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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77화 (80/122)

“제가 저길 찾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십니까? 사람 열을 풀어도 안 될 일을 한 사람이 해냈으면 당연히 치하의 말이 따라붙어야…….”

아르노는 운하를 따라 내려가는 내내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공치사를 주절거렸다.

다른 때였더라면 조용히 하라고 타박했겠지만, 이번만큼은 아르노가 마음껏 떠들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의 말마따나 아르노는 적지 않은 일을 했으니까.

‘풍경을 찾는 거야, 운하 근처를 싹 뒤지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지.’

하지만 샤를로튼가 시킨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 언덕 아래에 화가 형제가 살았단 말이죠?”

“예. 동생 쪽이 무명 화가였다더라고요.”

단순히 풍경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

하지만 풍경이 존재하고, 그걸 그린 그림이 있다면.

그림을 그린 화가도 존재할 터.

샤를로트의 진짜 명령은 그림 속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걸 그렸을 사람을 수소문하는 것이었다.

“워낙 예전 일인 데다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찾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하루 만에 딱 끝냈을 일인데.”

워낙 외지인이 많이 돌아다니는 생팔이지만, 이 인근은 생팔 토박이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외지인에게 쉽게 말을 해주지 않을 수밖에.

사실 찾는 데에 사흘씩이나 걸린 것도 전부 화가를 찾느라 시간을 소모한 까닭이었다.

“이곳에 살았던 형제라면, 그들도 생팔 토박이였다는 건가요?”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자세한 건 모릅니다. 몇 년 전에 폭발 사고가 있었는데, 그때 동생 쪽이 죽고 형은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니까요.”

이야기 속 형제에서, 형 쪽이 가브리엘이라고 한다면 모든 것이 설명이 된다.

‘그림을 걸어놓은 이유는 그게 동생의 작품이었기 때문인 거야.’

폭발 사고로 동생을 잃었다면 그 그리움 또한 적지 않을 터.

“폭발이 있었다면, 집은 남아 있는 건가요?”

“남아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고가 나자마자 바로 자취를 감춘 건 아니었다고 했으니.”

“그럼 지금도 살 가능성은 없겠군요.”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폐가일 겁니다.”

가 봤자 남아 있는 흔적도 거의 없을 거라며, 아르노가 덧붙였다.

하지만 샤를로트는 이곳에 온 이상 가브리엘의 집을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여기서 찾지 못한다면, 최소한 그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모아야 하니까.’

가브리엘을 찾을 수만 있다면 폐가가 아니라 흉가라고 해도 들어가야만 했다.

하여 샤를로트는 말을 아르노에게 맡기고 홀로 언덕 아래의 집으로 향했다.

아르노는 말을 매어 놓을 자리를 찾느라 바로 따라오지 못했다.

샤를로트는 굳게 잠긴 문의 자물쇠를 만능열쇠로 따고 들어갔다.

‘확실히 으스스하네.’

인적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집이니 당연하지만.

그래도 혹시 오간 흔적이라도 있을까 기대했는데, 집은 완전히 폐가였다.

‘정말 여길 완전히 떠난 것 같군.’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이곳이 샤를로트의 예상대로 가브리엘의 집이라는 것은 확실해졌으니까.

집은 온통 실험 기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각종 유리병과 플라스크, 실험 도구들이 즐비했던 것이다.

‘내가 찾아갔던 가브리엘의 집과 풍경이 거의 같군.’

아무래도 이런 것들은 깨지기가 쉬우니 굳이 옮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설산 아래 정착하기 전까지는 줄곧 떠돌아다니는 처지였다고 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샤를로트는 그 실험 도구들을 조심스럽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약물 실험 일지 같은 거라도 찾으면 좋겠는데.’

아니면 하다못해 가브리엘의 행방을 알아낼 만한 실마리라도.

생팔에 올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가브리엘을 찾을 수 있는 기회 역시 지금뿐이라는 것이다.

마음이 급해진 샤를로트의 손이 점점 빠르고, 거침없어졌다.

‘여기도 없어, 여기도.’

물론 실험 일지를 그냥 두고 갈 멍청이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집이며 실험 도구들이 이만큼이나 있으니 소소하게라도 기록이 하나쯤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던 걸까?

조급함이 서린 낯으로, 샤를로트가 마지막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있다.”

손때 묻은 노트!

샤를로트가 반색하며 노트를 집어 들었다.

혹시라도 빈 노트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내용이 적혀 있어!’

당장 자세히 확인할 시간은 없지만, 일기로 보이는 기록이었다.

이걸 잘 살펴보면 실마리가 보일지도.

‘다른 건 없을까?’

될 수 있는 한 모든 걸 챙겨 나갈 생각에 샤를로트가 서랍을 꺼내 보던 찰나.

철걱.

무언가 맞추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끼리릭, 톱니 돌아가는 소리도.

‘……이건.’

뭔가의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다.

노하에도 이런 식으로 숨겨진 기관이 여러 개 있었으니 모를 수 있나.

샤를로트가 방금 서랍을 만지다가 숨어 있는 기관을 작동시켰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관은 대개 두 가지 종류다.

첫 번째는 숨겨져 있던 공간을 드러내는 것.

예를 들어 특정한 곳에 책을 꽂으면 책장이 갈라지며 숨은 공간이 드러난다거나, 비밀 통로를 내보이는 등, 고대로부터 유구하게 쓰인 방식이다.

대개 밖에서 볼 때보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공간이 좁게 느껴지면 이런 기관이 설치되어 있을 확률이 높아지는데.

‘하지만 여기에는 그럴 공간이 없어 보여.’

가브리엘의 집은 작았다. 겉으로 볼 때도, 안에서 볼 때도.

만약 기관이 설치되어 있었다면 샤를로트는 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 이상함을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이 기관이 숨겨진 공간을 드러내는 장치가 아니라는 뜻.

그렇다면 남은 경우의 수는 한 가지뿐이다.

‘함정이다!’

침입자를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둔 함정.

‘어떤 미친 인간이 제집에 함정을 설치해 놔?’

낭패감이 샤를로트의 몸을 날카롭게 휘감고, 그녀는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했다.

어떤 종류의 함정이 설치되어 있는지 모르니 주저하다 가스 따위에라도 당하면 큰일이다.

그러나 마음이 너무 급했던 탓일까.

아니면 약해진 몸으로 말을 오래 달리기까지 한 탓일까.

“……!”

도망치려는 다리에 힘이 풀리고, 몸이 크게 휘청였다.

푸슉!

그리고 동시에 어디선가 살이 쏘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샤를로트가 발을 떼는 순간 쏘아진 것이었으니, 바닥을 밟는 것부터가 기관의 작동 장치였을 터.

하지만 샤를로트는 이미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여기서 다치면 변명할 수도 없을 텐데……!’

그렇게 눈을 질끈 감은 순간.

푹!

기관으로부터 발사된 쇠뇌가 무언가를 꿰뚫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러나 샤를로트에게 느껴지는 통증은 없었다.

심지어는 바닥에 닿는 감각까지도.

샤를로트가 쓰려지려는 찰나.

누군가가 뒤에서 민첩하게 그녀를 잡아 빼낸 것이다.

덕분에 샤를로트는 바닥에 쓰러지지 않았고, 쇠뇌도 피할 수 있었다.

숨을 고르며 눈을 뜨자 벽에 깊이 박힌 쇠뇌가 보였다.

‘저걸 맞았으면 정말 위험했겠는데.’

어지간해서는 평정을 잃지 않는 샤를로트였지만 저 광경을 보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마 그녀를 뒤에서 붙들어 준 손길이 아니었더라면 저 화살이 박힌 건 벽이 아니라 샤를로트의 몸통이었을 터.

이곳에 있을 사람이라면 아르노밖에 없겠지.

샤를로트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몸을 바로 세웠다.

“큰일 날 뻔했네요. 도와줘서 고마워요. 이제 그만 놔도 될 것 같은…… 아르노……?”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끌어안듯이 붙들고 있는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닫고 말았다.

어둠 속이었지만 등불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은발은 달빛 아래서 더욱 잘 보이기 마련이었으니까.

일그러져 굳어진 표정과 그녀를 응시하는 새파란 눈동자.

로브 아래로 드러난 은발까지.

그 모든 것들의 주인을 알아본 샤를로트의 입에서 반신반의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알폰소?”

샤를로트가 시간을 돌아온 이래 마주한 최대의 난관이었다.

* * *

그렇게 샤를로트의 밤 외출은 알폰소의 손에 붙들려 허무하게 끝이 났다.

아르노는 이대로 눈 딱 감고 죽고 싶다는 표정으로 베호닉 성에 돌아왔고, 그건 샤를로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소 온화하던 사람이 화를 내면 더 무섭다고 하던가.

물론 알폰소는 그렇게까지 온화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워낙 감정 표현이 적다 보니 이렇게 극명한 분노가 드러난 상태에서는 더욱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가 베호닉 성으로 돌아오는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 역시 적지 않게 영향을 끼쳤다.

쿵.

샤를로트의 방 문이 닫히고, 마침내 알폰소가 입을 열었다.

“왜 생팔에 간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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