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조세핀의 방을 살펴보겠다며 뛰쳐나가더니 샤를로트의 예상과 한 치 다를 바 없는 결과를 얻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세핀은 노망이 들어 물건의 위치도 자꾸만 헷갈리곤 하는 사람이라 그간 뭐가 사라졌는지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부 값나가는 물건들만 없어졌어요. 대체 이 일을 어쩌면 좋죠?”
“진정하세요, 레이디 베호닉. 직속 하녀들은 심문해 봤나요?”
“물론 했죠. 하지만 셋 중 그 누구도 범인으로 추릴 수가 없었어요. 전부 사정이 딱한 아이들이고,”
클로에의 말에 샤를로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설마 이 상황이 되고도 그들을 신뢰한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죠?”
“그, 그런 게 아니에요. 전부 사정이 좋지 않아서, 누구라도 범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전부 생활수준도 비슷하고, 형편이 좋지 않은 사정도 비슷했다.
특별히 한 명에게로 의심의 바늘을 돌릴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결국 클로에는 혼자 해결해보려는 생각을 깨끗하게 지우고 다시 샤를로트의 치맛자락을 붙들게 되었다.
‘에두아르트 부인은 외부인인데도, 고작 몇 가지 상황 증거만으로 범인을 추려냈어.’
되도록이면 혼자 해결해서 백지 각서 따위는 없었던 일로 만들어 보려 했지만,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샤를로트도 그런 클로에의 심정을 아는지, 슬쩍 눈썹을 들어올렸다.
“나한테 부탁하면 정말로 백지 각서를 무를 수 없게 될 텐데, 그래도 괜찮겠어요?”
클로에는 대답 대신 잠깐 눈을 질끈 감고 손을 꾹 움켜쥐었다.
“……대체 각서에 뭘 적으려고 이러시는 거죠? 이렇게 절 협박해 봐야 얻을 수 있는 건 많지 않아요.”
“그렇겠죠. 베호닉이 그리 대단한 가문도 아니고, 엄청나게 부유한 것도 아니니까요.”
베호닉은 정말 그저 그런 가문 중 하나일 뿐이었다.
에두아르트의 가신 중에서도 특별히 세력이 크거나 뛰어난 가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클로에는 베호닉의 가주도 아니니 그 영향력은 르나르보다도 훨씬 작을 터.
“알고 계신다면, 대체 왜 백지 각서 같은 걸…….”
“에둘러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난 여기에 뭘 찾으러 왔어요.”
샤를로트의 말에 클로에의 낯빛이 일순 굳어졌다.
그녀가 말하는 ‘찾으러 온 것’이 이본느의 반지임을 짐작한 까닭이었다.
그러나 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키면 안 되는 상황이었으므로, 클로에는 애써 태연을 가장했다.
“뭘…… 찾으신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걸 도와드리면 되는 건가요?”
“아, 그렇죠.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고.”
샤를로트가 픽 웃고는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어요. 고민해 봤는데, 그거 하나 찾고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더군요.”
“그, 그럼……?”
설마 반지 외에도 요구할 게 있는 건가?
클로에가 바짝 긴장하며 손을 말아 쥔 순간.
샤를로트가 접힌 종이를 꺼내 클로에의 앞에 내밀었다.
그것은 어제 클로에가 서명한 백지 각서였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어제는 깨끗이 비어 있던 종이에 이제는 줄글이 더해져 있다는 것뿐.
각서에 적힌 내용은 간단했다.
“레이디 베호닉, 알폰소를 그만 미워하세요.”
“대체, 이게 무슨 조건이죠? 내가 언제 에두아르트 공작을…….”
언제 에두아르트 공작을 미워했느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클로에는 차마 뒷말을 뱉을 수가 없었다.
샤를로트의 말대로 클로에가 알폰소를 덮어놓고 껄끄러워하고, 싫어한 것도 사실이니까.
샤를로트는 그런 클로에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느리게 말을 이었다.
“당신이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알고 있어요. 그를 용서하라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건 선대의 일일 뿐이다.
알폰소가 끔찍하다고 써놓은 이본느의 편지를 보고 나서, 샤를로트는 진심으로 부끄러워졌다.
‘나는…… 한때 알폰소를 부러워하기도 했었는데.’
알폰소는 겉으로 보자면 가지지 못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에두아르트라는, 더 올라갈 데가 없는 고귀한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로 태어나 평생을 유복하게 살아 온 일생.
어머니의 얼굴조차 모르고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노하의 찬밥을 먹으며 살아온 샤를로트로서는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삶이었다.
만약 어린 샤를로트에게 퀸시가 손을 뻗어 주지 않았더라면 샤를로트는 노하에서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그녀의 배다른 동기들처럼 노하의 이름을 박탈당하고 길거리로 쫓겨났겠지.
일평생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치열했던 삶이다.
가문에 쓸모가 있음을 증명해야 했고, 그녀가 노하의 이름을 달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러니 자연히 알폰소의 유복함을 질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유복한 가정이었으니 분명 사랑도 많이 받고 자랐겠지.’
형제는 없다고 해도 형제나 다름없는 주느비에브 황가 남매가 있고, 에두아르트의 모두가 알폰소를 진심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은 두말하면 입이 아픈 이야기.
그것은 그 어디에서도, 심지어는 노하에서도 온전히 편치 못했던 샤를로트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리고 샤를로트가 결혼 초기, 알폰소를 그토록 미워한 이유이기도 했다.
‘지금도 생각나네.’
에두아르트 저택에 처음 왔던 날.
부부라기에는 지나치게 삭막한 얼굴로 마주 보았던 그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