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알폰소와 샤를로트는 헤레이스를 나왔다.
에두아르트 공작저로 돌아가는 마차 안.
샤를로트는 알폰소의 손아귀에서 풀려나자마자 화를 냈다.
“왜 나선 거죠, 알폰소? 당신의 도움 따윈 필요 없었어요!”
가만 두었더라면 샤를로트가 어련히 상황을 잘 마무리했을 것이다.
물론 그녀의 ‘잘’은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과 조금 괴리감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당신 날 싫어하잖아요. 어차피 당신도 내가 보석을 훔쳤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날 도둑으로 몰아간 저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주제에……!”
매도나 다름없는 샤를로트의 말에 알폰소는 대답 대신 넥타이를 조금 끌렀다.
“그럼 묻겠습니다, 샤를로트. 보석을 훔쳤습니까?”
“훔치지 않았어요!”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데 무슨 논쟁이 더 필요합니까.”
담담한 태도에 샤를로트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하지만 당신은 내가 결백하다고 믿어서 나선 게 아니잖아요!”
“그건 당신의 결백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하, 그러시겠죠. 내가 당신이 그토록 아끼는 에두아르트의 체면을 깎아먹게 둘 순 없었을 테니까.”
그러자 피곤한 표정으로 눈꺼풀을 내리고 있던 알폰소가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이 부당하게 몰린 일에, 에두아르트의 체면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당신의 결백 여부와 관계없이 나는 언제고 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의 편입니다, 샤를로트.
이어진 말에 샤를로트는 다시 한번 말을 잃었다.
“나는 당신이 잘못을 했다면 함께 머리를 숙일 것이고, 당신이 결백하다면 당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그러니까, 왜요?”
아무도 나를 위해 그렇게 하지 않는데.
하물며 퀸시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퀸시, 나는 결백해. 나는…….
-그러니? 네가 결백하다면 네가 해결하면 될 일이겠구나. 귀찮다면 그냥 묻어두렴. 버러지들에게 쓰는 시간이 아깝잖니.
샤를로트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퀸시가 그녀의 일에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었다.
그녀의 결백을 믿어 주고, 그녀의 억울함을 들어주기를.
그러나 퀸시는 냉정하고 상냥하게 그녀의 결백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네가 무시받지 않는 것 하나뿐이지.
라고.
그런데 왜 당신은 내 일에 나서는 거야.
당신은 나를 싫어하잖아.
나서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분명 이것도 다 위선이겠지…….
“당신은 내 아내고, 에두아르트의 안주인입니다. 내가 당신을 홀로 두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알폰소는 더는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듯, 말을 뱉어 놓고 도로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도 쉽게 믿지 못하고, 모든 친절을 가식으로 여기는 그녀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알폰소의 말이 위선이라고 매도할 수 없었으므로.
헤레이스의 도둑은 금세 잡혔다.
루시가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치료를 받느라 방심한 사이, 그녀의 소지품을 정리하러 들어온 하녀가 목걸이를 찾았던 것이다.
“에두아르트 공작부인,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 만나 주세요.”
엘렌은 제 어머니와 함께 찾아와 울며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샤를로트는 흐느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창문의 커튼을 걷지 않았다.
엘렌의 선물용으로 모아 두었던 물건들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처박았을 뿐.
“마님, 주인님께서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이번에도 벽난로에 넣을까요?”
“미쳤어? 멀쩡한 물건을 왜 태워? 가져와, 전부. 내가 직접 열어볼 거야.”
그리고 알폰소를 대하는 샤를로트의 태도에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계절 하나가 채 변하기도 전의 일이었다.
* * *
‘예전에도 그랬는데.’
시간을 돌아와도 비슷한 일이 생기다니 우연도 참 우습다.
물론 이번에는 샤를로트가 그때처럼 매도당하는 것에 화가 나 하녀의 뺨을 후려치지는 않았다.
그리고 알폰소는 그때보다 훨씬 언짢아하고 있었고.
클로에에게 경고를 날린 직후, 알폰소는 샤를로트의 손을 잡아 제 방으로 데려왔다.
원래라면 부부는 한방을 써야겠지만, 두 사람은 겉으로만 부부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와중이었으니 샤를로트가 잠버릇 핑계를 대서 방을 따로 요청했던 것이다.
덕분에 샤를로트의 방이 엉망이 되어도 복도에서 잘 일은 없으니 잘되었지만.
알폰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줄곧 화가 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인상을 쓰고 있었으니 말이다.
“왜 그런 일을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던 겁니까?”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아니었어요. 더 심하게 나오면 나도 대처했겠죠.”
“그 정도로도 충분히 심합니다. 당신을 멋대로 도둑으로 몰아가지 않았습니까?”
엉망이 된 방과, 그 사이에 덩그러니 서 있는 샤를로트를 보았을 때.
알폰소는 속이 뒤집힌다는 말을 글자 그대로 느꼈다.
물론 그에는 클로에가 저지른 무례에 대한 분노도 존재했다.
하지만 가장 큰 것은, 샤를로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당신이 그렇게 가만히 당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샤를로트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패악을 부린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사교계에 관심 없는 알폰소조차 노하의 악녀를 둘러싼 소문을 적지 않게 들었으니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샤를로트가 가만히 있었던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데솔리에의 일에서 우리가 했던 약속은 유효합니다. 결혼 기간 중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은 삼가 주십시오.
결혼 계약서를 작성한 직후 알폰소가 샤를로트에게 했던 말이다.
어쩌면 그 당부가 샤를로트의 발을 묶은 것은 아닐까.
‘이런 대우를 받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샤를로트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알폰소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다음부터는 그런 매도에 참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니까요. 난 정말 괜찮아요. 오히려 나보다 당신이 더 언짢아 보이네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무고하게 도둑으로 몰렸는데.”
그러자 샤를로트는 조금 놀란 눈을 했다.
“알폰소, 내가 무고하다고 생각해요?”
“아닙니까?”
“아니, 그런 것보다는…… 당연히 의심 정도는 해 볼 줄 알았죠.”
“나와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약속을 어길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은 있습니다.”
신뢰 어린 알폰소의 발언에 샤를로트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마치 잘못을 해놓고 발뺌하는 듯한 표정.
노골적으로 시선을 회피하기까지 하는 모습에, 알폰소도 뭔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샤를로트가 제 입으로 결백하다는 말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설마, 샤를로트.”
“아니,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난 훔치지 않았어요. 정말이에요.”
“그렇다면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겁니까.”
“음, 그러니까……. 도난 사건의 범인이 내가 아니긴 하거든요?”
샤를로트는 조금 멋쩍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레이디 베호닉의 방을 몰래 뒤지긴 했어요.”
“…….”
“훔친 물건이 없으니 딱히 범죄는 아니잖아요?”
알폰소는 대답 대신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떤 의미에서, 샤를로트는 죄책감을 지워내는 데에는 퍽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다.
* * *
“그러니까…… 클로에 베호닉을 조사하려고 그녀의 방을 뒤져 보았다는 겁니까?”
“그래요. 우선 천천히 접근해 볼 생각이었는데 대뜸 방에 들일 줄 누가 알았겠어요.”
샤를로트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후원에서 거짓 눈물로 클로에에게 접근한 이후.
클로에는 샤를로트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차를 대접했다.
우느라 진이 빠졌을 샤를로트를 위로하고, 보다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어느 면으로 보자면 퍽 사려 깊은 행동이지.’
그리고 또한 경계심 없는 행동이기도 했다.
샤를로트라면, 아니, 흔한 수도의 귀족들이었더라면 절대로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테니까.
“대화를 나눠본 끝에 내가 확신한 것이 두 가지 있어요.”
첫 번째는 클로에가 그렇게까지 계산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클로에 베호닉은 분명 에두아르트에 적대적이에요. 하지만 그것과 르나르 베호닉이 주제를 모르고 기어오르는 것은 별개의 일 같더군요.”
클로에가 르나르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