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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31화 (33/122)

노베르의 말에 알폰소의 미간이 좁혀들었다.

“문제?”

“부끄럽게도 서신에 적힌 대로 데솔리에에는 여력이 많지 않습니다.”

폭탄을 심는 데에는 그리 많은 인력이 필요치 않지만, 산을 전부 뒤져 폭탄을 찾아내야 하는 처지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이렇게 찾아와주신 것은 감사하나 서신 한 장만으로는 그만한 인력을 동원할 수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산을 수색할 인력은 에두아르트에서 지원합니다.”

“……예?”

노베르가 얼빠진 표정으로 반문했지만, 알폰소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시선조차 두지 않았다.

“사유지를 함부로 파헤칠 수 없어 가주께 먼저 찾아왔을 뿐, 이미 수색을 진행할 인력을 오는 길에 수소문해 두었습니다. 그러니 가주께서는 오직 두 가지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 그게 무엇입니까?”

“하나는 누호아를 수색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려주시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그 대목에서 알폰소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찰나 도드라지는 턱선이 그의 인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 끝에 알폰소는 다시 입을 열었다.

“레이디 데솔리에와 독대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도주한 샤를로트 노하에 관해 물어볼 것이 있으니.

* * *

“처음 인사드립니다. 리살리 데솔리에입니다. 저와 독대하길 원하셨다고요.”

리살리가 채 잠들기 전이었던 까닭에, 알폰소는 바랐던 대로 금세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인 리살리가 예를 표하자, 알폰소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늦은 시각 무례를 용서해라. 샤를로트 노하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다.”

“용서라니…….”

리살리는 여러모로 이 상황이 현실성 없다고 생각했다.

한밤중에 그 유명한 에두아르트 공작과 독대하는 상황에, 그 에두아르트 공작이 제게 정중히 사과까지 하다니.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알폰소가 사람을 보내 당장 리살리에게 수도까지 올라와 자신을 만나라고 한들, 리살리는 거절할 힘이 없었다. 에두아르트의 권력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알폰소는 시급하게 방문한 것을 제하면 모든 부분에서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는 용서하라는 말까지.

고위 인사들에게서는 정말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는 말이다.

‘한밤중에 독대를 청했다고 에두아르트 공작이 용서를 구했다는 말을 한다면 누가 믿어주기나 할까?’

리살리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레이디 노하께서 보낸 서신의 내용은 아버지께 전해 들었어요. 제가 무엇을 알려드리면 될까요?”

“샤를로트 노하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이가 너라는 말을 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들을 수 있겠나.”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분이 그런 짓을 하실 줄은 조금도 몰랐어요.”

리살리가 조금 피곤하다는 투로 말했다.

조금 전 샤를로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직후 리살리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분께 누호아 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레이디 노하께서 위로차 깜짝 선물을 주겠다고 하신 게 전부예요. 저도 친애의 표시로 보석을 하나 드렸구요. 평범하잖아요?”

그런데 그 깜짝 선물이 누호아 산에 폭탄을 심어두는 것이었을 줄이야.

게다가 샤를로트가 처음부터 알폰소를 돕기 위해 이곳에 왔던 것이라니.

‘오빠가 잘못한 거니까 할 말은 없지만.’

속이 상했다.

샤를로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듣고 그럴 리 없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던지.

아직도 머릿속에는 샤를로트의 무정한 듯 상냥한 음색이 생생했다.

-내가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을 줄게요. 분명 마음에 들 거예요.

레이디 루체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떠난 이후.

리살리가 누호아 산과, 빚에 대해 모든 걸 털어놓자 샤를로트는 알 듯 모를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착잡한 듯, 혹은 조금은 슬픈 듯 보이는 표정.

웃음기 없는 정물화 같은 낯이 그토록 다양한 빛깔을 가진 것은 그저 보는 이의 착각이었을까.

샤를로트는 리살리에게 단 한 번도 미소를 지어 주거나, 다정한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저 우는 것을 지켜보고, 이렇게 물을 뿐.

-복수하고 싶어요?

처음 샤를로트가 다가왔을 때와 질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첫 번째에는 쉽게 끄덕일 수 있었던 고개가, 두 번째에는 도저히 움직이질 않았다.

리살리가 차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자 샤를로트는 대답을 강요하는 대신 나직이 말을 덧붙였다.

마치 그녀의 선택을 위로하듯.

-타인의 불행을 바라는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죠. 스스로의 저열함만을 깨닫게 될 뿐.

-……그, 그건 경험담인가요?

-글쎄요. 하지만 경험이 없더라도 알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행복한 복수자의 얘기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으니까.

-어쨌든 이렇게 된 거, 내가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을 줄게요. 분명 마음에 들 거예요.

그들의 대화는 그게 전부였다.

그 몇 마디 안 되는 대화로 위로받았다고 한다면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나, 적어도 리살리는 그러했다.

어쩌면 샤를로트는 생각만큼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런 배신감이라니.

다시 생각하니 두 배로 속이 상하는 것 같아서, 리살리는 미간을 살짝 구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말씀드릴 수 있는 전부예요. 그분에 대해서 더 해드릴 말은 없을 것 같으니, 이만 가봐도 될까요? 가족들과 이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각하!”

그리고 그때, 벌컥 문이 열리고 누군가 경황없이 뛰어 들어왔다.

상대를 알아본 알폰소의 미간이 찌푸려들었다.

“루드빅? 이게 무슨 소란이냐.”

“죄송합니다, 각하! 하, 하지만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지? 폭탄이 터지기라도 한 건가?”

“그게 아닙니다. 누호아 산을 파헤쳐 보던 와중에 보, 보물이 나왔습니다!”

보물.

그 말에 방 안의 모두가 일제히 숨을 멈추었다.

“……보물이라고?”

“감정을 해 보아야 알겠지만, 제 소견으로는 확실합니다. 딱 500개밖에는 생산되지 않았다고 알려진 고대 제네빌의 금화입니다!”

라베흐느 왕조 시절, 현재처럼 온 대륙의 화폐 가치가 통일되기 전까지는 화폐마다 가치가 달랐다.

개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은 제네빌의 금화.

동전에 포함된 금과 은의 양만으로 가치를 따지던 다른 화폐들과 달리, 제네빌의 금화는 희소성과 세공 면에서도 여느 예술품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아왔기에 시간이 많이 지난 현재는 그 가치가 스무 배는 넘게 뛰어 있었다.

하나만 있어도 작은 영지 하나가 일 년을 먹고살 수 있는 돈이 나오는데.

“500개 중 100여 개의 소재지가 영 불명이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전부 누호아에 묻혀 있었던 듯싶습니다!”

“100여 개가 전부 여기 묻혀 있었다고?”

“예! 그리고 같이 매장되어 있던 다른 물건도 있는데, 이것 역시 감정이 필요할 듯합니다. 겉보기에는 특별한 점이 없지만, 평범한 물건이 이런 보물과 함께 묻혀 있을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마, 말도 안 돼…….”

리살리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한 발짝 물러섰다.

그때, 또 다른 사람이 방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각하! 이것 좀 보십쇼! 으흐하학, 진짜 살다 살다 이런 일은 또 처음입니다!”

저 방정맞은 웃음소리부터 누굴지는 뻔했다.

“아르노 조엘. 무슨 일이냐. 매장된 폭탄은 어쩌고-”

“폭탄! 그거 찾았습니다! 찾았는데요, 이거 보이십니까?”

아르노가 아직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실실 흘리며 손에 든 물건을 내밀었다.

도화선이 꽂힌 길쭉한 막대 모양의 폭탄이 풀어헤쳐져 내용물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거 화약이 없습니다! 그냥 흙입니다, 흙! 폭탄이 아니라는 겁니다!”

“……뭐? 그럼 그 서신은-”

“당연히 거짓말 아니겠습니까! 저희 다 속은 겁니다! 푸하하!”

진짜 말도 안 되네!

소리치는 아르노의 옆에서, 리살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깜짝, 선물……?”

정말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말투였다.

* * *

샤를로트가 묻은 폭탄은 모두 가짜였다.

폭탄에 사용되는 규조토를 말아서 폭탄처럼 보이게 만든 것뿐.

그렇게 한 이유는 간단했다.

‘데솔리에는 절대 누호아 산을 스스로 파헤치지 않을 테니까.’

샤를로트는 처음부터 누호아에 무엇이 묻혀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걸 파내면 데솔리에의 빚 따위는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하지만 누호아는 데솔리에 선조의 유지가 깃든 곳이다.

그런 곳에 보물이 묻혀 있다는 말을 해준다고 한들, 여력이 많지 않은 데솔리에가 과연 선뜻 산을 파헤쳐 보겠다고 할까?

‘말도 안 되지.’

그래서 샤를로트는 일부러 가짜 폭탄을 심은 것이다.

그래야 알폰소가 데솔리에 대신 누호아 산을 파헤쳐 볼 테고, 보물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서신에는 폭탄을 심은 걸 이용하라고 했지만.’

알폰소가 그럴 리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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