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46화 (48/122)

샤를로트는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 재깍 대답을 내어놓았다. 

“그건 우연이었어요. 노하에는 많은 정보가 있고, 당신 어머니의 초상화를 볼 기회도 있었죠.”

“초상화에 반지가 그리 세밀하게 그려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에두아르트의 인장이 박힌 반지잖아요. 난 눈에 익은 대로 봤을 뿐이에요. 믿지 않는다면 별수 없군요.”

적당한 핑계와 적당한 발뺌.

샤를로트의 대답은 마치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나왔다.

그녀에게 이 정도 거짓말은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으니 놀라울 것도 없다.

하여 알폰소는 샤를로트를 추궁하는 대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당신이 그렇다고 한다면 믿겠습니다. 다음 질문에는 조금 더 성실히 대답해 주길 기대하겠습니다.”

“난 늘 성실히 대답했어요.”

“이번에도 부디 그러십시오.”

알폰소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샤를로트.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대답을 듣지 못했지.’

알폰소는 무기질적으로 상념을 마쳤다.

엄밀히 말하자면 샤를로트가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은 아니었다.

단지 대답을 회피했을 뿐.

-이것만큼은 알려줄 수 없어요. 추문을 만들 일은 없을 테니 그 부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라는 대답으로.

알폰소는 조금 더 추궁해 보려 했으나, 마침 공교롭게도 샤를로트가 머물 방의 준비가 끝났다는 소식을 전하러 집사가 들어온 까닭에 대화가 중단되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바로 그 사실이 알폰소가 시간이 늦도록 상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내가 그녀를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그의 앞에는 아델린이 반송한 반지의 제작 의뢰서가 놓여 있었다.

개중에서도 알폰소가 펼쳐 놓고 있는 것은 반지의 도안.

알폰소가 직접 제시한 방향대로 제작된 도안은 에두아르트의 인장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반지의 도안이 실제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의 반지와 다르게 생겼다는 점.

‘어차피 직접 보고 똑같이 따라 만드는 게 아닌 이상, 가품은 진품과 동일할 수 없다.’

또한 진품과 최대한 유사하게 가품을 만들 경우, 하나뿐이어야 하는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의 반지가 두 개가 되는 셈.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악용될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럴 바에는 아예 모양이 다른 반지를 하나 만드는 게 현명하다.’

비슷하지만 다르게.

그래야 르나르 베호닉이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의 반지를 들고 와 진품이라고 주장하더라도 논란을 쉽게 잠재울 수 있을 터였다.

그가 주장하는 것과 아예 다른 모양의 반지를 알폰소가 진품이라고 꺼내 온다면, 당연히 사람들은 알폰소의 말을 믿을 테니 말이다.

‘전통을 깨려면 새로운 걸 가져오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니 알폰소가 제작을 의뢰한 이 반지의 도안은 여태 그 누구에게도 공개된 적이 없는 반지인 셈인데.

-반지의 정체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건 우연이었어요. 노하에는 많은 정보가 있고, 당신 어머니의 초상화를 볼 기회도 있었죠.

-초상화에 반지가 그리 세밀하게 그려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에두아르트의 인장이 박힌 반지잖아요. 난 눈에 익은 대로 봤을 뿐이에요. 믿지 않는다면 별수 없군요.

샤를로트는 분명 그 반지를 초상화에서 보고 알았다고 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하여간 거짓을 말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지.’

처음부터 제대로 대답해 줄 거라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 그리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었다.

알폰소를 의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다음 구간이었다.

샤를로트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피한 것.

‘반지에 대한 것처럼 거짓을 말하면 될 텐데.’

왜 그러지 않은 거지?

알폰소가 제작 의뢰서 옆에 놓인 또 다른 서류를 집어 들었다.

샤를로트의 뒷조사를 한 결과물이었다.

‘인간관계는 화려하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은 전무.’

연인은 물론이거니와, 동성의 친구들도 없다.

샤를로트가 사람들과 담을 쌓고 지내는 까닭은 아니었다.

그녀가 사교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만큼, 그녀는 많은 이들을 곁에 두었었다.

단지.

‘친하게 지낸 이들이 삼 개월을 넘지 못한다는 내용이 있군.’

백 일이 채 되지 않아 늘 관계가 파탄에 이르러서 문제일 뿐.

그것도 대부분 샤를로트가 패악을 부려서 관계가 틀어졌다는 이야기였다.

하여 샤를로트가 가깝다고 할 만한 인간관계는 오직 하나.

‘퀸시 노하.’

노하의 남매 사이가 각별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이란 제 오빠인 건가?’

사랑이라는 게 꼭 연인 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게 아니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가족애도 사랑이고, 특히나 샤를로트는 가문에 헌신적이라는 내용이 보고서에 덧붙여져 있었으니까.

보고서를 읽을수록 알폰소의 의혹은 확신이 되어갔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는 가정이 꽤 그럴싸해 보였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꽤 애틋하게 말했었지.’

단순히 연인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보여준 것은 그보다 훨씬 깊고 소중하며, 애틋한 감정에 가까웠다.

성애적이라기보다는, 헌신적인 순애로 보였다고 해야 할까.

더더욱 그녀가 말하는 ‘사랑’이 연인이 아닌 가족에 대한 것일 확률이 올라간다.

‘물론 퀸시 노하는 결코 좋은 사람으로 보이진 않지만.’

평가야 주관적인 법이고.

남매 사이가 좋다면 아끼는 여동생에게는 충분히 좋은 사람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녀가 결혼을 피해 가족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면 내 계약 제안을 거절한 것도 이해는 간다.’

보고서를 덮으며, 알폰소는 확신했다.

퀸시 노하가 바로 샤를로트가 말하는 사랑의 주인이라고.

‘그렇다고는 해도 내 행복은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곱씹을수록 묘한 기분이었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이 썩 취향이 아니기에 그런 건지.

‘도무지 의중을 알 수가 없으니.’

차라리 모든 것을 솔직하게 얘기했다면 그녀를 신뢰하고 가까이 여길 수 있었을 텐데.

그녀가 내뱉는 거짓들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알폰소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입고 있던 옷의 단추를 하나씩 잠그기 시작했다.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시각에 시작되는 알폰소의 일과는 늘 같았다.

몸을 씻고 집사가 꺼내둔 옷을 입는 것.

툭, 툭. 고요를 파고드는 작은 소음을 따라 이제는 퍽 익숙해진 샤를로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베호닉에 대한 것도, 반지에 대한 것도 너무 걱정 말아요.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요. 그러니까 당신은 고민거리가 뭔지나 생각해 봐요.

지금 제 가장 큰 고민거리가 그녀 본인이라는 걸 샤를로트가 과연 알까.

셔츠의 단추를 세 개째 채울 즈음 알폰소의 손이 우뚝 멈추었다.

눈앞의 거울 속, 그가 입고 있는 셔츠가 문득 눈에 들어온 탓이었다.

‘……조금 고리타분해 보이지 않나?’

에두아르트 공작저의 집사, 레안드로는 퇴직을 앞두고 있는 노인이었으니 그의 취향이 결코 젊을 리 없었다.

몸에 꼭 맞는, 조금 답답해 보일 만큼 고지식한 알폰소의 의상은 모두 그의 작품이었다.

한 번도 의상으로 고민해 본 적 없던 남자는 거울 앞에서 잠깐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옷장을 열어 평소와는 다른 셔츠를 꺼내들었다.

셔츠의 커프스 부분이 손목에서부터 길게 팔을 감싸고, 그 위로는 조금 여유 있게 제작되어 팔선을 더욱 날렵하게 만들어 주는 디자인의 비숍 소매 셔츠.

유행과 의상에 민감한 루드빅이 종종 입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알폰소는 고민 끝에 셔츠를 갈아입었다.

‘이편이 나은가?’

왠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제 눈에는 다 비슷비슷하게만 보이는 것도 사실인지라, 알폰소는 고민 끝에 인상을 쓰며 방을 나섰다.

메이드들도 거의 일어나지 않은 시각이라, 고요한 저택의 층계를 내려가는 걸음이 사뭇 거칠었다.

아침부터 저답지 않은 짓거리를 했더니 영 거슬리고 언짢았던 것이다.

결국 1층의 홀로 내려온 알폰소는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말았다.

‘언제부터 옷차림에 신경 썼다고 이러는지.’

괜히 신경 쓰여서 갈아입었다고 하면 아르노가 또 배를 잡고 웃겠군.

그러기 전에 그냥 도로 갈아입는 게 낫겠다.

‘어차피 일어난 이도 없으니…….’

알폰소가 도로 층계를 올라가기 위해 몸을 틀려는 순간.

“어? 알폰소. 일찍 나왔네요.”

옆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른 아침 여명을 등진 붉은 머리칼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녀가 짓고 있는 옅은 미소도.

“좋은 아침이에요.”

정말이지, 낯선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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