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로트는 도저히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델린 역시 샤를로트의 태도에 의아해하긴 마찬가지였다.
“무슨 오해를 하고 계신 건진 모르겠지만, 저는 에두아르트 공작 각하와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어요. 제가 혼담이 오간다고 한 분도 에브뢰 경이었고요.”
“왜…… 왜죠?”
“왜냐니……. 에브뢰 경은 아버지 친구분의 자제세요.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전부터 저와 그분을 이어주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에브뢰 경이 기사 생활을 오래 하셔서 그간 뵙지는 못했지만요.”
상황은 대강 이러했다.
라베루즈의 가주, 아델린의 아버지는 리암과 아델린을 이어주고 싶어 했다.
문제는 리암이 기사 생활로 줄곧 수도에 없었던 데다 목숨이 위험하기까지 하니 내키는 대로 진행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들어온 혼담을 검토하던 와중이었는데.
“그런데 얼마 전에 에브뢰 경이 수도로 복귀하면서, 아버지께서 에브뢰 경과 저를 이어주고 싶다며 다른 혼담들을 다 거절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럼,”
샤를로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자, 아델린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에두아르트 공작 각하와는 당연히 혼담을 진행한 적이 없어요!”
맙소사.
샤를로트는 아연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제 아델린과 알폰소를 겨우 이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리암의 등장이라니?
게다가 아델린이 리암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기까지!
‘이러면…… 이러면 곤란한데.’
리암은 건실한 청년으로 보였다. 기사 생활을 오래 한 이들 특유의 뻣뻣함은 있어도, 그런 이들이 으레 가지고 있는 치기와 혈기를 내세우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 퍽 호감이었다.
게다가 외모도 준수하고, 근육이 두드러지게 붙어 알폰소보다도 더 단단해 보이는 체격까지.
척 보기에도 매력적인 상대가 맞긴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취향 참 일관적이네.’
과거에는 알폰소에게 빠지고, 현재에는 리암이라니.
샤를로트는 과거 아델린의 말을 떠올려 보았다.
-과묵하고, 조금은 무심한 면도 있지만 좋은 사람이에요. 무엇보다 정말 올곧은 사람이거든요. 그 마음에 반했어요.
-알고 지낸 건 꽤 됐어요. 음…… 3년 정도 됐나? 3년 좀 덜 된 것 같네요.
-운명이란 게 정말 있나 봐요. 사실 전 그이를 단념하려고 했었거든요. 결혼할 뻔도 했었는데, 일이 생겨서 틀어졌지 뭐예요.
그리고 문득, 생각을 멈추었다.
‘……잠깐만.’
뭔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알폰소와 비슷한 점이 많은 리암.
그리고 알폰소와 혼담이 오가려는 찰나 수도로 귀환했다는 것까지.
샤를로트가 아무리 앞선 혼담들을 깨트리고 다녔어도, 리암이 수도에 복귀하는 시기에까지 영향을 주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과거에도 리암은 이맘때쯤 복귀했을 테고.
‘그러면…….’
과거에도 알폰소와 아델린은 혼담을 진행한 적이 없다는 거 아닌가?
‘설마. 그럴 리가.’
사실 샤를로트는 과거 아델린과 오고 간 혼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관심이 없었으니까…….’
아델린뿐만 아니라 그 앞의 모든 혼담 당사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망신을 주고 불순한 추문을 퍼트려서 혼담을 망쳐놓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게다가 네 번째 혼담의 당사자였던 아델린에게는 굳이 그런 일까지 할 필요도 없었다.
‘그즈음에는 알폰소와 내가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추문이 쫙 퍼졌으니까.’
샤를로트의 계획이 먹혀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라베루즈와의 혼담도 무산되었을 터.
하여 샤를로트가 아는 건 하나뿐이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라베루즈와 에두아르트 사이에 수상할 정도로 왕래가 잦았다는 것뿐.
그래서 그때도 당연히 알폰소가 라베루즈와 혼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면 대체 왜 에두아르트와 라베루즈 사이에 사람이 계속 오간 거죠?”
샤를로트의 물음에 아델린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이건 쉽게 말씀드릴 수 없는 사안이지만…… 그렇잖아도 샤를로트에게 이걸 부탁하려고 했으니 말씀드릴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왔다.
한 묶음의 서류.
“저희 가문이 보석 사업을 하는 건 아시죠?”
“물론 알고 있어요.”
데솔리에가 단순히 광산에서 나오는 광물로 수입을 벌어들인다고 한다면, 라베루즈는 그것을 가공해 내다파는 쪽이었다.
보석을 세공하고, 그것을 액세서리로 세공하는 것까지.
귀족 가문에서 운영하는 사업이니 당연히 어느 정도 규모는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엄청나게 대단할 것도 없는 사업체였지만.
‘몇 년 전을 기점으로 프리미엄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규모가 커졌지.’
한 사람의 장인이 세공해 극히 소규모로 제작한다는 라베루즈의 프리미엄 브랜드.
획기적인 디자인도 디자인이었지만, 브랜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 장인의 뛰어난 세공 실력이었다.
‘워낙 섬세해서 개미가 파낸 게 아니냐는 말이 우스개로 돌 정도였으니까.’
심지어 장인에 관련한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는 점 또한 호사가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내놓는 디자인이 매번 파격적인 걸로 미루어 봐서는 젊은 사람이 아닐까요?
-에이, 젊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실력을 내요? 평생 줄을 잡아야 될까 말까인데.
이러한 수군거림을 타고 명성을 얻은 라베루즈의 보석들은 샘물 퍼내듯 쭉쭉 팔렸다.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말씀하시는 거죠?”
“각하께서 저희 브랜드의 장인에게 개인 의뢰를 하셨거든요. 그래서 작업을 착수하고 있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작업이 어려워졌어요.”
“사정이요?”
“자세히 말씀드리긴 힘들지만…… 건강 문제예요.”
아델린은 그렇게 말하며 쓰게 미소 짓고는, 들고 있던 서류를 넘겼다.
“그래서 아무래도 말씀을 전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잖아도 사람을 보내려던 참인데, 괜찮으시다면 샤를로트가 이걸 에두아르트 공작 각하께 전달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제작 의뢰서예요.”
“이런 걸…… 제가 전달해도 되는 건가요?”
“그럼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샤를로트잖아요?”
“그게 무슨…….”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려던 찰나.
샤를로트의 눈에 서류의 내용이 들어왔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류에 그려진 그림 하나가.
제작 도안으로 보이는 그 그림은, 이상하게도 눈에 익은 것이었다.
어떻게 이걸 몰라볼 수 있을까?
그림의 정체를 알아본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에두아르트의 인장이 세밀하게 새겨진 반지의 도안.
‘이건…….’
선대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의 반지였다.
* * *
아델린이 샤를로트에게 제작 의뢰서를 넘긴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는 샤를로트가 미래의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알폰소가 샤를로트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며, 에두아르트의 일로 샤를로트가 데솔리에까지 갔다는 이야기도 들었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무리는 아니었다.
“……해서, 외부에 절대로 유출되지 않게 각별히 주의해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사람을 써서 의뢰서를 반송하기가 영 여의치 않았는데, 마침 샤를로트가 와 주어서 다행이죠.”
그리고 그 오해 덕분에, 상상도 못 한 사실을 알게 된 샤를로트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중이었다.
“이, 이거 때문에…… 에두아르트와 왕래한 거였다고요?”
“정말이에요. 혼담은 물론이거니와 사적인 연락 한 번 오고 간 적이 없어요!”
연신 결백을 주장하는 아델린의 모습에, 샤를로트는 충격을 넘어 혼란스러워졌다.
근간조차 흔들리는 기분.
대체 무엇부터 혼란스러워해야 하는 걸까?
알폰소가 선대 공작부인의 유품인 반지의 모조품을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
아니면, 알폰소와 아델린이 아무 사이도 아니었을 가능성?
‘만약 그 가능성이 사실이라면.’
내 계획은 어떻게 되는 거지?
샤를로트는 아델린이 준 서류를 받아 그대로 에두아르트에 달려갔다.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작별인사를 어떻게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경황이 없었다.
그런 상황이니 에두아르트로 달려갈 때라고 무슨 정신이 있었겠는가?
당연히 그녀는 에두아르트를 지키던 문지기에게 가로막혔다.
“당장 공작 각하를 만나 뵈어야 한다. 문을 열어다오.”
“실례지만 선약이 있으십니까?”
“선약은 없다. 하지만 각하를 만나 뵈어야 해.”
“선약이 없으시다면 그 누구도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뭐? 하지만-”
하지만, 뭐?
에두아르트에 와서 한 번도 문전박대를 당해본 적 없는 샤를로트는 불쑥 든 의문에 멈칫했다.
나는 너희 주인의 청혼을 걷어찬 사람이라는 어설픈 신분이라도 댈 생각이었나?
이제 나는 에두아르트 공작부인도, 알폰소와 관련된 그 무엇도 아닌데.
‘경황이 없다고 옛 습관을 못 버려서는…….’
모든 게 엉망이다.
샤를로트는 명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가장 두려운 것은 이 순간조차 버겁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샤를로트는 명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내가 또 모든 걸 망쳐 놓은 거라면 어떡하지.’
기회는 두 번이나 주어지지 않을 텐데.
알폰소를 살리겠답시고 활개를 치다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샤를로트?”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늘 그립다고 생각했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알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