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24화 (26/122)

“시급한 사안이 생겼습니다. 잠시 보고를,”

세르주는 다급한 얼굴로 들어왔다가 샤를로트를 보고는 멈칫했다.

그러나 그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잠시, 보고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잠깐 자리를 피해줄까요?”

“괜찮으니 계십시오. 무슨 일이지, 세르주?”

세르주가 찾아온 것은 노하가 가져간 보석과 관련한 건이었다.

보석 프레시오.

그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보석이라기보다는 금속의 일종이었다.

제련하면 흑수정처럼 검어지지만, 제련 전까지는 여느 수정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탓에 보석으로 불릴 뿐.

프레시오는 무게에 비해 경도가 높고 아름답기까지 해서, 검을 만들기에는 최적의 물질이라 불리고 있었다.

멸망한 고대 왕조인 라베흐느가 대성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프레시오를 제련하는 기술이 뛰어났던 까닭이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라베흐느의 멸망 이후로 제련 기술이 소실되었다는 것이다.

하여 현재는 프레시오를 이용해 진검을 만들지는 못하고 그냥 장식용으로만 쓰이고 있었다.

어쨌든 프레시오는 고대 왕조 라베흐느의 부흥을 이끌어낸 상징과도 같은 광물로서, 그 상징성은 충분히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알폰소는 프레시오를 이용해 만든 장식용 장검을 건국제 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진상하기로 되어 있었다.

‘맞아, 기억나. 알폰소의 검과 똑같이 만들었었지.’

현 황제, 브누아는 대륙에 전쟁왕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지난 10년간 알폰소가 이루어낸 많은 업적들 덕분이었다.

하여 전쟁들을 승리로 이끈 알폰소가 직접 프레시오로 만든 검을 브누아에게 바치는 것으로 에두아르트의 충성을 보여주고, 또 황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워낙 파급력이 컸던 사건이었지.’

그런데 그 프레시오가 전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것도 노하의 손에 의해서.

노하가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증거가 없으니 따져 물을 수도 없다.

“그래서 새로 프레시오를 공수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가문인 데솔리에에 연락을 취해 보았습니다. 프레시오는 그리 구하기 힘든 광물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그쪽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해왔습니다. 고작 프레시오 한 덩이에 광산 하나를 팔아야 할 수준입니다.”

“다른 가문에 연락을 취하면 될 일 아닌가?”

“시간상 불가능합니다. 다른 곳은 채굴부터 시작해야 한다는군요. 당장 프레시오를 공수할 수 있는 곳은 데솔리에뿐입니다.”

세르주가 시무룩함과 날카로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샤를로트는 세르주가 당장이라도 촉촉해진 눈으로 원망을 토로하는 것을 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프레시오 때문에 많이 곤란했나?’

사실은 세르주가 노하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횟수가 한 손을 넘어가고 있는 것 때문이었지만, 샤를로트가 그것까지 알 턱은 없었다.

하여 그녀는 머쓱하게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입을 열었다.

“흠, 흠! 이해가 잘 안 되네요. 데솔리에는 황실에 오래 충성해 온 가문이잖아요. 굳이 에두아르트에게 그런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러서 척질 이유가 없지 않나요?”

“세상 모든 일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주억거린 세르주가 다시 말을 이었다.

“건국제까지 남은 시일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제시한 금액으로 프레시오를 공수하거나, 정 안 될 것 같다면 일반 철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프레시오를 쓰지 않을 수는 없다. 상징성을 대체할 만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라베흐느의 정통성은 통치자들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검을 만들기 위한 프레시오를 구매하려면 광산을 다섯 개는 처분해야 할 지경이었다.

“협상이라도 해 봐야 할 것 같군. 세르주, 여유 기간이 얼마나 되나.”

“아무리 길어도 일주일 안으로는 해결을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세르주의 시선이 샤를로트에게 향했다.

조금 전은 상상에 불과했던 세르주의 촉촉한 눈이 샤를로트를 슬프게 바라보고 있었다.

“…….”

“……미안하게 됐어요.”

샤를로트가 한숨을 내쉬며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나는 줄곧 드베인에 있었으니 내가 한 일은 아니지만…… 정황상 내 오빠가 한 짓 같군요. 같은 가문 사람으로서 책임이 내게도 있으니, 내가 해결해줄게요.”

그 말에 세르주의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마찬가지로 조금 풀린 낯을 한 알폰소가 물어 왔다.

“샤를로트. 프레시오를 다시 가져올 수 있는 겁니까?”

“글쎄요. 말을 해 보긴 하겠지만…… 장담할 수는 없겠군요. 퀸시가 무조건 협조적인 사람은 아니라서.”

시도는 할 수 있겠지만 확률이 희박했다.

‘게다가, 전생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어.’

그렇다면 가문의 일로 프레시오를 가져간 게 아니라는 뜻이다.

퀸시가 자의로 움직인 거라면 더더욱 확률이 희박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결해 줄게요.”

알폰소의 폭탄 발언으로 아델린과의 혼담도 곤란해진 와중에 다른 문제까지 겹치게 둘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알폰소가 문제였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 지금 혼담을 진행할 시간도 많지 않잖아요. 프레시오 거래 건까지 협상할 시간 없을 거 아니에요.”

“내 일입니다. 그리고 혼담은-”

무언가를 신경질적으로 내뱉으려던 알폰소가 이를 악물었다.

도드라진 턱선이 다시 돌아오고, 알폰소가 차분한 목소리를 내뱉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혼담은, 더더욱 당신이 관여할 문제가 아닙니다.”

샤를로트는 알폰소가 참은 말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너 때문에 전부 이렇게 되지 않았느냐.’

실제로 알폰소가 그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알폰소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샤를로트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그리고 그녀는 그 순간이 가장 비참했다.

‘내가 또다시, 알폰소의 삶을 망치고 있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나았을까.

‘아니, 이미 엎어진 물이야.’

샤를로트는 이런 생각이 들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걸음을 내디뎌, 자리를 뜨려는 알폰소의 손을 붙잡았다.

“잠시만요, 알폰소!”

“……더 할 이야기가 남았습니까?”

“당신 말이 맞아요. 당신의 일은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죠.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방해가 되었다면, 반대로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이미 당신의 도움이 필요치 않은 문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이대로 협상 테이블에 가면 프레시오의 가격을 원래대로 돌릴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알폰소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되물었다.

“당신은 방법이 있습니까?”

“네 가지 정도 있어요.”

“살인과 협박, 기타 범죄를 포함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없어요.”

알폰소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 노골적인 반응에, 샤를로트가 저도 모르게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은 어떻게 시간을 돌아와도 반응이 똑같은 건지.

“농담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알폰소의 차가운 시선이 단번에 따뜻해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데솔리에 가문이라.’

수도와 가깝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지방 귀족으로 취급되는 가문이다.

그러니 데솔리에 저택과 오가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데.

‘마침 내가 타지에 나와 있단 말이지.’

처음에는 퀸시에게 찾아가서 멱살이라도 잡아 볼까 싶었는데.

그 희박한 확률에 거느니 가문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지금 상황을 이용하는 게 낫겠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해 보던 샤를로트가 입을 열었다.

“데솔리에가 그렇게 높은 가격을 제시한 이유로 짐작이 가는 건 없나요?”

세르주의 촉촉한 눈동자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내가 이 자리에 없었더라면 노하의 짓이라고 생각했겠군요. 이해했어요.”

“……죄송합니다, 레이디 노하. 하지만 데솔리에는 부유한 가문이니까요.”

세르주의 말은 타당했다.

데솔리에는 프레시오를 비롯한 희귀 광물이 나오는 광산을 여러 개 소유한 덕분에 부유한 가문으로 손꼽혔다.

“거기다 데솔리에 가주도 꽤 신실한 사람이라 도박에 손을 댔을 리도 없고. 슬하에 자식이 둘이었던가요?”

“미혼인 아들과 딸이 각각 하나씩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샤를로트의 기억에 따르면 그들은 3년 뒤까지도 큰 문제가 없었다.

빌어먹게도 평화로운 가문이라는 뜻이다.

대화가 이쯤 이르자, 알폰소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협상 테이블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도와주시려 한 것은 감사하나-”

“아뇨, 알폰소.”

샤를로트가 말을 잘랐다.

“나한테 생각이 있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