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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25화 (27/122)

알폰소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다시 말하지만 범죄를 포함해서는 안 됩니다.”

“안 하니까 들어봐요. 지금 이대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 봐야 할 수 있는 건 생짜 부리기밖에 없잖아요.”

“타당한 조건을 들어 서로가 만족할 만한 선에서 금액을 조율하는 겁니다.”

“그게 생짜 부리기죠.”

엄밀히 말하자면 이번에는 데솔리에 쪽에서 생짜를 부리는 거지만, 어쨌든.

“될 수 있으면 상황을 파악해서 나쁠 게 없잖아요. 예를 들어 데솔리에의 내부일원과 친분을 쌓는다든지.”

“말씀은 이해했으나 현재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사흘. 그거면 충분해요.”

일주일의 여유 기간이 있다고 했으니, 사흘 정도 상황을 파악하는 데 써도 모자라지 않다.

“……그럼 당신이 하겠다는 겁니까?”

“나 아니면 나설 사람, 있어요? 일단 당신은 안 될 테고.”

“……그, 저는 각하를 보필해야 해서.”

“그럼 정해졌네요.”

샤를로트는 시니컬하게 대꾸하며 어깨 위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가볍게 쳐냈다.

“난 책임과 빚은 확실히 하자는 주의예요. 믿어 봐요. 손해 볼 건 없잖아요.”

결국 알폰소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그동안 뭘 하면 되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질문에 샤를로트의 입매가 일자로 다물어졌다.

그녀는 잠시간 고민하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아, 하나 있네요.”

“뭡니까?”

“아델린하고 얘기 잘 하고 있어요.”

이거 다 당신 결혼 시키겠다고 하는 일이니까.

* * *

부유하기로 유명한 데솔리에 가문의 연회장.

알게 모르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렸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이유는 단 하나.

오늘 이 연회장에 낯선 손님이 있었던 까닭이다.

“저 여자가 바로 그 노하의…….”

“선명한 붉은 머리칼이라더니, 정말 그렇네요.”

“겉으로 보자면 그냥 예쁜 여자 같은데…… 그렇게 악독하다면서요?”

대부분은 경계심 어린 목소리였지만 동시에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티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지역이건 사교계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이목이 쏠리기 마련이다.

그게 노하의 악녀 같은 유명인사라면 더더욱 그렇고.

특히나 수도 출신이라면, 가뜩이나 최신 유행에 민감한 젊은 아가씨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법.

주변에 잔뜩 모여든 아가씨들 덕분에, 샤를로트가 앉은 자리는 비둘기 모이통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레이디 노하의 드레스가 정말 아름다워요. 이렇게 맵시를 내다니! 누구의 작품인가요?”

“새로운 디자인이죠? 마담 프리실라의 작품이에요. 지금 수도에서 한창 유행 중이랍니다.”

“어깨를 이렇게 드러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제가 입으면 분명 어머니께 등을 호되게 맞을 텐데요!”

“그럴 땐 이걸 이렇게 둘러 보세요. 자연스럽게 드러난 부분을 가리면서 맵시를 살려주죠?”

자리에 모인 아가씨들은 모두 샤를로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몰라도 그녀의 손동작, 어조, 심지어는 웃을 때 살짝 턱을 드는 특유의 동작까지도 모두 세련되어 보였던 것이다.

일종의 유명인 효과였다.

특히나 수도에서도 빛을 발하는 샤를로트의 화술은, 모여든 아가씨들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이게…… 수도 영애인가?’

‘빠져든다…….’

평범한 말인데도 샤를로트가 하면 무척 대단한 것처럼 들렸다.

그 사실은 샤를로트를 선망의 눈길로 보게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심 질시의 눈길을 만들기도 했다.

개중에서도 특히 이 연회의 주최자, 리살리 데솔리에가 유난히 그랬다.

모자람 없는 가문인 데솔리에의 아가씨로 태어나 평생 어디서 꿇려본 적 없는 그녀는 이 상황에 내심 자존심이 상했다.

‘수도에서 온 영애 하나한테 모두가 이렇게 휘둘리다니.’

따지고 보면 샤를로트가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샤를로트 노하라니, 나도 말을 붙여 보고 싶어서 조금 들떴던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자랑만 들어서야 자존심이 상한다.

“흠, 흠. 레이디 노하께서 저희에게 많은 걸 알려주셨으니 보답으로 내일 티타임에 초대하고 싶은데요. 어떠실까요?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시면 영광일 거예요.”

그렇게 리살리가 자존심 회복을 위해 선택한 것은 결투 신청.

‘걸렸다.’

샤를로트의 녹안이 반짝 빛났다.

“어머, 데솔리에의 초대라니 저야말로 영광이죠.”

티타임 초대.

그것은 쉽게 말해 ‘내 앞마당에서 보자’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특히나 이방인을 초대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니 섣불리 응했다가는 호된 꼴을 보기 마련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번에는 아니었다.

‘이제야 초대장을 내밀 줄은 몰랐네.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이 연회장에 샤를로트가 참석한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으므로.

“내일 꼭 참석할게요. 다른 영애들도 오시는 거죠? 특별히 신경 써서 가야겠는걸요?”

“기대할게요.”

화기애애하게 웃음이 오가는 데솔리에의 연회장 한가운데.

아무도 모를 속내를 품은 샤를로트가 빙긋 미소 지었다.

* * *

그 시각, 에두아르트 공작저.

“각하.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알폰소가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았다.

어둠이 짙었으나 그를 찾아온 인영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 시각에는 무슨 일이지, 루드빅?”

“수색을 명령하셨던 프레시오 건으로 보고가 올라와서 말입니다.”

루드빅은 그렇게 말하며 알폰소의 책상 위로 간결히 정리된 서류를 내려놓았다.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으나 데솔리에의 소가주와 노하의 끄나풀이 접선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역시 그랬나.”

“데솔리에에서 그런 터무니없는 가격을 아무 이유 없이 불렀을 리 없지 않습니까. 분명 에두아르트에서 프레시오를 급히 구하리라는 정보를 미리 전달받은 겁니다.”

루드빅의 목소리에는 노하에 대한 적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외람되오나, 각하. 저는 이 일에 샤를로트 노하를 포함시킨 것이 달갑지 않습니다. 그녀는 신뢰할 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대화해 본 바로 샤를로트 노하는 최근의 정황을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그 이야기를 진실로 믿으십니까?”

“믿지 않으면? 불신부터 시작했어야 한다는 뜻인가?”

“그녀의 도움을 빌려서는 안 되었다는 뜻입니다. 저는 샤를로트 노하를 신뢰할 수 없습니다. 에두아르트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굳이 외부인을 끌어들여야 하는 이유를 여쭙고 싶습니다.”

결국 보고는 핑계고, 루드빅이 이 밤에 찾아온 용건은 저것인 것이다.

알폰소는 빈 손으로 미간을 주무르며 천천히 날숨을 내뱉었다.

“루드빅 바텔레미, 네 의구심을 이해한다. 그와 별개로 지금의 문답이 선을 명백히 넘고 있음을 인지해라.”

“인지하고 있습니다. 대답만 해주신다면 더는 월권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벌이든 기껍습니다. 그러니 샤를로트 노하를 기용해야 할 이유를,”

“첫 번째. 나는 이번 일에서만큼은 그녀를 신뢰한다. 그녀가 진실로 이 일에 연루되어 있었다면 스스로 데솔리에에 가기를 자처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두 번째. 지금 상태로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라는 샤를로트 노하의 말이 타당하다 받아들였다. 세 번째. 그녀를 제외한 적임자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그녀와 함께 일해야 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그녀가 연루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이후 변절할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불가하다.”

“어째서입니까?”

알폰소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내뱉듯 말했다.

“샤를로트 노하가 내게 바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 말에 루드빅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거래를 하신 겁니까?”

“그와는 다르다.”

만약 샤를로트가 거래를 제안했다면 알폰소는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말하자면, 그것은 샤를로트의 일방적인 희망사항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샤를로트가 떠나기 전.

그녀는 몇 차례고 알폰소에게 당부했다.

“아델린에게 상황을 잘 설명해 줘요. 아까 당신이 한 말은 과거의 일이고, 지금은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그래야 당신도 무리 없이 혼담을 진행할 수 있잖아요.”

악의 없이 거북한 말을 하는 데 가장 재능 있는 이가 있다면 분명 샤를로트이리라.

알폰소는 불편한 심기로 대답했다.

“레이디 라베루즈에게 무례를 사과드리는 것과 별개로, 내가 혼담을 진행하고자 하는 상대는 여전히 당신입니다.”

샤를로트가 자신을 거절했다는 오해가 있기는 했으나 이제 해소되었으니 모든 것은 원상태로 돌아왔다.

알폰소는 여전히 샤를로트와 결혼하길 바라고 있었다.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샤를로트.”

“알아요. 하지만 결혼은 필요로 하는 게 아니에요.”

샤를로트는 기계적으로 자신과의 결혼을 바란다는 그를 어딘지 슬픈 눈으로 잠시 바라보았다.

짧은 침묵. 그 이후 다시 말이 이어졌다.

“당신이 원하는 결혼을 해요.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결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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