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샤를로트와 알폰소가 처음으로 함께 연회에 참석했던 날이었다.
헤레이스라는 어느 졸부 가문에서 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벌인 연회로, 사실 에두아르트 공작부부인 그들이 이런 연회에 굳이 참석할 필요는 없었다.
단지 샤를로트가 헤레이스의 외동딸인 엘렌을 퍽 좋아했을 뿐.
엘렌은 꾸밈없고 무척 활달한 아가씨였다.
게다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나서, 샤를로트의 옆에서도 기가 죽지 않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고.
“부인께서도 제 생일 연회에 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부인과 좀 더 담소를 나눌 수 있다면 저는 정말 기쁠 거예요!”
모두가 껄끄러워하는 샤를로트에게 서슴없이 이런 초대장을 건넬 정도였다.
우습게도, 샤를로트는 누군가에게 직접 초대장을 받아본 것이 처음이었다.
늘 마지못해 보낸 듯한 초대장만이 하인을 통해 전달될 뿐.
그래서 그녀는 초대에 기쁜 마음으로 응하기로 했다.
“헤레이스 자작가의 연회에 가시겠다고요, 부인?”
“네. 그러면 안 되나요?”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 초대장이 온 것이 없어 여쭈었습니다.”
“그렇겠죠. 엘렌 양이 내게 직접 줬으니까.”
“엘렌 양이 직접? 부인에 대한 친애가 깊은 모양입니다.”
“흥. 알 게 뭐예요. 다녀올 테니 그런 줄 알아요.”
그 말을 끝으로 혼자 다녀오려고 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알폰소가 따라왔다.
연회에 부부동반으로 참석한 건 고작 그 정도 이유였다.
그렇게 참석한 연회는 나쁘지 않았다. 부유한 집안의 연회가 대개 그러하듯 음식은 맛있고, 연주의 질 또한 좋았다.
무엇보다 엘렌이 샤를로트의 방문을 진심으로 반기는 기색이었던 것이 특히나 샤를로트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부인께서 정말 찾아주실 줄은 몰랐어요! 정말 너무 기뻐요. 오셨으니 제가 특별히 생일 선물로 받은 목걸이를 보여드릴게요! 제국 내에 딱 하나밖에 없는 건데, 부인만 보여드리는 거예요!”
엘렌은 직접 샤를로트를 방으로 데려가 순도 높은 핑크 다이아몬드가 박힌 화려한 목걸이를 보여주며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었다.
문제는 한참 이후에 발생했다.
다른 이들과 대화하고 있던 샤를로트에게 엘렌이 잔뜩 굳은 얼굴로 다가와, 이렇게 말했을 때.
“부인. 솔직하게 말씀하세요. 지금 돌려주시면 망신을 드리진 않겠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엘렌 양?”
“하, 제가 기회를 드렸는데도 이렇게 뻔뻔하게 나오시나요? 목걸이 말이에요. 제가 보여드렸던! 그게 사라졌어요. 그 위치를 아는 사람은 부인밖에 없는데!”
아하.
그제야 샤를로트는 엘렌의 말을 이해했다.
말은 장황하지만 요약하자면.
“그러니까, 내가 그걸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이가 없다는 듯 샤를로트의 말이 짧아졌지만 엘렌은 미처 눈치채지 못한 듯 잔뜩 굳은 얼굴로 버럭 소리를 쳤다.
“그래요!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죠? 제가 부인을 믿고 보여드렸는데!”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그때 방 안에 저 하녀도 있었던 건 기억나지 않나요?”
“물론 그렇죠. 하지만 루시는 저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가족이나 다름없는 하녀예요. 루시가 가져갔을 리 없어요!”
“아하……. 그래서 내가 가져갔다고 생각했다는 거군요.”
샤를로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 모습은 꼭 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부인이 범인이라는 건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이 다른 저택에서도 물건을 곧잘 훔치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반신반의했는데, 이런 식으로 제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네요. 당장 내 목걸이를 내놔요!”
“……글세. 나를 그렇게 잘 알고 있었으면 잘 처신했어야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던 부채를 접더니, 손을 들어 그대로 힘껏 휘둘렀다.
짜악!
“이, 이게 무슨.”
샤를로트의 손이 가격한 것은 루시라는 하녀의 뺨이었다.
어찌나 세게 때렸던지, 그 한 번에 루시의 코에서 피가 터져 투둑 흘렀다.
그 모든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던 탓에 모두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정지했다.
단 한 사람, 샤를로트만 빼고.
짜악! 짝!
그녀는 루시의 멱살까지 틀어쥐고 그 뺨을 갈겨 댔다.
샤를로트가 보석 가루가 뿌려진 흰 레이스 장갑을 끼고 있었던 탓에 하녀의 뺨에는 순식간에 생채기가 잔뜩 생겼다.
그 피로 장갑이 더러워져도, 루시의 온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도 그녀는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다시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겁한 엘렌이 그녀를 붙들었다.
“루, 루시한테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보면 몰라요? 벌을 주고 있잖아요.”
“벌이라니요?”
“주인의 물건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벌해야죠. 그 기본적인 것도 모르나요?”
“무, 무슨 소리예요! 당신이 물건을 훔치지만 않았으면!”
“증거 있어? 그깟 정황 말고, 내가 훔쳤다는 확실한 증거.”
“그, 그건.”
엘렌이 말을 잇지 못하자, 샤를로트가 차게 웃었다.
“너는 증거도 없이 생사람을, 그것도 감히 공작부인인 나를 잡았잖아? 그런데 내가 이유 없이 네 하녀를 때리는 건 마음에 안 드나 보지?”
세상 참 편리하게 사네.
“본인이 남의 뺨을 때릴 때는 이유가 없어도 되고, 남이 네 하녀 뺨을 때릴 땐 이유가 필요하다니 말이야.”
샤를로트의 차가운 일갈에 엘렌이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짓씹었을 즈음.
“이게 다 무슨 소란인가요!”
“어머니!”
엘렌의 어머니, 헤레이스 부인과 함께 밖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샤를로트.”
그 인파 속에는 알폰소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피로 물든 하녀의 몰골을 본 헤레이스 부인이 먼저 비명을 질렀다.
“마, 맙소사. 이게 무슨 끔찍한……!”
“어머니,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이 제 목걸이를 훔친 것도 모자라 루시까지 막무가내로 때렸어요!”
“목걸이? 공작부인께서 목걸이를 훔쳤다고? 확실한 거니?”
“공작부인 말고는 목걸이가 어디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요. 확실해요!”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했을 리 없다.
순식간에 기류는 샤를로트에게 불리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 막돼먹은 본성이 사라질 리 없죠.”
“결혼 전에도 유명했잖아요? 걸핏하면 물건을 훔쳐댄다고.”
“공작부인씩이나 되어서 도둑질이라니…… 쯧쯧.”
날 선 수군거림이 샤를로트를 찔러 오기 시작했다.
저 은근한 무시와 경멸. 시시비비를 가려 볼 생각도 없이, 그저 당연하다는 듯 샤를로트가 범인일 거라 단정내리는 수군거림.
샤를로트에게는 숨 쉬듯 익숙한 일이었다.
과거에도 그녀는 몇 번씩 이런 일들을 겪곤 했으니까.
하여 샤를로트는 조금 떫은 입맛으로 생각할 따름이었다.
‘이번에는 3개월을 넘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엘렌 헤레이스. 활달하고 사랑스러운 그녀를 샤를로트는 퍽 마음에 들어 했다.
먼저 다가와 준 것도 고마웠고, 자신은 샤를로트를 둘러싼 악명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해줄 때도 기뻤다.
‘뭐, 입에 발린 말을 해도 결국 이런 꼴이라는 거지…….’
알고 있었는데.
난 대체 뭘 기대하고 생일 연회까지 온 건지.
샤를로트의 차가운 시선이 제 손에 멱살을 잡힌 루시에게로 향했다.
“아, 엘렌 아가씨…… 살려주세요…….”
엘렌의 목걸이를 훔친 주제에 뻔뻔하게 엘렌에게 살려달라며 애원하는 꼴이 우스웠다.
샤를로트가 훔치지 않았으니 결국 범인은 루시일 텐데 말이다.
괘씸한 기분에 샤를로트가 손을 다시 쳐들었을 때였다.
“그만.”
치켜들었던 손이 덥석 잡히고, 샤를로트의 손아귀에 있던 루시가 툭 풀려났다.
“이제 그만두십시오.”
“……알폰소, 이거 놔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헤레이스 부인, 소란을 피운 점 사과드립니다. 하녀의 치료비 전액은 에두아르트에서 부담하겠습니다.”
“치료비뿐인가요? 위로금과, 소동에 대한 배상도-”
“헤레이스에서 내 아내를 멋대로 도둑으로 몰아간 것에 대한 죗값을 함께 따지길 바라는 겁니까?”
“죄, 죗값이라니요? 훔쳤다잖아요! 공작부인이 아니면 훔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는데!”
“얄팍한 정황 증거로 사람을 몰아세우는 것이 언제부터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한 손님에 대한 예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알폰소의 음성이 차게 가라앉았다.
“그 누구도, 내 아내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