지에, 샤를로트가 픽 웃었다.

하긴, 이제 시기가 되긴 했다.

“아무래도 슬슬 수도로 돌아가봐야겠네요. 당신 사촌동생의 머리채가 잘리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죠.”

“어차피 이쪽 일도 얼추 마무리가 되었으니 시기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요? 떠나기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아마 사나흘이면 충분하리라 봅니다.”

“나쁘지 않네요.”

어차피 샤를로트는 급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가 디디에를 소피아와 결혼시키기 위해 진짜로 노리고 있는 것은 고작 승진시험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샤를로트가 빙긋 미소 지었다.

“소피아 황녀가 울음을 터트리기 전에 수도로 돌아가 보자고요.”

* * *

매년 여름이면 제국은 늘 같은 행사를 연다.

바로 검술 대회.

다소 진부한 이름이지만, 잘 만들어진 진부함만큼 인기 있는 것은 없다.

하여 봄의 축제가 건국제라면 여름의 축제는 검술 대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장장 한 달여간 제국, 아니, 온 대륙에서 온갖 날고 긴다 하는 사람들이 모여 치고 박고 싸우는 걸 무료로 보여주는데 이걸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이토록 규모가 큰 행사이니만큼 검술 대회에 걸린 상품 역시 특별했다.

모름지기 사람을 모으려면 미끼 역시 좋은 것을 걸어야 하는 법.

검술 대회에 걸린 상품은 첫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늘 동일했다.

“소원이죠. 그것도 황제 폐하께 바로 올리는 소원.”

샤를로트가 검지를 세우며 말했다.

그러자 설명을 듣고 있던 소피아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대체 무슨 얘길 꺼내려고 그리 장황하게 말하나 했더니, 고작 내놓은 수가 검술 대회인가요?”

“그렇죠. 이게 핵심이에요. 무슨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조건이 있으니 정말 막강하잖아요.”

검술 대회 우승자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황제에게 소원을 빈다.

그러니 황제는 좋든 싫든 그 소원을 들어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황제의 체면이 땅에 떨어질 테니까.

“그러니까, 검술 대회에서 우승한 다음 나와 디디에의 교제를 허락해 달라고 하라고요?”

“바로 그거예요.”

“이런 제정신 아닌 소리를 듣자고 내가 에두아르트 공작저까지 왔다니.”

소피아가 화가 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럴 거면 그냥 알폰소 오빠에게 내 결혼을 반대해 달라고 부탁하는 게 낫죠!”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네요. 알고 계시겠지만 알폰소는 지금 황궁에 갔어요. 전하 말대로 전하의 결혼을 반대한다고 말씀드린다는데, 과연 황제 폐하께서 들어주실지는 모르겠네요.”

물론 그렇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샤를로트가 나설 것도 없이 소피아는 연인과 함께할 수 있을 터.

“……그만큼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예요.”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소피아도, 샤를로트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황제는 황실의 이득이 걸린 일에서만큼은 공사가 확실하니까.’

과거에도 알폰소는 똑같이 행동했다. 당시에도 황제에게 소피아의 정략결혼을 반대한다고 말했고, 황제는 똑같이 거절했다.

지금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을 터.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게 소피아였다.

그녀는 생각보다 현실적인 사람이었으니까.

“검술 대회에서 소원을 빌려면 먼저 대회의 우승자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건 당연한 일이죠.”

“그게 말도 안 된다는 거예요!”

소피아가 탕, 테이블을 내리쳤다.

“나는 디디에를 분명 사랑…… 아니, 좋아하지만, 디디에의 검술 실력이 그렇게까지 특출하지 않다는 건 잘 알아요. 그가 어떻게 검술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겠어요?”

“물론 디디에 경의 검술 실력으로는 부족하겠죠.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전하. 여기가 어딘가요?”

“뭐?”

난데없는 질문을 들은 소피아가 낯을 찌푸렸다.

하지만 샤를로트는 농담을 하는 투가 아니었다.

“여, 여긴…… 에두아르트죠.”

“그래요. 그리고 에두아르트에 지금 넘치는 게 뭔지 아세요?”

바로 실전 경험을 겪은 기사들.

“전장에서 10년 동안이나 구르다 온 기사들이 여기 있어요. 검술 대회가 팀전과 개인전으로 나뉜다는 건 전하께서도 알고 계실 테죠.”

검술 대회의 규모가 크다 보니 워낙 어중이떠중이들이 많이 참석하고, 이를 어느 정도 솎아내기 위해 대회의 초반은 4~5명씩 팀을 꾸려 팀 대항전으로 진행한다.

특히 검술 대회의 우승자를 제외한 대부분은 실력을 인정받아 황실의 기사가 될 기회를 얻게 되니, 그것을 위해서라도 협동심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황실 기사가 되면 혼자 일하는 경우는 거의 사라지니까.

하지만 협동심이 필요한 일이 대개 그렇듯, 팀전에서 다른 팀원이 발목을 잡아 제 실력의 반도 내지 못하고 운 나쁘게 탈락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검술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급히 팀을 꾸린 이들 대부분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루드빅 바텔레미 경, 아르노 조엘 경, 쟝-자크 로랑 경은 10년 이상 함께해 온 전우들이죠. 손발이 맞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그들을 함께 내보내란 말인가요? 하지만 디디에와는 초면일 텐데,”

“디디에 경을 왜 내보내요? 에두아르트만으로도 충분한데.”

“하지만 팀은 최소 4명 이상부터-”

“에두아르트 최강의 기사가 하나 더 있잖아요.”

“……설마?”

샤를로트가 빙긋 미소 지었다.

“알폰소를 내보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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