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쳐댄 노부인의 이름은 조세핀 베호닉.
그리고 조세핀을 막아 세우고, 지금은 자리를 비우고 있는 오빠 르나르를 대신해 샤를로트와 알폰소를 맞이한 여자의 이름은 클로에 베호닉이었다.
“둘 모두 내 어머니, 이본느 라벨리아 에두아르트의 외가 친척입니다.”
조세핀은 이본느의 이모였고, 클로에는 외종사촌.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은 이본느의 친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이본느가 베호닉에서 자라며, 베호닉 가문의 자식처럼 커 온 까닭이었다.
설명을 들은 샤를로트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세핀 부인이 어머니나 다름없었겠군요. 레이디 베호닉과는 자매처럼 지냈을 테고.”
“맞습니다.”
“그럼 에두아르트 때문에 당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건 무슨 말이죠?”
물음에 알폰소는 잠시 낯을 굳히더니, 입을 열었다.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이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알고 있습니까?”
“베호닉에서 지내던 중 마차 사고로 별세했다는 것만 알아요.”
“정확히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가시던 길에 그리 되신 겁니다. 주위의 만류도 뿌리치고 밤중에 달려가시다 마차 사고가 났습니다.”
“그래서…… 두 분의 기일이 비슷하군요.”
“예. 그러니 아마도 조세핀 부인에게는 어머니의 죽음이 내 아버지, 그리고 내 가문 탓으로 보였으리라 짐작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
자신도 이 정도로 길길이 뛰며 화를 낼 줄은 몰랐다며, 알폰소는 설명을 마쳤다.
대화 또한 거기서 끝이 났다.
알폰소는 그 직후 베호닉 성과 주변을 조사하러 나가 보아야 했으므로.
호위를 위해 남겨진 쟝-자크만이 현재 샤를로트의 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쟝-자크를 두고 도망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긴 하지만…….’
현장 조사가 급한 일이기는 하니, 대놓고 지적하기는 애매했다.
베호닉 성에 온 이후.
샤를로트와 알폰소는 가주 대리를 맡고 있는 클로에와 대면해 그들이 이곳까지 오게 된 자초지종을 간단히 설명했다.
주된 내용은 알폰소가 결혼했고, 그리하여 베호닉에 남아 있을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의 유품을 정리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그에 클로에는 기다렸다는 듯 공작부인의 물건을 한 상자 가져다주었다.
-이본느의 물건은 이게 전부예요. 장례 직후 정리했으니 거기에 빠진 게 있다면, 찾을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예요. 분명 잃어버렸을 테니까.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상자 속에 반지는 없었다.
하여 알폰소는 우선 주변 상황을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애초부터 그는 클로에를 통해 반지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물론 나도 그런 기대는 하지 않았어.’
하지만 르나르가 없으니 방해하는 이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문전박대라니.
심지어 베호닉 사람들의 태도에는 조금 의아한 면까지 있었다.
‘알폰소의 설명만으로는 이 상황이 충분히 납득이 가지 않아.’
사고는 어디까지나 사고일 뿐.
나이가 들어 노망이 든 노부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제 중년의 나이로 보이는 클로에까지 사고 하나 때문에 에두아르트에 반감을 가질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짐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르나르가 의도적으로 에두아르트와 베호닉의 인물들 사이를 이간질했을 가능성.
‘하지만 르나르가 뭐 하러 조세핀 부인까지 이간질을 했겠어?’
클로에라면 몰라도, 이건 썩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다른 하나.
‘알폰소가 말하지 않은 뭔가가 더 있을 가능성인데…….’
샤를로트는 클로에의 반응을 떠올려 보았다.
-나는 에두아르트와는 더 할 이야기가 없어요. 되도록 오라버니가 돌아오기 전에 가 주었으면 좋겠군요.
그녀는 노골적으로 마뜩잖다는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당연히,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에 대해서도 쉽게 알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른 상황이었더라면 샤를로트 역시 굳이 상대하려 들지 않았겠지만.
‘클로에 베호닉. 아무래도 그녀가 핵심 인물로 보인다.’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부인, 이본느와 절친한 관계였던 데다 르나르와도 남매 관계에 있는 사람.
만약 반지의 행방에 대해 아는 이가 있다면 그녀가 유력했다.
하지만 그녀가 에두아르트에 반감을 품은 이유를 알아야 해결할 수도 있을 터.
샤를로트는 잠시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그럼 어쩔 수 없겠군.’
내가 잘하는 방법을 쓸 수밖에.
* * *
클로에 베호닉.
레이디 베호닉이라고 더 자주 불리는 그녀는 착잡한 마음을 안고 베호닉 성의 후원을 거닐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원인은 베호닉 성에 느닷없이 등장한 손님이었다.
‘에두아르트에서 사람이 온 것도 모자라, 에두아르트 공작 부부가 오다니.’
처음 봤을 때는 믿지 못할 뻔했다.
에두아르트 공작 한 명이 왔다고 해도 놀랐을 텐데, 부부라니?
‘분명 르나르가 에두아르트 공작의 결혼에 관해 논의해야 한다며 수도로 갔는데.’
특히 그 ‘반지’에 대한 이야기도 하겠다고 했던 터라, 떠나기 전에 클로에와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걱정 마라, 클로에. 이본느에 관한 일은 반드시 공작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어 볼 테니.
그래, 분명 그랬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르나르는 소식도 없고, 에두아르트 공작 부부는 여기에 있는 걸까?
‘이본느의 아들…… 많이 컸던데.’
제대로 만나본 것은 이번이 처음임에도 이본느의 아들임을 몰라볼 수가 없었다.
이본느의 뛰어난 미색을 그대로 물려받은 알폰소는 목련잎 같던 이본느의 흰 뺨마저 그대로 닮아 있었으니까.
하여 처음 알폰소를 만났을 때, 클로에는 자신이 취해야 할 냉담한 태도조차 잊어버리고 반가움에 손을 덥석 잡을 뻔했다.
‘미쳤지, 내가. 아무리 이본느를 닮았다고는 해도.’
이래서 만나고 싶지 않았던 건데.
알폰소를 떠올리니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특히 클로에에게는 이본느가 남긴 것이 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렇게 착잡한 심정을 안고 정원을 지나는 와중.
‘……이게 무슨 소리지?’
불현듯 이상한 소리가 클로에의 귀에 들어왔다.
때아닌 흐느끼는 소리가 정원 한구석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흑, 흐윽…….”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가자, 붉은 머리칼이 보였다.
클로에도 아는 인물이었다.
“공작……부인?”
클로에가 반신반의하며 조심스럽게 상대를 부르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우느라 붉게 달아오른 얼굴은 첫인상보다 훨씬 처량해 보였으나 분명 클로에가 기억하는 그녀가 맞았다.
알폰소의 아내라고 했던 그 여자.
현 에두아르트 공작부인.
그녀는 클로에를 보고는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져서는, 허둥지둥 눈물을 닦았다.
“아, 죄, 죄송해요. 못 볼 꼴을 보였네요…….”
“괜찮아요. 대체 무슨 일인 거죠? 혹 사용인들이 대접을 소홀히 했나요?”
“그런 게 아니에요. 베호닉의 환대에는 매우 감사드리고 있답니다. 실은, 제가 원치 않는 결혼을 해서…… 결혼생활이 답답해서 그만…….”
“뭐, 뭐라고요?”
원치 않는 결혼.
그 말에 와락 낯을 구긴 클로에가 샤를로트를 덥석 붙들었다.
“에두아르트 공작, 그자가 설마 당신이 싫다는데 강제로 결혼까지 끌고 갔단 말인가요? 정말 무도하기 그지없군요! 어떻게 부자가 전부 원치 않는다는 이를 강제로……!”
“……뭐라고요?”
그러나 이번에 낯을 구긴 것은 샤를로트 쪽이었다.
그녀는 제 귀를 의심하며 반문했다.
설마.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님이…… 부인께 결혼을 강요하신 건가요?”
클로에와 조세핀이 이토록 에두아르트에 반감을 드러내는 이유.
그 핵심을 찾아낸 순간이었다.
* * *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 부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결혼생활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사이였으니 당연했다.
이본느는 결혼을 원치 않았으나, 그녀에게 반한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이 권력을 이용해 강압적으로 그녀를 제 아내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에 이본느는 반발하며 결혼 후, 노골적으로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고향인 베호닉에서 지내거나, 친한 친구였던 황후의 도움을 받아 황궁에서 지내는 등.
이런 와중에 이본느가 임신하고 아이를 낳게 되자,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유일한 아이, 알폰소.
황가 핏줄의 상징이라는 은발을 타고난 그의 혈통을 두고 의혹이 불거졌던 것이다.
바로 그가 에두아르트 공작이 아닌, 황제의 아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