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에두아르트가 주느비에브 황가의 방계였던 것이 특히 문제가 되었다.
다른 상황이었더라면 아이의 머리 색 등을 보고 어느 쪽인지를 판별했을 텐데.
에두아르트와 주느비에브 황가는 둘 모두 은발이었던 데다, 알폰소는 어머니의 눈동자를 타고났던 것이다.
하지만 황제를 비롯한 모두가 그 소문을 부인했기에 논란은 생각보다 빠르게 종식되었다.
무엇보다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 본인이 이 일을 크게 문제 삼고 싶지 않다며 논란을 덮은 덕분이 컸다.
하지만 한번 생긴 의심이 어디 가겠는가?
소문은 사그라들었어도,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은 아내의 부정과 아들의 출생에 대한 의심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하여 알폰소는 여전히 어렵지 않게 그 애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본느, 제발 아니라고 해. 제발. 당신이 그렇다고 하면 믿을 테니까…….
매달리던 남자와 대답 없이 싸늘하게 상대를 응시하던 여자.
그것은 이본느의 복수였다.
제 의지를 꺾고 멋대로 결혼을 강제한 남편에 대한 복수.
그녀는 일부러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을 의심 속에 빠트리고, 그가 애원하며 강박에 시달리는 꼴을 지켜보았다.
그 증오는 자식인 알폰소에게도 고스란히 대물림되었다.
하여 알폰소가 기억하는 이본느의 모습은 늘 차디찬 무표정과 냉소, 혹은 염세로 이루어져 있었다.
-알폰소, 걱정 말렴. 너는 누가 뭐래도 에두아르트의 아들이란다. 그래서 내가 너를 아끼지 않는 거고.
-너도 커서 고작 네 아비 같은 인간이 될 테지. 그날이 오기 전에 부디 내가 죽길 바랄 뿐이야.
이본느, 그녀는 제 소망대로 죽었다.
남편의 부고를 듣고 서둘러 수도로 가다가 마차 사고로 사망했으니.
그녀가 그토록 급히 수도로 향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도 알폰소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으나,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제 선대에 있었던 이 일련의 일들이 그에게는 지울 수 없는 화인이나 다름없는 일이라는 사실.
그럼에도 한 번도 치부로 여겨본 적은 없는 흉터였다.
‘그래, 분명 그래왔는데.’
샤를로트의 앞에서는 어째서 그토록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건지.
샤를로트에게서 도망치듯 베호닉 성을 나온 현재.
‘그녀에게 제대로 설명했어야 했는데.’
알폰소는 착잡한 투로 마른세수를 했다.
당연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알폰소는 제 치부를 드러내는 것 따위를 두려워하는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적어도 본인은 그렇다고 생각해 왔다.
-알폰소, 괜찮아요?
길길이 날뛰던 조세핀이 붙들려 들어가고, 클로에에게서 문전박대나 다름없는 태도로 머물 방을 안내받은 직후.
문이 닫히자마자 저렇게 물으며 제 손을 붙드는 샤를로트를 보기 전까지는.
“당신이 왜 베호닉을 꺼렸는지 알겠더군요. 이본느라면 분명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의 성함이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왜 당신에게 이렇게 구는지 모르겠네요. 뭐가 됐든 당신이 저지른 일도 아닐 텐데…….”
알폰소는 조금 얼떨떨하게 말을 와르르 쏟아내는 샤를로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평소 시니컬한 만큼 말이 많지 않은 편이었다.
딱 필요한 만큼의 이야기만을 하고, 그 외에는 오히려 말을 아끼는 축에 속했는데.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는 건가?’
샤를로트는 꼭 제가 모욕을 당한 것처럼 오만상을 쓰고 있었다.
덥석 붙들린 손부터 속사포로 늘어놓는 중얼거림까지.
만약 여기 손을 붙들린 이가 알폰소가 아닌 다른 자존심 강한 이였더라면, 분명 그는 조세핀이 그러했듯 길길이 화를 냈을 것이다.
‘나를 동정하는 건가?’
라면서.
그러나 알폰소는 의외로 자존심이 강하지 않은 이였다.
명예를 중시하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에두아르트라는 가문의 명예를 지키려는 것일 뿐.
스스로를 타인보다 월등한 자리에 둔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소슬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아마 그가 동정받는 감각에 익숙지 못한 까닭이었으리라.
당연한 일이다.
세상 그 누가 감히 에두아르트 공작을 동정하려 들겠는가?
그는 세간에서 감히 완벽하다고 칭하는, 고작 노망난 노인의 고함과 중년 여인의 홀대 따위가 흠집 낼 수 없는 인물인데 말이다.
하여 그는 느닷없이 적선받은 기분으로 되물었다.
“……샤를로트. 나를, 걱정하는 겁니까?”
“그럼 걱정이 안 돼요? 면전에서 저런 말을 들었는데?”
“나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듣는다고 누군가 피해를 입는 것도 아니고.”
“당신이 피해를 입잖아요!”
“피해로 여기지 않았고, 또한 당신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퍽도 그렇겠군요. 잊지 말아요. 나는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내기를 한 사람이라고요.”
아, 그 말도 안 되는 내기.
알폰소는 눈을 끔뻑였다.
기실 그는 스스로의 안위에만큼은 모든 말초신경이 괴사한 것처럼 구는 면이 있었으므로.
화제가 자신에게서 내기로 옮겨가고서야 이 문답이 겨우 현실에 발을 붙이는 듯한 느낌이 든 까닭이었다.
“나는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야만 해요. 그러니까 내가 당신을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그렇습니까.”
샤를로트의 논리에 알폰소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대신 되물었다.
“날 행복하게 만든 뒤에는 어떻게 됩니까?”
“내 역할은 끝났으니 떠나야겠죠.”
“그럼 내가 영영 불행하면?”
허공을 보고 있던 알폰소가 샤를로트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당신도 계속 내 곁에 있을 거라는 얘기입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단지 크게 뜬 샤를로트의 눈동자가 서서히 찌푸려들고, 눈썹이 치켜올라갔을 뿐.
“그런……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돼요. 절대로. 가정조차 하지 말아요. 안 돼요.”
“……농담이었습니다.”
샤를로트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는, 알폰소가 정말 농담에 소질이 없다며 투덜거렸다.
하여 그는 거짓말을 정정할 기회를 놓쳐 버렸다.
알폰소는 샤를로트와 대화를 나누는 단 한 순간도 농담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샤를로트는 알폰소의 손을 도로 놓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들은 내가 전부 없애줄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은 걱정 말아요.”
알폰소는 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샤를로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자신의 불행 또한 퍽 달콤한 일처럼 느껴졌던 까닭이다.
‘선대의 일을 불행으로 여겨 본 적 없는데.’
그것은 분명 화인이었고, 지워지지 않는 흉터였다.
여전히 폐부에 공기를 채워 넣듯 익숙하게 부모를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했다.
하지만 그것이 알폰소의 치부고 불행이었느냐고 묻는다면 결코 아니었다.
단지 그가 감내해야 할 문제이고, 지나온 굴곡에 불과했을 뿐.
하여 그는 동시에 샤를로트의 동정이 지나치다고 느꼈다.
어쩌면 불쾌함에 가까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아니, 불쾌함보다는 혼란스러움이다.
‘아니, 그것보다는 더…….’
낯이 뜨겁고 속이 시끄러웠다.
그래서 더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알폰소가 자신의 흉터를 직접 내보이게 된다면, 저 차가운 불 같은 여자는 분명 그를 동정할 터였으므로.
마치 제가 다치기라도 한 것처럼 미간을 찌푸리겠지.
그리고는 괜찮으냐는 말로 알폰소를 낯 뜨겁게 만들 것이다.
그로써 알폰소의 흉터는 그의 치부가 될 터.
‘치부를 내보이는 일은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한순간도 그 흉터가 치부였던 적이 없었기에.
그 누구도 그를 낯 뜨겁게 만들었던 적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을,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가 사실 치부를 내보이는 일을 두려워하는 종자라는 것 역시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을 하고 있군.’
샤를로트가 베호닉에 있는 이상 그녀는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될 텐데.
고작 그녀의 동정이 두려워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니.
한심하다.
‘돌아가거든 샤를로트에게 제대로 말해야겠군.’
알폰소는 스스로에게 짙은 경멸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이, 아르노가 성큼성큼 걸어와 가볍게 묵례했다.
“각하, 말씀하신 조사를 마쳤습니다. 10년 전과 달라진 내용은 없습니다.”
아르노가 보고한 내용은 간결했으나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사고 현장에서 반지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는 거군.’
예상한 대로였다.
이곳에 오면서부터 짐작한 일이었으나, 이로써 명확해졌다.
반지는 마차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베호닉 측에서 의도적으로 반지를 숨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