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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68화 (71/122)

르나르는 그대로 베호닉 성의 감옥에 투옥되었다.

일의 시시비비를 밝히는 동안은 베호닉 성에 갇혀 있다가, 조사가 끝나면 그의 처분 역시 확정될 것이다.

황실 재판에 넘기거나, 혹은 베호닉에서 죄인으로 살게 하거나.

그리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다.

르나르가 저지른 짓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증인이 있었으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각하. 제가 어리석었어요.”

클로에는 알폰소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허리를 숙였다.

당연히, 반지는 샤를로트에게로 전해졌다.

이 모든 것은 샤를로트의 계략이었다.

“에두아르트 부인께서 제게 제안을 하셨어요. 이 도난 사건을 해결하기 전에, 소문을 하나 더 퍼트리자고.”

그것이 바로 없어진 귀중품 중에 반지가 있다는 소문이었다.

반지에 대해 아는 이들이라면 소문을 듣는 순간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물건임을 알아차릴 법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라면 초대 베호닉 부인의 목걸이가 사라진 것에 더 집중할 터.

샤를로트는 반지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이용하려 한 것이다.

-마침 도난 사건이 일어났으니 이걸 조금만 이용해주면 아주 자연스럽잖아요.

라면서.

“그리고 이 소문을 접한 오라버니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라고 하셨어요.”

만약 르나르가 클로에가 생각한 것처럼 정신머리가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분명 베호닉의 가보인 목걸이에 더 신경 쓸 것이고, 샤를로트의 말대로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면 반지 쪽을 더 신경 쓸 테니까.

“그럼 어떻게 샤를로트가 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겁니까?”

“제가 잠깐 부탁드렸어요. 오라버니가 혹시라도 제 소지품을 뒤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만큼 그녀를 신뢰했다는 겁니까?”

“각서를 써주셨으니까요.”

만약 클로에가 주장한 대로 르나르가 그런 속셈이 없었을 경우.

샤를로트는 반지를 잠시만 맡아 두었다가 돌려주겠다는 각서를 썼다.

아주 흔쾌히.

샤를로트 본인의 서명이 들어간 이상 법적인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각서가 있다면 신뢰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샤를로트의 말대로 이루어졌다.

아주 일사천리로.

알폰소는 클로에의 설명을 듣고 그제야 정황을 이해했다.

‘그래서 그렇게 한 거군.’

르나르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알폰소가 그의 집무실로 향하던 때.

어디선가 튀어나온 샤를로트가 알폰소의 손을 붙잡았었다.

-샤를로트? 갑자기 무슨…….

-쉿, 알폰소. 잠깐 남매끼리 이야기하게 놔두자고요.

샤를로트는 그렇게 말하며 손에 낀 반지를 슬쩍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집무실 밖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가, 적절한 시기에 문을 벌컥 열었다.

모든 것은 샤를로트의 손바닥 위에서 움직였다는 뜻이다.

특히, 그녀가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사람은 단연 클로에였다.

“저는…… 어쩌면 과거의 아집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몰라요. 이본느가 죽은 게 당신 잘못도 아닌데. 그냥 원망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정말 어리석어요…….”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알폰소를 더는 미워하지 않겠노라고 말하면서.

“감히 제가 당신의 외척을 자처할 자격은 없지만, 도움이 필요하거나…… 이본느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 언제든 찾아와도 좋아요.”

“……사과는 감사히 받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염치없는 인간은 되지 못합니다.”

알폰소의 정중한 거절에, 클로에가 눈물을 닦아내며 가볍게 웃었다.

“당신이라면 그렇게 말할 거라고, 당신 부인이 그러더군요.”

“……샤를로트가?”

“당신은 제 것이 아닌 책임까지도 전부 끌어안는 사람이라고 하던데요.”

정말이지 고지식하기 짝이 없다며 투덜거린 얘기는 굳이 전하지 않았다.

-살아 보니 고독은 내 노력과는 무관한 일이더군요. 누구에게나 고향 삼을 곳이 필요해요. 하지만 반드시 나고 자라야만 고향이 되는 것은 아니죠.

아무 이유 없이 기댈 수 있는 곳, 내가 어려져도 괜찮은 곳이면 어디든 고향이 될 수 있다.

-베호닉이 알폰소에게 그런 곳이 되길 바라요.

고독을 끌어안고 가기에 우리 삶은 지나치게 기니까.

샤를로트는 그렇게 말하며 느리게 눈을 내리감았다.

어쩌면 클로에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만약 딸을 낳았더라면 그 나이쯤 되었을까.

언제나 차갑고 염세적으로 보이던 얼굴은 그제야 제 나이에 맞게 보였다.

창으로 길게 들어오는 하오의 햇살은 손에 잡힐 듯 선명했으며, 그 아래 눈을 감은 붉은 머리칼의 여자는 여름의 고요한 채도를 닮아 있었으므로.

“……에두아르트 부인은 좋은 사람이더군요. 좋은 아내를 맞게 된 걸 축하해요.”

“여러모로 과분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당신을 몹시 아끼는 것 같던데요. 무슨 사정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신도 좋은 남편으로 보이니, 진심을 주고받다 보면 좋은 부부가 될 테죠.”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클로에는 알폰소의 형식적인 대답도 퍽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를 짓고 떠났다.

르나르가 구금되어 향후의 처분이 묘연한 현재 베호닉을 지킬 사람은 이제 그녀밖에 없었으니 해야 할 일이 적지 않을 터.

또한 초대 베호닉 부인의 목걸이는 머잖아 베호닉으로 돌아왔다.

“이런 일로 사람을 조사할 때 필요한 건 그 사람의 형편이나 사정이 아니라, 인간관계예요.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알아보세요.”

라는 샤를로트의 조언에 따라 용의자였던 조세핀의 직속 하녀 세 명을 조사해 본 결과.

개중 한 명이 르나르와 과거 내연 관계였던 것이 드러났다.

“르나르 베호닉, 그 개자식이 나를 아내로 맞아 주겠다고 하고는 날 무참히 버렸다고요! 그리고는 이 일을 발설하면 베호닉 어디에서도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했어요! 난 그에 대한 복수를 한 것뿐이에요! 제발 선처해 주세요!”

그녀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을 줄줄 읊어대기 시작했다.

정 많은 클로에는 화가 나면서도 차마 매정한 답을 내어놓지는 못했지만.

“세상에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딨어요? 한 번 그런 것도 아니고 암시장에 장물 거래까지 터 가면서 여러 번 해먹었으면서 복수는 무슨 복수.”

샤를로트는 가차 없었다.

“누구에게나 딱한 사정은 있지만, 선택하는 건 결국 개인의 몫이에요. 자의로 범죄를 저지르기로 선택하고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을 용서할 필요는 없어요.”

“……부인 말이 맞아요.”

앞으로 베호닉을 지켜야 할 가주라면 더더욱 매정해질 줄 알아야 한다는 샤를로트의 말에 클로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에두아르트의 눈치를 보느라 하녀가 목걸이를 내다 팔기 전이었던 덕분에, 목걸이는 베호닉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또한 알폰소 역시 베호닉까지 내려온 목적-반지를 찾는 것-을 달성한 데다, 골머리를 썩게 하던 베호닉의 문제까지 해결되었으니.

모든 것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딱, 하나만 빼고.

* * *

“있잖아, 얘들아. 각하 무슨 일 있으셨어?”

세르주의 말에 큼지막한 사내 둘이 나란히 고개를 들었다.

알폰소의 기사, 아르노 조엘과 쟝-자크 로랑이었다.

하필 의복을 정제하던 중이었던 까닭에 훤히 드러난 기사들의 우락부락한 상체가 퍽 사나워 보였지만, 세르주에게는 이젠 익숙한 광경이었다.

개중 바짓단을 묶고 있던 쟝-자크가 입에 문 끈을 뱉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만. 무슨 일이라면 차고 넘치게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야 그렇지.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의 반지가 사라졌을 줄 누가 알았겠냐.”

셔츠를 거꾸로 뒤집어 입었던 아르노가 꿈지럭대며 셔츠를 도로 벗었다.

“뭔가 숨기시는 게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런 류일 줄은 몰랐지.”

“그건 그래……. 미리 말씀해주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세르주가 놀람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모든 사건이 일단락되고 알폰소는 그들에게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샤를로트와는 처음부터 반지를 찾기 위해 협력하기로 한 관계였다는 것 역시.

그들의 관계가 계약 결혼이라는 사실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알려준 셈이다.

“그나저나, 마님은 정말 대단한 분 같습니다. 각하께서도 해결하지 못하신 일을 해내신 것 아닙니까.”

“보통 비범한 인간이 아니신 건 확실하지.”

데솔리에 때부터 알아봤다며, 아르노가 킬킬 웃었다.

샤를로트가 한 일들은 확실히 모두 비범했다.

누가 이런 행보를 짐작이나 했겠는가?

덕분에 에두아르트에 산재한 문제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각하 표정은 왜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지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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