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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을 완벽하게 끝내는 방법 14화 (15/122)

당연하지만, 샤를로트가 처음부터 알폰소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애초에 그들의 결혼부터가 썩 순탄치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알폰소는 샤를로트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조금 답답할 정도로 올곧고 정직하게 구는 인간.

자신에게 추문을 씌워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만든, 끔찍이 싫어하는 아내에게도 늘 예의를 다하던 남자.

오죽하면 퀸시가 이런 말을 다 했을까.

“에두아르트 공작이 네게 다정하다던데, 샤를. 금슬이 좋다는 이야기가 노하까지 들려오는구나.”

그 말에 샤를로트는 코웃음을 쳤다.

“말은 똑바로 해, 퀸시. 금슬이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에두아르트 공작이 얼마나 아내에게 지극정성인지에 대한 이야기겠지.”

“아주 틀린 말도 아니지 않니. 널 주겠다고 이번에 물 건너 온 비단을 몇 필이나 사갔다는 이야기가 사교계에 파다하던데. 새 옷을 짓거든 내게도 보여다오.”

“유감스럽지만 못 보여줘. 전부 태워 버렸거든.”

알폰소가 산 비단들은 물론 샤를로트에게 전부 전해졌다.

본인의 손이 아니라, 사용인을 통해서.

사실 무언가를 받는 것은 그때가 처음도 아니었다.

달력 뜯을 즈음이 되면 알폰소는 늘 사람을 시켜 이런저런 좋은 물건들을 샤를로트에게 보내곤 했으니까.

그게 아내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끔찍해 침실조차 들어오지 않는 남자의 행보라고 하면 누가 믿을까?

알폰소의 속내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게 본인이 남편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정작 본인은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샤를로트는 그 도리를 전부 벽난로에 처넣었다.

“그런 더러운 가식은 필요 없어.”

“에두아르트 공작이 상심했겠는데.”

“상심은 무슨.”

보낸 선물 전부가 불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 한 마디 없는 인간이다.

가식적인 위선자.

돌이키자니 다시 속이 불편해지는 기분이라, 샤를로트는 경멸을 담아 말했다.

“그 남자는 날 어떻게 대하는 게 가장 이득인지 알고 있을 뿐이야.”

지금 와서 과거를 반추해도 샤를로트의 평가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

알폰소는 그저 샤를로트에게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었다.

샤를로트가 자신의 선물을 불태우든 말든, 달이 바뀔 때마다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최상품을 구해 샤를로트에게 보내는 것으로.

‘내가 끔찍하게 싫어도 에두아르트의 평판을 더럽히고 싶지는 않다는 거겠지.’

알폰소와 샤를로트의 결혼이 워낙 소란스러웠던 까닭에, 사람들은 늘 에두아르트 공작 부부에게 관심이 많았다.

샤를로트야 부부 관계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돌아도 아무 상관 없다지만 에두아르트 공작인 알폰소는 아닐 터. 그러니 이렇게 부단히도 애를 쓰는 것이리라.

설령 문제가 생기더라도 어디 가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지 않겠는가.

물론 샤를로트도 그 행위 자체를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알폰소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그 친절과 노력을 고맙게 여겼을 것이다.

‘만약 상대가 날 끔찍하게 싫어하는 알폰소가 아니었더라면 말이지.’

알폰소는 자신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싫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원치 않았던 결혼에, 이따금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딱딱하게 굳어드는 낯과 애써 외면하는 시선까지.

혐오와 경멸이 노골적이라 우스울 지경이다.

그런 주제에 도리랍시고 호의를 베풀다니.

‘날 조롱하는 것도 아니고.’

그 가식적인 선물들을 받으면 분명 나를 우습게 보겠지.

누가 그런 꼴이 될 줄 알고?

“어차피 얼마 안 가서 그만두겠지, 그런 가식 따위.”

에두아르트 공작 부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시들해지고, 알폰소 본인도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면 이 어쭙잖은 행각도 끝이 날 것이다.

그리고 알폰소 본인은 마음 편히 스스로의 증오를 합리화할 수 있겠지.

그 끔찍한 악녀에게도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때가 되면 면전에서 인상을 쓰려나.’

그럼 아주 홀가분하게 웃어주어야지.

언제까지 착한 척을 하는지 궁금했다고 말이다.

‘그러면 이 답답한 기분도 사라지겠지.’

비단을 전부 불태워도 사라지지 않던 이 알 수 없는 체증도 그때는 사라질 것이다.

알폰소를 볼 때마다 불편했던 감정도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사라질 터.

샤를로트는 그날이 분명 한 계절이 채 가기 전에 올 거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계절이 지나도, 새로 돋은 잎이 말라비틀어진 이후에도.

알폰소가 죽기 직전까지도 달력을 넘길 즈음이 되면 샤를로트의 방에는 선물이 쌓였다.

바뀐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샤를로트가 더는 알폰소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결혼 후 한 계절이 채 가기도 전의 일이었다.

* * *

‘갑자기 옛날 생각을 해 버렸네.’

연회가 한창 무르익은 밤.

난간에 선 샤를로트가 연회장 안쪽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연회장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회한이 서려 있었다.

이 외출을 마지막으로 한동안은 나올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심란해지기라도 한 건지.

‘돌아온 시간이 너무 지루해서일지도 모르겠군.’

그동안은 알폰소의 파혼을 방해하기 위해 돌아다니느라 지루할 틈이 없었는데.

이제는 그럴 일도 남지 않았으니 하는 거라곤 고작 알폰소를 피해 과거의 시간을 반복하는 것뿐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지금 같은 상황 말이지.’

샤를로트가 지금 서 있는 곳은 알로이스 가문의 저택이었다.

이곳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석하는 것이 오늘의 유일한 일정.

간단해 보이지만 노하에는 굉장히 중요한 일정이었다.

‘아버지가 이곳의 노부인이 가지고 있는 애장품을 오래전부터 노려 왔으니까.’

알로이스 가문은 지위는 그리 높지 않지만 대부호로서 입지가 견고했는데, 덕분에 그 가문이 가지고 있는 소장품 목록이 어마어마하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돌았다.

그러나 그 소장품을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알로이스 가문의 유일한 직계인 노부인과 그 손자를 포함한 극소수뿐이라고.

그리고 도미닉은 그 소장품을 노리고 오래전부터 알로이스 가문에 물밑작업을 해 왔다.

‘물론 직접 하는 사람은 나지만.’

샤를로트가 노하에서 하는 역할은 대개 두 가지였다.

추문을 몰고 다니며 여론을 만들거나, 뛰어난 화술과 외모를 이용해 표적에게 접근하는 것.

‘쉽게 말해 바람잡이지.’

어느 쪽이든 소문이 좋게 나려야 날 수가 없는 구조.

노하의 악녀라는 악명 역시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노하는 그런 샤를로트를 적극 활용해 왔고, 지금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알로이스에서 멸망한 라베흐느 왕조의 유산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라베흐느라면…… 몇백 년 전 왕조가 아닙니까?

-그래. 현 대륙의 나라들은 전부 그 왕조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현재는 신전이 그 어떤 나라보다도 우위에 있지만…… 라베흐느를 앞설 수는 없다.

그렇잖아도 현 황제, 브누아 3세는 황권이 급격하게 강해진 상태다.

그런 그의 손에 라베흐느의 유산이 들어가, 정통성까지 갖게 된다면?

신전이 지금의 막강한 권위를 잃는 것은 당연하고, 그런 신전을 배후에 지고 있던 노하 역시 빠르게 몰락할 터.

-라베흐느의 유산은 무조건 신전의 손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니 알로이스에 접근해 보도록 해라, 샤를로트.

그런 이유로 샤를로트는 도미닉의 명을 따라 근 몇 달간 줄곧 알로이스와의 친분을 만들어 왔다.

과거로 돌아온 이후에는 알폰소의 일로 시들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알로이스 저택에서 열리는 연회까지 무시할 수는 없어.’

이런 큰 행사를 놓친다면 분명 도미닉의 귀에 들어갈 터.

알폰소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는 포부를 이루지 못한 아직은 가문과 척질 수 없었다.

덕분에 샤를로트는 어쩔 수 없이 외출을 감행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늘 알폰소가 이 연회에 올 리가 없다는 거지.’

그는 오늘 라베루즈 가의 연회에 참석해, 아델린과 만날 예정이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오기 직전까지 실비아를 통해 몇 번이나 확인한 사실이었다.

덕분에 샤를로트는 안심하고 알로이스 저택에 올 수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끔찍하게 따분한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사실 그 따분한 시간의 이유 대부분은 샤를로트의 바로 옆에 있는 알로이스 노부인의 손자, 로한 알로이스 때문이었다.

그는 샤를로트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간힘을 쓰느라 도무지 떨어지질 않고 있었다.

“……래서 제가 총을 쐈는데, 담비의 눈에 그대로 명중했지 뭡니까. 눈에 맞은 덕분에 그놈을 할머님의 목도리로……. 듣고 계십니까, 레이디 노하?”

“그럼요. 아주 흥미진진한데요.”

따분해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미 다 아는 허풍을 또 들으려니…….’

그런데.

“……?”

어느 순간부터 연회장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이미 연회가 한창이라, 올 사람은 전부 왔을 텐데.

‘무슨 일이지?’

의아함에 연회장 안쪽으로 시선을 돌린 샤를로트의 몸이 일순 딱딱하게 굳었다.

소란의 원인을 목격한 까닭이었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더 큰 은발의 남자.

‘알폰소?’

그가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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