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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65화 (68/122)

클로에는 잠시 들었던 의혹을 전부 떨쳐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잠시 샤를로트의 말에 흔들리긴 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여전했다.

“이본느가 세상을 떠난 이후, 에두아르트 공작은 한 번도 베호닉에 오지 않았어요. 그런 무도한 인간을 내가 어떻게 용납하라는 거죠?”

그러나 샤를로트는 그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태연히 되물었다.

“그럼 당시 그가 성인이 아니었다는 건 알고 있나요?”

“……그, 그건.”

나이를 따져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미성년자라고는 해도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니었을 테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성인도 되지 않은 소년이 홀로 가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터.

“알폰소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장례를 나란히 치러야 했어요. 그리고 나서는 승계 준비를 해야 했고. 승계 직후에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10년간 전쟁터를 다녀와야 했죠.”

그런데 대체 언제 어떻게 짬을 내어 베호닉에 올 수 있었겠는가?

샤를로트의 말에 클로에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핑계일 뿐이에요. 정말로 그가 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한 번쯤 오지 못했겠어요?”

“물론 그렇겠죠.”

알폰소가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고 한들, 정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것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그가 왜 그렇게 해야 하죠?”

“……뭐라고요?”

“외척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날을 세우고 있는데, 그가 왜 베호닉에 와야 하느냐고 물었어요.”

샤를로트의 말에 클로에가 할 말을 잃자,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폰소를 탓하기 전에 당신들의 태도를 먼저 생각해 봐요.”

“……당신 말이 옳아요. 내 태도는 잘못되었을지 모르죠. 하지만 여전히, 나는 에두아르트가 싫어요. 당신 남편, 에두아르트 공작이 좋은 사람이라고는 더더욱 생각지 않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 때문인가요?”

“그래요. 나는 그자를 잘 알아요.”

치가 떨릴 만큼 무감정하고 차가운 인간.

그래서, 다른 사람의 감정은 결함 따위로 치부하던 오만한 남자.

“그자 때문에 이본느가 죽었어요. 그 아들이라고 뭐가 얼마나 다르겠어요?”

“그럼 레이디 베호닉, 당신이 볼 땐 알폰소와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이 같아 보이나요?”

“피가 이어졌으니 당연히-”

“난 혈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샤를로트가 클로에의 말을 뚝 잘랐다.

“오직 당신이 보고 느낀 것만 얘기해요. 알폰소가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 같아 보였나요?”

“……그건, 아니지만.”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 부부를 모두 아는 사람으로서 얘기하자면, 알폰소는 제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처음 봤을 때는 이본느가 남자가 되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닮아 있었으니까.

유난히 긴 속눈썹과 또렷한 눈매, 목련잎처럼 투명한 피부 아래 연하게 도는 혈색까지도 모두 이본느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뿐이었다.

게다가 알폰소는 오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권위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먼 데다, 홀대에도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고 정중하게 굴었다.

만약 에두아르트라는 증오스러운 이름만 없었더라면 ‘어디서 저렇게 반듯한 청년이 났을까’라며 흐뭇해했을 만한 모습이었다.

덕분에 클로에는 내심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아무리 알폰소가 빅터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일 거라고 믿는다지만, 사랑해 마지않은 이본느의 아들을 마냥 외면하기에는 마음이 쓰였으니까.

‘분명 오라버니는 현 에두아르트 공작이 인간말종이나 다름없다고 했었는데…….’

클로에는 수도의 소식을 잘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 르나르를 통해서 듣곤 했다.

그리고 르나르가 전하는 현 에두아르트 공작, 알폰소는 그야말로 권위적이고 오만한 인간이었다.

게다가 부모에 대한 존중도 없어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베호닉에 그림자 한 번 비치지 않는 매정한 인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그게 맞을까?

직접 만나본 알폰소는 르나르가 전하던 것보다 훨씬 반듯해 보이는 인간이었으며, 샤를로트의 말들은 클로에가 그간 쌓아 온 에두아르트에 대한 편견을 근원부터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선입견을 버려 줘요, 레이디 베호닉. 오직 당신이 본 것들만으로 판단해요.”

그리고 내 부탁을 들어줘요.

“나는 더 이상 알폰소가 베호닉의 문제로 괴로워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어요.”

샤를로트의 간곡한 말에 고민하느라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클로에의 미간이 도로 펴졌다.

고민을 끝내서가 아니라, 의아함 때문이었다.

“……에두아르트 공작이, 베호닉 때문에 괴로워한다고요?”

“그래요. 설마 책임이 없다고 할 생각인가요?”

“아니, 그것보다는…… 오빠가 수도로 갔잖아요. 에두아르트에 반감이 있는 건 나와 어머니뿐이고, 오빠는 아닐 텐데.”

그래서 르나르는 이번 기회에 알폰소를 만나 이본느의 이야기를 하고 오겠다며 떠났었다.

-네 말마따나 우리가 계속 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일지 모르지. 하지만 그게 이본느의 유지가 아니냐. 내가 에두아르트 공작과 제대로 이야기해보마. 그도 어머니의 뜻을 존중할 거다.

라고.

“나는 그래서 오빠가 에두아르트 공작과 이야기를 잘 마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클로에는 에두아르트를 싫어할 뿐,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르나르에게 알폰소를 위로하라는 말도 전해 주었다.

-어쨌든 에두아르트에는 이제 어른이 없잖아. 나는…… 아직 이본느의 아들에게 그렇게까지 살갑게 굴 수 없을 것 같아. 하지만 오빠는 에두아르트에 감정이 없으니까, 오빠가 대신 해줘. 가신의 역할이기도 하잖아.

그녀는 그렇게 모진 사람이 아니었고, 자신의 오빠 또한 그러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샤를로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르나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나와 어머니는 사감을 지우지 못하더라도, 오라버니는 에두아르트의 가신이니까…….”

그러니까 자신이 감정을 조금 가지고 있는 것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다는 말을 하려는 찰나, 샤를로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왜, 왜 그러는 거죠?”

“하하, 르나르 베호닉이 에두아르트에 반감이 없단 말이죠?”

“그래요. 오라버니는 에두아르트의 충실한 가신-”

“아하하! 충실한 가신! 아, 그렇죠. 그 말이 맞아요. 하하!”

샤를로트는 눈물까지 닦아내며 웃었다.

‘르나르 베호닉이 충실한 가신이라고?’

죽은 사촌을 이용해서 에두아르트의 권력을 탐내는 그 멍청이가?

그가 제 동생을 어떤 연기로 구워삶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클로에는 르나르의 속셈을 조금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르나르가 일부러 클로에와 에두아르트 사이를 이간질한 것 같았다.

샤를로트가 짚어준 부분들은 그다지 놀라울 것도 없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들이었으니까.

클로에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건 그녀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교묘하게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진실을 알려줄 때가 된 거지.’

샤를로트는 마지막 웃음을 털어내고,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았다.

“아무래도 당신 오라버니가 수도에 와서 뭘 했는지 알려줘야 할 것 같네요.”

그것도 아주 자세하게.

* * *

며칠 뒤.

“그러고 보니 각하, 그 얘기 들으셨습니까?”

불쑥 들려온 이야기에 알폰소가 고개를 들었다.

버석한 시야에 무기를 점검 중인 아르노와 쟝-자크가 보였다.

“이야기라니, 무슨 얘기?”

“저번의 그 도난 사건 말입니다. 그게 처음이 아니었다는데요?”

“처음이 아니었다고? 확실한가?”

“알고 보니 베호닉 부인의 물건들이 여럿 사라져 있었다고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온 참입니다.”

아르노의 설명은 대강 이러했다.

도난 사건이 있었던 날 밤 클로에가 갑자기 하녀장인 나엘을 불러 조세핀의 방을 뒤져 보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조세핀이 그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물건들이 대거 사라졌음이 드러났고, 이 탓에 조세핀의 직속 하녀들이 계속 심문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이 얼추 끝나자 쟝-자크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 큰 사건이 있었는데 여태 우리에게는 들려온 소식이 없다는 겁니까?”

“아무래도 외부인도 있는데 모양새가 썩 좋지 않으니 함구하려 한 모양이던데. 나도 우연히 들었다.”

게다가 사라진 물건 사이에 정말 중요한 물건이 하나 끼어 있었다는 게 관건이었다.

“듣자 하니 무슨 반지……가 사라졌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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