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70화 (73/122)

연금술사 가브리엘.

노골적으로 천사의 이름을 따다 지은 그는 나이도, 출신도, 심지어는 이름까지도 모든 게 불분명한 인간이었다.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가 기이할 정도로 빛나는 금안을 가졌다는 것과, 목소리로 미루어 보아 남자라는 사실뿐.

‘내가 만났을 때도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

그나마 눈을 본 것 또한 우연이었다.

그를 처음 찾아갔을 때, 가브리엘이 로브를 살짝 내리고 있어 잠깐 스치듯 눈을 마주쳤던 것이었으니까.

‘찾고 싶어도 아는 게 없으니 찾을 수가 없군.’

샤를로트가 가브리엘을 만났던 것은 정말 신이 도왔다고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던 와중, 마시기만 해도 모든 병이 낫는다는 물약을 파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주워듣고 찾아갔던 것이니까.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당연히 그게 뜬소문일 거라고 했지만, 샤를로트는 아무래도 좋았다.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는 사기꾼 뜨내기들에게 이미 여러 번 속아 보았지만.

샤를로트는 알폰소를 살릴 수만 있다면 백 번은 더 속아줄 수 있었다.

‘멀쩡히 살아 있는 내가 속는 게 뭐 대수라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 가브리엘을 만날 수도 있었으리라.

그리고 시간을 돌아와서도 다시 그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실패했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브리엘이 말하기로 그는 줄곧 떠돌아다니면서 살았다고 했으니까.

어차피 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콜록, 콜록!”

샤를로트가 온몸이 들썩일 정도로 크게 기침하자, 입을 가린 손수건에 붉은 피가 흥건하게 묻어 나왔다.

바로 이것이 문제였다.

샤를로트의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는 것.

* * *

샤를로트의 몸 상태가 나빠진 것은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베호닉의 일이 모두 끝나고 난 뒤 땅거미 지던 시각.

클로에와 대화를 마친 알폰소가 샤를로트의 방으로 들어왔다.

등 뒤로 문을 닫는 그를 보며 샤를로트가 의기양양하게 입을 열었다.

“알폰소, 내 말이 맞죠? 다 잘됐잖아요.”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알폰소 역시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조금 혼란스러운 표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샤를로트는 알폰소에게 많은 것을 설명해주지 않고 진행했으니까.

나중에야 클로에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나서도 조금 얼떨떨한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샤를로트가 해낸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그게 쉬웠더라면 알폰소가 베호닉의 일로 머리를 싸매고 있었겠는가?

물론 그 과정에서 남의 방을 뒤져 본다거나…… 백지 각서를 쓰게 만드는 등의 일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건 그런 일들로는 결코 폄하할 수 없는 일이었다.

“클로에 베호닉에게 그간의 사정을 들었습니다. 당신이 그녀에게 백지 각서를 쓰게 했지만 실질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생각보다 많은 걸 얘기했네요. 나를 탓하더라도 별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탓은 무슨.

클로에는 진심으로 샤를로트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나를 얼마든지 강제할 수 있는 위치였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부탁을 했죠.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이유는 충분해요.

라면서.

“이번 일로 당신을 선택한 게 옳았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그 전까지는 확신하지 못했다는 뜻인가요?”

“아니, 당신이 실패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여의치 않은 일이었으니까.”

심지어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런데 샤를로트는 반지를 온건하게 되찾아 온 것도 모자라 클로에의 마음까지 돌려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알폰소는 샤를로트를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샤를로트.”

“얼마든지요.”

“왜 클로에 베호닉에게 나를 미워하지 말라는 부탁을 했습니까?”

그래, 바로 이 지점.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샤를로트는 알폰소의 의문을 이해했다.

‘클로에 베호닉을 베호닉 가문의 가주로 세우는 것만으로도 사건을 마무리하는 데에는 충분했겠지.’

하지만 샤를로트가 클로에에게 했던 부탁은 단순히 일을 해결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

알폰소를 미워하지 말아달라는 건, 곧 그의 가족으로써 그를 지켜달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알폰소의 입장에서는 썩 불필요하게 느껴질 법도 한 일.

그리하여 샤를로트도 조금 고민한 일이었지만…….

“별 이유는 없어요. 당신에게는 남은 사람이 없잖아요.”

샤를로트는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러자 알폰소의 한쪽 눈썹이 슬쩍 치켜올라갔다.

“내 주변에는 충분한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겠죠. 엄밀히 말하자면 당신 사정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더 적절할 거예요.”

“내 사정, 이라면.”

“나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요. 당신 어머니가 당신에게 결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것도.”

그 말을 꺼내자 알폰소의 낯이 굳어 들어갔다.

알고 있으리라 짐작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확인받고 나니 저도 모르게 숨이 막힌 까닭이었다.

“……언제부터 알았던 겁니까.”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의 편지를 읽었을 때부터.”

“그걸 왜 이제야,”

“나쁘게 생각 말아요. 당신이 동정하지 말라고 하기에 특별히 언급하지 않은 것뿐이에요.”

그리고 알폰소가 이런 물음을 던지지 않았더라면 앞으로도 함구했으리라.

“나는 그 얘기를 하면서 당신을 위로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어요.”

“…….”

“그리고 내게는 당신을 위로할 자격이 없죠.”

알폰소를 동정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녀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명료한 설명에 알폰소는 대답 대신 잠시 눈을 꾹 감았다.

눈꺼풀이 내려감과 동시에 도드라졌던 턱선이 다시 느리게 돌아온 뒤에야 그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클로에 베호닉에게 그런 말을 한 겁니까. 나를 위로하라고?”

“그래요.”

“나는 어린애가 아니고, 어머니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겠죠. 하지만 말할 사람은 필요하잖아요.”

아무에게도 스스로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 결국 그 누구와도 닿아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 누구도 주변에 두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런 의미에서 샤를로트가 볼 때 알폰소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도 당신 사정을 모르잖아요. 그렇게 가까운 소피아 황녀는 당신이 결혼하는 이유조차 모르는 것 같던데.”

그럼 당연히 브누아도 알폰소가 결혼하는 이유를 모를 터.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 부부의 사정은 더더욱 알 리가 없다.

‘소피아 황녀가 알폰소에게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부인 이야기를 하는 걸 몇 번이고 보았지.’

샤를로트가 기억하는 주느비에브 남매는 알폰소의 사정을 조금도 모르고 있었다.

마치 샤를로트가 그러했듯.

-이 집에 오면 늘 공작부인 생각이 나. 같이 살았던 어릴 때가 그립다. 공작부인이 매번 내 머리를 빗어주곤 하셨는데. 기억나?

-……글쎄.

그때마다 알폰소는 아무런 첨언도 하지 않았다.

단순히 그의 과묵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은 끔찍해하는 어머니가 사촌들을 제 자식처럼 아끼는 걸 보며 알폰소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그 사촌들이 자라서 죽은 어머니를 추억할 때마다 그는 무엇을 떠올렸을까.

그나마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비밀이란 어떤 무게를 가질까.

샤를로트는 그 무엇도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당신 사촌들도 당신 사정을 모르고, 가신들에게도 반지에 대한 이야기만 했죠?”

알폰소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샤를로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아줄 누군가는 필요하잖아요.”

“……내겐 필요치 않은 문제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해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여태 잘 살아왔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겠죠.”

샤를로트, 그녀도 그랬던 때가 있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알아주는 누군가가 생기니까……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누군가 알아주기를 기다려 왔다는 것을.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외로웠던 거죠.”

샤를로트는 눈꺼풀을 내리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 외로웠던 거다.

그리고 이것은 당신에게 위로받았던 내가 시간을 건너 당신에게 전하는 위로이고.

“알폰소, 나는…… 당신을 외롭게 두고 싶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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