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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44화 (46/122)

“공작부인의 반지는 에두아르트 가의 세 가지 상징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에두아르트의 가주가 아닌 공작부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는 물건이기도 했다.

그것은 가주에게만 권력이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대로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이 스스로의 권리를 행사할 때 쓰였다.

“권리를 행사할 때 쓰는 물건이라면 단순한 상징은 아니겠군요.”

“에두아르트의 직인이 되기도 하는 반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정교한 세공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경우에 따라서는 모양을 바꾸어 밀랍에 에두아르트의 인장을 찍어내는 데 쓰인다.

“가주의 반지와 한 쌍을 이루는 물건으로, 한 쌍이 모두 온전히 다음 대로 전해져야만 승계가 마무리되었다고 봅니다. 당연히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반지를 전달받은 이들뿐입니다.”

“고전적인 방식이군요. 밀랍 인장 반지라니.”

유서 깊고 명망 높은 에두아르트이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샤를로트는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전혀 몰랐어.’

알폰소가 끼고 다니던 것이 가주의 반지라는 사실 정도는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징적인 물건으로만 생각했을 뿐, 그 정체까지는 알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다음 대 공작부인에게 전해진다는 그 반지가 어떤 의미인지는 더더욱.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 대체 왜 없어진 거죠? 르나르 베호닉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거고요?”

“간단합니다. 선대 공작부인의 반지가 에두아르트에 없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이가 그이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전말은 간단했다.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부인, 그녀는 결혼 이후 고향인 베호닉에서 지내길 좋아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마차 사고로 숨을 거둔 곳 역시 베호닉이었다.

그때 사고를 수습했던 베호닉에게 반지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여태까지는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마차 사고 당시 사라졌는지, 아니면 르나르 베호닉의 손에 들어갔는지. 하지만-”

“베호닉의 편지로 확신하게 됐군요.”

“맞습니다.”

만약 베호닉이 소실된 반지에 대해 알지 못했더라면 그런 대담한 편지는 감히 쓸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 확신은 얼마 전 르나르가 들이닥쳤을 때 반지를 콕 집어 언급한 것으로 더욱 견고해졌다.

‘이제 알겠군.’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이 죽은 지 십여 년도 더 지났다.

‘그때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이 죽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공작부인까지 죽었던 탓에 온 수도가 시끄러웠지.’

매일같이 신문에 그 이야기가 올라왔으니 말이다.

덕분에 샤를로트 또한 이 다음 전개를 유추할 수 있었다.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이 사고사하기 전에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 쪽이 죽었으니.’

당시 가주석은 공석이었을 터.

문제는 선대 공작부인의 반지의 정체라는 게 기밀이라는 점이었다.

에두아르트에서는 연이은 가주 부부의 죽음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테고.

반지에 대해 아는 이가 없으니 회수할 길은 더더욱 요원해질 터.

‘게다가 그때는 알폰소가 성인도 아니었지.’

그래서 가주직을 곧바로 승계할 수도 없었다.

성인이 되어 형식적으로 공작위를 승계한 직후에는 브누아의 명령에 따라 10년간 전쟁터를 돌았고, 그렇게 현재에 이르게 된 셈.

“수도로 복귀한 뒤 승계 작업을 마무리하고, 공작부인의 반지가 없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 소재지를 얼추 눈치채고 다시 조사를 해보았지만…….”

“이미 베호닉 쪽에서 손에 넣은 뒤였겠군요.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부인과 긴밀한 사이였으니 반지를 발견했을 때 알아볼 수도 있었을 테고요.”

알폰소는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했습니다. 내가 직접 행동하면 너무 눈에 띄니.”

“내가 대신 움직여서 반지를 되찾아주기를 바랐던 거군요. 그냥 두면 베호닉이 너무 설쳐댈 테니까요.”

“아마도 르나르 베호닉은 그 반지를 이용해 에두아르트의 권력을 얻어 보려는 심산일 겁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죠. 그런 인간들 속셈이야.”

불 보듯 뻔했다.

“에두아르트의 약점을 잡았으니 이걸 이용해서 어떻게든 한몫 크게 잡아 볼 생각이겠죠. 이것만 있으면 에두아르트는 꼼짝도 못 할 줄 알고. 이미 르나르 베호닉은 에두아르트의 실권자가 된 스스로를 매일 꿈에서 그리고 있을걸요?”

“……설명이 묘하게 자세한 건 기분 탓입니까?”

“그런 인간들은 틀에 찍어낸 듯 비슷하게 생겨서 말이에요.”

약점 하나 잡았다고 목줄이라도 쥔 줄 아는 인간들이라면 아주 이골이 나게 잘 알고 있었다.

보통 악당은 선역을 많이 상대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악당이 상대하는 건 그와 같은 악당인 경우가 훨씬 허다한 터라.

‘예전에 자주 써먹었었지.’

샤를로트가 파놓은 함정인 줄도 모르고 노하의 약점을 잡았다며 기세등등했다가, 함정에 빠졌다는 걸 깨닫고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꼴을 자주 봤었다.

“그런 인간들 속내를 들여다보는 건 어렵지 않아요. 정말 어려운 건…….”

당신처럼 정직하고 곧은 사람 쪽이지.

샤를로트는 뒷말을 잇는 대신 잠시 알폰소를 바라보았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아무튼. 이거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잖아요. 내가 거절했더라도 어떻게든 매달렸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베호닉이 저렇게 나오는 이상 에두아르트에서 공작부인의 반지를 잃어버렸다는 게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일 텐데…….”

대체 과거의 알폰소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한 거지?

의문은 금세 풀렸다.

“다시 말하지만 그리 필수적인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반지야 새로 만들면 되니 말입니다.”

그것도 아주 의외인 쪽으로.

알폰소의 입에서 태연하게 가품을 만들어서 다른 이들을 속이겠다는 말이 나오다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고지식한 알폰소의 입에서?

샤를로트는 경악이 가시지 않은 낯으로 입을 열었다.

“……아델린한테 설계도를 받았을 때부터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로 가품을 만들 생각이었어요? 전통은 어디다 팔아먹고요?”

“전통이 중요하다 한들 현재를 위협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반지를 소지할 자에게만 전해지는 물건이었으니, 지금 다시 만들어 전통을 이어간다 한들 큰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아니, 맞는 얘기긴 한데요.”

“또한 나는 에두아르트의 가주이니, 만약 반지가 가품이라며 논란이 일더라도 내 말이 더 신빙성을 얻을 겁니다. 그다지 어려운 논쟁이 되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베호닉도 뭔가 생각이 있지 않겠어요? 그 논란으로 함정을 파려 할 거예요! 다른 가신들을 선동한다거나-”

“샤를로트.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손대지 못하는 것은 오직 베호닉뿐입니다.”

베호닉은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의 외척이니 도의상 섣불리 건드릴 수 없다지만, 다른 가신들은 아니었다.

“만약 그들이 에두아르트에 속한 자의 본분을 잊을 경우 율령으로 다스릴 것입니다.”

“율령이요? 가신에게 하사한 영지와 작위를 회수하겠다는 건가요? 반발이 심할 텐데.”

“그 또한 율령으로 다스리면 됩니다.”

“죽이겠다는 거군요.”

“명령에 반발하지 않는다면 목숨을 보전할 것입니다.”

“…….”

샤를로트는 말을 잃었다.

‘알폰소가 원래 이런 성격이었던가?’

생각해 보니 알폰소는 원칙을 중시할 뿐, 그렇게까지 자비롭거나 유한 성정은 아니었다.

샤를로트가 사용인들의 말을 언급했을 때 되묻지도 않고 곧장 사용인들을 모두 해고하고 일부는 혀를 잘라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던 것만 떠올려봐도 그랬다.

돌이켜보면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알폰소! 대체 이게 뭐죠?

-무슨 일입니까? 이렇게 갑자기, 그리고 무례하게.

-그건 당신이 갑자기, 그리고 무례하게 보낸 서신 얘기겠죠! 난데없이 외출 금지라니!

-외출 금지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수도의 저택을 비우는 당분간만 사교계 출입을 삼가십시오. 그리 길지는 않을 겁니다.

-그게 그거죠! 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다면 받아들일 수 없어요. 이유를 말해요.

알폰소는 지겹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같은 골자로 말을 이었다.

-내정 단속 중에 가문의 안주인이 사교계를 드나드는 것은 책잡힐 거리가 됩니다. 당신도 충분히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하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가주의 명령이니 이의는 받지 않겠습니다.

-잠깐, 내정 단속이라고요? 사교계 출입까지 금할 정도로? 그건…….

그건 숙청 수준으로 심각한 일이라는 건데.

샤를로트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알폰소는 샤를로트를 두고 떠나 버렸다.

하여 샤를로트의 기억 속에서도 그 일은 그렇게 잊혔다.

한참 뒤에 에두아르트의 가신 가문들에 큰 변동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샤를로트에게는 여전히 관심이 없는 이야기일 뿐.

‘결혼 초기였으니, 시기상으로도 맞네.’

그 뒤로 르나르 베호닉의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아마 그때 가신들과의 알력을 마무리 지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일들과 알폰소를 연결 지어 생각해 보면 어쩐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분명 알폰소는 그런 성격이 맞는데, 자주 잊게 된단 말이지.’

샤를로트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늘 그렇게까지 날카롭지 않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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