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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29화 (31/122)

* * *

‘지금쯤이면 내가 별장에 없다는 걸 퀸시가 알아차렸겠군.’

하고, 샤를로트는 무심하게 생각했다.

들키지 않으려면 늦어도 어제 정도에는 돌아갔어야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따지자면 여태 안 들킨 것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였다.

‘실비아를 두고 온 게 눈을 속이기에는 꽤 도움이 되었던 것 같네.’

실비아는 샤를로트가 어릴 때부터 데리고 있었던 수족이었다.

퀸시는 그녀가 수족을 떼어 놓고, 가문에 어떠한 연락도 하지 않고 무언가를 할 수 있으리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설마하니 에두아르트와 손을 잡을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을 터.

현재 샤를로트는 데솔리에에 있었다.

왜냐고?

‘해야 할 일이 남았으니까.’

이걸 마치기 전에는 아직 데솔리에를 떠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조금 전 쟝-자크에게 서신을 쥐여 홀로 돌려보냈다.

“정말로 저 혼자 돌아갑니까?”

“그래요. 알폰소에게 전해야 할 내용은 그 서신에 전부 있으니, 가서 전하기만 하면 돼요. 내 역할은 끝났으니 굳이 함께 가야 할 이유도 없겠죠.”

그녀의 말에 쟝-자크는 샤를로트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나 눈만 좁힌다고 해서 그녀의 의중을 알아낼 수 있을 리 있나.

“……각하께는 말씀을 잘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쟝-자크는 결국 마지못해 떠났다.

샤를로트는 턱을 괴고 앉아, 그 기사가 떠나기 직전까지도 보였던 미심쩍은 눈초리를 떠올렸다.

그녀의 손에는 구겨진 종이가 있었다.

[쟝, 레이디 노하를 직접 본 평가를 최대한 자세히 서술해다오. -루드빅-]

발신인이 루드빅이라고 적혀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루드빅의 서신이 아니었다.

“제법 감이 좋단 말이지, 쟝-자크 경.”

필체는 완벽히 루드빅의 것과 같았을 텐데, 속지 않다니.

샤를로트가 유감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가만 보면 루드빅이 가장 날을 세우는 것 같지만, 의외로 가장 실적이 좋은 것은 쟝-자크였다.

알폰소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쟝-자크를 굳이 샤를로트의 옆에 붙여두었던 것이리라.

다른 이였더라면 진즉 샤를로트의 손바닥에 있었을 테니 시도는 좋았다.

안타깝게도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샤를로트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리살리와 나누었던 대화가 재생되고 있었다.

-누호아 산은 별것 없는 산이에요. 하지만 선조의 유지가 있는 곳이라 저희 가문에는 의미가 깊은 곳이고요.

-그런데 빚 때문에 그 산을 넘겨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군요.

샤를로트의 말에 리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살리는 아직도 운 흔적이 남아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오빠가 투자를 하겠다고 신전에서 돈을 빌렸는데 그게 쫄딱 망해 버려서…….

-대충 알 만하네요.

안타깝게도 알 만한 정도가 아니라 내막이 훤히 보였다.

왜냐고? 신전의 투자를 빙자한 대출 사업은 노하에서 대리 운영하고 있으니까.

그럴듯한 상품으로 목표물을 끌어들인 뒤, 신전에서 거금을 빌려 투자하게 하는 방식.

투자한 상품이 허위였음이 드러나고 투자자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신전에 잡혔던 담보는 고스란히 노하의 손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노하의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오래된 수법이었다.

샤를로트 역시 리살리의 말만 듣고도 바로 확신할 수 있었다.

‘결국 노하가 배후는 맞았다는 소리군.’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다.

노하가 왜 그랬는지 대강 짐작이 가서 더 머리가 아팠다.

처음 리살리에게서 누호아 산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샤를로트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누호아 산……? 그게 데솔리에 거였어요?

-네? 네…….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들어본 적, 물론 있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산이지만 나중에는 그 산에 라베흐느의 유산이 묻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니까.

‘근데 그때는 그게 노하 거였단 말이야.’

보나마나 노하에서 라베흐느의 유산 때문에 누호아 산을 노린 것 같았다.

샤를로트를 동원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서 그녀한테까지 정보가 전해지지 않았을 뿐.

그렇게 데솔리에에서 막대한 빚을 갚을 길이 없어 발을 구르던 와중.

‘에두아르트에서 프레시오를 팔아달라고 연락이 온 거지.’

딱 좋은 호구가 데솔리에의 눈에 보인 셈이다.

‘뻔하지.’

에두아르트는 데솔리에 따위는 견줄 수도 없을 만큼 부유한 가문이었으니, 이만한 돈줄을 놓칠 수는 없었으리라.

아마 프레시오가 안 먹혔더라면 다른 무엇이라도 들이밀어서 돈을 뜯어내려 했을 것이다.

‘이만하면 전말은 전부 알아낸 셈.’

그러나 아직 남은 문제가 있었다.

전말을 안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해결책이 되어주지는 못한다는 사실.

하지만 샤를로트는 알폰소에게 실패를 전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고, 데솔리에에 남기로 결정했다.

‘알폰소가 알면 분명 좋아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알폰소가 데솔리에와 노하의 합작에 당해 고스란히 돈을 뜯기도록 둘 수는 없으니까.

해결법은 간단했다.

저쪽에서 생짜를 부린다면, 이쪽에서는 무력을 들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아가씨, 인부들이 폭탄 설치를 모두 마쳤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럼 약속한 돈을 주어서 보내세요. 입막음 값이니 후하게 쳐 주도록 해요.”

샤를로트는 모든 전말을 알게 된 직후, 곧장 인부들을 구해 누호아 산으로 보냈다.

돈은 모자라지 않았다.

리살리가 감사의 표시로 준 보석이 잔뜩 있었으니까.

그리고 쟝-자크가 들고 간 서신에는 이렇게 적었다.

「……런 이유로, 누호아 산에 폭탄을 좀 심었어요. 이걸 협상에 이용하길 권합니다.

데솔리에는 이미 광산을 운영하는 것조차 빠듯해서 급히 인력을 끌어올 여력이 없어 보이더군요.

그러니 분명 이것이 당신에게 좋은 입지를 가져다 줄 거라고 자신 있게 적습니다.

부디 이 서신의 결말이 당신을 행복으로 이끌기를 바라며.

샤를로트 노하 배상.」

샤를로트는 들고 있던 종이를 구겨 버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알폰소가 너무 화내지만 않았으면 좋겠네.”

이제 그녀가 할 일은 모두 끝이 났다.

정말로 떠날 시간이었다.

* * *

“……거라고, 자신 있게…… 적습니다. 부디 이 서신의 결말이…… 당신을 행복으로 이끌기를 바라며.”

샤를로트 노하…… 배상.

세르주가 서신 낭독을 마치자, 방 안에는 긴장감 어린 침묵만이 남았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이중에서 가장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아르노였다.

그는 어제 점심까지 게워낼 기세로 웃음을 터트리고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이야, 발상이 남다른데요? 폭탄이라니! 저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남다른 게 아니지, 인마!”

“왜 그래? 루드빅. 이게 얼마나 획기적인 생각이냐!”

아르노가 다시 웃어젖히기 시작하자, 루드빅이 한 박자 늦게 정신을 차리고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가, 각하. 이, 이게 대체……. 그, 그러니까, 쟝! 너, 너 인마, 대체 뭘 하고 온 거야?!”

“저, 저는 제 소임을 다했습니다! 루드빅이야말로 이상한 서신이나 보내지 않았습니까!”

“뭐? 내가 언제?”

“분명 제게 샤를로트 노-”

우득.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에 쟝-자크의 항의가 멈추었다.

그제야 방 안 모두가 줄곧 침묵하던 존재를 깨달은 듯, 시선을 모았다.

조금 전까지 쥐고 있던 만년필-이었던 것-을 들고 있는 그들의 주인.

알폰소 리누스 에두아르트에게로.

알폰소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으나, 모두들 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들은 알폰소를 알아온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그가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으므로.

‘야, 야. 저거 설마…….’

‘화가…… 나신 건가?’

‘저는 각하께서 분노라는 개념을 알지 못하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세 기사가 슬금슬금 눈빛을 교환하고, 세르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가, 각하. 어떻게 할까요?”

“당장.”

그리고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알폰소의 입이 열렸다.

늘 고저 없이 듣기 거북하지 않을 정도의 중저음을 구사하던 성대에서, 끔찍하게 낮아진 저음이 목울대를 거칠게 긁으며 흘러나왔다.

“당장 데솔리에로 간다. 전부 채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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