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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47화 (49/122)

결혼하고 나면 좀 더 자주 보게 될 풍경일까.

샤를로트는 옷도 채 갈아입지 않아 간단한 실내복 차림이었다.

창가에 서 있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아마 창밖을 구경하고 있었던지.

기억하는 언젠가부터 늘 자신만이 존재했던 에두아르트의 새벽에 다른 이가 있다는 것이 소슬하게 다가왔다.

결혼을 한다는 건 언젠가 이에 익숙해진다는 뜻이겠지.

알폰소는 샤를로트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시간이 이른데, 벌써 일어났습니까? 혹 잠자리가 불편했던 건.”

“그런 건 아니에요. 예전 꿈을 꿔서 일찍 눈이 뜨였을 뿐이니 신경 쓰지 말아요. 무엇보다 생각할 것도 있었고.”

“생각할 것?”

알폰소의 반문에 샤를로트는 턱을 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요.”

“결론은 나왔습니까?”

“뭐, 당장 해야 할 일은 그리 복잡하지 않아요. 결혼을 하고, 반지를 다시 찾아오고.”

그리고 르나르 베호닉이 괜한 짓을 하기 전에 밟아줘야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야.’

이건 어디까지나 당장 해야 할 일의 목록일 뿐.

중요한 건 알폰소가 근심할 만한 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바로, 샤를로트가 현재 가출 상태라는 점.

“이런 말 하면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나 집을 나왔거든요.”

“……가출을 했다는 겁니까?”

“그렇게도 표현할 수 있죠. 오빠랑 의견 다툼이 좀 있었거든요. 오빠는 내가 결혼하길 원치 않아서.”

“당신의 오빠라면, 퀸시 노하 말입니까?”

“그렇죠.”

물론 도미닉은 결혼을 원하는 입장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미닉과 같은 축에 섰다간 그가 알폰소를 악용하려 들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현재 노하의 실권은 거의 퀸시에게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기도 하고.

“퀸시는 정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결혼 준비를 하느라 미적거린다면 분명 방해하려 들겠죠.”

“프레시오 건처럼 말입니까.”

“그래요.”

그리고 차마 말하진 못했지만 아델린에게 독을 먹이기도 했다.

다음 차례가 알폰소가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알폰소에게 먹이는 독이 아델린에게 먹였던 것처럼 약한 독일 거라고는 더더욱.

‘퀸시는 이미 알폰소를 독살한 전적이 있어.’

그러니 이 상황에서 결혼을 하겠다고 시간을 끄는 것은 퀸시에게 알폰소를 죽여 달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

“그래서 생각해 봤어요. 어떻게 해야 퀸시의 방해를 받지 않고, 또 반지를 자연스럽게 되찾아 올 수 있을까.”

“그럼 좋은 생각은 났습니까?”

“그럼요.”

마침 꿈에 나온 것이 좋은 발상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소피아가 황궁 파티에서 깜짝 결혼 발표를 하고 연인과 도망쳤다고?

-예! 황제 폐하께서 격노하시어 황녀 전하를 찾으라는 황명을 전역에 내린 모양입니다. 황녀 전하의 연인 쪽은 황족의 명예를 더럽힌 죄로 죽여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아시겠지만, 황녀 전하와 필리프 공왕의 혼담이 오가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랬지. 소피아는 싫다고 했고……. 그 이유가 연인이 있어서였던가. 아무래도 폐하를 만나 뵈어야겠군. 그리고 소피아와 긴히 연락을 취해야 할 것 같으니 아르노에게 서둘러 수색대를 편성하라 전해라.

과거 소피아가 제국과 이웃한 공국의 왕과 혼담이 오가던 중, 깜짝 결혼 발표를 하고 도망친 적이 있었다.

사실 말이 결혼 발표지, 사실은 아주 무례한 방법으로 혼담 상대를 걷어찬 것이나 다름없었다.

외교는 당연히 엉망이 되었고 황제인 브누아가 진노한 것은 당연한 수순.

소피아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결혼을 허락해줄 때까지 숨어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

그야말로 말괄량이 황녀다운 행보가 아닐 수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그 일이 문득 꿈에 나온 것이다.

그리고 샤를로트는 그 철부지 황녀의 행동에서 괜찮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바로.

“우리, 깜짝 결혼 발표를 하는 거예요.”

샤를로트의 말에, 알폰소가 의아한 듯 눈을 깜빡였다.

“깜짝…… 결혼 발표?”

“그래요. 어차피 얼마 뒤 건국제니까, 그때 발표하는 거죠.”

“그때까지 우리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걸 모두에게 숨기자는 겁니까?”

“아뇨, 어차피 모두의 눈을 숨길 수는 없어요. 특히나 퀸시는 더더욱.”

아마 샤를로트가 에두아르트 공작저에 온 순간 그 사실이 퀸시의 귀로 들어갔을 것이다.

게다가 가신들도 에두아르트의 사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테니, 다들 알폰소와 샤를로트가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은 금세 알아차릴 터다.

“그러니까 말이 깜짝 결혼 발표지, 결국 허점을 찌르자는 거예요.”

“어떻게 말입니까?”

알폰소의 물음에 샤를로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려 사악하게 웃었다.

“제 발에 제가 넘어지게 해 줘야죠.”

* * *

“아가씨, 정말 에두아르트에 계실 생각이신가요?”

“그래. 혹 퀸시에게 말을 전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 실비아.”

샤를로트의 말에 그녀의 충직한 하녀, 실비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아가씨께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제겐 아가씨밖에 없는 것, 아시잖아요.”

물론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실비아는 고개를 숙이는 척하며 슬쩍 샤를로트의 눈치를 살폈다.

샤를로트가 에두아르트에 머물게 된 지 이틀째.

본디 노하의 사용인이었던 실비아는 제 주인을 따라간다는 명목으로 에두아르트로 왔다.

샤를로트 본인이 에두아르트에 머물고 있노라는 편지를 노하로 보냈기 때문에 굳이 핑계까지는 필요 없었다.

‘주인님께서 많이 화가 나신 것 같았지.’

실비아는 어릴 때부터 샤를로트를 모셔 온 그녀의 심복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퀸시가 샤를로트에게 붙여 놓은 감시역이기도 했다.

물론 샤를로트는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겠지만.

실비아가 에두아르트로 오게 된 것 또한 퀸시의 명령 때문이었다.

-에두아르트로 가라, 실비아. 가서 평소처럼 샤를로트의 수족으로 지내. 그리고 동태를 빠짐없이 내게 보고해라.

-아가씨를 모셔오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일단은, 그래. 당장은 아버지 뜻을 거스를 수 없으니.

샤를로트가 에두아르트에 머물고 있다는 편지를 받고 도미닉은 크게 기뻐했다.

-믿고 있었던 보람이 있군! 역시 내 딸이다!

샤를로트에게 분노했던 것은 잊고 금세 흐뭇한 얼굴을 했다.

그녀가 에두아르트 공작, 알폰소와 당장 결혼을 논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까워졌다는 이야기이니 기뻐하지 않을 수 있나.

결혼만 잘 이루어진다면 노하에는 다시없을 튼튼한 연줄이 생기는 셈이니 말이다.

하지만 덕분에 퀸시는 더 이상 샤를로트의 결혼을 공개적으로 방해하려 들 수 없게 되었다.

샤를로트를 노하로 데려오겠다고 하는 것은 더더욱.

-샤를로트는 멍청하지 않다. 고작 사랑 놀음 따위에 나를, 그리고 노하를 등지려 들 리 없지. 아마 무슨 생각이 있을 거다.

-하지만 주인님, 저는 아가씨가 정말로 에두아르트 공작과 결혼하시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실비아가 눈치를 보며 한 물음에, 퀸시는 오래 침묵했다.

그리고는 아주 떫은 것을 삼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결혼은 대수가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애가 변했느냐지. 샤를로트는 나를 등질 수 없는 아이다. 내가 그렇게 키웠으니까.

그런데 그런 샤를로트가 고작 사랑 때문에 퀸시를 등지고, 노하를 버린다면.

-그때는 내가 잘못 키웠다는 뜻일 테니, 데려와서 처음부터 다시 교육해야겠지.

실비아가 퀸시의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뜻은 명료했다.

샤를로트가 멋대로 결혼을 하려 드는지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실비아의 예상대로 샤를로트가 정말 퀸시를 배반하고 에두아르트와 결혼하려 한다면 막아야 하니까.

다행히 샤를로트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가 있으니까 마음이 놓이네. 알폰소에게는 말을 전해 둘 테니 너도 편하게 지내.”

“알겠습니다, 아가씨. 그럼 언제까지 여기 머무실 생각이신가요? 아무리 친분이 있다 한들 너무 오래 머무는 것은,”

“무슨 소리야? 결혼할 건데. 내가 친분 따위로 다른 사람 집에 머물 사람으로 보여?”

맙소사.

“난 이제 노하의 사람이 아니야.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이 될 사람이지.”

“그, 그러면…….”

“결혼은 곧 발표할 거야. 일이 이렇게 되어서 유감스럽지만, 퀸시도 이해하겠지.”

실비아의 우려가 적중했다.

샤를로트는 변했다. 그리고, 노하를 등지고 에두아르트 공작과 결혼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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