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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56화 (58/122)

좀 더 노골적으로 반지를 찾아보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르노를 비롯한 다른 가신들에게는 어디까지나 확인차 이본느의 죽음에 관해 조사하는 것이라 말해두었으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수도에서도 나와 샤를로트가 베호닉으로 향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겠지.’

베호닉 성에서도 수도로 편지가 갔을 테니, 알폰소 역시 가신들이 찾아오거든 굳이 숨기지 말라고 전했다.

그러니 르나르는 늦어도 일주일 이내로 제 영지에 복귀할 터.

‘르나르 베호닉이 오면 최후의 방책밖에는 남지 않는다.’

르나르와 담판을 지어 반지를 받아내는 것.

알폰소가 가장 원치 않은 그림이었다.

그러니 샤를로트가 손을 쓰려면 그 전밖에는 시간이 없는데.

-걱정 말아요. 내가 볼 때는…… 아마 르나르와 대담할 필요까지도 없을 것 같으니까.

샤를로트는 조금 기이하리만치 자신만만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인데, 벌써 상황을 파악했다는 건가?

‘그녀는 늘 어디서 알아냈는지 모를 정보들을 쥐고 있으니…….’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닐 터.

아무래도 우선 베호닉 성으로 돌아가, 계획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샤를로트의 생각을 좀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알폰소는 서편으로 저무는 해를 가만히 응시하다 고개를 돌렸다.

“이만 복귀한다, 아르노.”

“예, 각하.”

아르노가 다른 이들에게도 철수 명령을 내리기 위해 사라지고, 알폰소가 말로 돌아가려던 찰나.

멀리서 황급히 달려오는 이가 있었다.

“각하! 큰일 났습니다!”

“쟝-자크?”

하나로 높게 묶은 저 긴 머리칼은 분명 그였다.

하지만 쟝-자크는 샤를로트의 호위를 위해 붙여 두었을 텐데?

의문은 금세 풀렸다.

“부, 부인께서 도난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습니다!”

* * *

사건의 개요는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레이디 베호닉의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걸이가 사라지기 전, 레이디 베호닉의 직속 하녀가 부인께서 레이디 베호닉의 방을 몰래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샤를로트가 클로에 베호닉의 방에 들어갔을 리가.”

“그게, 레이디 베호닉께서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부인을 방에 들이긴 하셨다고 했습니다. 아마 차를 나눈 정도였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니까 샤를로트가 나는 그 방에 들어간 적이 없다고 발을 뺄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샤를로트가 반드시 범인이리라는 가능성도 없는데, 고작 사용인의 증언만 믿고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을 도둑으로 몰아간다고?”

“그게……. 부인께서 레이디 베호닉의 방에 들어간 시점과 목걸이가 사라진 시점이 거의 일치합니다.”

“환상적이군.”

다른 이였더라면 분명 욕설을 짓씹었을 것이다.

알폰소는 곧장 베호닉 성으로 돌아와, 말에서 내리자마자 고삐를 묶을 틈도 없이 던져 버리고 샤를로트에게로 향했다.

쟝-자크의 보고가 없었더라도 분명 기류가 심상치 않음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으리라.

복도 끝에서부터 웅성거리는 날 선 소음이 알폰소의 귀를 따갑게 했으니 말이다.

호흡을 가라앉히는 것은 알폰소의 오래된 습관이었으나, 그는 제 호흡이 지금 어떤지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머리로는 모든 것이 괜찮았다.

샤를로트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고, 듣자 하니 쟝-자크를 알폰소에게 보내도 괜찮을 만큼 여유가 있었던 것 같았다.

만약 상황이 정말 나빴더라면 쟝-자크는 샤를로트의 옆에 남기를 선택했을 터.

게다가 지난 샤를로트의 행보와 그녀의 악명을 생각한다면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도둑으로 몰아간 사람들일 터인데.

왜 이다지도 마음이 불안한가.

희뿌연 안개 너머 악몽이 엄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알폰소는 안개를 걷어내고자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숨 돌릴 틈도 없이 도착한 샤를로트의 방.

“짐은 전부 확인한 거야?”

“여기도 찾아봐!”

아수라장 속, 성난 얼굴의 하녀들이 서슴없이 물건을 뒤적였다.

덕분에 샤를로트의 짐은 물론이거니와 방마저도 발 디딜 틈 없이 어지러워지고 있었지만, 방 주인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서 있을 뿐.

오히려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클로에 쪽이었다.

그녀는 도저히 화를 주체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샤를로트에게 말했다.

“아직도 발뺌할 생각인가요? 나는 당신을 위로하기까지 했는데!”

“물론 위로에는 깊이 감사드리고 있어요, 레이디 베호닉. 그러니 레이디 베호닉께서 하녀의 말 한마디만 믿고 저를 도둑으로 몰아 이런 일을 벌이셨는데도 항의하지 않고 있는 것이고요.”

샤를로트의 천연덕스러운 대꾸에, 클로에가 결국 참지 못하고 와락 낯을 구겼다.

“이런 가증스러운……!”

클로에가 샤를로트에게 드잡이를 하려 손을 치켜세운 순간.

알폰소는 결국 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샤를로트.”

“아, 알폰소. 왔어요?”

그제야 그의 존재를 눈치챈 이들이 행동을 멈추고 알폰소를 돌아보았다.

모두가 주춤한 가운데 태연한 이는 여전히 샤를로트뿐이었다.

“확인하러 간다던 일은 다 마친 건가요?”

“알아야 할 것들은 전부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알폰소의 잇새가 깊게 맞물렸다가 도로 풀렸다.

“지금 이 상황은 무엇입니까.”

정제되지 않은 노기가 목소리에 섞여 흘러나갔다.

“왜 내 아내의 물건을 당신들이 멋대로 손대고 있는 것이며, 왜 내 아내가 이런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리고 당신은 왜 이런 상황에서도 가만히 있는 거고.

가장 하고 싶었던 뒷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다.

척 보기에도 상당히 화가 난 것 같은 알폰소의 태도에, 클로에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에두아르트 공작. 난 베호닉 성의 안주인이고, 베호닉 성에서 일어난 도난 사건의 범인을 잡으려던 것뿐이에요. 그 누구도 내 권한을 침범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 누구도 베호닉의 권한을 침범할 수 없습니다, 레이디 베호닉. 다만 한 가지 묻겠는데. 사라진 물건은 찾았습니까?”

“그, 그건 아직이지만…… 더 뒤지면 분명 나올 겁니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겁니다.”

알폰소의 목소리가 느리고 단단하게 경고했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이 자리의 모두가 무고한 내 아내를 도둑으로 몰아간 것도 모자라 멋대로 물건을 헤집고 모욕한 죄를 목숨으로 갚아야 할 테니.”

“뭐, 뭐라고요?!”

클로에가 주춤하며 물러났다.

여태 에두아르트 공작은 자신에게 무슨 홀대를 해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 부인에 대한 대우 역시 그리 중하지 않다고 여겼는데.

“베호닉은 에두아르트의 가신 가문이고, 나는 그 어디에서도 가신이 가주 내외의 물건을 함부로 헤집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감히 나서서 치죄하려 들었다는 얘기는 더더욱.”

만약 클로에가 정말로 도난 사건의 범인을 잡고 싶었다면 정식으로 절차를 밟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에두아르트에 품은 반감 때문에 미처 잊고 있었던 사실을 일깨워주자 클로에의 낯빛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그건 맞지만…….”

“이렇게까지 일을 키웠는데 물건을 찾지 못한다면 이 일은 고스란히 레이디 베호닉, 당신 책임이 될 터.”

부디 내 아내가 내릴 처분이 너그럽기를 바라겠습니다.

서늘하게 경고한 알폰소가 샤를로트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

샤를로트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 알폰소의 등과, 망연하게 자신들을 쳐다보는 베호닉 성의 사람들을 번갈아 보다 저도 모르게 픽 웃고 말았다.

‘내 악명을 다 알면서, 내 처분이 너그럽길 바란다니.’

그만한 비아냥거림이 또 있을까.

새롭게 깨닫는 거지만, 알폰소는 확실히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샤를로트가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이유는 단순했다.

‘이 손은 단 한 번도 나를 버리지 않았으니까.’

시간을 돌아와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리하여 하염없이 그리움을 되새기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샤를로트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여전히 기억 속 선명한 목소리가 재생되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의 편입니다, 샤를로트.

-당신은 내 아내고, 에두아르트의 안주인입니다. 내가 당신을 홀로 두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샤를로트가 알폰소의 선물을 더 이상 태우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날의 대화.

이것은, 그녀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신뢰하게 된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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