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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22화 (23/122)

그 결정에 에두아르트의 가신들은 얼싸안고 기뻐했다.

개중에서도 가장 기뻐한 것은 줄곧 노하와의 결혼에 반대표를 던져 온 루드빅이었고, 가장 덤덤한 것은 알폰소가 누구와 결혼하든 따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던 쟝-자크였다.

어쨌든 그들 모두 알폰소의 새로운 결정을 크게 환영했고, 혼담을 서두르라는 알폰소의 명령 아래 그들은 당장 라베루즈에 연락을 취할 계획을 짰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회신이 돌아왔다.

라베루즈의 집사장이 쓴 회신을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하여, 라베루즈의 가주가 그 딸과 함께 드베인 시에 가 있다고 합니다. 잠시 유랑차 간 것이니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급한 용건이라면 찾아오라고 하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각하?”

“찾아뵙겠다 전해라. 더는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알폰소의 드베인행이 결정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에두아르트의 그 누구도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라베루즈와의 혼담을 진행하기 위해 간 드베인에서.

“……샤를로트?”

그녀를 만나게 될 줄은.

* * *

샤를로트가 드베인을 선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첫 번째는 드베인이 샤를로트에게는 특별한 곳이라는 이유.

그리고 두 번째는, 아델린 라베루즈가 이 시기에 이곳을 방문할 거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과거 샤를로트가 알폰소와 이야기를 나눌 때 그 내용이 나왔으니까.

“드베인에 간다고요, 알폰소?”

“예. 아델린 양과 사업 관련하여 상의할 건이 있습니다.”

“그럼 수도에서 하면 되잖아요?”

“아델린 양이 몸이 약해 계절 바뀌는 시기에는 늘 드베인의 별장에서 지낸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이유도 아닌 건강 때문이고, 드베인은 그리 멀지도 않으니 내가 가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가요. 대신 당신 없는 동안 저택에 노엘 경을 불러도 되죠?”

샤를로트의 대꾸에 알폰소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남편이 없는 동안 저택에 사내를 부르겠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뻔했으므로.

“……분명 노엘 경을 멀리하라 말씀드렸습니다. 당신께 득이 될 자가 아닙니다.”

“그건 내가 판단할 일이죠.”

“또한 에두아르트는 불순한 추문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에두아르트의 명예와 직결되는 위치에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주인의 일을 밖에서 떠드는 사용인이 있다면 혀를 자를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무엇보다 당신도 다른 여자를 만나러 타지까지 나가는 입장이잖아요?”

샤를로트가 이죽거리자 알폰소가 인상을 구긴 채 한 자 한 자 끊어 말했다.

“금방 돌아올 거고, 당신께서 염려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추문을 만들 생각도 없으니.”

“추문이란 게 어디 내킨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종류던가요?”

샤를로트는 차게 웃으며 비아냥대고는 손을 내저었다.

“가서 아델린 라베루즈와 손을 맞잡든 입술을 맞대든 알아서 해요. 내가 언제 그런 것 신경 썼다고.”

차게 웃는 속내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아가 치밀고 있었지만 나오는 내용은 그러했다.

그러자 알폰소는 할 말을 잃었다는 듯 착잡한 표정으로 잠시 침묵하더니, 물었다.

“그렇다면 지난번에는 왜 그런 것을 물었습니까?”

“그런 것?”

“……아델린 양을 사랑하느냐고 묻지 않았습니까.”

아하.

샤를로트가 픽 웃으며 대답했다.

“난 정부랑 같은 저택을 쓰고 싶진 않으니까요. 에두아르트 공작부인인 내가 그 정도 질문도 못 하는 처지인가요?”

웃지 않으면 당장 낯을 와락 구길 것 같았다.

비틀릴 대로 비틀려 모멸감을 곱씹는 속내로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을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목소리 끝이 떨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는지.

그러나 샤를로트에게 태연한 낯을 꾸며낼 수 있는 재능이 있다면, 알폰소는 그것을 망가뜨리는 데 천부적인 사람이었다.

“질문을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를 묻는 것입니다. 혹시-”

“혹시라도!”

쾅! 결국 참지 못한 샤를로트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움켜쥔 주먹이 채 삭이지 못한 분으로 파르르 떨렸다.

“혹시라도, 아델린 라베루즈에게 해코지하지 않을 테니. 그 빌어먹을 여자 이름이 더는 내 입에서 나오지 않게 해요.”

그러자 알폰소는 조금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반응을 기대하지 않아서일까. 혹은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던 까닭일까.

설핏 찌푸려진 미간만이 그의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샤를로트보다 인내심이 좋았다.

“……알겠습니다. 또한 노엘 경과 만나는 것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내가 당신 말을 무시하고 만나면요? 날 죽이기라도 할 건가요?”

“에두아르트의 명예를 위해 노엘 경에게 결투를 청하겠습니다.”

결투. 그것은 기사들이 명예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방식이었다.

결투에 응한 이들 중 한 명은 무조건 죽는다.

그리고 알폰소가 결투에서 패할 리 없으니, 그는 노엘 경을 죽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는 방식조차 그다워서, 샤를로트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상황에 맞지 않을 정도로 경쾌하고 기꺼운 웃음.

“그것 참 볼만하겠네요.”

알폰소는 샤를로트가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샤를로트는 그 순간만큼은 진실로 기꺼웠다.

저 벽창호 같은 남자가 저렇게 말할 때마다 질투라도 받는 기분이 되어서.

좋아하는 아이의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못되게 구는 다섯 살짜리도 하지 않을 말들을 했다.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속내가 빤한 노엘 경 따위에 대한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당신 드베인에 갈 일이 있는 거라면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도 그 호수를 좋아하고, 이맘때 드베인의 날씨를 좋아한다고.

여신의 찻잔이라고 불리는 그 호수에 떠내려오는 봄꽃을 당신과 함께 보고 싶다고.

‘아무래도 그때 일이 퍽 미련이 남았던 모양이지.’

시간을 돌아와서도 그 장소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니.

샤를로트는 호숫가에 양산을 들고 서서 고요히 생각했다.

물론 그녀가 드베인으로 온 것은 고작 호수 구경 따위만이 원인인 것은 아니었다.

‘아델린을 만나보고 싶었지.’

그녀를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힐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선뜻 욕심이 앞서 알폰소의 제안을 수락해 버릴 것만 같아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알폰소가 사랑했던 여자를 만나보는 게 옳을 것 같았다.

하여 샤를로트는 수행인 하나 없이 훌쩍 드베인으로 와서, 아무것도 모르는 관광객인 것처럼 아델린에게 접근해 보았다.

몸이 약해 사교계 활동이 줄곧 전무하다시피 했던 까닭에, 아델린은 샤를로트를 알아보지 못했다.

‘기억하던 그대로였어.’

밀색 단발을 가진, 웃을 때면 보조개가 폭 패는 것이 퍽 귀여운 여자.

-돌아가실 때는 꼭 튤립을 한 묶음 사 가세요! 여긴 튤립이 예쁘거든요.

-이름이 릴리라고 했던가요? 즐거운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릴리!

알폰소가 올곧은 사람이라면 아델린은 선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샤를로트에게 악의 없는 대화가 얼마나 사람을 나른하게 만드는지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또한, 샤를로트가 그들과 얼마나 이질적인 사람인지도.

덕분에 샤를로트는 결심이 섰다.

‘그래. 퀸시의 말이 옳아.’

나는 그들과 어울리지 않아.

‘괜히 알폰소에게 깊게 얽혔다가 알폰소를 위험하게 만들 수는 없어.’

이제 수도로 돌아가자. 그리고 알폰소에게 편지를 쓰는 거야.

제안은 감사하나 함께할 수 없겠노라고.

아직 알폰소가 말한 일주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시간은 그리 늦지 않았다.

샤를로트가 편지에 적을 내용을 생각하며 호수 위의 외다리를 걷고 있던 찰나였다.

“어? 릴리!”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를 부르는 것 같았지만, 샤를로트는 제 이름이 아니었으므로 무시했다.

“릴리? 릴리 맞죠? 릴리!”

등 뒤에서 세 번이나 더 같은 이름이 들리고 나서야, 샤를로트는 제가 아델린에게 썼던 가명이 ‘릴리’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아델린의 통통 튀는 목소리와 퍽 닮아 있다는 것도.

설마.

아니겠지.

그런 생각과 함께 몸을 돌리자, 바람을 따라 휘날리는 붉은 머리카락 너머 예의 그 보조개가 폭 파이는 미소를 한껏 짓고 있는 아델린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아델린의 파트너 역시.

“……알폰소.”

그 은발을 알아보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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